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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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11월 초1일 (무자) 비가 내렸다. [양력 12월 9일]
912
아침에 얇은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 왔다. 그래서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기이한 일이다.
913
오후 두 시에 비는 개었으나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뱃사람들은 추위에 괴로워하며, 나는 선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년 같았다. 비통함을 말할 수 없다. 저녁에 된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어 사람이 제대로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914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915
11월 초2일 (기축)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12월 10일]
916
일찍 우수사의 전선이 바람에 표류되어 암초에 걸려 깨졌다고 한 말을 들었다. 참으로 통분하다.
917
병선의 군관 당언량(唐彦良)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918
선창에 내려가 앉아서 다리 놓는 일을 감독했다. 그 길로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어두워서야 배로 내려왔다.
919
11월 3일 (경인) 맑다. [양력 12월 11일]
920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선전관 이길원(李吉元)이 배설(裵楔)을 처단할 일로 들어왔다.
921
배설(裵楔)은 벌써 성주 본집으로 갔는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곧장 본가로 왔다. 그 사정을 보아주는 (이길원의) 죄가 더 크다.
922
녹도의 배에 보냈다.
923
11월 4일 (신묘) 맑다. [양력 12월 12일]
924
일찍 새 집 지어 세우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길원(李吉元)이 머물렀다.
925
진도군수 선의문(宣義問)이 왔다.
926
11월 5일 (임진) 맑다. [양력 12월 13일]
927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배로 내려왔다.
928
영암군수 이종성(李宗誠)이 밥을 서른 말이나 지어 일꾼들에게 먹이고, 또 말하되,
929
"군량미 이백 섬을 준비하고, 중간벼 칠백 섬을 마련하였다."
930
고 한다. 이 날 보성 군수와 흥양현감으로 하여금 군량창고 짓는 것을 보살피게 했다.
931
11월 6일 (계사) 맑다. [양력 12월 14일]
932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종일 어설렁거리니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다. 새 집에 이엉으로 지붕을 이었다. 군량 곳간도 지었다. 전라우우후가 나무 베어 올 일로 황원장으로 갔다.
933
11월 7일 (갑오) 맑도 따뜻하다. [양력 12월 15일]
934
해남 의병이 왜놈의 머리 하나와 환도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바쳤다. 이종호(李宗浩)와 당언국(唐彦國)을 잡아왔다. 그래서 거제의 배에 가두었다.
935
저녁나절에 전 홍산현감 윤영현(尹英賢) ∙ 생원 최집(崔潗)이 와서 보고, 또 군량에 쓸 벼 마흔 섬과 쌀 여덟 섬을 부쳐 왔다. 며칠 동안의 양식으로 도움이 될만하다.
936
본영의 박주생(朴注生)이 왜놈의 머리 두 개를 베어 왔다. 전 현령 김응인(金應仁)이 와서 봤다.
937
이대진(李大振)의 아들 순생(順生)이 윤영현(尹英賢)을 따라왔다.
938
저녁에 새 집의 마루를 다 놓았다. 수사마다 와서 봤다.
939
이 날 밤 자정에 꿈에 면(葂)이 죽는 것을 보고 구슬프게 울었다.
940
진도군수가 돌아갔다.
941
11월 8일 (을미) 맑다. [양력 12월 16일]
942
밤 두시쯤 꿈에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다. 이 날은 따뜻하 고 바람도 없다. 새방 벽에 흙을 발랐다.
943
이지화(李至和) 부자가 와서 봤다.
944
마루를 만들었다.
945
11월 9일 (병신) 맑다. [양력 12월 17일]
946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강진현감이 현으로 돌아갔다.
947
11월 10일 (정유) 눈과 비가 섞여 오다. [양력 12월 18일]
948
된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간신히 배를 구호했다.
949
이정충(李廷忠)이 와서 말하기를,
950
"장흥의 적들이 달아났다."
951
고 했다.
952
11월 11일 (무술) 맑으나 바람기는 약간 있었다. [양력 12월 19일]
953
식사를 한 뒤에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954
평산포의 새 만호가 도임장(부임명령서)을 바쳤다. 그는 하동현감(신진)의 형 신훤(申萱)이다.
955
전하는 말이 숭정으로 가자하는 것이 이미 발행되었다고 한다.
956
장흥부사와 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저녁에 우후 이정충(李廷忠)이 왔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957
11월 12일 (기해) 맑다. [양력 12월 20일]
958
이 날 저녁나절에 영암 ∙ 나주 사람에게 배메기를 못하게 했다 고 하여 묶어서 왔다. 그래서 그 중 주모자를 가려서 처형하고 나머지 네 명을 각 배에 가두었다.
