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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의 역사
켈트족의 역사 - 간략한 소개
켈트 족의 역사는 쉽게 정의할 수 없다. 그들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고, 그 결과 그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관점들과 해석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에서 공통된 분모를 종합해 볼 때, 켈트 족의 역사는 대략 아래와 같이 서술될 수 있다.
최초의 켈트족
기원전 800-600년 경, 알프스 북쪽에는 그리스 인들이 켈토이라 부르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개의 공국(公國)을 형성하고 그리스 인들과 에트루시아 인과 교역했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 경 이들의 공국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기원전 400년 경 프랑스 동부에서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보헤미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는 새로운 민족 집단이 형성되었다. 다수의 부장품(副葬品)을 매장한 전사의 무덤과 새로운 형식의 미술로 특징 지워지는 이들의 문화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라텐느 문명the La Tene culture'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들은 기원전 400년 이탈리아를 침략하여 포Po 계곡에 정착했다.
가울 족The Gauls : 포악한 야만족 침입자
갈리아 인the Gallic이라고도 불리는 가울 족은 고대 켈트 족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민족이었다. 이제까지의 켈트 족은 단지 학문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민족일 뿐이었지만, 가울 족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이들은 두렵고 '야만적인' 위협으로 변신했다. 기원전 390년 경 세노네스Senones라 불리는 갈리아 족의 한 분파는 로마를 침략하고 약탈했다. 그러나 그들의 침략은 오래 가지 못했고, 결국 로마에서 쫓겨난 그들은 대부분 포 계곡으로 가 갈리아 키살피나Gallia Cisalpia를 형성했다. (갈리아 키살피나는 알프스 이편의 가울 족Gaul this side of the Alps라는 뜻이다.)
터키의 갈라티아Galatia 인들
켈트 족의 일부는 발칸 반도로 이주했다. 기원전 279년, 이들은 그리스의 가장 큰 신전인 델피Delphi를 습격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그 후 그들은 아나톨리아Anatolia(지금의 터키 지방)으로 가 오늘날의 앙카라Ankara 근방에 왕국을 건설했다. 로마 인들이 '가울' 인이라 부른 이들을 그리스 인들은 '갈라타에Galatae'라 불렀으므로, 이들의 나라는 '갈라티아'라 불리게 되었다.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갈라티아 인들은 바로 이 민족이다.
서유럽의 켈트 족
비록 당시의 문서에 기록된 바는 없지만, 켈트 족이 그들의 고향인 중앙 유럽으로부터 유럽 서부와 북서부로 꾸준히 이동해 왔다는 것은 이제 고고학계에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인들은 켈티베리아Celtiberia 인이라 불리는민족이 스페인에 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 곳에서도 켈트 어에서 파생된 방언(方言)들이 발견된 바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것이 기록되지 않은 초기 켈트 족의 침입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켈트 족이 브리튼 섬을 칩략했다는 것 역시 사실(史實)로 받아들여지는 학설이다. 시저는 가울 족, 특히 벨가에Belgae 족이 브리튼 섬에 정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브리튼 섬에 거주한 켈트 족 중 많은 부족의 이름이 유럽에서도 발견된다. (아트레바테Atrebate 족이나 파리시Parisi 족이 그 예이다) 현대 언어학은 영어와 아일랜드 어가 유럽 대륙의 가울 족의 언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을 밝혀 냈다. 실제로 오늘날 이들은 모두 같은 켈트 어군(語群)으로 분류되고 있다.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의 철기 시대 유물이 유럽 대륙의 켈트 족 유물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유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브리튼 섬, 아일랜드, 그리고 유럽 대륙의 켈트 족의 유물은 모두 '켈트' 예술이라 불리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소용돌이치는 선, 식물(植物)에의 암시, 인간과 동물을 형상화한 고유한 양식(樣式)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무기와 성채, 전쟁에 대한 강조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종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들 세 집단은 모두 드루이드를 중심으로 한 동일한 신앙을 가졌다. 그렇다면 고대 영국인과 아일랜드 인은 가울 족처럼 켈트 족이었으며, 스페인과 터키에 살던 민족들과도 혈통이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정복 : 파괴된 대륙의 켈트 문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로마 제국은 팽창을 거듭하며 점차적으로 대륙의 켈트 족들을 정복했다. 라인 강 북부와 다뉴브 강북부의 켈트 족만이 이 정복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곧 새로운 '야만족' 집단인 게르만 족에 의해 밀려났다. 가울 족의 세 나라the Three Gauls'(대강 오늘날의 프랑스와 라인란트 지방)과 히스파니아Hispania(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켈트족의 영토나 켈트 족과 다른 민족이 공유했던 영토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켈트 족의 언어와 생활 방식은 '로마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 지역에서는 라틴 어가 쓰이게 되었고, 그 언어가 지금의 로망스Romance 어군(즉 스페인 어, 프랑스 어, 프랑스 어, 칼라탄Calatan 어 등)의 모태가 되었다. 로마 제국이 유럽에서 켈트 족의 문화를 멸종시켰던 것이다.
