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엽산 하산 길, 새목현에서 연화사 쪽 골짜기를 내렸다
사람 소리 들리네
이 길 돌아가는
가을 저물녘
人聲や此道かえる秋のくれ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 산행일시 : 2016년 11월 5일(토), 흐림, 안개
▶ 참석인원 : 14명
▶ 산행거리 : 도상 14.8km(1부 8.2km, 2부 6.6km)
▶ 산행시간 : 8시간 35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25 - 홍천군 북방면 북방리, 연화사(蓮華寺), 산행시작
09 : 54 - 응봉 동릉 711.2m봉
10 : 23 - 응봉(760.7m)
10 : 55 - 연엽산 북벽 아래
11 : 12 - 연엽산(蓮葉山, △850.6m)
11 : 40 - 새목현
12 : 24 - 계류, 임도
12 : 49 - 연화사,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3 : 32 - 엄송골, 2부 산행시작
14 : 00 - 임도
14 : 23 - 717.9m봉
14 : 32 - 영춘기맥 726.5m봉
15 : 05 - 708.9m봉, Y자 능선 분기, 왼쪽은 영춘기맥, 우리는 오른쪽으로 감
15 : 55 - 677.5m봉
16 : 03 - 재상현(영진지도에는 탄상현)
16 : 27 - 640m봉, ┣자 능선 분기, 오른쪽 능선으로 하산함
17 : 00 - 사랑촌, 북방1리 마을회관, 산행종료
17 : 40 ~ 19 : 28 - 홍천, 목욕, 저녁
21 : 2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연엽산 정상에서, 나머지 일행은 연엽산에 오고 있는 중이다
2. 연화사 부근의 만추
3. 잣나무 숲길
▶ 응봉(760.7m), 연엽산(蓮葉山, △850.6m)
“역시 세월이란 자기 몫을 걷어간다. 당연하다. 세월이란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세월
이 세월의 기능을 하지 않으면 우주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
세이에 나오는 말이다. 금년도 어느덧 11월 첫 주말이다. 산에서 또 1년을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이래서 가슴 먼저 스산하다.
기상청 일기예보에는 ‘미세먼지, 나쁨’이라고 했다. 천지가 뿌옇다. 해는 달처럼 뜬다. 단풍철
이 막바지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빡빡하고 가평휴게소는 만원이다. 성동천 따라 북방리 깊
숙이 들어간다. 연화사가 연엽산의 들머리다. 한적한 절집 마당에 우뚝 선 아미타대불이 근
엄하게(?) 굽어보아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이 대불은 높이가 36미터(12층 건물 높이)로
동양 최대의 크기라고 한다.
극락교 건너 연화사 서쪽 계곡으로 들어간다. 간벌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지나기
고약스럽다. 수림은 울창한데 가을이 벌써 시들어 나뭇잎을 다 떨어뜨렸다. 너덜 계곡 건너
서 오른쪽 가파른 사면의 가시덤불을 애써 뚫었더니만 대로인 임도가 지나간다. 잠시 임도
따라 산모롱이로 돌아가서 계곡 옆으로 난 묵은 임도를 더 간다.
Y자 계곡 사이의 지능선을 붙들어 응봉 동릉을 오른다. 차에서 내릴 때는 으스스하니 추웠지
만 오르막길 몇 번 발길질로 이내 변덕스럽게 덥다. 겉옷 벗고 팔 걷어붙인다. 등로 주변에
우람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두룩하다. 그 장송의 늠름함에 자연스레 전염되어 우리들의 행
보 또한 씩씩하다. 줄곧 오르막이다. 가파르게 한 피치씩 올랐다가 잠깐 수그러들기를 반복
한다.
대체로 1시간 걷고 휴식한다. 우리들에게 가을은 한편 겨울을 대비한 비육의 계절이기도 하
다. 오늘도 많이 먹는다. 오는 차안에서부터 떡이랑 김밥이랑 먹어댔다. 첫 휴식에는 탁주 입
산주 분음이 산에 대한 예의이다. 안주가 걸다. 무불 님이 칠면조만한 통닭구이를 가져왔다.
응봉 동릉에 올라서고 바람이 인다. 계절이 바뀐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그 끝은 차디차다.
711.2m봉이 안개 속 첨봉이다. 추워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다. 완만하게 내렸
다가 가파르고 긴 오르막을 박차 오른다. 다수는 응봉을 오르지 않고 왼쪽 사면을 미리 대 트
래버스 하여 대물 손맛 보며 연엽산 주릉을 향하고, 오모육모 님은 매봉(755.5m)을, 나와 두
루 님은 응봉(760.7m)을 다니러 간다. 응봉은 주릉에서 240m 떨어져 있다. 내쳐간다.
응봉이 예전보다 더 쓸쓸하다. 양철 정상 표지판은 칠이 벗겨진 채 사면에 버려졌고, 정상의
좁은 공터에는 색 바랜 추초가 시들하다. ┫자 갈림길 각각 매봉과 녹두봉을 가는 길은 햇낙
엽으로 가렸다. 뒤돌아 연엽산을 향한다. 낙엽 깔린 오솔길이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
럼 운다./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라고 구르몽이 읊은 그런 길이다.
