< 묵상 글 >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습니다...
글 : 정 약용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 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핑하고 돌아버릴 거래요...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랍니다.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면.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보세요...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습니다.
- 목민심서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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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 아, 김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 한 목숨 내어 던진 신앙의 용사들이 끝없는 영광 속에 하늘에 살아있다.
피꽃을 몸에 피워 천당에 올랐어라... 찰나의 죽음으로 영생을 얻었어라... ”
순교선열들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그렇게 사셨고, 죽음을 넘는 사랑과 신앙으로 한목숨 바쳤습니다. 
온갖 박해와 시련들 속에서도 순교의 삶과 길을 사시던 신앙의 선조(先祖)들은 김대건 신부님의 삶, 영웅적인 순교의 소식에도 슬픔을 넘는 신앙으로 더욱 굳건해집니다.
그들은 끝내 생명까지 흔연히 바치며, 땅의 삶을 버리면서 하늘의 삶을 위해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과 신앙인의 삶을 위하여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순교영성(殉敎靈性)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고난(苦難)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으로 살면서,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전(傳)하며 기도해가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삶의 길 위에서 겪고 만나는 힘듦, 고통, 노고 속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그 어떤 세상의 세력, 고통, 박해, 죽음도 자신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하십니다.
아, 이 땅에 믿음의 횃불 되신 성 김 대건 신부님의 빛으로 다음과 같이 헤아려 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순교영성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지켰습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 많고 가련한 삶에도 순교 선열(先烈)들은 하느님의 자비에 삶과 목숨을 드렸습니다.
하느님은 섭리이십니다.
순교 선현(先賢)들이 한 목숨 드린 하느님은 환자를 대하는 의사처럼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이 세상 삶의 시련에서도 믿음, 전교, 기도의 길에서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은 채, 순교영성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옥중 편지에서 몇 말씀을 듣습니다.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걷기까지 기다리라.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爲主) 광영(光榮)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德功)을 세울 때니,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라.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 김 대건의 옥중서신, 제 25신에서)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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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형제회 초창기 회고사 >
“복음전파를 위해 달릴 길을 다 달렸다” - 제 5 부 -
서울 이문동 일반팀 FㆍB
박 팜필로(원석)
< 성서형제회 전국 조정말씀 선포자들 >
초대 전국조정 말씀선포자 김 에밀리오(석중) 형제는 초대교회 바오로 사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성서형제회를 소개할 땐 2~3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소개받는 이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드릴 때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으며, 사비를 들여 ‘기쁜소식지(성서형제회 월보)’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인 부분을 메우기 위해 집에서 키우던 개를 팔아서 월보를 만들고, 우표를 구매한 가슴시린 일화가 있습니다.
제2대 양 바오로(창민) 말씀선포자는(별세하심)은 전국단위 (연수회, 묵상회, 큰모임) 행사의 오리엔테이션 시간 때면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내시곤 하여 그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의 의미를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갑니다. 어떤 봉사자는 연수회 끝나고 결산할 때 턱없이 부족한 부분을 회원들 모르게 기쁜 마음으로 메우기도 해왔으며, 김 시몬나자로(창교) 말씀선포자는 20년의 성서형제회 역사를 회보로 남겼습니다.
이 시메온(원규) 말씀선포자는 수원교구 각 본당 견진교리를 성서형제회가 주관하는 성서세미나를 개최하여 세미나가 끝날 때 안산 원곡 성당에서는 팀이 3개나 만들어져 성서형제회를 알리는 새로운 방향제시를 하였습니다. 전국조정 말씀봉사자는 누구든 힘들고 고생 하신 분들이지만, 이분만큼 큰 십자가를 지신 분은 없었습니다.
황 크레센시아(미자) 12대(2007~2009년) 전국조정 말씀선포자...