브리튼과 아일랜드, 그리고 로마
로마 제국이 브리튼 섬을 정복하자, 잉글랜드 지방과 웨일즈 지방에서는 유럽에서 있었던 것과 흡사한 로마화가 진행되었다. 즉,이 지역은 켈트 족의 언어와 문화를 잃고 대신 로마의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칼레도니아Caledonia, 즉 북부 스코틀랜드지방에서는 여전히 독립된 '야만족'의 문화가 우세하게 지속되었다. 한편, 아일랜드는 로마의 침입을 받지 않았으므로 고유의 켈트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일부에서는 최근 발굴된 드루마나흐Drumanagh의 유적이 로마 군 주둔지라고 강력하게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교역지였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픽트 인(Picts)과 스코트 인(Scots)
3, 4 세기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정복되지 않았던 켈트 족은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칼레도니아에서는 픽트 인이라불리는 새로운 동맹이 생겨나 로마의 국경 지대를 공격했다. 한편 스코티Scotti라 알려진 아일랜드의 해적들은 서부 해안을 약탈했다. 이들의 해적질은 게르만 계의 앵글인들Angles과 색슨인들Saxons이 동쪽 해안을 약탈하는 동안에도 지속되었다.
브리튼의 재앙
5세기, 로마화 된 브리튼은 멸망했으며, 대신 앵글로색슨Anglo-Saxon 인들이 브리튼 동부를 침략하여 그곳에 정착했다. 이들은 독일어군의 언어를 말하는 잉글랜드를 세우고, 브리튼의 원주민들을 탄압했다. 앵글로색슨 인들이 '웰리쉬Welish(오늘날 웨일즈 인을 뜻하는 단어)'라 불렀던 이들 원주민은 서쪽으로 쫓겨나 오늘날의 웨일즈와 콘월Cornwall 지방에 정착했다.
브리타니Brittany의 정복
그러나 브리튼 인 모두가 웨일즈와 콘월로 쫓겨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대신 바다를 건너 아르모리카(Armorica) 지방으로 갔다. 이곳은 가울 족의 영토였지만, 이 시대에는 이미 게르만 족의 일파인 프랑크 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브리튼 족의 이주는 결국 앵글로색슨 족의 침입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앵글로색슨 인들이 브리튼 인의 영토를 침공하고 그들을 내몬 것처럼, 브리튼 인들은 프랑크 인의 영토를 침공하여 그들을 내몰았다. 아르모르카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프랑크 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은 명백한 침입자일 뿐이었다. 브리튼 인 이주자들은 난민(難民)인 동시에 침입자였던 것이다. 결국 이 지역은 브리튼 족의 영토가 되었고, 브리튼 섬을 지칭하는 "대(大) 브리튼Great Britain"과 구별되도록 "작은 브리튼", 즉 "브리타니"라고 불리게 되었다.
