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팀 멤버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모여 구조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 - 우."
바비가 입에서 시원스럽게 연기를 뿜어낸다. 콜록 콜록 리나가 반색을 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게 뭐예요?"
리나가 손으로 입을 막고 연기를 쫓으며 묻는다.
"잎담배."
바비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스캇이 끼어 든다.
"그걸 도대체 언제 말렸어요?"
바비의 입이 찢어 질듯 벌려지며
"내가 누구야. 그 유명한 스모크 바비 아니겠어. 담배를 피는데 뭔 짓을 뭣해. 날씨가 하도 변덕스러워 밖에단 못 말리겠고... 엔진 실에서 실례 좀 했지."
배를 감싸안고 통쾌하게 웃어 제친다.
"뭐라고요? 엔진 실이라고 말입니까?"
놀란 스캇이 말했다.
"파이오니어호의 그 커다란 엔진을 뒀다 뭐에 쓰려고? 난 그걸 실용적으로 이용했을 뿐이야. 20분만에 모두 말라 버리던데."
스캇이 말문이 막혀버린 표정으로 쳐다본다. 마이클이 그를 대신 한다.
"바비, 엔진은 파이오니어호의 심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게다가 엔진자체가 보통의 원자력발전소 하나에 해당하는 원자로 분리 및 합체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고속 중성자로 엔진이기 때문에 잘못되는 날에는 파이오니어를 비롯한 이 지역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거나 최소 고장이라도 나면 우리는 이 밀림 속에서 미아가 되 버릴 판국인데 그런 중요한 곳에서 담배 잎이나 말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바비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웃고 있다.
"미안, 미안 앞으론 안 그럴 게."
라고 말하며 입에서 하얀 도너츠를 뿜는다. 리나는 켁켁 거리며 바비에게서 멀어진다.
"그나저나 왜 구조대 쪽에서는 연락이 없지? 로베르토를 만난 것 같긴 한데..."
마이클이 큰소리로 말한다.
"바비!! 말 돌리지 말아요. 다시는 그런 일로 엔진룸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바비가 마이클의 투실투실한 턱을 턱턱 치며 이야기한다.
"알았다니까. 당신도 화내니까 귀여운걸..."
"바비!!"
리나가 반 격멸 어린 눈초리로 말한다.
"바비, 왜 그런걸 피우는 거죠? 제가 알기론 건강에도 무척 해롭다고 들었는데. 냄새도 나쁘고..."
"아... 그건 인생의 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지."
바비가 손을 내저으며 여유 있게 답한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지 라밍도 끼어 든다.
"뭐가 인생의 참 맛이에요. 담배 한 개피 안에 얼마나 많은 유해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기나 해요. 한번 담배를 빨아 드릴 때 얼마나 많은 뇌 세포가 죽는지 알기나 하냐고요. 그리고 간접 흡연은 더욱 나쁘지요 바비 당신 한사람이 담배를 핌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요. 또 미래에 가질 당신의 아이를 생각해 봐요 담배는 정말이지 불량한 사람들이나 피는 거예요."
라밍의 말엔 바비도 움찔 했는지 바로 반박한다.
"이봐, 말이 너무 심하잖아. 우선 난 아이는커녕 결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또 불량한 사람들이나 피는 거라니! 세계에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중에 흡연자가 얼마나 많았는데. 우선 우리 나라의 수상이셨던 처칠, 그분을 떠올릴 때 여송연이 입에 없으면 섭하지 에... 그리고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도 여송연, 또... 아! 셜록홈즈도 여송연, 담배를 피웠단 말이야."
라밍, 마이클, 스캇이 차가운 눈초리로 바비를 쳐다본다.
"셜록홈즈는 추리소설 주인공이잖아요. 그리고 여송연이 아니라 파이프를 피웠다고요."
스캇의 냉기 가득 찬 음성이다.
"하하하 암튼 유명하잖아. 알았어 안 피운다 안 펴!!"
바비가 들고 있던 담배를 컵 속에 비벼 끄는가 싶더니 자신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다.
"모두들 이제 조용히 좀 하지."
스와르가 짜증석인 음성으로 말했다.
"왔습니다!"
통신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있던 커크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여기는 AV, 여기는 AV, 파이오니어호 들리는가."