이 분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광주살레시오 수도원이 신축되기 전까지 성서형제회 사무실이 수도원 내에 있었는데, 그때 무보수로 성서형제회 업무를 김 베드로(태헌) 형제와 함께 도와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평회원이었을 적에 전국 어디라도 모임(연수회,묵상회 큰모임)이 있으면 어린 남매를 가장 큰 승용차 티코에 태우고 빠짐없이 참여 했기에, 소속팀이 없었지만, 팀 봉사자들의 만장일치로 전국조정 말씀선포자가 되어 전국단위의 모임은 물론 각 교구 행사, 심지어 본당 행사까지도 챙기는 한없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한 사례로, 수원교구 북수동성당에서 성서형제회가 주관하는 성서세미나를 시작했기에 격려하기 위하여 전남 순천에서 귤과 간식거리를 준비하여 1000리길(5~6시간 걸림)도 마다 않고, 성서세미나에서 봉사하는 형제자매들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도착했으나, 봉사자 누구 한명도 반기는 이 없이 심지어 인사소개도 시켜주지 않는 이때 느끼는 비애감과 상실감은 너무 컸지만, “예수께서 수난 전날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경비병들에 의해 붙잡혀 갔을 때 유다의 배반, 붙잡힐까봐 도망가는 제자들, 특히 모든 제자들이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 이라고 장담한 베드로마저도 세 번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도 인간적인 서운함 접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 가셨던 것처럼” 깜깜한 밤에 홀로 천리 길을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이렇게 온통 혼신의 힘을 다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봉사한 결과, 주님께서는 봉사자 재임시기인 2009년 6월 17일 전주교구장 이 빈첸시오(병호) 주교님에 의해 한국교회 안에서 근 40여년 만에 교회에 공적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언제 어디서나 전국단위의 행사 때마다 전주식 반찬에다 밥이 되어주신 13대 박 아폴로니아(영화) 말씀선포자는 따뜻함이 봄꽃처럼 피어납니다.
말씀선포자 중에 가장 계획적이고 완벽하여 행복한 재임시절을 보낸 봉사자, 14대 이 보나벤뚜라(강진) 형제(서울 당산동 팀)는 행사(전국단위든, 지구단위든, 본당단위든)가 진행되면 준비 단계부터 당산동팀원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이행연습까지 하여 시간을 체크하고, 행사 당일에는 선발대를 구성하여 행사장에 오는 분들을 환영하고, 행사 끝에는 맨 마지막 정리를 하고, 공동식사로 행사를 마무리하는 형제자매들의 아름다운 모습들...
“생각만 해도 ‘전국조정 말씀선포자’가 당산동 팀에서 나와 우리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행복해 한 모습으로 답한 김 효주아녜스(향자) 자매와 든든한 장군들(형제님들)... 저도 행복해집니다.
제15대 전국조정 말씀선포자 이 보니파시아(정혁) 말씀선포자...
전주지구 봉사자직을 수행할 때 이미 준비된 분이면서도 아직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 하셨으나, 업무를 인수인계 받자마자 첫 월례회 때 성서 형제회(F.B) 현황보고서(창립에서~ 오늘날까지 연력 및 현황보고)를 96페이지 안에 담아와 회원들 모두를 놀라게 하셨으니, 눈도 어두우신 분이 에콰도르 선교지에 계신 최 바오로마리아(규업) 창립 신부님 소식까지 준비해 오신 것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부군, 김 파스칼(종술) 형제님께서 요셉 성인처럼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봉사자님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 2018년 8월호에 제6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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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 / 교황 주일
2018. 7. 1
마르코 5, 21~43
♠ 복음 공부 :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
-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이적사화(21-24;35-43) 중간에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신 치유사화(25-34)가 끼어있다. 두 가지 이적사화는 본디 따로 전해오다가 후대에 이르러 연결되었다고 한다. 마르코는 이런 방법을 자주 써왔다. (예수님께서 친척들과 맞서는 상황이 전개되는 사이에 율법학자들과의 벌어진 논쟁을 삽입한다. 이밖에 5.21-43; 6.7-33: 11.11-21; 14.1-11에서도 볼 수 있다. )
* 21-24절 : 예수님과 회당장-예수님과 함께 군중들이 갈릴레아 호숫가에 있는데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은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지위였지만, 자신의 사회적인 체면을 무시하고 죽어가는 딸의 생명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예수님은 따라 나서고 군중도 따라간다. 그는 예수님 안에 생명의 원천이 있음을 인정한다.
* 25-34절 : 숨겨진 힘-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군중 가운데 병고에 시달리고 열두 해 동안이나 사회에서 불결한 여자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그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하심뿐만 아니라, 그분의 권능하심도 들었다. 여인은 그 권위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불결함이 발각당할까 두려워하면서 군중에 섞여 다가간다. 모세의 율법에 불결한 상태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금한다. 이 여자는 감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 예수님은 기적의 힘을 깨닫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신다(4.11)” 예수님은 공표하고 싶으신 것이다. “딸아” 애정 어린 호칭이다. 이제 생명을 낳고 살리는 예수님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병이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순간 치유를 받은 여인은 예수님이 가져다주신 기쁜 소식의 살아있는 증인이 된다.