브리튼의 아일랜드 인 : 스코틀랜드의 기원(基源)
앵글로색슨 족의 침략기에 아일랜드 인들은 독자적인 행동 노선을 걷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용병으로서 브리튼 족의 브리타니침략에 협조하는 한편, 다른 일부는 앵글로색슨 족을 도와 브리튼 족을 박해했으며, 포로가 된 브리튼 족을 노예로 매매하여 수익을 챙기기도 했다. 성(聖) 패트릭 역시 이렇게 팔려간 포로 출신의 노예들 중 한 명이었다. 아일랜드 인들은 브리튼 섬에 정착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이 이들의 중심지였는데,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은 이 때 생겨난 것이었다. 이 지역에 정착한 부족은 '스코티Scotti'라고 불렸기 때문에, 이 지역은 '스코티아Scotia'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고, 픽트 인들과의 전쟁을 거치며 이들 부족은 '스코틀랜드 왕국the Kingdom of Scotland'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일랜드 : 성자와 학자들의 땅
4세기 경, 성 콜룸바에 의해 아일랜드에는 크리스트교가 유입되었다. 이후 5세기, 전설적인 성 패트릭의 활약에 힘입어 이 새로운 종교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했고, 7-8세기에 아일랜드는 성자와 학자달의 땅으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시기 아일랜드의 성직자들과 예술가들은 브리튼 섬과 유럽 대륙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세 이후의 켈트 족
브리타니 9세기 경 독립된 왕국이었던 브리타니는 그 이후로도 타민족에 의해 지배받지 않았고, 중세 시대에도 프랑스를 구성하는독립된 공국(公國)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에서는 왕권의 성장과 더불어 중앙집권적인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 당연한 결과로 브리타니의 독립성은 흔들렸으며, 마침내 1532년, 프랑스에 흡수되었다. 웨일즈 웨일즈는 잉글랜드 왕국Kingdom of England과 구별되는 공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못했다. 특히 잉글랜드 왕국은 10세기 이래 웨일즈의 정치에 점점 더 심한 간섭을 가해 왔다. 1485년, 웨일즈의 왕족인 헨리 튜더Henry Tudor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지만, 완전히 앵글인화(化)된 그의 아들 헨리 VIII세는 웨일즈의 정치를 영국에 귀속시켜 버렸다.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는 하일랜드Highland와 로울랜드Lowland로 나뉘어졌다. 하일랜드 인들은 아이리쉬 켈트 어군인 게일어를 사용했지만, 로울랜드 인들은 게르만 어군에 속하는 스코트 어를 사용했다. 호전적인 하일랜드 인들은 그들을 '가축이나 훔쳐가는 야만인'으로 생각한 로울랜드 인들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후에 하일랜드 인들은 스튜어트Stuart 왕조 출신의 가톨릭교도 "아름다운 군주 찰리Bonnie Prince Charlie"가 신교도인 하노버Hannover 왕조로부터 왕권을 찬탈하려고 했을 때 그를 지지했다는 이유로박해를 받았는데(1745), 그 이면에는 이러한 뒷배경이 작용하고 있었다. (본래 스튜어트 왕조는 고대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족으로부터 시작된 혈통이다) 아일랜드 795년 바이킹의 약탈을 받기 시작한 이래, 아일랜드는 타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12세기, 영국을 구성하던 앵글인들이 아일랜드를 침공해 왔다. 이렇게 시작된 영국 왕조의 통제는 16세기에 들어 더욱 심해졌고, 특히 종교 개혁은 오랫동안 쌓여 온 영국과 아일랜드의 불화에 도화선을 당겼다. 신교를 받아들인 영국은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는 아일랜드를 가혹하게 탄압했고, 이러한 경향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민(移民) 가혹한 압제와 토지의 황폐화, 그리고 기근(饑饉)으로 인해, 18세기 이래로 켈트 인의 이주는 점점 늘어 갔다. 그들은 대부분 마찬가지로 살기 힘들지만 좀더 안정적인 보수를 얻을 수 있는 브리튼의 산업화된 도시들로 가거나, '새로운 기회의 땅'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민이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일랜드 인과 스코틀랜드 인들의 대다수는 스스로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소 지주들에게 쫓겨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켈트의 재발견
18세기 후반은 민족주의 운동의 전성기였고, 아일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 켈트 족의 유산이 재발견되었다. 언어학과 그 때 막 시작되던 고고학은 켈트 족의 역사를 좀더 깊고 자세히 연구할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했고,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아일랜드 인들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것은 정치와 문화 운동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도 강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마침내 1921년, 아일랜드 공화국을 독립시키기에 이르렀다.
<켈트 신화>아더왕 전설의 '아르타이우스'
색슨족의 침략으로부터 영국을 지킨 갈리아의 신 ‘아르타이우스’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 아더왕은 ‘신’의 이름이었다.
“이봐, 이봐! 들었어? 로마군이 철수한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로마가 떠나는 거야?”