보드의 목소리다.
"여기는 파이오니어 잘 들린다. 그쪽은 이상 없는가?"
"AV, 이상 없다. 오버."
팀원 모두 반가운 얼굴이다. 사실 파이오니어호에서도 Bio 팔찌의 위치 확인으로 론과 진이 AV에서 떨어져 나와 로베르토를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자세한 내용은 전혀 무지한 상태였다.
"AV, 그곳 상황을 설명해달라."
"현재시각 11:30. 캡틴과 진 대령은 정체불명의 도시를 방문, 로베르토를 만났다. 오버."
"그들은 모두 무사한가?"
"현재 까진 무사하다. 멀리서 우리가 관찰한 바로는 그 생물체들에게선 적의(敵意)는 발견하지 못했다. 오버."
커크가 놀람과 떨림의 목소리로 묻는다.
"도시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 뭐라고 성명 하긴 어렵지만 마치 작은 공룡처럼 생긴 괴물들이다. 그리고 그쪽에서 보았다는 개구리 같은 것들도 보이고 있다."
팀원들에게 경악의 빛이 스쳐간다. 공룡? 괴물들? 게다가 또 다른 개구리들... 바비가 방금 전 꽁초를 다시 꺼내 입에 물었다. 파이오니어호의 침묵이 계속되자 보드가 먼저 말한다.
"파이오니어 듣고 있는가?"
커크가 서둘러 답한다.
"파이오니어 듣고 있다."
"로베르토는 포로로 잡혀 있지 안았던 걸로 판명 났다. 그 괴물들은 로베르토를 신처럼 떠받드는 듯 하다."
"신?"
스와르가 다소 높은 톤으로 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캡틴과 진 대령 그리고 로베르토를 관찰하고 있겠다. 무슨 일이 있으면 또 연락하겠다. 오버."
무선이 끝나고 회의실엔 적막감이 감돈다. 바비가 라밍과 리나에게 호들갑을 떤다. 커크와 마이클은 심각하게 괴물 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스와르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한다.
"신이라...."
Inside 1.
실내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오묘한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회색벽돌로 싸아 올린 벽 위에는 하얀 회덕을 발라 전체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주며 원목이 그대로 들어 나게 만들어진 이음새, 벽 위 부분과 천장에는 갈색의 알 수 없는 상형문자와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탁 트인 한쪽벽면은 밖으로 연결되어 발코니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벽 양옆에 커튼처럼 달아놓은 하얀 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실내 구석에는 로베르토가 마을에 들어온 후에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목재 탁자와 의자 같은 가구들이 보였고 들어오는 문에서 정면에 위치한 돌로 만든 문에는 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타인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신경을 쓰지 안으려 해도 자물쇠의 크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에는 카펫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알록달록한 무늬와 괴물들의 사냥하는 모습이 담긴 수가 놓아져 있는 정방형의 널찍한 장판이 깔려 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괴물들 여러 마리서 전에 본적이 있는 커다란 악어를 사냥하는 그림 이였다. 팔에 감추어진 기다란 뼈를 칼처럼 빼어들고 악어의 턱에 찔러 넣은 괴물, 악어의 등에 올라타 등가죽을 난자하는 괴물, 악어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울부짖는 괴물 등 어떻게 수를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역동적인 인상을 강하게 심어 주고 있었다.
"훌륭하지 않습니까?"
바닥의 그림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던 론에게 로베르토가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저 레피탄(Repitan)들의 작품입니다."
"레피탄?"
진이 반문한다. 르베르토는 연신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예. 레피탄입니다. 저들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지요. 아마도 파충류를 뜻하는 렙타일(Reptile)에서 파생된 말인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론이 생각을 가다듬듯 팔을 꾀고 말한다.
"먼저.. 로베르토 당신이 착륙했던 순간부터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말이지요."
로베르토는 흙으로 빗어 만든 작은 항아리에서 자주 빛 음료를 3잔의 컵에 따르며 말한다.
"천천히 모두 말씀드리죠."
그가 컵을 론과 진에게 건넨다. 향긋한 와인냄새가 밀려왔다.
"드세요. 열대 열매로 빗은 술입니다."