* 35-43절 : 생명의 주인 : 이 부분이 본디 24절과 직결되었을 것이다. 병이 나았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있을 때 죽음의 소식이 전해진다. 딸이 죽었다는데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는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더 이상하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보면 아이는 죽었지만 예수님이 보기에는 소녀가 잠자고 있다. 그분은 잠자는 사람을 깨우듯이 죽은 사람을 되살리실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기적 행위에 대해 열광받기를 원치 않으신다. 사람들을 다 내보내시고 사랑하는 세 사도와 소녀의 부모님을 데리고 들어가 소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명하신다. 엘리아(1열왕 17.21-22)와 엘리사(2열왕4.33-37)는 여러 행동을 하고 하느님께 간청하여 소생이적을 행한 적이 있으나 예수님은 대조적으로 “탈리타 쿰”이라 말한 즉시 소녀는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놀라워하지만 예수님만이 평온한 상태로 아무에게도 말라는 마르코의 특유 함구령을 덧붙인다.
♠ 복음 요약 :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힘이 활기차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관계를 체험할 수 있다.오랜 고통 속에 좌절을 체험한 여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다.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이 지친 여인에게 누군가가 예수님의 말을 전해 듣고 간절한 믿음으로 그분께 내맡기고 다가갔을 때 피가 그친다. 생명력이 다시 시작한다. 우리가 예수님이 생명의 원천이심을 온전히 믿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은 여인을 확인하신다. 또한 야이로의 딸 소생사화는 사건보다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 이 사화의 뜻은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치 잠자는 사람을 깨우듯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이다. 엘리아나 엘리사보다 훨씬 훌륭하시다는 뜻이다. 죽어가거나 죽었다는 것은 완전히 생명력이 상실한 죽음과 같은 상황은 어느 때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목표를 가지고 산다. 이 목표의 구체적 행위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사람을 살리고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준비된 상태이다.
♠ 대화 방향 : 예수님과 나와의 신뢰 관계에서 생명이 되살아남을 체험하시기를 바라며, 회당장, 여인. 예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고 나의 믿음은 어떤지 살펴봅시다.
♠ 참고 문헌 : 200주념 신약성서 주해 /분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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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2018. 7. 8
마르코 6, 1~6
♠ 복음 공부 - 나자렛 고향에서 무시를 당하시다.
* 1~3절 : 예수님께서는 객지에서 활동하시다 모처럼 고향 나자렛에 도착하여, 마침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한 대목을 설명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사명을 보여주는 놀라운 설교에 고향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 사람은 목수(장인)가 아닌가? 나자렛 사람들의 첫 반응은 ‘놀라움’ 이다. 예수님께서는 서기 27년경 공생활하기 전까지는 장인(그리스어로 떽돈, 요즘 말로 기술자 : 미장이, 땜장이. 석수, 목수)이셨다. 마태오는 마르코 6.3절을 옮겨 쓰면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13.55)라고 고쳐썼다. 그래서 오늘날 천주교회에서 요셉을 노동자의 주보성인으로 정했다.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 이스라엘의 언어 관습은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서기 27-30년 공생활 동안 요셉이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마리아의 아들이라 했을 것이다.“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성경에 형제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 더러 있어 개신교에서는 친동생들로 보지만, 가톨릭에서는, 형제, 자매라는 말은 친동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폭 넓은 뜻으로 친척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사촌을 지칭하는 적당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을 살펴보면,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가 낳은 자식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죽음을 멀리서 바라본 여자 가운데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마르5.40)가 나온다. 이 야고보는 후에 예루살렘 모 교회의 지도자가 된 주님의 형제(사도12.17:15.13:21.18)이다. 누이도 함께 살고 있다고 하는데 신원에 대하여 알 수 없다. 곧 예수님은 별 볼일 없는 평민으로 예수님의 직업이나 가족이 미천한 출신의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현재 그들이 대망하던 메시아의 품위와 걸맞지 않게 감히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지혜롭게 가르치며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 4~6절 :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고향 사람들의 태도에 놀라고, 비탄스러운 마음으로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 고 설명하신다. 예언자는 그를 잘 안다고 주장하며 그가 초자연적 영감과 사명을 지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한테서는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고향에서 더 많은 기적을 행하리라 기대했지만,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특별한 기적을 더 행할 수 없었다.