훗날, 런던이라고 불리게 될 도시인 론도니움의 주민들은 하루가 다 지나가도록 온통 똑같은 주제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서기 407년, 서로마 제국의 호노리우스 황제는 브리튼(영국)을 지키던 로마군을 모두 로마 본토로 불러들일 테니, 이제 브리튼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고향을 지키라고 선언했다. 당시 서로마 제국은 갈수록 격화되는 게르만족들의 침략을 감당해 내기 어려워졌고, 그에 따라 멀리 식민지에 있는 병력까지 모두 끌어 모아 나라를 지켜야 할 정도로 국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로마가 브리튼에서 물러나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로서는 좋은 거 아냐? 지금까지 거의 4백 년 동안 로마를 지배를 받고 살았잖아? 이제 독립할 날이 오는 거지.”
“글쎄,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어. 이제 우리 스스로 무기를 들고 자신을 지켜야 하니 말이야.”
“수십 년 전부터 북쪽의 픽트족과 서쪽의 스코트인(아일랜드)들, 동쪽의 색슨족들이 계속 쳐들어오던데, 이제 우리가 그놈들과 직접 싸워야 하는 건가?”
마지막 말에 사람들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한이 몰아닥치는 북방의 고원에서 자주 내려와 약탈과 살육을 일삼는 픽트족의 잔인함은 브리튼인 모두가 치를 떨며 두려워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거기에 서부와 동부의 해안 지대를 휩쓸며 해적질을 하는 스코트와 색슨족들까지 가세해, 이 무렵의 브리튼은 치안이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로마군이 본국으로 철수한 이후, 남부 브리튼의 최고 통치자는 보티건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동안 방어를 책임지던 로마군이 없으니, 이제 브리튼인들은 자체적인 군사력으로 외침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4백 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브리튼인들은 전투 기술과 무기 사용법을 대부분 잊어버렸고,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아 전투력이 약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외부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보티건은 대담하면서도 위험한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동쪽의 색슨족 중 일부를 용병으로 고용해 그들로 하여금 픽트과 스코트 및 색슨족 약탈자들을 막게 한다는 발상이었다. 보티건의 이 같은 결정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심하게 반발했다.
“너무나 위험합니다. 이건 도둑으로 하여금 도둑을 막게 한다는 생각과 뭐가 다릅니까? 우리의 경비병도 색슨족이고 침략자도 색슨족이라면 과연 그들이 제대로 싸우려 들겠습니까?”
“로마가 저렇게 망해가고 있는 것도 침략군인 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했다가 저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색슨족 용병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실시하는 편이 낫습니다. 용병은 돈을 보고 싸우는데, 그들에게 돈이 지불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백성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는 것이니 훨씬 투지가 왕성해 잘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티건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헹기스트와 호사라는 두 명의 족장이 지휘하는 색슨족 용병들을 불러 들였다. 그들은 보티건으로부터 타네트 섬을 영토로 받았고, 급료를 지급받는 대가로 브리튼을 픽트족과 스코트족 및 동족인 색슨족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명망 높은 드루이드(사제 계급)인 멀린이 보티건을 찾아와서 용병을 고용하기로 한 그의 결정을 질책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것이오, 멀린. 우리 백성들은 농사와 가축을 치면서 사는데, 저들을 군대에 동원한다면 어찌 되겠소? 건장한 남자들이 전부 군대로 가서 군인이 된다면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겠소? 노인과 부녀자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오. 그에 반해 용병들은 살 땅과 약간의 돈만 주면 되니, 그 편이 우리를 위해서 더 이득이 되는 길이오.”
“전하,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식량과 국방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백성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둘 중 하나만이라도 남의 손에 맡겼다가 어떻게 되는지 전하께서는 정녕 모르십니까? 옛날 그리스의 아테네는 식량을 해외에서 모두 수입하다가 스파르타에게 바닷길이 막히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무릎을 꿇었고, 로마는 게르만족에게 국경 방위를 맡겼다가 지금 그 뒷감당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브리튼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대의 노파심은 너무 지나치오, 멀린. 색슨족 용병들은 그 수가 고작 수천에 불과하고 우리 브리튼 백성들은 수십만이나 되는데, 설령 저들이 딴 마음을 품는다고 해도 어쩌겠소? 그리고 전쟁이 나면 이기든 지든 사람들이 죽기 마련인데, 색슨족 용병들이 있는 한 죽는 건 저들 뿐이고 브리튼 백성들은 전혀 다치지 않으니 무엇이 나쁘단 말이오?”