그는 술을 권하고는 발코니 앞에 선다. 잔잔한 바람이 그를 피해 방안으로 스며들어 온다. 술을 한 모금 들이킨 그는 그날의 이카루스를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술을 음미하는지 이야기를 준비하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마침내 입을 땐다.
"그때가... 그러니까 제가 막 검은 산맥을 타고 내려오던 때였을 겁니다..."
불시착(Crash)
삐삐-- 경고음이 정신없이 울려 데고 기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사방을 구분할 수 없었다. 로베르토는 필사적으로 조종관을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데미지를 받은 이카루스는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하강한다. 로베르토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재빨리 비상탈출 레버를 당긴다. 앗! 레버에서의 반응이 없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이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너울 친다.
"안돼!"
다시 조종관을 잡는다. 앞에 개울의 모습이 들어온다. 개울주위에 있는 돌들에 부딪히면 모든 게 끝이라는 직감에 조종관을 왼쪽을 비튼다.
"제발..."
이카루스는 간신히 왼쪽으로 비껴나가 울창한 나무사이로 파고든다. 쿵 -- !! 투두둑 투둑.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카루스가 땅에 처박혔다. 나무들이 충격을 무마시켜 기체는 폭발 없이 착륙했다.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카루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로베르토는 기체의 헤치를 열고 미끄러져 나왔다. 다행 이도 몸은 부러진 곳 없이 멀쩡한 것 같다.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이카루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정신없이 달린다. 그가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이카루스는 화염에 휩싸였다. 로베르토는 헐떡거리며 돌아누워 불길을 바라다본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의 모습이 마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포요 하는 죽음의 신의 모습 같다. 신을 향해 힘겹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아직은 아니라고 아직은."
로베르토의 정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맥이 빠져버린 그의 입에선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시야가 흐려진다. 눈이 감겼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God from The Above)
수성 파스텔이 퍼부어진 세상 같다. 피카소처럼 뒤죽박죽 하면서도 달리처럼 녹아 내리고 모내처럼 고요하다가도 반고처럼 강렬하다. 그 뿌옇고 알 수 없는 세상 속에 녹색물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물체의 형상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니는 4개의 잔상들 때문에 눈이 어지럽다. 멀미가 난다. 눈을 감는다. 울렁거림을 가라 안치고 눈에 힘을 주어 다시 뜬다. 파스텔이 수묵화로 바뀌었다. 물체의 잔상이 2개로 줄어 든 것 같다. 눈을 깜빡 거려 본다. 수묵화가 수채화로 다시 정밀화 그리고 극 사실 회화로 바뀌었다. 잔상이 모두 사라진 그 또렷한 세상 속에 노란색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과 마주친다.
"으아∼!!"
로베르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 옆으로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며 중심을 잡아 보지만 힘겹기만 하다. 칼 눈을 피해 뒷거름 질 치다 보니 등에 딱딱한 것이 와 다 았다. 벽 이였다. 바들바들 떨며 의미 없는 뒷거름 질을 계속한다.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몸부림치고 있을 때 그와 칼 눈 사이로 또 다른 칼 눈이 끼어 든다. 동작을 멈추고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니 모두 6개의 칼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과거 지구 사막의 건달이라 불리우던 노모드왕 도마뱀과 같은 표독스런 칼 눈에 주인들은 보던 것을 중단하고 서로 처다 보며 고개를 돌려된다. 좀더 침착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3마리의 거대한 녹색물체인 그것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 알지 못할 소리를 만들어 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마치 처음 보는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는 모습 같다. 더욱 겁에 질린다. 드디어 그 중에 한 마리가 그의 앞으로 걸어나온다. 목을 하늘로 향하고 팔을 좌우로 벌린다.
"드르르르."
섬짖한 소리를 내더니 쉭 - 익. 팔에서 칼이 뻗어 나왔다. 이제 끝이구나 하고 눈을 감는다. 잠잠한 고요 감이 감돈다. 꽉 물었던 아랫입술에서 비릿한 피 내음이 흘렀다. 죽음의 시간이 더뎌지자 공포와 호기심에 실눈을 지어본다. 실이 공처럼 동그래진다. 그의 앞에 세 마리의 괴물들이 고개를 땅에 다은 체로 무릎을 꿇고 있지 안는가!