오른쪽 사면은 잣나무 숲이 흑림이고, 왼쪽은 방금 지나온 능선이 수렴에 가렸다. 골골은 낙
엽송 노란 잎이 물감을 옅게 풀어놓은 듯하다. 726.2m봉 넘고 긴 오르막이다. 이 근방의 맹
주이자 준봉인 연엽산 북벽에 다가간다. 연엽산 북벽은 올 때마다 힘들다. 수직 사면이 축축
하니 젖기까지 하여 되게 미끄럽다. 성긴 잡목의 뿌리를 흙 속에서 찾아내 붙든다.
4. 연화사 경내
5. 연화사 서쪽 계곡
6. 연화사 서쪽 계곡
7. 연화사 서쪽 계곡, 임도 따라 약간 오른다
8. 계곡 건너 오른쪽 사면을 오른다
9. 안개로 원경은 물론 근경도 뿌옇다
10. 응봉 등릉 접근하는 지능선은 가파르다 수그러들기를 반복한다
11. 연엽산 주릉에서 바라본 우리가 넘어온 응봉 등릉의 711.2m봉
12. 수렴(樹簾)에 가린 응봉 등릉의 711.2m봉
바윗길 올라서고 산불감시초소 지나 조금 더 가면 연엽산 정상이다. 여느 때는 남쪽으로는
구절산 연릉이, 북쪽으로는 녹두봉, 대룡산 연봉이 장쾌하게 보이는데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
여 지척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새목현을 향한다. 새목현 가는 길은 인적이 뜸하다. 수북이 쌓
인 햇낙엽 쓸어 새길 내며 나침반 남동쪽 확인하고 쭉쭉 내린다.
새목현. 새의 목과 같이 생겼다는 고개다. 한자어로는 조항현(鳥項峴)이다. 임도가 지나는
안부다. 연화사를 어디로 내릴까? 당초 계획은 한 차례 더 오른 744.3m봉에서 북동쪽 능선
을 타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다. 덤불숲을 뚫을 각오하고 새목현 왼쪽 계곡을 더듬어 내리기
로 한다. 골짜기에 달려들자 인적이 분명하다. 만추의 정취가 흠뻑 배어 있는 계곡이다. 계류
잴잴 흐르는 계곡은 너덜 길이다.
좌우로 지계곡과 수없이 만나고 산굽이 돌고 돈다. 임도에 내려서도 연화사가 멀다. 아까 올
때 보지 못한 경치가 있을까 자주 뒤돌아본다. 한낮에도 연화사는 한적하다. 극락교 아래 옥
수 졸졸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점심밥 먹는다. 라면이 맛 나는 계절이다. 부대찌게라면을
버너 세 대에 끓인다. 도~자 님이 준비해온 추어탕은 이 계절의 진미다.
▶ 엄송골
2부 산행. 엄송골로 이동한다. 엄씨와 송씨가 많이 살았다고 엄송골이라고 한다. 첫걸음부
터 가파른 잣나무 숲길을 오른다. 하늘 가린 울창한 열주의 잣나무 숲이 장관이다. 올려다보
고 내려다보고 둘러보고 발걸음이 더디다. 긴 한 피치 올라 운재로(運材路)와 만나고 송전탑
을 지난다. 송전탑 위로도 운재로를 뚫었다. 그리고 훼손된 산림을 원상 복구한다고 잣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눈가림에 불과하다. 열 그루 중 아홉 그루는 말라죽었다.
산허리 도는 임도에 올라서고 휴식한다. 임도 절개지가 높아 바로 오르지 못하고 오른쪽 가
장자리 느슨한 사면으로 돌아 오른다. 또다시 눈 못 뜨게 땀을 흘린다. 자작나무 숲을 지난
다. 시인 최창균은 「자작나무 여자」에서 “그의 슬픔이 걷는다/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의 그/
먼 계곡에서 물 길어 올리는지 …”라고 읊었는데 나는 자작나무가 백바지와 백구두를 신은
멋쟁이로 보인다.
717.9m봉을 오르면 가파름은 숙지고 평탄하다. 오르막을 느끼지 못하고 잡목 숲을 헤쳐 나
아간다. 726.6m봉. 영춘기맥에 들어섰다. 이 길을 12년 전 이맘 때 오케이사다리 시절 영춘
기맥 종주할 때 왔다. 오늘 온 악우 중 그 때 함께 한 이는 대간거사, 메아리 대장, 신가이버,
사계 님이다. 그때는 나도 젊었었다. 남동진한다. 봉봉을 무수히 넘지만 굴곡이 그다지 심하
지 않다.
