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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행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소구는 체념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침상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구의 옷은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침상에 소구가 도착했을 때에는 완전히 나체로 변한 상태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맘 변하기 전에 빨리 와!"
침상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소구의 입에서 터진 말이었다. 취하와 취앵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이 현재 그녀들이 최고로 기뻐할 때의 얼굴이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남들과 똑 같이 기쁠 때는 맘껏 웃고, 슬플 때는 맘 것 울고,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취하와 취앵의 몸도 나체로 변해서 침상 위에 앉았다.
둥글게 앉아 있는 세 사람의 손바닥이 서로 서로 맞닿은 상태에서 소구가 물었다.
"반드시 아까 낮에 말한 그 괴상망측한 내공 운기법으로 이 일을 해야 하니?"
"그럼 다른 수 있어요? 저희들의 몸 속에 있는 빙하의 기운을 흡수할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 너희들이 말한 방법은 서로의 마음속에 욕정이라는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너희들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욕정이라는 감정은 없다. 내가 주로 해서 익힌 내공은 혼천문의 혼천일원공이라는 내공심법이다. 지금 나의 경지는 오성 정도이고 이 경지에 이르면 마음이 항상 잔잔한 수면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라리슈카와 정사라는 일을 해 보았지만 쾌락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너희들 또한 빙하신공을 극으로 익힌 상태인지라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몸은 남들과 똑 같은 상태로 돌아갈지 몰라도 진정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취하가 물었다.
"일단 난 너희들의 내공을 내 몸 안으로 빨아들일 생각이다. 혼천일원공의 힘은 무한하다. 나도 아직 그 깊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음과 양으로 구분된 기운을 태극의 상태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 너희들은 저항하지 말고 가만있어야 된다. 너희들의 몸에서 내공이 빠져 나오고 들어오는 과정이 서른 여섯 번 반복되면서 너희들의 내공은 태극의 기운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도 사라지고 남들과 똑같이 생활 할 수 있게 될게다."
"자신 할 수 있어요?"
취앵이 물어보았다.
"한번 해 보자. 너희들의 마음 또한 빙설처럼 차갑고 고요하다. 우리 중에 부동심이 흔들리는 일이 없다면 너희들이 말한 방법보다는 이 방법이 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나을 수 있다."
소구의 말은 그렇게 끝이 나고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욕정이 없는 상태에서 욕정을 기반으로 한 대법은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소구가 말한 방법이 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그녀들은 느끼고 있었다.
"준비되었습니다."
"저도 준비되었어요."
두 마디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취하와 취앵은 무상무념의 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녀들의 무공 또한 낮지 않아 소구가 말한 방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그녀들의 몸 또한 소구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들은 이렇게 손이 닿아 있는 상태에서 삼매의 상태로 들어가야 했다.
소구의 얼굴 위로 신중한 빛이 떠올랐다. 이것은 북해의 수천년 묵은 한기(寒氣)와 싸우는 일이었다. 수백명의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고 실패한다면 자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나와 남의 구분이 없으니 너도 없고 나도 없다. 여기 있는 것은 하나의 우리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몸은 너의 몸이고 너의 몸은 나의 몸이니 우리는 몸도 하나이다. 음으로 양을 삼고 양으로 음을 삼는 것은 둘이 태초의 기운에서 파생되는 한 갈래일 뿐이니 본래 하나이기 때문이고-----."
소구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구결은 혼천일원공의 입문구결이었다. 취하와 취앵은 소구가 말하는 구결을 속으로 따라 외우고 점점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구의 몸에서는 금빛 찬란한 광채가 피어오르고, 취하와 취앵의 몸에서는 찬연한 백광이 피어올랐다.
백초당의 서쪽에 자리 잡은 소구의 거처에서 뿜어져 나온 두 가지 색깔의 광채로 인해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저들의 부동심을 깨트리는 어떤 행위도 용서하지 않겠다! 정숙하라!'
백초당 전체를 울리는 방수련의 매서운 목소리가 담긴 전음이 울려 퍼졌으니까.
천궁 옥형진 역시 서둘러 백초당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떠한 소란도 있어서는 안돼는 시간이라는 것을, 오랜 강호의 경륜으로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에 따로 명령 없이 일을 진행시킬 수가 있었다.
수십 채의 전각들이 늘어서 있는 백초당 전체를 밝힐 정도의 금광과 백광은 새벽이 될 때까지 계속 비쳐지고 있었다.
"언니, 소구가 드디어 취하하고 취앵이를 돌볼 마음이 생겼나 봐요."
소구의 거처 옆에 서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금광과 백광을 바라보던 방화련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련아, 소구도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취하하고 취앵이를 얼음에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이제 그 방법을 찾아서 일을 진행시키는 모양이다."
"정상으로 돌아올까요?"
"돌아오겠지. 확실하게 성공할 것 같지 않으면 시도도 안 할 소구이니---."
금광과 백광은 서로 싸움이라도 하는 듯 섞였다 흩어졌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해가 떠오를 때쯤에 한순간에 백광이 사라지고 금광만이 남았다가 그마저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소구는 조심스럽게 자신과 붙어 있던 취하와 취앵의 손을 때내고 둘의 손바닥을 닿게 만들었다.