♠ 복음 요약 : 그분은 가파르나움에서 설교를 시작하고 기적을 행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고향을 방문하여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치신다. 그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그들은 편견 때문에 그분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고, 예수님은 목수로 남아 있어야 하고, 그 신원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과거 생각을 고집하고자 한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진실을 볼 수 없다는 역설이다. 믿음의 결핍은 하느님의 은총을 막는 장애물이다. 마르코에서 믿음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참여하고 싶은 지향과 의지를 드러내는 통로다. 마음을 열지 않은 불신 상태에서 당신의 권능과 권위를 드러내어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 일으켜 설득하거나 놀라운 일을 보이시지 않고 당신의 길을 떠나신다. 곧 오늘 복음은 편견으로 인해 믿기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우리도 나자렛 사람들처럼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편견에 의존할 때가 있는데, 불신은 완고한 마음과 꽉 막힌 상태에서 죽음까지 치닫게 한다.
♠ 대화 방향 : 오늘날 그분을 알고 믿는 신자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실제로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어떤 사람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요? 아니면 선입견으로 판단하여 실수한 경우가 있는지 마음의 내적 흐름을 살펴보세요.
♠ 참고 문헌 : ▪ 소공동체를 위한 성경공부 마르코 복음 맛들이기 ( 수원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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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 농민 주일
2018. 7. 15
마르코 6, 7~13
♠ 복음 공부 - 들어가면서 : 빵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마르 6,8)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봉사하지 않는 형제・자매들에게 함께 할 것을 권유하면 ‘너무 바빠서’, ‘아무 것도 모르는데’, ‘돈을 더 벌고’, ‘생활이 안정되면’ ? 등등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은 할 일이 없고, 공부 잘하고, 지식이 풍부하고, 돈 많고, 모든 생활이 안정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르심에 응답한 것뿐입니다.
* 7절 :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신 것을 보면 파견목적이 분명히 보인다. 두 사람씩 짝지어서 파견한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으로 비롯된다고 한다. 금융대란 이전에는 교우가정방문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 이후로는 단원들이 가정방문할 여유가 없거나, 아니면 신뢰를 받지 못해서인지 방문을 꺼려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파견 후 다시 돌아와서 스승님께 보고할 것이지만, 처음에는 이해도 안 되고 성과도 없이 돌아올 때가 많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인내하며 몇 번이나 파견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주택가가 조금밖에 없는 공덕동성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선교를 나서서 어느 가정집을 방문했다. 엄청난 욕을 먹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단원들은 지속적으로 방문한 결과, 무려 1년이 지나서 세례를 받게 하였다고 한다.
* 8~9절 : 전도여행 중 지팡이와 신발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상당히 부담을 주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날 자동차, 컴퓨터, 휴대폰과 같은 문명의 도구가 주는 편리함을 생각할 때 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수단을 준비하고 마련하기 위해 지체하지 말고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고 신뢰할 것을 요구하신다.
* 10~11절 : 제자들의 전도여행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전체 삶의 여정이 말씀을 전하는 전도여행이 되기를 희망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당황스러워하기 보다는 필요한 모든 것을 손수 마련해주시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듣고 여행에
불필요한 것들을 먼지처럼 털어버릴 줄 알아야 하겠다.
* 12절 : 오늘날 봉사자를 뽑기가 어렵다고 하시는 신부님이 드물지 않다고 하신다. 더러는 신부님께 전출 간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본당사제를 통해 듣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제자들처럼 다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순종하면 세상에 파견 될 것이고 주님은 그들을 도와서 그들이 활동하는데 제약이 없을 것이다. 본문은 제자들이 한일을 간단하게 적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이 망설임과 주저함이 분명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설마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말고, 파견됨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성장도 이뤄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복음 요약 : 얼마 전에 ‘삶의 자리에서 나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들’에 관한 나눔을 할 기회가 있었다. 참 많은 것들이 나를 묶고 있더군요. 가기 싫건 좋건 매일같이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묶여 있어야 하는 직장, 많은 것들을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가족,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상 등등. 전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자유스러움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렇게 무거운 짐들을 많이 주셨을까’ 만을 떠올리던 저는 문득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의 원인은 다 제게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자유는 사람이 만들지만, 그런 ‘짐’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 위치를 인정하고 나면 참 자유롭다. 일할 기회와 경제적인 여건을 허락하는 직장,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가족들, 아직도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래…. 이렇게 보면 이 모든 것들은 부자유스러움의 요소가 아니라 축복의 내용이 될 수도 있지요. 이런 눈을 뜨게 해주시는 분은 바로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이시지요. †
♠ 대화 방향 : ① 성서형제회 내에서나 본당단체에서 봉사자들이 너무 부족하다고 한다. 내가 다른 봉사자나 본당신부님이나 수녀님을 통해서 이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지요?
