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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백초당의 지하에 마련된 연공실은 공으로 있는 거냐? 삼매경에 빠질 정도로 깊이 내공을 운기 하는 일이라면 거기 가서 해야 될 거 아냐?! 갑자기 이곳에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이틀이나 잠을 못 잤잖아?!"
"왜?"
"주위에서 작은 소란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려고--. 소구야, 다음 번부터는 조심해라. 호시탐탐 백초당을 노리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니?"
이번에 말한 것은 방화련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소구가 대답했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하지만 이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생기지도 않을 걸 뭐---."
"그나저나 취앵이하고 취하는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니?"
방수련이 물어보고 방화련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어."
"그럼 내공이 사라져서 평범하게 된 것이냐?"
백초당의 아주 큰 전력이 된 취하와 취앵의 무공이 사라진 것인지 그녀들은 반드시 알 필요가 있었다. 방화련이 급하게 물었다.
"아니, 내공이 사라진 게 아니라 두 배로 높아졌어. 그녀들에게 혼천문의 내공을 알려 주었는데 하루만에 삼성까지 성취를 이루더라고--."
세 사람이 말을 하는 사이 잠을 깼는지 옷을 입고 부스스한 얼굴로 취하와 취앵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잠 기운이 남아 있는지 하품을 하며 밖으로 걸어나온 취하와 취앵은 소구가 서 있는 장소로 다가갔다. 방화련과 방수련은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을 걸었다.
"축하한다. 드디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축하해. 이제 너희들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구나."
방화련의 말을 들으면서 소구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무슨 소리야? 음식을 못 먹다니?"
소구의 말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거기 서 있는 네 여자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소구야, 너 모르고 있었니?"
한심하다는 얼굴로 방수련이 물었다.
"전혀 몰랐어. 어쩐지---, 순식간에 삼성이나 성취를 이룬다 했더니--. 대기 중의 기운만으로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니 그렇지."
취하와 취앵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도 그렇지만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있으니까 있구나 하는 그런 태도가 변하지 않은 소구라는 것을 그녀들은 다시 한번 느낄 수가 있었다.
"도련님, 바로 떠나실 거예요?"
취하가 물었다.
"그래. 빙궁으로 가는 지도 만들어 줘."
취하와 소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수련화 화련 자매는 의아한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가보았자 얼음과 눈 밖에 없는 빙궁에 왜 가려는 거니?"
방수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누나 그곳에 정각 대사가 있어."
"뭐?!
화련과 수련 자매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구를 바라보았다. 그녀들 역시 사라진 정각 대사가 어디에 있는지 항상 궁금한 터였다. 갑작스런 소구의 말은 그녀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폭주하는 청방과 백초당의 업무로 정신없이 일에 파묻혀 있는 신기서생 정옥은, 갑자기 집무실로 들이닥친 처형 방화련과 처남 방소구 그리고 아내 방수련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셋이 한꺼번에 이렇게 찾아오는 일은 한번도 없는 일이었다.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정옥은 고개를 들고 셋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지금 엄청 바쁘니 빨리 말을 해."
아내인 방수련을 바라보며 정옥이 말했다.
"여보, 당신이 기뻐할 일이 생겼어요."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집무실로 찾아와서---?"
"정각 대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거든요."
"정말?!"
벌떡 일어서면서 신기서생은 얼굴에 화색을 띠며 물었다. 청방과 백초당이라는 두 개의 거대 집단을 혼자서 관리하는 일은 너무 버거웠다. 정각 대사가 백초당에 오게 되면 잠들어 있던 방종구가 깨어날 것이고 그럼 일이 줄어들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신기서생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다 문 앞에 얼쩡거리는 두 사람의 치마자락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거기 문 앞에 서 있는 둘은 누구야?!"
집무실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 있던 취하와 취앵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저희들인데요."
정옥이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도대체 누구냐니까?"
"전 취하고 얜 취앵이, 소구 도련님의 첩이죠."
정옥은 그녀들의 말을 들으면서 차갑기가 얼음보다 수십배 차가웠던 소구의 두 여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혼례를 올리지 않았으니 첩이 아니다."