"에구---, 힘들어."
완전히 지쳐버려서 뒤로 벌렁 눕는 소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돌고 있던 금광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취하와 취앵의 몸은 은은히 금광이 감돌고 있었다.
두 손바닥이 맞닿아 있는 상태에서 그녀들의 내공은 끊임없이 서로의 손바닥을 통해 교환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하루만 지나면---, 어쩌면 탈태환골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혼천일원공을 듣자마자 삼성 이상의 경지를 이룩하다니---?"
누워서 취하의 취앵의 모습을 바라보던 소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같이 하니까 내공이 두 배로 높아지는 일도 생기네? 이 상태라면 어쩌면 혼천독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공이 부족해서 공간을 건너뛰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혈룡 악종진과의 결투로 입었던 부상과 내상은 씻은 듯이 사라진 소구였다. 단지 가슴에 벼락무늬의 상처자국만이 결투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깨어날 때까지 난 잠이나 자야겠다. 지금은 너무 피곤해---."
말을 하다말고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는 소구였다.
소구가 잠든 사이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계속 내공을 운기하고 있던 취하와 취앵의 몸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정오가 될 무렵이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하얀빛을 띠고 있던 피부였다. 은은히 광채를 발하면서 그녀들의 피부는 살색을 찾아가고 있었고 머리카락도 점점 은발에서 흑발로 돌아오고 있었다.
취하와 취앵의 의식이 돌아온 것은 다시 한 밤중이 되어서였다. 눈을 뜨고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된 두 여자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취하가 손을 뻗어 취앵의 얼굴을 쓰다듬을 때, 취앵 역시 손을 뻗어 취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둘은 한순간 서로를 껴안고 소리 없이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제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오열하고 있던 두 여자는 침상의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자고 있는 소구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거니?"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취하가 취앵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넌 어떻게 할거야? 백초당을 떠날거니?"
이제 사람으로 돌아왔으니 굳이 백초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그녀들이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난다면 우리가 마음 편히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면서 애증이 교차하는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는 취앵이었다. 지금 침상 한 귀퉁이에 벌거벗고 잇는 자고 있는 소구를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아온 취앵이었다.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그녀였지만 늘 소구와 함께 지내던 그녀였다. 미운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성격이 좀 더러울 뿐인 남자였다.
"부인도 아니고 첩이라잖아? 아직 우리는 순결도 잃지 않았어. 다른 남자 만나서 마님 소리 들으며 살수도 있을 텐데---?"
"후---."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은 취앵은 다시 소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이 세상에 소구 도련님 같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소구 도련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믿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난 말이야. 평생 옆에 붙어서 괴롭히며 살 거야. 아무리 철모르는 어릴 때의 일이지만 날 두들겨 패던 그 때의 일을 잊지 않았다고. 하여튼 소구 도련님 옆에 있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편안게 살면서 복수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저기 복우산에서 너 그 때의 복수를 끝낸 거 아니었어?"
"그걸로는 부족해. 어찌 되었건 어릴 때부터 난 소구의 첩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게 되었어. 아무리 태생이 천하다고 해도 알몸까지 보인 마당에 다른 남자에게 안길 수는 없는 일 아니야? 난 결코 천한 여자가 아니라고."
"그---그래?"
떠날까말까 망설이고 있던 취하는 취앵의 말을 들으면서 잠들어 있는 소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했다.
"나도 남지 뭐. 백초당은 천하에서 가장 돈 많은 집이잖아? 먹을 것도 많고 입어 볼 옷도 많아. 게다가 이제 우리도 하녀가 아니라 첩이라는 신분을 얻었으니 하녀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살게 되겠지?"
"바로 그거야. 사람도 괜찮고 게다가 안락한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제부터 우리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두 여자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나고 잠든 소구를 사이에 두고 그녀들 역시 잠에 빠져들었다.
내공을 운기하는 일은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잠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들 역시 은은히 피곤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기에 바로 꿈속에 빠져들었다.
잠꾸러기 소구였지만 잠든 지 하루만에 깨어나게 될 줄은 아무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방수련의 사람의 속을 뒤집어지게 하는 금음(琴音) 소리도 없이 하루만에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이적으로 빠른 기록이었다.
"아 함 , 잘 잤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침상 위에서 일어선 소구는 창 밖을 쳐다보았다. 날이 밝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얘들, 자네?"
자신의 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취하와 취앵의 모습을 보고 소구는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새벽인지 먼동이 떠오르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지도 무척이나 오래 되었구나---."
중얼거리면서 소구는 벌거벗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창문 쪽으로 다가가다 황급히 다시 침상 쪽으로 몸을 피했다.
밖에서 소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구야, 끝났으면 옷 입고 밖으로 나와서 말 좀 하자."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운 소구의 두 누나, 방화련과 방수련 자매였다. 그녀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소구의 침실 근처를 지키느라 이틀 밤을 꼬박 샌 상태였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구를 향해 방수련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당연히 맞을 소구가 아니었다.
"어? 피해?"
"왜 그래, 누나?"
실실 쪼개면서 겁먹은 목소리로 소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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