“언젠가 전하께서 후회하실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멀린은 보티건의 궁에서 물러나오면서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이 땅의 운명이 어찌 될 런지……
보티건의 호언장담대로 색슨족 용병들은 그들의 용맹함을 발휘하여 브리튼을 쳐들어오던 픽트족과 스코트족 및 자신들의 동족인 색슨족 침략자들도 모두 무찔렀다. 처음에 용병들을 보고 불안하게 여기던 브리튼 백성들은 이내 그들을 브리튼의 수호자라 부르며 열렬히 칭송했다.
“그것 보게! 내 말이 맞았지? 하하하!”
색슨족 용병들의 활약상에 무척이나 통쾌해진 보티건은 흐뭇해하며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랑하고 다녔다. 멀린을 비롯한 반대자들의 입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용병들의 우두머리인 헹기스트와 호사는 그런 보티건과 브리튼 백성들을 보면서 굶주린 늑대처럼 예리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풍요로운 땅이 저 멍청하고 나약한 놈들의 손에 있다니, 이건 웃기는 일이다. 그렇지 않나, 호사?”
“맞습니다, 형님. 우리가 살던 고향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나 다름없어요. 진즉에 이렇게 좋은 곳에 정착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먼저 브리튼의 왕인 보티건이라는 얼간이부터 없애야겠어. 그리되면 지도자를 잃은 브리튼 놈들은 우왕좌왕할테고, 그 틈을 타서 이 땅을 차지하는 일은 아주 쉬울게야.”
형제는 밤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계략을 꾸몄다. 그리고 날이 밝자, 헹기스트는 보티건을 찾아가 용건을 전했다. 자신에게 젊고 아름다운 딸이 한 명 있는데, 혹시 그녀를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마침 보티건은 아내를 잃고 외로운 처지였는데, 헹기스트의 말을 듣자 호기심이 생겨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딸을 보게 된 보티건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헹기스트는 매우 흡족해하며 딸에게 보티건의 술시중을 들게 했고, 보티건은 그녀와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보티건은 신하들을 왕궁에 불러 모으고 놀라운 선언을 발표했다. 헹기스트의 딸을 정식 왕비로 맞아들이며, 장인이 되는 헹기스트에게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의 절반을 선물로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신하들이 펄쩍 뛰며 반대했다.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전하? 일개 용병 대장의 딸과 결혼을 하시겠다니요? 게다가 타네트 섬도 모자라 아예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셨습니까? 이 무슨 황당무계한 발언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지금 늑대를 정원으로 끌고 오신 것도 모자라서 아예 방 안으로 불러들이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먼 보티건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신하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티건은 결혼식을 강행하였고, 모든 시종과 추종자들에게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통보까지 보냈다. 왕의 명령에 신하들은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이 열리는 궁으로 모여들었고, 찌푸려진 그들의 얼굴을 숨어서 지켜보는 헹기스트와 호사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왕궁의 넓은 야외 홀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결혼식에 참석한 터라 보티건과 그의 신하들은 무기를 가져오지 않은 빈 몸이었다. 그것은 신부 측 하객인 헹기스트 일행도 마찬가지였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자자, 어서 식탁에 앉으시오. 그리고 이렇게 화창한 날, 아름다운 신부를 얻은 나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시오. 아 참, 색슨족 분들은 보탄(Wotan) 신을 믿으니 그에게 기도해 주시오.”
웃음을 띈 보티건이 그렇게 말하며 두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앙앙불락하던 신하들도 마지못해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색슨족들은 브리튼인들이 눈을 감는 것을 보자, 신발 속에 숨겨두었던 단도를 꺼내 들었다.
“모두 죽여라! 한 놈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헹기스트의 명령에 맞춰 색슨족 용병들은 기도를 올리고 있던 브리튼인들을 덮쳐 잔혹한 난도질을 퍼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을 당한 브리튼인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 색슨족들의 단도에 찔려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다. 평화롭던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피와 비명이 들끓는 지옥으로 변했다. 새 신랑인 보티건도 그 죽음의 대열에서 무사하지 못했다. 신부와의 달콤한 허니문을 꿈꾸던 브리튼의 왕은 장인이 선물로 주는 단도에 온 몸이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며 죽어나갔다.
왕과 귀족들이 한꺼번에 죽어 버리자, 브리튼 전체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헹기스트는 고향인 서북부 게르마니아(독일)에 살고 있던 동족 색슨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여기 브리튼은 매우 따뜻하고 풍요로운 땅이오. 하지만 주민들은 나약하고 겁이 많으니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소. 이미 우리가 그들의 왕을 죽였으니, 나머지 잔챙이들은 문제도 아니오. 어서 이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새로운 나라에서 삽시다!”