그녀들이 백초당의 하녀였다는 것을 기억해 낸 그는 재빨리 말했다. 그녀들을 백초당에 확실하게 붙잡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소구가 떠난 뒤에 그녀들이 떠난다면 백초당의 힘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정옥이었다. 그렇게 말한 뒤 정옥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듣기로 너희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처남의 하녀로 있었고, 처남이 크면 처남의 첩이 되기로 되 있다고 들었다. 그 동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혼례를 올리지 못했지만 이제 너희들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고, 처남도 마침 이곳에 있으니 간소하게나마 혼례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혼례복을 입는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그녀들이었지만 이제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북해로 떠나려던 소구는 그래서 백초당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다.
손님은 없었지만 소구의 방은 신방으로 꾸며지고 세 명의 여자 취하와 취앵이 그리고 라리슈카라가 혼례복을 입게 되었다. 당연히 소구도 팔자에 없는 신랑의 복장을 하게 되었다.
"그것 참, 하나도 버거울 텐데---. 마누라가 셋?"
맞절을 하고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며 천궁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대협, 다 인연이 있으니 그리 된 것이죠. 소구가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라서 마누라가 셋이 된 건 아닙니다."
옆에 서서 혼례식을 보고 있던 방화련이 말했다.
"도둑 혼례를 올리고 있다고 나중에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혼례를 올리다니--."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을 쓰면 소구가 아니죠."
"하긴--, 그도 그렇군."
주위에서 뭐라고 떠들던지 신랑의 복장을 하고 혼인식이란 것을 하고 있는 소구는 창피해서 죽을 맛이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벌이는 혼례식이었지만 백초당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혼례식이 벌어지는 후원으로 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개봉에 살고 있는 상인들과 오대 세가의 가주들 또한 어떻게 알았는지 백초당으로 찾아와 혼례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얼라리? 신랑은 하나인데 신부가 셋일세. 코피 터지겠구먼."
"게다가 하나는 다른 나라 여자일세, 그려."
"연락도 안하고 몰래 혼인을 하다니---, 게다가 한꺼번에 여자가 셋? 도둑놈일세."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주위에서 끊임없이 놀려대는 목소리가 소구의 귀를 파고들었다.
어떻게 의식이 끝나자마자 몰려든 사람들이 소리쳤다.
"혼인이 있으면 피로연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피로연을 여시오!"
"피로연을 열어야 하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주동이 되어 사람들이 피로연을 열라고 고함을 치고, 방소구는 매형 정옥을 바라보았다.
"오대세가의 가주들만 남으시고, 다른 분들은 취선루로 가십시오! 그곳에 주안상을 마련해 놓았으니 그곳에 가서 오늘의 혼례를 축복해 주십시오!"
개봉 한 가운데 위치한 백초당에서 운영하는 주점인 취선루를 모르면 개봉 사람이 아니었다. 몰려든 사람들 대부분이 모두 우르르 취선루로 가버리고 후원에는 이제 오대세가의 다섯 노인만이 남게 되었다. 소구의 아내가 돼버린 세 여자는 소구의 침실로 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숨어버렸고, 소구 역시 침실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백초당의 후원에 있는 정자에 주안상이 차려지고 그곳에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정옥 그리고 방소구가 둘러앉게 되었다.
"어찌 되었던지, 이제 자네도 아내를 가지게 되었구먼. 자 축하주 한잔 받게."
그렇게 시작된 피로연은 한 밤중이 될 때까지 계속되고, 은근히 오대세가의 가주에게 미운 털이 박혀 있는 소구의 술잔에는 술이 마를 때가 없었다.
결국 자정이 될 때까지 계속 술을 마시게 된 소구는 고주망태가 곯아떨어지고, 다른 사람들 역시 은은히 취기가 감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일 북해로 떠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예, 그곳에 정각 대사께서 머무르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술에 취해 곯아 떨어져 있는 소구를 바라보던 정옥이 고개를 돌려 남궁 세가의 가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후--, 잘 되었군. 자네 옆에 잠들어 있는 저 사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천하제일인---, 그렇게 불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지요."
"그래,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천하제일인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로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무림인에게 불가능한 일이지."
남궁 진호 대신에 이번엔 당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오늘 혼례를 올린 세 여자는 모두 첩이라고 하던데?"
