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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깔리는 것은 미풍해장국의 일종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시원하고 달큰한 무 물김치와 간마늘이다. 어제 술을 마셔서 입이 쩍쩍 갈라진 주당이라면 먼저 물이 아닌 저 물김치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정신을 차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쭈욱 들이키고 재차 한 그릇을 더 요청할 때 해장국이 놓여진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집이다. 해장국 백반이 유일하다. 쇠고기 양지와 선지, 배추와 콩나물 등이 들어가 푹 우려난 그 국물은 그대로 보약이나 다름없다. 조선시대 술꾼양반들이 사랑하던 효종갱도 저기에 양지 대신 소갈비와 전복이 더 들어가고 된장만 좀 풀었을 따름일것이다. 저 자체는 해장과 원기회복의 기본 골격이다. 그러고보니 국물위에 뿌려진 저 짙은 기름의 정체가 궁금하다. 사실 미풍해장국의 변신은 이 때 부터라고 보면 된다. 위에 뿌려진 고추기름, 그 농도 진한 고추기름을 수저로 휘휘 푸는 순간 해장국의 완벽한 안면몰수가 시작된다.
배추와 고기에서 우러난 시원한 단맛의 국물이 맵싸하게 변한다. 보기만 해도 식욕이 넘쳐흐른다. 한 입 떠 먹어보니 입 안이 얼얼하다. 속이 풀리면서 땀이 이마에서 배어나온다. 어디에선가 이렇게 매운 국물은 해장의 효과는 크지 않고 오히려 속을 더 아프게 한다고 했다. 그런 상식일랑 이렇게 훌륭한 해장국을 앞에 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재미없게 살지 말자고 본능이 유혹한다.
꼭 속이 풀려야 해장이 아니다. 이 한그릇이 주는 얼큰함, 포만감은 해신(解身)국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먼 길을 떠나는 이에게 이만치나 큰 자기위안이 어디 있겠는가. 스며나오는 땀은 제주도에 오기까지 여태 쌓인 스트레스와 화병(火病), 그 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해독되는 과정일게다. 그렇게 이 한 그릇에 쓸모없는 ‘육지에서부터 묻어 온’ 근심을 날려버린다.
고소한 양지가 주는 기름진 맛에 선지가 푸들푸들 부서져 씹힌다. 푹 늘어진 배춧잎과 콩나물이 밥알과 뒤엉키니 제주도 바다가 아무리 파란들 이 빨간 국물보다 더 날 시원하게 할 쏘냐, 하는 되도 않는 개똥 배짱 한 마디가 튀어나온다. 이정도로 맵싸래한 국물을 가진 제주도 음식이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길을 걷다 괜시리 ‘육지병’에 걸린 향수를 달래주기에도 적격인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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