② 혹시 능력이 없거나 시간이 없다고 해서 거절한 적이 있는지요? 있다면 왜 그랬을까요?
③ 혹시 주님이 모든 것을 알려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해서 일까요? 솔직한 마음을 나눠보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봉사할 은사를 찾아낼 마음은 있는지요?
♠ 참고 문헌 : ▪ 보득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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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
2018. 7. 22
마르코 6, 30~34
♠ 복음 공부
* 30~32절 : 파견되었던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딴곳으로 떠났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안식일을 따로 정하셨다. 그 안식일은 주일이며, 토요일을 주일을 준비하면서 쉬는 성모님의 날이다. 쉰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품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피정이란 일터를 떠나서 성지나 피정센터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잠깐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시간에 더욱 중요하다.
* 33절 :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 34절 :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목자 없는 양들처럼 느끼시고 가엾은 마음을 가지시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셨다.
♠ 복음 요약 :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삶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며, 인생을 방황하다가 허무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늘을 바라보면 이 세상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음을 바라볼 수 있다. 5월 29일은 복자 요셉, 요셉 코발스키의 축일이었다. 그는 폴란드 출신이며, 살레시오수도회 사제였다. 그는 나치에 의해 유태인 포로수용소 아우스비츠로 끌려가서 수용소에서 살았다. 병든 유태인들이 날마다 가스실에서 죽어 갔으며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수용소 안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굴뚝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삶의 마지막이 저렇게 가스실에서 한 줌 재로 연기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심한 허무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복자 코발스키는 아우스비츠 수용소 주변에 있는 성당을 쳐다보면서 도움이신 성모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면서 매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수용소를 두 팔로 안고 계시는 묵상을 하면서 매일 하늘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 우리에게는 희망의 하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우리의 근원이 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매일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늘로 향할 때 소풍처럼 느끼고 주님의 품안에 안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화 방향 : 예수님은 군중들이 많이 몰려왔음에도 제자들을 외딴 곳에 가서 쉬라고 초대하신다. 정신을 놓고 쉬라는 것이 아니다. 고독과 침묵 안에서 인간의 마음 안에 말씀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불러내시는 것이다. 하루하루 바쁜 여정에서 잠깐의 휴식은 몸에는 물론, 영혼의 휴식이 된다. 그리고 10분이라도 조용한곳을 혼자 걷는 것 또한 영혼을 위한 휴식이 된다. 그 시간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자연과 마음속에 들려오는 주님을 묵상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 참고 문헌 : ▪ 살레시안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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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일
2018. 7. 29
요한 6, 1~15
♠ 복음 공부 -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한 이 표징은 네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 두 번(마태 14.13-21:15.32-36.35-44:8.1-10), 루카 복음서는 한 번(9.10-17. 2열왕 4.42-44절 참조), 이 기적은 티베리아 호수로 알려진 갈릴레아에서 하신 활동의 정점이자 종결인 동시에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느냐 또는 거부하느냐의 결정적 선택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그 옛날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만나의 선물을 받았던 사건을 되새기는 한편, 결정적 구원의 때에 이루어진 성체성사라는 미래의 사건을 예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요한은 기적이 아니라 “표징”이라는 말을 쓰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 1절 : 그리스 말 본문에는 ‘바다’로 되어있다. 바다는 셈족 말씨 표현이다.‘티베리아’는 헤로데가 B.C 17-22년에 갈릴레아 남서쪽 물가에 지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봉헌한 고을로 신약성서에서 갈릴레아 호수가 자주 티베리아 호수로 불린다.
