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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해당하는 죄
21: 12-17
12.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13.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
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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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에서 중요한 언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제히 응답하기를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고 굳게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언약에 따라 출 20장에서는 모든 도덕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이 주어졌고, 21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지켜야 할 시민법이 주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법이 하나님의 택한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이었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천국 시민인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시민법에서 말씀하고 있는 삶의 원리들을 본받아 살도록 힘써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시민법 중 가장 먼저 주신 법이 히브리 종들에 대한 규례인 것을 지난주일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히브리 종들은 육년 동안 주인을 섬긴 후 제 칠년이 되면 자유의 몸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시민법 중에서 종들에 관한 법을 맨 먼저 규정해 주신 것은, 이 땅에서 소외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 관한 율례 중 특별히 귀 뚫린 종에 대한 규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종이 단신으로 주인집에 팔려 왔다가 주인의 여종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제 칠년 되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자식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주인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할 때는, 송곳으로 귀를 뚫고 영원히 종이 되어 주인을 섬길 것을 맹세하였다고 했습니다.
처자식을 사랑하여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포기하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 영원히 종이 될 것을 자처한 노예가 있었다면, 주님 때문에 구원을 받고, 주님 때문에 영원한 자유인이 되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알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생각할 때에, 우리가 비록 눈에 보이는 송곳으로 귀를 뚫지는 않았을지라도, 주님을 위해 영적으로 귀를 뚫은 종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한평생 주님을 섬기며 주님께 충성을 다 바쳐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 되시고 생명의 은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시민법 중에서 두 번째 항목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한 율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죽인 자와, 부모를 때린 자, 사람을 유괴하는 자, 그리고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도록 율례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형에 해당되는 네 가지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12절에 “사람을 쳐 죽인 자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네 가지 범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중에서도 사람을 쳐 죽인 범죄를 사형에 해당하는 첫 번째 범죄로 규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범죄 중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장 흉악하고 극악한 범죄로 규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사람을 죽인 것이 왜 가장 무서운 형벌인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되며,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사형에 해당되는 여러 가지 범죄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범죄로 규정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육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존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사악한 범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쳐 죽이는 것은 어떤 범죄보다도 가장 흉악한 범죄로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살인이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습니까? 최근에는 11살 된 초등학생을 성추행하고 그 일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하여 어린 생명을 죽인 후 아들과 함께 사체를 불태워 유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3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저질러진 살인 사건만 하더라도 998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세계 도처에서 저질러진 살인 사건은 얼마나 많겠으며, 거기다 전쟁과 테러 등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인에 의해 죽어가는 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는 살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손을 빌어 뱃속에 있는 생명인 아기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도 못하고 비명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한 채 무수히 많은 태아들이 무참히 살인되고 있는 일은,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허락된 일이 아닙니다. 태아의 생명은 법으로도 보호받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서는 태아의 생명을 보장하고 있지만, 모자보건법이라는 다른 법을 통해 이러한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러 조건들이 붙어 있지만, 이 조건들 자체에도 문제가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도 다시 말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경우에도, 아무런 가책 없이 생명을 죽이는 일을 의사와 산모들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중 사상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보다도 돈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생활을 위해 뱃속의 아이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생명 경시 풍조야말로 오늘날 사회를 갈수록 삭막하고 흉악하도록 만드는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인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잊지 마시고, 낙태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 악한 세상의 풍조를 절대로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의가 없이 사람을 죽인 경우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에 의해 사람을 죽인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도망함으로 사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자신의 친족을 죽인 사람에게 피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였으므로, 그로 인해 살인이 살인을 낳은 피의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선언에 따라 고의적 살인자가 아닌 실수나 정당방위의 차원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위해, 처음에는 거룩한 제단이 있는 성소로 지정하셨고 후일에는 가나안 땅에 여섯 곳의 도피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긴급조치를 통해 무고한 생명이 살해되는 것을 방지하셨을 뿐 아니라, 연이은 복수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살인의 악순환을 예방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이 도피성 제도는 장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즉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 값으로 치러야 할 영원한 죽음을 피하고, 자신들의 생명을 본존하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하고 지정하신 한 곳으로 신속하게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입니다.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을 떠나서 그 어디에서도 생명의 안전, 영생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행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15절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부모를 치는 죄를 그토록 중한 죄로 보시고, 그러한 죄를 범한 자를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형벌에 처하게 하셨을까요? 