세 마리 괴물들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간 돌로 만들어진 높다란 단상 위에서 로베르토는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자리엔 300여 마리의 괴물들이 저마다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눈을 두고있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던 그때 단상위로 하얀 망토를 뒤집어쓴 괴물무리가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그들이 처음 로베르토를 대하던 괴물에게 하얀 망토와 작은 나무상자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망토로 갈아입은 그 괴물이 상자를 들고 로베르토에게로 걸어온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고 무척 성스러운 물건인 듯한 그 상자를 로베르토를 향해 두 손으로 받들었다. 로베르토는 영문도 모른 체 상자를 받아들고 뚜껑을 연다. 그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진다.
'이것이 어떻게 이들의 손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이들은 이것을 이토록 소중하게 다룬단 말인가?'
솟아나는 의혹 속에 그는 상자 속의 그것을 손으로 들어올린다. 그리고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것을 자신의 양쪽 귀에 끼운다. 그의 양쪽 귀와 콧등에 기대어 낀 그것은 마술처럼 그의 얼굴에 들어맞았다. 그 상태로 그는 자신을 향해 절하고 있는 괴물의 군중들을 바라본다.
"드르르르르 아 ∼ !!!"
괴물들이 일제히 울어 제친다.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비록 왼쪽 눈이 흐려서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기쁨과 환호의 울부짖음 이였다. 이때
"파더!!"
'FATHER? 아버지?'
소리는 상자를 건 낸 괴물에게서 들려왔다.
"파더!! 파더!! 파더!!"
'발음은 이상하지만 분명 아버지라 말하고 있다. 이 괴물들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로베르토가 놀람에 대한 추측을 그리려보고 있을 때 외침은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파더!! 파더!! 파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내게 아버지라니?'
"파더!! 파더!! 파더!!"
외침소리가 더욱 거세 진다.
'이건 무슨 사이비 종교 단체 같군.'
그에게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번개 친다.
'그렇다. 이들은 나를 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신.'
그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인다.
'내가 이들의 신인 거야. 이들은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고... 만약 이들의 나를 진짜 신이라 생각한다면.... 난...'
당황 스럽지만 매혹적이고도 유혹적인 생각들이 그의 뇌리 속에 파고든다. 마약처럼 거절하기 힘든 그것이 점점 그의 마음을 어지러 핀다. 괴물들의 고함소리가 더 이상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현실과 미래의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차가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파더!! 파더!! 파더!!"
외침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 씌워진 검은색 뿔테 안경을 조심스레 매만지기 시작했다.
안경의 주인
다시 한 모금의 바람이 로베르토의 머리를 흐틀고 지나간다. 남은 술잔을 비운 뒤 그가 론과 진의 곁으로 걸어왔다.
"대충 그렇게 된 겁니다. 그 후로는 짐작하시겠지만 왕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니 신처럼 요. 그들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지요. 모든 걸."
론이 꾀고 있던 팔짱을 풀며 묻는다.
"그 안경을 보여 줄 수 있겠소?"
로베르토는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이 탁자 위의 나무상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상자는 무거워 보이는 짓은 갈색 오크무늬를 띄고 있었다. 론이 그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자를 열어본다. 안에는 하얀 목화 솜들 사이로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 검은 안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론이 그것을 살며시 들어올린다. 안경은 오랜 세월의 흐름 속을 부디 껴 왔는지 여기저기 부러진 부분을 수리한 흔적이 보였고 오른쪽 렌즈 알은 그 흐름 속 어딘가에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그나마 남은 왼쪽 역시 금이 가서 흐릿한 세상의 모습을 전해왔다. 안경을 유심히 살피던 론이 말한다.
"이 안경의 주인이 누구였을 까요?"
"그냥.. 괴물들이 주슨 것일 수도 있잖아요. 미개한 그들에겐 신기한 물건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진이 말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그냥 주슨 물건을 이렇게 보관하는 예는 사람에게도 드물죠. 아마도 이 안경은 괴물들에게 파더라 불리던 사람의 것 일거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안고서야 이걸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했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안습니까. 또 그 파더라는 자의 모습과 비슷한 우리들을 보고 파더와 동급 즉 아버지쯤으로 보지 안았을까 합니다."
론의 추측에 로베르토가 고개를 끄덕인다. 진이 말한다.