* 2~4절 :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따라왔음을 보시고 눈앞에 나타난 사실 그대로 보다는 그 기적이 상징하는 있는 의미를 인식시키려 했을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 무엇인가 가르치려는 듯 제자들과 앉으셨다.‘ 산’이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장소로 모세가 체험한 시나이 (출3.2 ;19.3이하 참조)를 상기시켜 예수님과 비교시키고 있다. 또한 요한만이 유다인들의 축제 ‘해방절’ 즉 빠스카 축제 때에 의미 깊은 행동을 하셨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복음서 저자의 시대에 유다교 사이에서 논쟁과(과월절, 7.2는 초막절;10.22성전봉헌 축일 ) 관련됨을 이해해야 된다. 이제 유다인들의 축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성자를 통해 성취된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해서이다. 이 이야기 안에서 역사 속 인물 예수가 부활한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군중은 영적 자양분에 굶주린 사람들을 상징한다.
* 5~10절 : 모든 것을 아시는 (2.25;4.44;13.11) 예수님의 물음은 제자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떠보려는 것일 뿐이며, 필립보의 답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하지 못한 대답이었지만, 앞으로 일어날 기적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 11절 : 예수님이 행한 기적의 ‘새로움’은 예수님의 행동과 ‘감사드리다’는 말로써 성체성사적 특징들로 압축되어 보여진다. 예수님의 행함은 초대교회 성찬례의 상징이 명백히 보존되어 있다.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빵을 들어 축복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줄 빵을 주었는데, 이는 교회의 사제들이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의 모습처럼 보인다.
* 12~13절 : 물고기는 전혀 언급 없이 빵에 대해서만 언급하시고 ‘남은 조각’에 대하여 명시한 것은 성체성사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표현에 주목되며, ‘대략 오천 명의 장정이 배불리 먹었다’ 는 표현은 모든 사람, 가난한 이들이 만족할 만큼 먹을 수 있는 메시아 시대의 종말론적 잔치를 연상시키며, ‘광주리’(코피노스)는 제자들의 여행 배낭이며, ‘열두 광주리’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며, 빵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것은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먹고 그 이상은 차지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 14~15절 :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은 그분의 신분과 사명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해방을 보장하는 ‘세상에 오기로 되어있는 예언자’로서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군중이 정치적 역할을 떠맡기려하는 낌새를 알고 예수님께서는 더 높이 산으로 올라가셨다.
♠ 복음 요약 : 마태오 마르코 루카복음과 비교할 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들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누어 줄 빵을 주었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빵을 나누어 바로 그분이 우리의 굶주림을 채워줄 분임을 명시한다. 공관복음서 몇 군데에서는 예수님이 빵을 축복하고 떼는 것을 보았는데,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감사를 드린다.’ ‘감사를 드린다’ 는 그리스어(복음서의 본래 의미는)는 euchristeo이다. 이것은 빵이 성체성사를 상징한다는 단서를 우리에게 준다. 요한은 이 표징을 통해 역사적 인물 예수님이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가 성체성사 안에 그들과 함께 현존한다는 것을 청중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의 백성을 먹일 수 있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다가가 머문다면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성체성사를 통해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우리 각자는 어떻게 가까이 하고 있으며, 내가 세상 안에 참 생명을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빵이 될 수 있을까요? 각자의 체험이나 앞으로의 방향을 나누어 봅시다.
② 어린이가 자신이 먹을 것을 내어놓은 사건을 통해 우리는 부족한 가운데서도 내어놓은 우리의 작은 희생이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 사람이 축복을 받게 되는 나눔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현재 각자의 나눔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반성을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성서 못자리 그룹공부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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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봉사자 월례회합 스케치 >
아름다운 혼배, 변해가는 월례모임
FㆍB 서기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성서형제회를 사랑하시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에게 서울 당산동에서 당산동 코이노니아 팀봉사자이신 이 안셀모(기대)의 혼배와 함께 한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6월초에 ‘큰모임’을 한 까닭에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는 조촐하게 모임을 가졌다.




오히려 기차가 연착한 탓인지라 필자가 늦게 도착해서 처음 분위기를 전할 수 없어서 죄송할 뿐이다.
