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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금까지 한 찬양 감사하고 이 찬양 내용들이 오늘 준비한 설교 말씀과 너무 잘 매치가 되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찬양 가운데 동참을 하신 분들은 이미 오늘 말씀의 시작 부분으로 들어오셨다고 생각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우리가 살다가 보면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죠.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 인생의 기본 조건이고 기본 상황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 때에도 그랬고, 그보다 수백 년 전 엘리사야 때에도 그랬고, 또 그전에 모세 때에도 그렇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아람 사람 나만에 관한 것이에요. 그는 예수님께서 언급하실 정도로 구원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고, 또 그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주 유익한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전할 것은 이것인데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자.
네 이전 페이지예요. 다시 한 번 볼까요? 제목 다시 한 번 그냥 하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자.
이 말씀이 오늘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되기를 바라고 그의 반응에서 우리 안에서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먼저 나만의 소개로 시작합니다. 나만은 1절이 전하는 대로 아람 왕 앞에서 아주 크고 존귀한 자입니다. 그에게 존경과 신임을 받는 장군이고 아람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신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도움을 받아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사이기도 하죠. 한마디로 명예와 권력과 재물, 이 땅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병 환자였습니다. 나병을 가진 자였습니다. 싸움도 잘하고 권력도 있고 지위도 높고 재물도 많고 도와줄 사람도 많지만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서 나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그의 아내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데리고 와서 자기 집에 여종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녀가 이스라엘 땅에 주인이 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주인의 병을 고쳐줄 선지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어요. 그래서 그 소식을 아내가 남편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만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의 주인인 아람 왕에게 갔고 그 얘기를 전했고, 아람 왕은 그 소식을 기뻐하고 편지를 써줘서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하게 하게 했고, 그리고 나만이 은과 금과 옷, 많은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만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죠. 그러나 아람 왕의 편지를 받아서 읽은 이스라엘 왕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아주 격하게 반응하면서 자기 옷을 찢었어요. 그리고 말하기를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요청함으로써 결국에는 자기와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이 부분에서 남한의 수고가 헛되이 돌아갈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자신의 생각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나만의 수고가 헛되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죠. 그가 왕이 옷을 찢었다 하는 소식을 듣고 왜 그렇게 했는지 묻고 나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만이 갔죠. 말과 병고와 자기의 사람들을 데리고 힘차게 엘리사의 집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반전이 계속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어떻게 했습니까?
나와서 나오지도 않고 나만을 보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사자를 보내서 말만 전하는 것이죠. 요단강에 내려가서 그 물에 몸을 7번 담그라 그리하면 사이 피부가 아기처럼 회복되고 깨끗해질 것이라는 말만 전한 거죠. 이 상황에 나만이 먼저 화를 냈습니다. 분노한 것이죠.
지금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왜냐하면 나아만이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의 말을 들어보면 엘리사가 집 밖으로 나와서 자기를 환대하고 반겨주고, 그리고 자기의 신인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서 자기의 손을 가지고 환부 나병이 있는 곳에 이렇게 흔들어서 병을 고쳐줄 것을 기대한 것이죠. 다른 이방 종교들에 있는 주술사들이 하는 것과 같은 한국에서도 무당들이 여전히 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을 기대를 할 겁니다.
그런데 나 엘리사가 밖에 나오지도 않고 안에서 말만 전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요?
이 나만이 화가 난 것이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나만의 수고가 헛되이 될 위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만이 자기가 느낀 생각과 감정에 따라서 행동했다면 그다음 이야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의 곁에 있던 종들이 나만을 도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선지자가 이것보다 더 큰 일을 아주 큰 일을 하라고 했으면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요?
그냥 씻어서 깨끗하게 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종들의 편에서 볼 때도 그냥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거죠. 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만이 자기의 생각을 접고 자기의 감정을 접고 어떻게 했습니까?
내려가서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이 어린 아에 된 것처럼 어린 아이의 살처럼 회복하고 깨끗하게 되었다. 엘리사가 말한 그대로 되었다 하는 것이죠.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가 지금 해결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엘리사에게로 돌아가서 참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가져온 감사의 선물을 다 전하려고 하였죠.