헹기스트의 말을 전해들은 색슨족들은 환호하며 앞다투어 배를 타고 브리튼으로 향했다. 수만 명이나 되는 색슨족들이 브리튼에 도착하자 헹기스트는 그들을 선동하며 브리튼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마을들을 파괴하는데 미친듯이 열을 올렸다.
“이 땅의 주인은 이제 우리 색슨족이다! 너희 브리튼인들이 목숨을 건지려면 순순히 우리의 노예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이제까지 든든한 경비병이었던 색슨족들이 돌연히 배신한 것을 본 브리튼인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저항할 수가 없었다. 국방의 대부분을 색슨족에게 의존하고 있다가 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어떻게 막겠는가?
“색슨족이 배신했다! 저놈들이 보티건 왕을 죽이고 우리까지 죽이고 있다!”
대부분의 브리튼인들은 멀리 서쪽 산악 지역인 웨일즈로 달아나거나 북쪽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색슨족의 추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보이는 대로 브리튼인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마을들을 불태우고 물자를 약탈했다. 브리튼인들의 존경을 받던 드루이드나 기독교 사제들조차 잔인한 색슨족의 칼과 도끼 앞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나갔다. 일찍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브리튼 왕국은 이제 사방에 핏물이 눌러 붙은 잔혹한 땅이 되고 말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브리튼인들은 색슨족의 침탈에 기가 죽어, 이제는 브리튼이 자신들의 땅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보티건을 만난 드루이드인 멀린은 고향의 참상을 슬퍼하며 산과 들을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색슨족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던 브리튼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원탁의 기사단’이라는 비밀 조직이 브리튼 곳곳에서 색슨족들을 쳐부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수많은 브리튼인들은 용기를 얻고 서로를 격려했다.
“원탁의 기사단?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하게 여긴 멀린은 은밀히 수소문하여 ‘원탁의 기사단’의 근거지인 카멜롯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아직 색슨족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지역이었다. 원탁의 기사단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자신의 이름을 아르타이우스(Artaius)라고 밝히며 멀린을 반갑게 맞았다. 이미 그 곳에는 원탁의 기사단과 함께 색슨족에 맞서 싸우고 싶어하는 많은 브리튼인들이 모여 있었다.
멀린과 함께 군중 앞에 선 아르타이우스는 기백이 넘치는 사자후를 토해냈다.
“여러분, 우리 브리튼인의 조상인 켈트족들은 그 옛날, 이 브리튼섬은 물론이고 저 유럽 대륙까지 정복했던 위대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용기를 잃고 나약해져 오늘날 이런 굴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원래부터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켈트족들은 전쟁의 신 벨레누스(브렌누스)의 지휘 아래 로마를 점령하고, 더 나아가 마케도니아 왕국까지 무찔렀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두 제국도 우리 조상들의 용맹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단결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적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 정든 고향인 브리튼을 침략자 색슨족들로부터 지킵시다!”
아르타이우스의 연설을 들은 브리튼인들은 주먹을 치켜들며 환호했고, 모두 원탁의 기사단과 함께 색슨족과 싸울 것을 결심했다. 사람들의 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아르타이우스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이름인 아르타이우스는 켈트족의 나라인 갈리아(프랑스)에서 믿었던 전쟁의 신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들 중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저는 이제부터 전쟁의 신인 아르타이우스가 되어 저 색슨족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아르타이우스 만세!”
“자유 브리튼에 영광이 있으라!”
마치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것처럼 수많은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그날부터 아르타이우스는 원탁의 기사단을 재정비했다. 기사들에게는 모두 말을 한 필씩 갖게 하여 기병으로 복무토록 했고, 말을 가질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창과 방패와 던지는 짧은 화살인 다트를 지닌 보병이 되게 했다. 군대의 주력은 기사들로 구성된 경무장 기병들이 맡고, 보조 전력은 보병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저 색슨족들은 말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걸어 다니며 싸우는 미개한 부족들이다. 우리가 기동력을 살려 유린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아르타이우스가 이끄는 원탁의 기사단은 재빠른 기동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색슨족들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여 그들의 물자를 약탈하고 군사 요새들을 불태우며 주요 인물들을 기습하고 달아나는 식으로 싸웠다. 갑자기 나타난 기사단의 공격에 색슨족들은 당황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안 되겠다. 브리튼을 정복하려면 아르타이우스가 이끄는 원탁의 기사단부터 쳐부숴야 한다. 모든 전력을 모아 아르타이우스의 근거지를 찾아내 초토화시켜라!”