전주서 모니카 자매님, 아폴로니아 자매님, 아나스타시아 자매님, 새로 선출된 이문동 일반팀 말씀봉사자인 용 라우렌시오 형제님, 팜필로 형제님이 참석하였고, 전국조정이신 방 레오 형제님과 당산동 김 효주아네스 자매님과 한 베드로 형제님, 이 보나벤뚜라 형제님, 대구서 올라온 필자가 배석했다. 당산동식구들은 혼배를 돕느라고 다들 그곳에 가있었다.
12시 30분에 시작하는 혼배여서 11시부터 월례회의중 코이노니아가 시작되었다.
코이노니아는 주모경으로 시작되었고, 성요한 세례자탄생 대축일 미사복음은 루카복음을 낭독했다.
몇 분이 묵상나눔을 하셨다. 처음 마음, 광야의 의미를 자신의 삶과 견주어 말하였다. 그리고 데레지아 수녀님이 정리해주셨다.
즈가리아 노래를 중심으로 해설해 주셨다. 풀이해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는 우리는 마치 성가대에서 즈가리아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 라는 뜻이라고 하신다.
신앙이란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느껴야 깨달아진다고 하셨다. 이는 우리 신앙인의 자세 믿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하느님 구원의 때가 도래했다고 하셨고, 구약의 레베카의 쌍둥이 임신을 견주어 설명해 주셨다. 세레자요한의 출현은 예수의 출생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성당으로 이동하여서 12시30분 혼배미사가 시작되었고, 기념촬영이 끝난 후 1시40분이 되어서야 지하에 마련된 식당으로 이동하여서 식사를 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사제퇴장 이후 성서형제회 당산동 팀과 FB봉사자를 중심으로 마련된 축가는 환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를 잘 반주한 탓도 있고, 아름다운 당산동성당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이 잘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라 필자는 굳게 믿어본다. 식사 이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충분한 준비 없이 지휘봉을 잡은 전국조정에 의해서 지난번에 치러진 큰모임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명백히 갈렸지만, 대다수 의견은 요번행사가 큰모임의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공감했다.
전국조정인 방 레오는 차분하시고 감각이 남다르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행사를 하는데 보이지 않는 많은 역할이 부여되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 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는데, 차기봉사자 없이 전국조정이 이끌어가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우리들이 전국조정의 역할이 전주지구에서 인천, 서울로 옮겨오면서 약간의 공백이 우리를 혼란하게 만든 것 같았다.
큰모임 평가에 대해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다음 안건인 수련회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늘 편하게 생각했던 천호성지가 늦게 신청한 까닭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수류성당 내 교육관을 사용하기로 하였는데, 식사는 우리가 직접 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남아있었다. 다행히도 2019년 초에 하는 묵상회는 천호성지에 예약을 할 수가 있었다.
월례회의의 주안점인 월례보고서 문제도 다음 달부터 재개하기로 하였다. 코이노니아가 활발하지 않는 인천지역에서 조정봉사자가 혼자서 감내하기란 어려운 일이기에 적어도 수련회 때에는 차기봉사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안건을 나왔다. 또 ‘50주년 준비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각 분과별로 분과장을 중심으로 서로 연락해서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을 통해 나눔을 갖도록 하였다. 오프라인 모임을 할 경우에는 준비위원장이 참석하기로 하였다. 50주년을 준비하면서 그 이후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려고 하였는데, 당장은 초대창설자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하는데 동의했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기차시각이 임박한 관계로 의견만 내고 귀가하는 바람에 결론을 듣지 못하였다. 그이후의 소식은 별도로 다른 분이 글을 작성해 올리거나 다음 회의 때에 첨부될 것이다.
다음 달 월례회의는 7월 21일(토요일) 제기동 팜필로 형제님의 사업장에서 갖기로 했다.
성서형제회는 창설된 지가 금년으로서 48년이 되었다. 지금 가톨릭의 환경이 바뀌어나가고 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금융대란을 겪고 젊은이들이 늦게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맞으며 본당공동체에 전적으로 집중하기가 어려운 시기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시기에 세상으로 나아가 활동하면서 다치고 더러워지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성당 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고 예수님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약간의 혼란과 어려움으로 우리가 더욱 더 예수님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이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여긴다. 이는 사도바오로가 데살로니카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전에 필리삐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했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2,2)
기쁨소식지 발행에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기쁨 맘으로 전하기 위해서라도 각 코이노니아 팀에서 팀 단위로 제 때에 적은 돈이라도 의연금을 보내주시면 성서형제회 운영에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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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ㆍB 큰모임 스케치 >
성체성혈 대축일에 가진 큰모임
FㆍB 서기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금년 공동체는 성거산 사용문제로 인하여 날짜가 다소 늦춰진 성체성혈대축일에 서울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두산성지에 모였다.






