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사랑과 악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
한나 아렌트를 읽는 일은 이상하다.
처음에는 사상을 읽는 줄 알았다.
전체주의, 악의 평범성, 판단, 책임, 아모르 문디.
그럴듯한 단어들이 차갑게 놓여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여자가 보인다.
망명자의 얼굴을 한 여자.
사랑에 찢기고도 생각을 멈추지 않은 여자.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은 여자.
그리고 담배를 손에 든 채, 아주 조용히 말하는 여자.
진실은 말해져야 한다고.
그 진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나는 이 문장에서 한나 아렌트의 위험한 눈빛을 본다.
그녀의 지성은 얌전하지 않다.
예쁘게 정리된 교양도 아니고, 대학 강의실 유리장 안에 놓인 철학도 아니다.
그녀의 지성은 폐허를 지나온 지성이다.
쫓겨나고, 잃고,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오해받고, 공격받고도 끝내 생각하는 쪽을 택한 지성이다.
그래서 요염하다.
요염하다는 말이 가볍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한나 아렌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독자를 유혹한다.
다만 위로로 유혹하지 않는다.
확신으로도 유혹하지 않는다.
그녀는 질문으로 유혹한다.
너는 보고 있는가.
너는 판단하고 있는가.
너는 네가 속한 군중의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너는 악을 괴물의 얼굴로만 상상하느라, 너무 성실한 관료의 얼굴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은 거창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악은 때로 너무 평범하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얼굴.
내 일이 아니었다는 얼굴.
다들 그렇게 하길래 그랬다는 얼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앉아 생각하지 않는 얼굴.
그래서 무섭다.
악은 피 묻은 칼을 들고만 오지 않는다.
서류철을 들고 온다.
보고서를 들고 온다.
규정을 들고 온다.
그리고 아주 예의 바르게 말한다.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렌트가 위험한 이유는 여기 있다.
그녀는 악을 멀리 있는 괴물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그녀는 악을 우리 일상 가까이 끌어온다.
생각하지 않는 태도, 판단을 남에게 맡기는 습관, 군중의 확신에 편승하는 안락함 속에서 악의 씨앗을 본다.
그러니 아렌트를 읽는 일은 불편하다.
읽다 보면 자꾸 나 자신에게 걸린다.
나는 과연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속한 편의 문장을 빌려 말하고 있는가.
나는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가 대신 확인해준 것을 믿고 안심하고 있는가.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더러워졌다고 말하며 내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가.
아렌트의 아모르 문디, 세계 사랑은 달콤한 말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을 예쁘게 봐주는 일이 아니다.
망가진 세계를 악한 자들의 차지로 내버려두지 않는 일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잡은 것도 그 지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사랑을 알았다.
사랑의 고통도 알았고, 지적 열정의 위험도 알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도 알았다.
하이데거와의 관계는 그녀의 삶에 오래 남은 그림자였고, 하인리히 블뤼허와의 사랑은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동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은 깨끗하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진짜다.
한나 아렌트는 사랑을 순결한 장식품처럼 다루지 않는다.
사랑은 인간을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사유를 열어주기도 하지만,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 사람을 오래된 어둠 속에 붙들어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을 버리지 않는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겪은 세계는 사랑하기 쉬운 세계가 아니었다.
나치즘, 전쟁, 망명, 홀로코스트, 배신, 오해, 지적 고립.
그 모든 것을 통과한 사람이 어떻게 아직도 세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래서 아렌트의 사랑은 무섭다.
그 사랑은 순진하지 않다.
그 사랑은 눈을 감지 않는다.
그 사랑은 폐허를 본다.
시체를 본다.
관료의 말투를 본다.
군중의 침묵을 본다.
그리고도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없다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나 아렌트가 왜 아직도 위험한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죽은 철학자가 아니다.
그녀는 지금도 담배 연기 너머에서 우리를 본다.
조금 피곤한 얼굴로, 그러나 전혀 무너지지 않은 눈빛으로.
그리고 묻는다.
너는 생각하고 있니?
이 질문 앞에서 사람은 조금 민망해진다.
우리는 너무 자주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익숙한 말들을 반복한다.
정치적 구호, 진영의 언어, 유행하는 분노, 안전한 미움.
그것들을 내 판단이라고 착각한다.
아렌트는 그 착각을 벗긴다.
그래서 그녀의 지성은 차갑지만, 이상하게 뜨겁다.
그녀는 독자를 다독이지 않는다.
대신 깨운다.
그리고 깨어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를 신전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한 인간으로 끌어내린다.
어린 시절의 상실, 사랑의 상처, 망명의 불안, 지적 오만, 용기, 고집, 외로움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그 인간적인 균열들이 오히려 그녀의 사상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아렌트의 사유는 책상 위에서만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사유는 도망치는 기차 안에서, 잃어버린 언어 속에서, 사랑의 모순 속에서, 친구들의 비난 속에서, 세상이 다시는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충격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사상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사상은 상처가 언어를 얻을 때 태어난다.
도망이 판단을 얻을 때 태어난다.
사랑이 환상을 잃고도 끝내 세계를 포기하지 않을 때 태어난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여자였다.
상처를 교양으로 포장하지 않은 여자.
사랑을 순정으로만 낮추지 않은 여자.
악을 괴물에게만 떠넘기지 않은 여자.
세상을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무서운 책임의 언어로 바꿔버린 여자.
그러니 한나 아렌트를 읽는 일은 안전하지 않다.
읽고 나면 더 이상 편하게 미워할 수 없고,
편하게 믿을 수 없고,
편하게 침묵할 수 없어진다.
그녀는 우리에게 지성을 준다.
하지만 그 지성은 장식품이 아니다.
손에 쥐면 베이는 칼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칼은 아름답다.
한나 아렌트.
사랑과 악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
폐허를 지나왔으나 폐허의 언어로 살지 않은 여자.
세상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포기하지도 않은 여자.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에 속아주는 일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끝까지 생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모두가 고개를 돌리는 자리에서
위험한 눈빛으로
혼자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연기가 천천히 올라갔다.
생각은 늘 이런 식이었다.
몸에는 해롭고,
정신에는 위험하고,
세계에는 필요했다.
/최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