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처럼 다양한 오락거리나 오락시설이 없던 옛 시절 오락 중 하나가 유리구슬치기였다.
지금은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모여 노는 경우가 드물지만 옛날엔 그랬다.
당시 유명했던 놀이엔 술래잡기, 자치기, 다방구, 말타기, 유리구슬치기, 연날리기 등이었고,
여자 아이들에게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오재미, 꼬마야 꼬마야를 부르면서 돌리는 새끼줄놀이 등이 있었다.
모두 까마득하고 그리운 옛 추억인데 당시 다마라고 불리던 유리구슬에 관해 인상 깊은 추억이 있다.
뼉다마, 맹다마, 사기다마는 당시 우리에게 불리던 다마의 종류들이다.
공장으로부터 나와 가게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을 때 구슬의 윤기와 구슬 속 무늬는 매혹적이다.
나는 푸른 맹다마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하늘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러면 그 구슬 안에는 작은 우주가 형성되어 나타나곤 했었다.
이 구슬로 친구들과 마당에 파놓은 구멍놀이를 하게 되면서부터 구슬은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하다가
드디어 구슬 속 무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까지 구슬은 손상된다.
땅 위를 굴러다니는 한 유리구슬이 손상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런데 구슬을 잡고 하늘이나 형광등을 보던 행동에는 일종의 상징이 있다.
무슨?
보잘것 없는 우리의 존재, 보잘것 없는 우리의 인생이지만
이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의 시야에 우주적 비전, 아니 우주를 넘어서는 영적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은 지상을 살아가는 동안 땅 위에 구르는 구슬처럼 손상을 피할 수 없다.
신자나 사역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탈진을 겪는다.
탈진,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인천에서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가도록 만들어진 차가 서울에서 주행 불가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늘로 떠오르도록 만들어진 고무풍선이 도중에 내부 가스가 다 빠져나가 푸드득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내부 에너지가 고갈되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태다.
왜 그럴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면 탈진하는가?
인간은 누구라도 탈진할 수밖에 없는 존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자제품에 과부하가 걸리면 스위치가 내려가듯이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짐은 과부하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힘으로 독립하려 한 것이 인간의 죄이며 이 죄로 말미암은 치명상이 인간을 덮쳤다.
이 치명상은 인간에게 생명과의 절단, 텅 빈 자아, 무의미, 탈진을 마주하게 한다.
가스 충만한 풍선처럼 야무지게 출발한 인생은 결국 이런 상태로 추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기계는 외부 작동을 멈추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인간은 내외부 존재의 모든 시스템에 작동 정지가 온다.
그때 인간에게 무슨 우주가 있겠고, 무슨 비전이 남아있겠으며, 무슨 희망이 타오르겠는가?
이 세계 이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성경을 읽어라.
이 세상의 냉랭한 이론 이상의 진리를 말해주는 복음을 가까이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생활은 현실 너머의 하나님과 연결시켜주는 통로다.
참된 교회는 죄악과 욕심과 야심과 불의와 배반이 판을 치는 세상에는 없는 은혜와 사랑을 가르쳐준다.
예배는 이 세상에서는 기대하지 못할 빛과 영광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당신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투명한 유리 구슬을 끼우고 하늘을 바라보라.
이처럼 우리 나름의 우주가 있어야 한다.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2023. 4. 12.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늘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주님 안에서 영원한 우주를 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