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위선의 위험(행5:1-11)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내러티브)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이 아니고 성령행전입니다. 성령께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시작으로 교회를 세워가셨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워가셨는지 오늘도 눈을 들어 2000년 전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로 세워져갔어요. 사도들은 무시무시한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권세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 그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사람이 변하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 가지 기적과 치유를 행하시고, 사도들은 이런 일이 일어난 후에 복음을 제시하며 교회가 나날이 성장했습니다. 초대 교회 최고의 미덕은 이런 기적과 치유가 아니라,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내 소유를 내놓는 것이에요. 이것은 소유가 많다고-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재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나눔으로 초대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하다-프토코스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기초적인 삶의 문제를 교회가 해결해주었습니다.
2. 자기 것을 기꺼이 내놓은 성도들 가운데 으뜸은 바나바였습니다.(본명은 요셉) 바나바는 밭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기의 소유를 팔아 헌금을 드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입니다. 바나바만 아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자기 것을 내놓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동참했어요. 이들 부부가 드린 구제 헌금은 1-2절,“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감추고 속이는 이야기를 읽을 때입니다. 소설책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이런 내용이 나오면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가요.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심상찮습니다. 여호수아시대 여리고성 점령 후 아간 이야기와 같이요. 하나님의 백성들-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감추고 속이면,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아간, 전리품을 숨김-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제비뽑기-죽임당함) 아나니아가 먼저 교회에 왔고 베드로는 성령님을 통하여 아나니아 부부가 행한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지식의 말씀의 은사 또는 성령의 조명)
3. 3절,“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으냐.”베드로의 말을 들은 아나니아가 깜짝 놀랐어요. 베드로 사도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지? 아나니아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기 소유를 팔아 구제 헌금을 드린 것은 칭찬받을만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나니아는 베드로에게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책망이 아니고,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고 성령님을 속였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충격적인 상황이었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선한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갈등 심화
4. 베드로에게 책망을 들은 후 아나니아에게 더욱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5-6절,“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아나니아가 베드로에게 책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마음이 답답해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 시간 정도 지난 후 삽비라가 교회로 왔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휴대폰이 있었다면, 남편의 상황을 듣고 바로 달려왔을 거에요.
남편이 죽은 상황을 삽비라가 전화로 들었다면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전화가 없었어요. 삽비라는 남편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물었어요. 8절,“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이것 뿐이라 하더라.”삽비라 역시 남편과 같이 베드로에게 책망을 들었습니다. 9절,“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늘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5. 삽비라를 향해서 말하는 베드로가 상당히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누군가를 축복하고 격려하는 일은 잘 할 수 있어요. 반면, 이렇게 책망하는 일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더군다나 남편에 이어서 아내까지 죽게 될 것을 선언했으니, 베드로도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삽비라는 베드로의 말이 그치자 베드로의 말대로 죽었고, 남편 곁에 매장되었습니다. 참 두려운 일이었어요.
11절,“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도 두렵고 떨리는 일인데,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이렇게까지 일이 되어야 했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말씀이 있어요. 오늘 본문이 그런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시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이렇게 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실마리
6. 아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기 소유를 팔아 구제 헌금을 한 것은 잘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착한 사람이라고 불린 바나바처럼요.(11:24) 이들 부부에게서 문제는 거짓-위선이었습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자기들의 소유를 판 모든 것을 구제 헌금으로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정직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베드로도 이것을 말했습니다. 4절,“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 부부가 땅을 팔기 전이나 후에도 소유는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땅을 팔 수도 있었고 그러지 않을 자유도 있었어요. 그들의 소유를 판 후에도 그 돈을 그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 가치를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놓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억지로 내 소유를 헌금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20세기에 나타난 공산 독재자들이나 한 일입니다. 땅과 소유를 총칼로 빼앗었어요. 베드로가 아나니아 부부를 책망한 것은 그들의 거짓이었습니다. 거짓말은 죄입니다.
7. 아나니아 부부가 거짓말을 한 것은 그들도 바나바와 같이 칭찬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위선) 바나바 이야기에 이어서 이들 부부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을 보면 추정해볼 수 있어요. 베드로는 이들 부부가 거짓말을 한 것은 사탄이 그들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해석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인들의 위선을 책망하며 말씀하셨어요. 요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유대 종교인들의 산헤드린 공회를 통하여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권세를 가진 만큼 정직하고 성숙한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어요. 예수님은 그들이 행하는 위선과 거짓을 폭로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이 경고하신 위선이 초대 교회에서도 나타났어요. 초대 교회를 세워가셨던 성령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위선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은 베드로에게 그들의 위선을 알게 하셨어요. 베드로는 성령을 통해서 받은 말씀을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8.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는 초대 교회 현장에서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종말이 오기까지 모든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교회에서 거짓과 위선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거짓말을 한 것은,‘이 일을 설마 누가 알겠는가?’잘못 판단하고 말았어요. 성령이 강력히 역사하시던 초대 교회에서 이것은 바로 드러났습니다. 아나니아 부부 이야기는 모든 교회에 경고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이상적인 교회-성숙한 교회에서는 거짓과 위선이 통하지 않습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1969년 스텐퍼드 대학교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실험을 했어요. 두 대의 중고차를 구매하여, 한 대는 뉴욕주의 브롱스(서민 거주지)에, 다른 한 대는 캘리포니아주 스탠포드 대학 인근 지역(우리 식으로 강남)에 주차했습니다. 둘 다 보닛을 살짝 열어둔 채로 두었습니다.(창문은 깨어놓지 않았다) 브롱스에 놓아둔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와 라디에이터가 털렸고 24시간 이내에 거의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9. 스텐퍼드 대학 앞에 두었던 차는 5일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연구자가 차를 치우려고 하자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차의 유리창을 연구자가 망치로 깨기 시작하니까, 그제서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함께 차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질서를 깨면, 다른 사람들도 거침없이 그렇게 한다는 실험 결과입니다. 이런 일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나 가정에서도 늘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거짓과 위선을 즉시 심판하신 이유입니다.
복음 제시
10.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고 말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그 사랑이 우리 속에서 흘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 많으시지만, 그는 공의로운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을 빌미로 거짓과 위선을 교회 내에서 행한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를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거짓과 위선이 없는 성숙한 삶으로 변화되어야 해요.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마땅히 그렇게 살아갑니다.
기대
11. 하나님과의 관계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거짓과 위선입니다. 어느 기업가가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나는 실패자다.”자녀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아버지는 사업도 성공하셨고, 사회봉사도 많이 하셨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오셨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나는 사업을 한다고 많은 죄를 지었고, 명예를 얻느라고 거짓말을 많이 했단다. 이런 나의 위상을 지킨다고 그리스도까지 잃었단다. 이제 나는 믿음도 진실도 그리스도도 잃어버린, 완전히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
이 이야기를 우리 마음에 새기며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성공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그리스도가 임하시는 순간 거짓과 위선은 사라집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며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서고, 개척교회인 우리 교회도 부흥을 기대하며 매주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부흥을 막는 최고의 적은 거짓과 위선입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부흥이 따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모든 거짓과 위선은 사라지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멋진 생애가 시작되게 하소서.(오늘 찬양: 내 진정 사모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