그다음 내용은 오늘 본문 이후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전달한 이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다음 6가지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과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하는 것이죠. 나만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결국 참 하나님을 만난 것은 그에게 나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무엇으로도 거칠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다시 말해서 그가 나병 환자가 아니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하나님 없이 끝날 수가 있었었고, 그의 구원 이야기 이 귀한 이야기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도 생각을 해볼 수가 있어요. 우리 인생도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질병이든 가난이든 전쟁이든 재난이든 관계의 어려움이든 인생에 찾아오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그 문제들이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을 끝내는 끝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새 시작일 수 있다. 새로운 출발점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실 수가 있어야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래요. 전에 모르던 하나님을 만나거나 떠나가던 점점 멀어지던 그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서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출발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뭐가요?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그 수많은 문제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에 있는지 만나게 된다면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고 절망하지 말고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지난 한 주간의 여러분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문제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괴롭히고 끝내는 마지막으로 보지 말고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 일을 위한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기를 여러분의 마음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들 중에는 그 무엇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고 또 그 무엇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어요. 나만의 경우로 보자면 다른 모든 문제들은 그가 가진 재물 권력 인맥으로 해결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나 그가 가진 나병은 이 병은 그 무엇으로 또 그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오직 참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죠. 이렇게 두 종류의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구분해서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어요.
뭐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들을 포함해서 이 두 번째 문제 곧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는 이 문제를 좀 가볍게 여기고 작게 여기고 경이 여기고 반대로 첫 번째 문제 그 무엇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그 문제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기뻐하시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작은 문제들을 사소한 수 있는 문제들 때가 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크게 만들고 부풀리고 그것을 마치 넘을 수 없는 것처럼 절대화하는 것 그것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고요.
뭐라고요?
사탄이 원하고 세상이 가는 방식이다 하는 것을 잘 기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 많이 있죠. 가정별로 개인별로 하나씩은 다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들 중에는 돈이 있으면 돕는 자가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사실 그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말로 힘들게 정말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우리가 다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크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요?
우리는 모든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모든 만물의 창조주 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것들을 작게 볼 수 있어야 된다. 그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중에 하나다 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까요?
우리 인생에 정말로 크게 느껴지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 문제들은 무엇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큰 문제들 앞에서 작게 볼 수 있는 상대적으로 비교적으로 작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거나 말씀하실 때 사용하시는 루트가 많이 있죠. 그런데 그중에는 사람들이 있어요. 본문에는 나만의 부인 이스라엘의 땅에서 데려온 여종, 자기의 주인 하람 왕,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또 나아만과 함께 했던 종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냥 이름 일반 명으로만 언급이 되는 거예요. 안에 그러니까 모인 여종 왕 종들 이렇게 이름 고유 명이 아니고 일반 명으로만 임금 되는데 이 모든 사람이 나만이 결국 얻게 될 구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다 했다 하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니죠.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사탄의 통로가 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이 이미 그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분별력을 잘 키워놔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해서 하나님의 통로인지 사탄의 통로인지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잘 키워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만의 구원을 위해 사용된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통로라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남편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의 나음을 위해서 소식을 전한 그의 부인이 그렇습니다.
또 자기가 노예이지만 섬기는 주인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말을 전한 여정이 그렇습니다. 또 나아만이 나만이 이스라엘의 방문을 기꺼이 도와준 아라왕이 그렇죠. 또한 나만이 화가 난 상태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기의 주인이 막 화가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서 정말로 충성된 말을 해준 종들이 그렇습니다. 엘리사의 말은 더욱 그렇죠.
그런데 나만이 아직 하나님을 몰라서 교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엘리사의 방식에 화를 냈지만 엘리사가 한 말은 무엇입니까?
