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현충일이 되면 나는 공군 선후배들과 함께 서울국립현충원에서 호국영령들에게 참배한다. 이때 꼭 '호국부자의 묘'를 찾는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다 산화한 부자가 함께 잠들어 있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아버지 고 박명렬 소령은 1978년 공군소위 (공사26기)로 임관하여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1984년 3월14일 팀스피릿 훈련중 충북청원 상공에서 순직하였다. 이때 나이 31세의 피끓는 청춘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아들 고 박인철 대위는 2004년 3월 17일 공군소위 (공사52기)로 임관하여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2007년 7월20일 야간 요격임무 수행중 태안반도 서북쪽 해상에서 추락 27세 나이에 순직하였다. 아버지는 1984년 3월16일 서울국립현충원에 모셨으나 아들은 순직 당시 유해를 발견할 수가 없어 비행전 남긴 유품을 묻었다가 2007년 7월23일 가족들의 청원에 따라 아버지 곁에 안장되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영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호국부자의 묘 앞에서면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위해 대를 이어 나라에 충성하고 순직한 빨간마후라 부자의 뜨거운 애국심에 가슴이 떨려온다.
사랑하는 남편을 조국의 하늘에 바친 부인은 아들이 전투기조종사가 되는 것을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자란 아들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여 더이상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조국의 하늘에 바치게 되었다.
나는 호국부자의 묘앞에 서면 남편과 아들을 잃고 망연자실했을 한 여인을 위해 간절한 구원의 기도를 한다.
전투기 조종사가 임무수행중 순직할 때 나이는 대개 30세 전후다. 부인도 젊고 아이들은 아주 어리다. 졸지에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남편과 아빠를 잃은 유가족들은 앞길이 캄캄할 수밖에 없다. 조종사 관사를 나와 당장 갈 곳이 없는 경우도 있다. 순직조종사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턱없이 빈약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면 유가족은 나라가 무한책임을 져야 하지않는가.
순직조종사 가족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된 공군 현역과 예비역 장병들이 뜻을 모아 '하늘사랑 장학재단' 을 발족하였다. 1982년 순직한 고 박광수 중위의 부모가 28년동안 모은 1억원의 유족연금과 조종사 2,7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2억여원을 기반으로 장학재단을 발족했다. 어린 학생들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열심히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다행히 공군출신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장학금을 보태고 있다. 나도 매년 1,000만원씩 장학금을 보태고 있다. 올해가 10년째가 된다.
지난해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했다가 또다른 감동을 느꼈다.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남편을 보내고 자식을 키우는 부인의 짧은 답사를 들었는데 장학금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많은 분들이 아빠와 남편을 기리고 유가족을 챙겨주기에 용기를 잃지않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이 학생들이 잘 자라서 우리사회의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라는 군이 지키고 군은 국민이 지켜야 한다. 나라를 지키다 순직한 장병들의 가족은 우리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군을 경시하고 군인을 무시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이것이 동서고금을 통한 역사의 교훈이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개구름이 눈부시다. 흰구름 사이에 호국부자의 애국영혼이 함께 숨쉬고 있을 것이다. 호국부자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