959
11월 13일 (경자) 맑다. [양력 12월 21일]
960
11월 14일 (신축) 맑다. [양력 12월 22일]
961
남해현감 류형(柳珩)이 와서 윤단중(尹端中)의 무리한 일을 많이 전했다. 또 말하기를,
962
"해남의 아전이 법성포로 피란갔다가 돌아올 때 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어지는데, 바다가운데서 만나도 구조하기는 커녕 도리어 배안의 물건을 빼앗아 갔다"
963
고 했다. 그래서 중군선에 가두었다. 김인수(金仁守)를 경상도 수영의 배에 가두었다.
964
내일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이라 나들이는 하지 않아야겠다.
965
11월 15일 (임인) 맑다. [양력 12월 23일]
966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새 집으로 올라갔다.
967
저녁나절에 림환(林 )과 윤영현(尹英賢)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한(宋漢)이 서울에서 들어왔다.
968
11월 16일 (계묘) 맑다. [양력 12월 24일]
969
아침에 조방장 ∙ 장흥부사 및 진중에 있는 여러 장수가 아울러 와서 봤다.
970
군공마련기(軍功磨鍊記: 개인별 전공 조사 기록)를 하나씩 점고했더니 거제현령 안위(安衛)가 통정대부(정3품의 당상관)가 되고, 나머지도 차례차례 벼슬을 받고, 은 스무냥을 내게로 보냈다.
971
명나라 장수 경리 양호(楊鎬)는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면서, "배에 이 붉은 비단을 걸어 주고 싶으나, 멀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972
영의정의 회답편지도 왔다.
973
11월 17일 (갑진) 비가 내렸다. [양력 12월 25일]
974
경리 양호(楊鎬)의 차관이 초유문(招諭文: 적이나 적에게 붙었던 자들을 너그러운 조건으로 포용한다는 포고문)과 면사첩(免死帖: 사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증서)을 가지고 왔다.
975
11월 18일 (을사) 맑다. [양력 12월 26일]
976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윤영현(尹英賢)이 와서 봤다. 정한기(鄭漢起)도 왔다. 땀이 났다.
977
11월 19일 (병오) 흐렸다. [양력 12월 27일]
978
조방장 배흥립(裵興立)과 장흥부사가 와서 봤다.
979
11월 20일 (정미)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양력 12월 28일]
980
임준영(任俊英)이 와서,
981
"완도를 정탐하니 적들이 없습니다."
982
고 전했다.
983
11월 21일 (무신) 맑다. [양력 12월 29일]
984
송응기(宋應璣) 등이 산의 일꾼을 거느리고 해남에 소나무 있는 데로 갔다.
985
이 날 저녁에 순생(順生)이 와서 잤다.
986
11월 22일 (기유) 흐렸다가 개다가 했다. [양력 12월 30일]
987
저녁에 김애(金愛)가 아산에서 돌아왔다.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이 달 초열흘 날에 아산에 들러 편지를 가져 왔다.
988
밤에 비가 오고 눈이 내렸으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989
장흥에 있던 적들이 20일에 달아났다는 보고가 왔다.
990
11월 23일 (경술)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왔다. [양력 12월 31일]
991
이 날 승첩한 장계를 썼다. 저녁에 얼음이 얼었다고 했다.
992
아산의 집으로 편지를 쓰자니 죽은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러 거둘 수가 없었다.
993
11월 24일 (신해) 눈과 비가 내렸다. [양력 1598년 1월 1일]
994
된하늬 바람이 계속 불었다.
995
11월 25일 (임자) 눈이 내렸다. [양력 1월 2일]
996
11월 26일 (계축) 비와 눈이 내렸다. [양력 1월 3일]
997
얼어서 막힌게 갑절이나 혹독했다.
998
11월 27일 (갑인) 맑다. [양력 1월 4일]
999
장흥의 승첩계본을 수정했다.
1000
11월 28일 (을묘) 맑다. [양력 1월 5일]
1001
장계를 봉했다. 무안에 사는 진사 김덕수(金德秀)가 군량에 쓸 벼 열다섯 섬을 가져와 바치었다.
1002
11월 29일 (병진) 맑다. [양력 1월 6일]
1003
유격 마귀(麻貴)의 차관 왕재(王才)가,
1004
"물길을 따라 명나라 군사가 내려 온다"
1005
고 했다. 전희광(田希光) ∙ 정황수(鄭凰壽)가 왔다. 무안현감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