결론적으로 부모를 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도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부모는 단순히 인간적인 가족 관계에서의 어른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즉 하나님을 대신해서 가정과 자식을 다스리는 존재로서의 부모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권위를 지녔고, 부모의 명령은 자식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부모를 때리는 것은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부모가 대변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악행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모를 때리는 것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에 못지않은 큰 죄로 사형이라는 극형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부모를 때리는 패륜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부모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자초하는 악한 범죄 행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부모님을 대할 때 항상 공경스런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고, 그의 권위 앞에서 겸손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자녀를 양육하고 훈육하며 다스릴 권한을 부여하셨고, 그 권위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일을 통해, 위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삶을 배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는 하나님께 대한 공경과 연결되는 규례로서, 인간 도덕의 출발점인 동시에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사람을 유괴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16절에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을 후렸다는 것’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거나 팔아먹을 목적으로 유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유괴를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로 규정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괴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존귀한 자로 만들어 놓은 인간을, 짐승이나 물건과 같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유괴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를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유괴하는 자에게 사람은 단지 돈을 받고 팔고 사는 짐승이나 물건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을 유괴하는 행위는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짓밟는 신성 모독죄와 같은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유괴해서 팔아먹는 죄악을 범하는 자가 어찌 극형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유괴범의 극형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사회에 물질주의와 홍금만능주의 사상이 팽배하면서, 사람을 유괴하고 매매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수없이 자행되어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유괴해서 몸값을 받으려는 유괴범들과, 여자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겨 돈을 버는 인신 매매 범들, 남자들을 납치해서 견디기 힘든 육체노동 현장에 팔아먹는 자들을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로서 사회적 형벌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에게는 아무리 비천한 자라 할지라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귀한 형상이 있고 존귀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도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4.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17절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때리는 자를 죽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또 다시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죽이라고 명하심은, 부모에 대한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잘 가르쳐 줍니다. 특별히 본문은 말로써 부모에게 지은 죄가 직접 때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커다란 죄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부모를 욕하거나 비난하고 멸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보답은 해 드리지 못할망정, 욕하고 비난하고 멸시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부모의 권위는 자식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곧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음의 형벌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부모를 저주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자들은 사회적으로는 단지 비난과 멸시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부모를 멸시하는 자가 잘 되는 것 보셨습니까? 혹 그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준엄한 심판을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있어서는 반드시 준엄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항상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보답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항상 육신의 부모님과 영의 부모님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지켜야 할 시민법으로서 사형에 해당되는 네 가지 죄악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2)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3)사람을 유괴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4)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사형제도 폐지론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가고 있습니다. 사형 제도는 선진화된 사회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제도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사형 제도를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에 주신 질서의 하나로 여겨왔습니다. 기독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전통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형 문제에 대해 견해가 바뀌면서 요즈음 기독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형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사랑이 더 많은 사람들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또 다른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여명의 생명을 무참히 살해했던 유영철과 같은 흉악범의 생명이나 인권만 중요하고, 그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나 가족들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만일 그러한 흉악범의 손에 자신들의 사랑하는 처자식이 무참히 살해당해도 그들은 계속 살인범의 생명의 존엄성이니 인권 존중이니 해서 사형을 반대할까요?
진실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의 생명을 어느 누구보다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살인한 자들을 향하여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되는 것이 타락한 인간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내 생명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고 함부로 살상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참으로 단호히 응징하여 살인죄가 성행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자들은 영웅의 반열에서 반드시 삭제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무고하게 죽인 권력자들이나 통치자들 역시 인류의 양심 법정 도덕 법정에서 반드시 정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점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에 대해 적용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음주 운전 같은 것은 간접적인 살인죄나 마찬가지인 줄 알아서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러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불량식품이나 인체에 치명적인 농수산물을 재배 또는 판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태아 살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간 우리는 살인과 관련해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대하여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우리 모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육체적인 살인은 물론 형제에 대하여 노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살인도 하지 않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