필자가 과거에 자주 갔던 그 합덕에서의 가는 길이 오래간만인지 생소하기만 느껴졌다.
그 당시 주변의 건물이 별로 없던 때이고 새로이 단정된 모습이 생소하기만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한남기 베드로 부부가 반기며 안내한다.
꾸르실료회관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주 팀이며 안산팀, 그리고 서울에 계신 분들이 지난달에 만났는데 반가이 인사하신다.
가장 빠른 시각에 미사를 드려야하는데, 11시에 도착한 이들이 먼저 유해실과 주변들을 순례하신 것 같았다.
12시20분에 서둘러서 미사가 진행되고 신부님은 오늘 성체성혈대축일에 관한
말씀과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다함께 합송하게 하시는 고백성 같은 말씀도 덧붙이셨다.
전주 사랑공동체가 마련한 식사를 한 후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택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진행되었다. 다시 돌아온 우리는 조 편성을 한 후에 ‘성령강림과 50년 준비’라는 주제로 조별 코이노니아를 가졌다.
필자가 속한 2조는 여러 가지 자신에 대한 애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식사이후 진행은 일정 바쁘신 정지풍 신부님을 먼저 보내고 진행되었다.
여러분들이 그날 많이 이야기를 하시었고
말씀하시고 싶어 하셨다.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머물었던 안산 팀과 그 장소에서 더 머문 다음에 개신교건축물사이로 내려왔다.
합정역근처서 아쉬운지 모두들 찬 한잔의 여유를 가진 후 며칠 후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전철에 몸을 실었다
준비하고 기획하신 모든 분 특별히 어르신들이 많이 버스대절로 오신 전주공동체에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은 우리 서로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아멘...!
오늘 우리를 초대한 이곳을 소개하면,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한강변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며, 봉우리의 모양에 따라 가을두 · 용두봉 · 잠두봉이라고도 불렸다.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까지 진격해온 적이 있었는데,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 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 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라 하여 심문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박물관·경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양화진에는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한국선교에 헌신했던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외인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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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복음묵상 기고 >
‘내 안에 저절로 자라는 씨앗...’
( 마르코 복음 4,26~34 )
서울 목3동 성가정팀
김 이레나 (수미)
+ 찬미 예수님...!
하늘나라는 우리 신앙이 자라는 씨앗에 비길 수 있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이 사는 모습들은 마치 어떤 사람이 땅에 뿌려놓은 작은 씨앗처럼 살고 있지 않나 느껴집니다.
뿌려진 씨앗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기에 주님께서는 더 어여삐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 다른 우리는 하나이며 세상에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로 잘 자라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하늘나라 티켓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생겨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게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체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내가 필요한 것 같지만 내가 없어도 잘 움직이고 있어 나의 존재 가치를 상실할 때 느끼는 심정은 서글픔으로 다가옵니다.
뿌려진 씨앗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싹이 트고 자라는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기쁨을 주기보다는 가라지의 물결을 이룬다면 얼마나 한심할까 두려워집니다.
나의 매 작은 일도 함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고 계시는 손길을 봅니다.
우리는 다행이도 미사와 기도 그리고 말씀을 공부하고 나누는 코이노니아에 감사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겨자씨의 비유처럼 작은 씨앗이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듯 농부이신 주님께서는 작은 나눔도 체크하시며 비록 우리가 부족하지만, 그 작은 일들이 크게 자랄 수 있도록 빛과 영양분을 주시고 비를 주셔 수확의 날에 알곡을 모아 사랑스런 눈으로 우리들을 향해 말씀해 주실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 성화되려고 모인 아이들아!”⌃⌃
부족한 우리가 못 알아들어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풀이해 주신 것처럼 성령을 통해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제가 비록 돌투성이 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이라도 저를 포기하시지 마시고 저 또한 이런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그 의미에를 깨닫는 순간으로 충분합니다.
나에게 뿌린 씨앗들이 조금씩 뿌린 분의 뜻대로 자랄 것이고 그 씨앗들이 자라는 모습을 목격하고 감사드릴 것입니다.
제 씨앗이 잘 자라도록 살펴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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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8년 5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