"네. 부인으로 맞이하기에는 모두 문제가 있는 여자들이지요. 취하와 취앵은 태생이 천하고 본래 처남의 하녀였던 여자들이고---, 라리슈카는 소주에서 기녀 생활을 하던 여자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녀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을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백초당의 대를 이을 자식이 생기지 않을 텐데--?"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처남이 아이를 낳아줄 부인을 찾겠지요."
"네 듣기로--, 백초당의 장남인 방종구 역시 깨어난다 해도 화상으로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라 들었으니 대를 이으려면 방소구 밖에 없는데--, 자식도 낳을 수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다니?"
팽가의 가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소구가 잠들면서 그들 여섯 사람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자네는 자네의 자식이 백초당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백초당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네를 진정한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고."
신기서생은 방금 말한 남궁진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저도 이제 백초당의 일부입니다. 이 천하에서 가장 커다란 기업을 총 지휘하고 있지요. 제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도 백초당의 일부가 될 겁니다."
"백초당의 힘으로----, 솔직히 우리들의 집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우리도 백초당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는 백초당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네. 모름지기 어떤 조직이든 구심점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네나 자네의 자식은 구심점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구심점이 사라지면 백초당도 사라지고---."
"도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시고 싶은 겁니까?"
"우리의 다음 세대에도 지금처럼 잘 살려면 방소구의 자식은 반드시 있어야 하네. 그리고 그 자식은 구심점이 될만한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지."
거기서 여섯 사람의 입은 모두 침묵했다. 지금 백초당에 소속되어 있는 상인들과 무림인들이 하나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는 이유는, 미우나 고우나 지금 그들의 옆에 잠들어 있는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한사람 때문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커다란 부와 세력이 유지되려면 그만한 능력을 가진 자가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손녀 중에 한 아이가 있는데---, 아주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이지. 게다가 무공도 아주 뛰어난 아이일세. 무슨 신맥을 타고났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방소구와 그 아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다음 대에도 천하제일인이라 불릴만한 아이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당가의 가주가 마침내 준비한 말을 꺼내고 정옥은 대답 대신에 소구를 바라보았다.
"그 문제는 차후에 의논하기로 하지요. 지금은 처남을 신방으로 대리고 가야겠습니다. 제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고---, 방종구 방 대형이 깨어나면 그때 의논들 해 보시지요."
"그래, 일단 말을 해 놓았으니--, 우린 이제 그만 가보겠네."
오대세가의 가주가 떠나고 정옥은 술 취한 처남을 어깨에 들쳐 매고 신방으로 향했다.
"체, 음흉한 늙은이들---. 그러니까 자신의 손녀딸과 처남을 혼인시키고 백초당을 날로 삼키려는 수작이라는 것을 모를 줄 아나? 당가의 방정맞은 딸이 처남의 아내가 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정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남의 첩이 된 세 여자와 그녀는 끊임없이 싸울 테고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게 될게 분명했다.
"신랑, 배달이오!"
소구의 침실 앞에 소구를 앉혀 놓고 그렇게 소리친 정옥은 바로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무림 쪽의 일은 아내와 의논을 하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 무공이 높다는 것만 알려져 있지 아내가 지혜롭다는 것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내와 의논을 하다보면 항상 좋은 해결책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고 있는 정옥이었다.
바쁘게 아내 방수련이 있는 자신의 침실로 걸음을 옮기던 정옥은 걸음을 멈추고,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척한 안색의 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서 있는 그녀는 너무 외롭고 슬퍼 보였다.
"양 여협이구려."
"예, 방주님."
적혈마향 양려군은 방종구가 지하에 잠든 이후 계속 자신의 방에 칩거한 채 밖에 나오지 않던 상태였다.
"내일 소구가 북해로 간다고 하던데---?"
"아, 그 일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예, 식사를 가지고 온 하녀가 말해 주었습니다. 정각 대사께서 북해 빙궁에 머무르고 계신다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너무 방에만 계시지 말고 밖에 나와서 바람도 좀 쐬고 운동도 좀 하세요. 방 대형도 양 여협이 이러고 있는 것을 알면 마음이 편지 못할 것닙다."
양려군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건강해진 방종구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편히 주무세요. 전 이만---."
모처럼 웃는 얼굴이 되어서 인사를 건네고 양려군은 자신의 거처로 걸음을 옮기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정옥의 얼굴 위에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그의 마음에도 번지고 있었으니까.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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