이렇게 큰 잣나무 숲도 있는가 싶게 보기 좋은 잣나무 숲을 지난다. 잣나무는 소나무과의 상
록교목으로 학명은 ‘Pinus koraiensis’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이다. 영명 또한 ‘Korean pine’이
다. 그런데 묘하게도 소나무는 영명이 ‘Japanese red pine’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에는 애국심의 발로인지 ‘Korean red pine’이라고 명기하고 있지만.
13. 등로 주변의 잣나무 숲
14. 연엽산 오르는 중, 맨 앞은 한계령 님
16. 새목현에서 연화사 쪽 골짜기
17. 연화사 가는 길
18. 낙엽송, 비늘 같은 저 잎도 이윽고 떨어질 것
19. 멀리는 대룡산 남서쪽의 녹두봉(870m)
20. 엄송골 잣나무 숲길 오르막
21. 대룡산 남서쪽의 녹두봉(870m), 암벽 암봉이다.
22. 등로 주변의 잣나무 숲, 잣나무가 엄청 크다
708.3m봉. Y자 능선 분기봉이다. 왼쪽은 가락재와 늘목고개 지나 가리산으로 가는 영춘기맥
이다. 우리는 잠시 휴식하다 오른쪽으로 갈 터이다. 요즘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체면이 영 말
씀이 아니다. 죽어가는 소도 살린다는 환타가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해서다. 무덥던 지난 한
여름 날에는 한 모금 얻어 마시려고 입맛 다시며 줄을 섰던 냉환타였다.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오른 잣나무를 사열하며 668.5m봉과 677.5m봉을 넘는다. 재상현(영
진지도에는 ‘탄상현 炭霜峴’이다). 임도가 지나는 안부다. 임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봉우리
한 개를 임도로 돌아 넘고 640m봉의 넙데데한 잣나무 숲에서 휴식한 후 그만 하산한다. 운
이 참 좋았다. 울창한 잣나무 숲길을 간다. 오늘 산행은 물론 근래 산행 중 하산으로는 가장
멋진 길이다.
날씨가 흐리기도 하거니와 잣나무 숲이 하도 울창하여 어두컴컴하다. 잣나무 그 낙엽이 알맞
게 쌓여 마치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다. 하산 길 40여 분이 두고두고 생각 날 환상
의 길이다.
이런 잣나무 숲에서는 대체 잣을 어떻게 딸까?
1990년 1월 13일자 경향신문의 기사가 흥미롭다.
‘가평 잣 수확 원숭이 일꾼 싸고 찬반대립’이라는 제하에 경기도 임사빈 도지사가 가평군 연
두순시 때 주민들과 가진 신년교례회에서 새로운 잣 수확 아이디어로 원숭이를 활용하겠다
고 하였다. 임지사는 동남아 등 열대지방에서 야자를 수확하는 데 원숭이를 활용하고 있다
며, 용인 자연농원과 과천 서울대공원 등에서 원숭이를 공급받아 잣 따는 훈련을 시켜 잣을
따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도 농정국장을 일본과 동남아 등에 보내 원숭이를 활용, 과실을 수
확하는 조련사의 기법을 배워오라고까지 지시했다.
이에 반대론자들은 수확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만화 같은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첨단과
학 기술시대에 원숭이를 활용하여 잣을 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원숭이를 동
원한다면 노동능력이 사람의 3분의 1일에도 못 미쳐 사람 몫을 하려면 연 1만여마리 이상을
동원해야 한다며, 최소한 2천마리의 원숭이를 확보할 경우, 사육관리비 등 비용이 엄청나 배
보다 배꼽이 커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당해야 할 입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최선보다 차선을 내세워 원숭이를 동원, 잣을 수확하면 새로운 명물이
될 터인데 무조건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들은 “가평 특산물을 하나라
도 더 건져 소득을 늘리고 명예를 지키는 것이 수확방법보다 더 중요하다”며 원숭이도 사람
몫을 못할 것 없다”고 하였다.
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잣 따는 원숭이를 계속 추적한 경향신문의 1991년 11월 8일자 기사다.
“도유림사업소는 지난해 고육지책으로 서울대공원과 자연농원에서 일본산 원숭이 8마리를
데려와 잣따기 훈련을 시켰었다. 그러나 한번 잣나무에 오른 원숭이는 손이나 털에 묻은 송
진을 입으로 떼어버리는 데만 신경을 쓸 뿐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아 실패, 지난달 10일
서울대공원 등으로 되돌려 보냈다. 올해 가평군 8백 20여 잣 농사의 10 ~ 15%는 잣따기를
포기하고 있다.”
잣나무 숲을 빠져나오자 사랑촌 황혼의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비록 날이 흐려 산첩첩
조망은 하지 못했지만 저무는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 산행이었다. 힘차게 하이파이브 나눈
다.
23. 잣나무 숲길
24. 영춘기맥 분기봉인 708.9m봉에서
25. 잣나무 숲길
26. 등로 주변의 잣나무 숲
27. 잣나무 숲길, 사랑촌 가는 길
28. 잣나무 숲길, 사랑촌 가는 길
29. 잣나무 숲길, 사랑촌 가는 길
30. 사랑촌
31. 사랑촌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