헹기스트와 호사는 색슨족 병사들을 이끌고 브리튼 저항군의 근거지인 카멜롯 성으로 진격했다. 아르타이우스 역시, 원탁의 기사단과 자원한 브리튼인들로 이루어진 민병대를 이끌고 색슨족에 맞설 준비를 끝냈다.
두 세력의 결전장은 바돈 산이 되었다. 먼저 달려와 진을 친 아르타이우스는 보병으로 구성된 민병대를 앞에 내세우고, 비장의 무기인 기사단은 보병 부대의 뒤에 배치했다.
브리튼 군대의 대열을 본 헹기스트는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르타이우스가 누군가 했더니, 영 형편없는 얼간이였구나. 고작 내세운다는 것이 저렇게 빈약한 민병대라니! 우리 색슨족 병사들의 칼과 도끼만 봐도 혼비백산해서 달아나던 겁쟁이들이 무슨 수로 우리를 막겠다고 서 있는 거지?”
그러나 호사는 침착한 표정으로 헹기스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형님, 아무래도 아르타이우스란 녀석이 술수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섣불리 공격하면 우리가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니 군대를 세 방향으로 분산시켜서 중앙은 전진하고, 나머지 양쪽은 적의 측면을 노리도록 하지요.”
“무슨 소리냐! 갑옷과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민병대 따위를 상대로 그런 수고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게다가 군대를 여러 방향으로 나누면 그만큼 전력이 분산되어 약해지고 만다. 여태까지 우리가 해왔던 대로 삼각 대열로 일거에 적의 중앙부를 돌격하여 박살내고 나머지 놈들은 각개격파를 하면 된다. 이건 보탄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필승의 방법이야.”
“형님!”
“더는 말하지 말거라! 어서 저놈들을 끝장내고 이 섬을 우리의 고향으로 만들자.”
동생의 이의를 제압한 헹기스트는 나팔수에게 뿔나팔을 불어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그들의 신인 보탄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도록 했다.
“보탄!”
그러자 다른 병사들도 일제히 보탄의 이름을 불렀다.
“보탄! 보탄! 보탄! 보탄!”
동쪽 바다 건너 게르마니아와 스칸디나비아의 모든 부족들이 믿는 전쟁의 신 보탄(Wotan)은 훗날, 바이킹들의 최고신인 오딘(Odin)이기도 했다. 게르만 계열에 속하는 색슨족들도 보탄을 열렬하게 숭배했고, 언제나 그들은 보탄의 이름을 부르며 싸웠고 승리를 얻었다. 색슨족들은 자주 삼각형 대열로 적진을 돌격하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그들은 이런 전술이 보탄이 전수해 주었다고 믿었다.
“아르타이우스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소서!”
“보탄이여! 당신의 눈길로 저들을 공포에 떨게 하소서! 분노와 전쟁의 신인 당신을 위해 싸우나이다!”
서로가 숭배하는 전쟁신의 이름을 외치며 브리튼족과 색슨족은 바돈 산의 언덕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투가 시작된 처음에는 헹기스트가 이끄는 삼각형 대열의 색슨족 병사들이 브리튼족의 부실한 보병부대를 짓부수어 큰 피해를 입혔다. 브리튼의 민병대는 방패를 모아 벽을 쌓고 창과 다트를 던지며 색슨족의 기세를 저지하려 했지만, 색슨족의 저돌적인 기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잠깐 사이, 땅바닥은 죽거나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 브리튼 병사들로 가득 찼고 발을 디딜 때마다 사람의 몸을 밟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아르타이우스!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군의 중추부가 완전히 돌파당하겠습니다. 빨리 피신하셔야 합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도망갈 것을 권유하는 멀린의 목소리에 아르타이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여기에서 물러난다면 이 전투는 도저히 이길 수 없고, 브리튼은 멸망하고 맙니다. 어떻게든 색슨족의 돌격을 버텨내야 합니다. 멀린이여, 당신은 켈트족의 사제인 드루이드니, 지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르타이우스의 지시를 받은 멀린은 자신과 함께 종군한 드루이드들을 데리고 병사들의 뒤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나팔을 불어 음악을 연주했다. 아득한 옛날, 고대 켈트족들이 전장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불렀던 노래였다. 조상들의 음률을 들은 브리튼 병사들은 다시 힘을 내어 색슨족의 돌격에 저항했다.