"캡틴의 말은 그들이 파더라는 사람 밑에서 자랐단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안경의 주인이 그들의 아버지 혹 그들의 창조자라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마치 신처럼 생각하고 받드는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게되니까요. 음... 하지만 어떻게 그자가 폭발 속에 살아 남았고 레피탄들을 만들 냈을까요?"
"잠깐. 방금 저 외계인처럼 생긴 괴물들이 지구에서 만들어 졌다고 하셨어요?"
진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론이 다시 팔짱을 꾀며 말한다.
"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DNA 합성법. 자랑은 아니지만 그걸 이용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때 그 악어야 몸집이 커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것도 없었지만 이 레피탄들은."
론이 먼저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건 크기를 조절하는 DNA 만을 합성했을 뿐인 거죠. 말하자면 좀 단순한 습작 같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레피탄들은..."
"완성 작이라 할 수 있지요 서로 다른 개체들의 특징만을 골라 완벽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탄생시켰으니까요. 이론의 창시자가 바로 저이지만 저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정말 놀랍도록 정교하고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거기 까지 말한 론이 남은 술을 들이키고 말을 잊는다.
"누구든 간에 그가 레피탄들과 울창한 밀림, 이 새로운 지구의 모든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가 과연 누굴 까요?"
론은 진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과연!"
로베르토의 갑작스런 우렁찬 음성이 두 사람의 눈을 고정 시켰다.
"정말 대 단들 하시군 요. 이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알아내시다니."
론이 미간을 좁히며 묻는다.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로베르토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짖는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걸 보고서야 알았지요."
"보다니요? 무엇을 말입니까?"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진이 서둘러 되묻는다.
"무얼 본다는 거지?"
"어떤 의미에서 이 지구의 모든 진실이지요. 전 보았고, 알고 있습니다. 이 안경 주인의 이름, 성격 그리고 그의 생각까지도..."
AV.
"이봐 방금 로베르토가 뭐라고 씨브린거야?"
픽 스톤이 묵직한 저음으로 수신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보드에게 물었다.
"조용히 좀 해봐 지금 듣고 있잖아."
보드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입에다 손가락을 교차시킨다. 칼 역시 묵묵히 탱크 벽에 기대어 론과 진 그리고 로베르토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픽이 부실 듯 달려들어 수신기의 스위치를 껐다.
"뭐 하는 거야!"
보드가 픽에게 윽박지르며 일어나자 픽도 지지 안고 소리친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니까."
"이 바보야 끝까지 들어봐야 알 거 안이야. 멍청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잖아!"
"난 중간이 싫어."
보드는 더 상대할 값어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수신기를 제 작동시킨다. 픽이 다시 스위치에 손을 대려 하자 칼의 손이 그를 재지 한다.
"지금 저 레피탄이란 것들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진 거라는 이야기야. 그 인간이 누군 지는 아직 모르고."
"그런 거야?"
픽은 덤덤하게 말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보드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다. 칼이 불쑥 말한다.
"그런데 그가 누구일까? 왜 저런 괴물들을 만들었을까?"
"알 수 없지. 아마도 미친 과학자나 돌연변이 싸이코 아닐까? 모르긴 해도 메이저 키스트에 변태자식이나 호모가 분명해."
칼이 차가운 눈으로 보드를 바라본다. 너도 똑같은 놈이라는 의미 같다.
"이봐 눈빛이 왜 그래?"
보드가 항의하자 칼은 말없이 자신의 벽에 등을 기댔다.
"쳇!"
보드는 상관없다는 투로 다시 수신기에 귀를 가져갔다.
Inside 2.
"그나저나 다른 멤버들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설마 두 분만 그 먼길을 걸어오진 안았을 텐데요."
로베르토의 물음에 론이 답하려 하자 진이 은밀한 눈빛으로 만류하며 먼저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남아 있던 이카루스 기들을 이용해서 이곳을 찾아냈지. 나머지 멤버들은 아직 파이오니어호에 머물고 있고."
로베르토가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어서들 오라고 하십시오. 레피탄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인 녀석들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절대 안전합니다. 다들 와서 지구의 새로운 주인들과 인사를 나누게 해야지요."
아직 진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론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종알거렸다.
