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법주사와 속리산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4.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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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법주사와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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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9. 20:36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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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법주사와 속리산
청화산 건너편에 속리산(俗離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리산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속리산은 고을 동쪽 44리에 있다.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 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이라 불렀고 중사[中祀,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지낸, 대사(大祀) 다음가는 제사]에 올렸다. 산마루에 문장대가 있는데, 층이 자연적으로 쌓여 높이 공중에 솟았고, 그 높이가 몇 길인지 알지 못한다. 넓이는 3000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큰 구멍이 가마솥만 하게 뚫려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에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한강)으로 들어갔다.
『문헌비고』에는 “산세가 웅대하여 기묘한 석봉들이 구름 위로 솟아 마치 옥부용(玉芙蓉, 아름다운 연꽃을 의미하며 눈[설(雪)]의 아칭) 같아 보이므로 속칭 소금강산이라 하게 되었다”라고 한다.
일찍이 고운 최치원이 법주사1) 일대의 암자를 돌아보고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멀리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멀리한다” 하고 노래한 속리산(1051미터)은 백두산에서 비롯한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인 보은군에 자리한다.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속리산은 천황봉ㆍ비로봉ㆍ입석대ㆍ문장대ㆍ관음봉 같은 기기묘묘하게 솟은 빼어난 봉우리를 자랑하며, 이와 함께 국보급 문화재들이 즐비한 법주사를 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는 속리사가 속리산 서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속리산에서 속리사는 찾을 길이 없다. 다만 김구용의 시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달마암(達磨岩) 가에 등불 하나 밝았는데
문 열고 향 피우니 마음 다시 맑아라
혼자 깊은 밤에 잠 못 이루니
창 앞에 흐르는 물, 솔바람 소리에 섞여 들리네
속리산
한편 속리산 하면 떠오르는 절 법주사를 두고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박효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높다란 사면 푸른 연꽃 같은 봉우리
장갑(長岬)의 신령스러운 근원 몇 겹인고
문장대는 천고의 이끼 그대로 있고
우타굴(于陀窟) 그늘 만 그루 소나무일세
용이 탑 속으로 들어가니 진골이 남았고
나귀가 바위 앞에 누웠으니 성종(聖鐘)을 찾네
길이 삼한(三韓)을 복되게 하는 건 누가 주인인가
산호전(珊瑚殿) 위에 자금용(紫金容, 자금색의 부처의 몸빛)일세.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이 천축으로 구법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창건한 절이다. 혜공왕 12년에 창건했고 모악산 금산사를 중창한 진표율사가 중창하면서 큰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오층목탑 형식의 법주사팔상전(국보 제55호)과 석련지(국보 제64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이 있다.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 유일의 오층목탑이다. 벽의 사방에 각 면 두개씩 모두 여덟 개의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법주사와 속리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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