“물러서지 마라! 여기에서 물러선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가족들은 색슨족의 노예가 되고 집과 농장은 불태워지고 만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워라! 가증스러운 원수 색슨족을 몰아내자!”
브리튼 병사들의 완강한 저지에 색슨족의 공세가 차츰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언덕 위를 올라오던 색슨족들은 어느덧 서서히 주춤거리며 활력을 잃어갔다.
“이 때다! 원탁의 기사들은 아군 대열을 우회하여 적의 측면을 쳐라! 돌격!”
여태까지 전황을 살피고 있던 아르타이우스가 보검인 엑스칼리버를 뽑아들고 기사단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주군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기사단은 일제히 민병대의 후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양 측면으로 원을 그리며 색슨족 병사들의 측면을 강타했다.
“짓밟아라! 놈들을 없애버려라!”
“기습이다! 놈들이 우리의 옆을 덮쳤다!”
전방에만 온 힘을 쏟고 있던 색슨족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기사단의 공격에 당황했다. 헹기스트와 호사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병사들에게 전열을 유지할 것을 명령했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병사들이 새로운 적인 기사단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사단이 휘두르는 칼과 도끼에 색슨족 병사들은 허수아비처럼 목이 잘려 나뒹굴었고, 어느새 그들은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했다.
거기에 이제까지 방어만 해오던 브리튼 보병 부대가 색슨족이 밀리는 모습을 보자, 힘을 내어 공세로 전환해왔다. 앞과 양 측면에서 한꺼번에 공격을 받게 된 색슨족 병사들은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명씩이던 것이, 나중에는 대열을 이탈하고 전체가 달아나 버렸다.
“색슨족이 도망친다! 기사단은 추격해서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패주하는 색슨족들을 원탁의 기사들은 맹렬히 쫓아가 칼을 휘둘렀다. 한 때, 모든 브리튼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잔혹한 살육자 색슨족들은 이제 자신들이 분노한 브리튼인들에게 거꾸로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명령만 내리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아르타이우스는 호위 기병대를 거느리고 자신도 추격전에 가담했다. 달아나는 색슨족 병사들을 보이는 대로 목을 치고 또 쳤다. 그의 온 몸은 피로 물들었고, 숨은 거칠어졌지만 그는 지칠 때까지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달아나던 헹기스트마저 기사단에게 생포되어 목이 잘렸다. 호사는 수십 명의 병사들과 함께 간신히 몸을 피해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미 색슨족 부대는 대부분이 죽거나 다쳐 브리튼 군대의 포로가 되었다. 색슨족 군대는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전투를 끝낸 아르타이우스는 바돈 산의 꼭대기에서 브리튼 병사들을 사열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우리의 승리는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전쟁의 신인 아르타이우스의 가호 덕분이다! 아르타이우스의 이름을 크게 외쳐라!”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브리튼 병사들은 우렁찬 환호성을 터뜨리며 열광했다. 색슨족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 다니던 나약한 그들은 압제자를 무찌른 승리자가 되어 당당히 캐멀롯으로 개선했다.
색슨족 대군을 격퇴한 아르타이우스는 전 브리튼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브리튼인들은 그를 보티건을 대신할 왕으로 추대했고, 아르타이우스는 약 40년 동안 브리튼을 통치했다.
불행히도 아르타이우스의 사후, 브리튼 왕국은 내분에 휩싸이다 다시 세력을 만회한 색슨족의 침공을 받고 멸망하고 만다. 하지만 살아남은 브리튼인들은 언젠가 그들의 수호자인 아르타이우스가 다시 돌아와 색슨족을 몰아내고 자유를 찾아줄 것을 간절히 고대했다.
세월이 흐르고 후세의 영국인들은 신비한 마법의 힘으로 브리튼을 통치했던 아더(Arthur)왕을 추앙했다. 아더는 바로 아르타이우스를 영어 발음으로 옮긴 이름이었다. 갈리아의 전쟁 신인 아르타이우스는 이렇게 해서 브리튼을 지킨 전설적인 영웅이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