절대적으로 나만을 위한 다만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이었던 것이죠.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아니면 지금 언급한 사람들의 말을 하나라도 듣지 않았으면 그가 얻은 결론은 전혀 다른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정말로 위해 줘서 하는 말들이 있고, 자기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잘 구별을 해서 정말로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내 생각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내 감정이 아무리 중요하도록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하는 뜻이 됩니다.
넷째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 그의 역사의 가장 큰 방해는 우리 자신일 수가 있어요. 내 자신 내 마음 내 생각, 내 판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경우는 나병이라는 인생에 해결되는 데 있어서 그가 한 것은 그가 알지 못하는 분 그렇지만 그를 지금 신기한 방법으로 이끌어가시는 분을 끝까지 따라간 것이죠. 그렇게 할 때 아내의 말을 따랐고 여종의 말을 따랐고 엘리사의 말을 따랐죠. 그리고 또 그의 종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죠. 더 맞는 소리 앞에서 자신의 것을 접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 모두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나만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가 있어요.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잘 기억하고 우리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만 붙들지 말고 거기에만 치우치지 말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정말로 우리를 위하는 말들에는 귀를 기울이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복된 인생 다 되게 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예상치 못하는 측면이 항상 있어요. 본문을 통해서 말하자면 나만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의 군대의 총지휘관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생각하거나 치유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오히려 이스라엘에 많이 있는 그 나병 환자들을 생각하시고 고쳐줘야 할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기대이고 예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그러한 기대와 기대와 예상에 전혀 맞게 일하지 않으신 것이죠. 그러나 모든 사람의 예상과 기대는 바뀌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람이 아닌 아람 사람,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람 사람 나만을 생각하시고 그를 고치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스라엘의 고침이 을 필요로 하는 나병 환자들이 많음에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라고 우리는 이제 생각을 하지 성경을 통해서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기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나 세상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제발 나 자신을 기준으로 현재를 기준으로 이 세상의 시대적 상식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오늘만 아니라 내일도 아시고, 생명만 아니라 죽음의 너머도 아시고 이 세상의 끝도 아시는 그 하나님을 통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게 성경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사고 틀 안에 자꾸 가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역사에 맞춰가는 거예요.
역사는 항상 그랬습니다. 2천년 전에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2천년이 지나면 아주 자연스러운 상식이 된 거예요. 개인적으로 보면 그 사람은 절대 바뀔 수 없는 사고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바뀐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역사에 그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지금 내 생각으로 던져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이해가 될 수 있기를 맞출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합니다.
여섯 번째로 마지막이 되는 거죠.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의 믿음이 중요해요. 본문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아주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누구일까요?
네 바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나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아직 몰라요. 믿지도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계속 나아갔어요. 그리고 결국에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15절에 기록된 말씀인데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아나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드릴 때 여호와 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바치지 않고 다만 여호와께만 바치리이다라고 고백을 하는 자리까지 간 겁니다.
나만이 아람 사람이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원수가.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의 지도자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지금 사람이 나만에 대해서 옷을 찢는 것으로 반영을 했다는 것은 그 안에 믿음이 없어 하는 것이죠. 그가 나중에 나만이 병의 고침을 받았다 하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그들은 뭐라고 평가를 받습니까?
모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쫓아간 왕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가 아 나만의 병 고침 소식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생각이나 믿음에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 우리가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여기에 나만과 이스라엘 왕 이때 왕은 여호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여호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왕들이 다 포함이 될 수가 있어요. 나만과 이스라엘 왕 우리한테는 두 가지 모델이 돼요. 그래서 우리는 나만처럼 하나님을 잘 몰라도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받는 인생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고, 반대로 이스라엘 왕처럼 하나님을 이미 알면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점점점점 더 멀어지는 길로 갈 수가 있다 하는 것이죠.
또 이스라엘의 왕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어도 이런저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불신과 두려움에 빠져서 걱정하고 염려할 수가 있고, 반대로 나만처럼 이방인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문제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맞는 복을 얻을 수 있다 하는 것이에요.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이 두 모드를 통해서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온갖 종류의 인생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오늘 나만을 통해서 보여주시되 우리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고 따라가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 교회에 속하는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 그 길로 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