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이 소갈딱지
‘밴댕이 소갈딱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익숙한 말입니다. 밴댕이는 청어과의 바닷물고기이며, 몸의 길이는 15cm 정도로 사람 손바닥만 합니다. ‘소갈딱지’는 ‘소갈머리’와 같은 뜻으로 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요. ‘밴댕이 소갈딱지’는 ‘아주 좁고 얕은 심지(心志)’를 뜻하며, 흔히 속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얕은 사람에게 이 말을 씁니다. 그런데 멸치처럼 밴댕이보다 훨씬 더 작은 생선이 있는데도 왜 ‘밴댕이’가 속 좁은 사람을 뜻하게 된 걸까요?
먼저 밴댕이와 멸치의 내장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멸치는 내장(똥)을 제거해 줘야 음식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몸집에 비해 내장이 큰 생선입니다. 내장을 제거하지 않으면 쓰고 비린 맛이 납니다. 반면 밴댕이는 멸치보다 몸집이 크지만 내장을 따로 떼지 않고 먹습니다. 밴댕이를 말린 것을 ‘뒤포리’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육수를 내면 특유의 배릿하면서 깊고 구수한 맛이 납니다. 밴댕이는 머리만 떼어 내고 길쭉길쭉하게 썰어 새콤달콤하게 회 무침을 해 먹기도 하고, 비늘만 제거해 석쇠에 구워 먹기도 합니다. 밴댕이가 좁은 심지의 대명사가 된 것은 내장 때문이라기보다는 특유의 성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밴댕이는 낚시나 그물에 걸리면 제 성질을 못 이겨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열을 받아 씩씩대다가 물에 나오자마자 죽어 나자빠집니다. 그래서 생물로 만나기 힘든 생선입니다. 성질이 급하고 고약한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속담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사또 상의 간장 종지
종지는 간장이나 소금, 꿀, 초장 등을 담는 그릇으로, 그릇 중 가장 작은 그릇입니다. 고을의 원(員)님인 사또의 푸짐한 밥상에 얼핏 보아 간장 종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 속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음식 문화에서 자랑할 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릇입니다. 상 위에 올라오는 그릇은 그 용도에 따라 이름이 모두 다른데요. 밥그릇만 해도 남성용은 ‘주발’, 여성용은 ‘바리’라고 하고, 국수를 담는 대접은 ‘반병두리’라 합니다. 또 김치를 담는 그릇은 ‘보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장을 담아서 놓는 작은 그릇은 ‘종지’라고 하는데요. 우리 민족은 음식을 만들 때 만드는 사람의 입맛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람마다 자신의 기호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밥상에 간장 종지를 올렸습니다. 이때 간장 종지는 상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중앙에 놓였는데요. 이 속담은 이처럼 간장 종지가 밥상의 한가운데 놓인다는 데서 ‘변변치 않은 것이 한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비슷한 뜻으로 ‘사또 상의 장[꿀] 종지’가 있습니다.
게으른 며느리 두부가 맛있다
음식을 하는 사람이 ‘게으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조리 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음식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며느리가 만든 두부가 맛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건강 음식으로 꼽히는 두부는 과거에 제사상이나 잔칫상 등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두부를 만들려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간수(염담수, 습기가 찬 소금에서 저절로 녹아 흐르는 짜고 쓴 물)’인데, 옛날에는 이것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직접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간수를 만드는 방법은 이러합니다. 먼저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돌이나 굵은 나무로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햇소금 가마니를 쌓아 얹습니다. 그리고 받침대 밑에는 떨어지는 간수를 받을 수 있게 함지박을 밀어 넣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소금 가마니 위에 한 바가지씩 물을 흩뿌리면 함지박에 조금씩 간수가 고이기 시작하는데요. 이렇게 진액을 모으듯 간수가 모아지면 비로소 두부를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다음 마른 콩을 맷돌에 타서 하룻밤을 불리고 다시 곱게 갈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믹서에 넣고 한 번에 갈 수 없었던 그 옛날에는 맷돌 입에 콩을 한 수저씩 떠 넣고 갈았습니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감질이 나서 할 수 없었지요. 갈아진 콩 물은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나무 주걱으로 저어 가며 끓인 다음 베 보자기에 넣고 꼭 짜서 비지와 콩 물을 분리합니다. 그런 다음 콩 물에 간수를 쳐서 몽글거리는 순두부를 만들고 이 두부를 다시 건져 두부 모판에서 눌러 모두부를 만듭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느리고 자분자분해야 하는데요. 손이 느린 게으른 며느리도 두부 만들 때는 쓰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던 옛 어머님들의 넉넉함이 묻어나는 속담이 아닌가 합니다.
고명딸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을 ‘고명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고명’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버섯, 실고추, 지단, 대추, 밤, 호두, 깨소금, 당근, 파 따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을 하필 ‘고명’에 비유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음식을 만드는 데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양념과 고명입니다. 양념은 음식의 맛을 담당하고, 고명은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완성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꽤 많은 음식에 고명이 올라갑니다. 보글보글 끓인 김치찌개 위에 올라간 대파나 콩나물 무침에 뿌려진 통깨 등은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고명입니다. 그런데 이 고명은 단순히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고명이 올려진 음식은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음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한번 손을 댄 음식은 그 형태와 모양이 흐트러지는데, 특히 음식 위에 올려진 고명이 먼저 흐트러집니다. 또한 고명은 새로운 음식으로 탈바꿈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먼저 먹고 남은 음식을 잘 보관해 놓았다가 나중에 식탁에 내놓을 때 고명을 새로 올리면 다시 새 음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음식에 고명을 올리는 것은 음식을 받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우를 함께 담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명’은 아들이 많은 집에서 존중과 배려를 받는 귀하고 소중한 외딸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식혜 먹은 고양이 속
식혜는 엿기름을 우린 웃물에 쌀밥을 말아 독에 넣어 더운 방에 삭히면 밥알이 뜨는데, 거기에 설탕을 넣고 끓여 차게 식혀 먹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음료입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식혜를 먹었다고 합니다. 고양이가 식혜를 먹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속이 어떠하기에 이런 속담이 나온 것일까요?
먼저 이 속담은 ‘죄를 짓고 그것이 탄로날까 봐 근심하는 마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생선도 아니고 어째서 식혜를 먹은 걸까요? 먼저 이 속담에서 ‘식혜(食醯)’는 ‘식해(食醢)’로 바꿔 써야 할 듯합니다. 식해는 주 재료를 생선으로 하는 젓갈의 일종으로 생선을 토막 친 다음 소금, 조밥, 고춧가루, 무 등을 넣고 버무려 삭힌 음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몰래 먹은 것은 ‘식혜’가 아니라 ‘식해’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죠. 식해로 가장 유명한 것이 함경도의 전통 음식인 가자미식해인데요. 가자미식해는 새큼하게 익은 무와 잔뼈까지 잘 삭아 특유의 감칠맛을 내는 가자미가 잘 어울려 맵싸한 맛이 일품인 음식입니다. 식해는 깊은 맛을 내기까지 따뜻한 곳에 두고 삭혀야 하는데요. 어린 아이들은 그 삭는 것을 참지 못해 몰래 부뚜막 단지를 열어 손가락으로 식해를 몇 점 집어 먹고는 어른들께 들통날까 봐 안절부절못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식혜 먹은 고양이 속’이라는 속담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능라도 수박 같다
사실 수박은 조선 시대 초기만 해도 쌀 반 가마니 정도의 값을 쳐야 할 만큼 비싼 과일이었습니다. 세종 대에는 궁궐 주방을 담당하던 환자(宦者, 내시) 한문직이 수박을 훔치다 발각되어 곤장 백 대를 맞고 경상북도 영해로 귀양을 갔던 일도 있었고, 궁궐에서 쓰는 물건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의 종 소근동이 수박을 훔치다 곤장 팔십 대를 맞은 일도 있었습니다. 종 신분으로는 극형을 받을 일이었지만, 곤장으로 형벌이 낮아진 것은 다행히 그가 훔치려던 수박이 썩어 가는 수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수박은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능라도 수박’만은 크게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능라도는 강 가운데 있다 보니 장마만 되면 섬에 물이 넘쳤고 그래서 그곳에서 나는 수박은 당도가 없고 싱거웠습니다. 그래서 맛없는 음식을 가리킬 때 ‘능라도 수박’ 또는 ‘능라도 수박 같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당도가 높은 수박을 비교적 쉽게 살 수 있어서 그런지 ‘능라도 수박’이라는 말도 점점 잊혀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