"파이오니어호에 남아 있는 멤버들을 불러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로베르토가 무사히 살아있었다는 것이 안전의 가장 큰 증거일 테니까요. 하지만 파이오니어호의 안전을 위해 군사력 인원 및 장비들은 그쪽 방위에 주력하도록 하시는 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파이오니어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돌이 킬 수 없는 일이잖아요."
진의 입술 끝이 살짝 위로 당겨 올라가며 론을 쳐다본다. 그 야릇한 미소에 홀린 것처럼 론은 아무런 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합시다."
로베르토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한다.
"다들 오랜만에 보게되겠군요."
들떠있는 그의 마음에 진이 끼어 들어 김을 뺐다.
"우리 멤버들의 안전은 확실한 거겠지?"
"물론이죠. 아직도 레피탄들을 못 믿으시겠단 말입니까? 그들에게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든 신을 죽이려 든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진이 차가운 어조로 답한다.
"착각하지마, 그들은 인간이 아니냐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의 신이 아니고."
로베르토는 뭐에 찔린 표정을 지어 보이며 화제를 돌린다.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데려 오지요?"
이동
"이카루스 2호기 베이스와의 연결고리 이상 없습니까?"
"연결고리 이상무."
"이카루스 3호기 연결고리 이상 없습니까?"
"연결고리 이상 없습니다."
"베이스 안 상태는 양호합니까?"
"베이스 이상 없습니다."
"이카루스 2호기 와 3호기 천천히 이륙하시기 바랍니다."
이카루스 2호기와 3호기가 동시에 떠오르자 Y자처럼 생긴 이카루스기 꼬리에 길쭉하고 네모난 베이스의 각 사이드를 연결시킨 체인과 고리가 팽팽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평행을 마치려는 2기의 노력과 중간에서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이카루스의 힘에 의해 공중에 뜬 베이스가 오른쪽으로 기울여 진다.
"이카루스 3호기 좀더 상승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마이클 너무 높아요 조금 밑으로."
다시 중심을 잡은 베이스.
"좋습니다. 공중부양 성공입니다. 이 상태의 평행을 계속해서 유지해 주십시오. 모두들 즐거운 비행이 되십시오."
윙∼, 허공에 위치한 두 대의 이카루스기와 베이스는 천천히 레피탄의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바비는 그 모습을 파이오니어호의 조종실에서 바라보며 꼭 찡그린 얼굴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Y__Y)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지?"
"글쎄요. 아마도 진일 거예요."
스캇이 구름 속에 사라져 가는 우울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하. 그 여자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네 이런 생각을 다해내고."
"진을 무시하지 마세요. 아무나 그 나이에 말똥을 세게 씩 다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건 몰라도 지휘통솔 능력은 최고라 할만 하죠. 제가 꿈꾸던 군인 상이기도 하고요."
"하하. 그래? 사실 스캇은 전혀 군인 같지가 않아."
스캇의 인상이 굳어진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처럼 군인이 천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지금이야 다 살아졌지만 전 세계 최 정예 특공 요원이었다고요."
"알았어. 알았어. 솔직히 우리 중에 예전에 한 가닥 안 하던 사람이 어디 있나."
스캇은 다음 말을 생각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헤헤헤. 그런 거 가지고 성내기는."
"내가 언제 성냈어요!"
"지금 내고 있잖아."
"바비!!"
"그만 하자 그만."
웃으며 다독거린다.
"그런데 왜 안간 거예요? 다들 궁금해 죽겠다던데 바비 혼자 남아 가지고 사람 속이나 긁어 데고."
"아직도 삐졌어? 혼자 긴 왜 혼자야 스캇이 있잖아."
"저야. 명령이니까 남은 거잖아요. 사실 저도 무척 보고 싶다고요. 새로운 지구 주인이라는 놈들을."
그 말에 바비가 정색을 하며 껄끄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난 싫어. 그런 파충류들. 그 개구리들도 그렇고... 왠지 꺼림직 하고 징그러워."
"하긴 그때 저도 엄청 놀랐지요. 그런 것들이 있을 줄이라곤... 얘기를 들어보니 개구리들은 그 레피탄이라는 괴물들의 애완용 동물 같은 존재 같아요. 그들 집에서 잡일도 하고 마을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울어 데기도 하고..."
"아무튼 난 그런 것들이 정말 싫어. 누구든 간에 왜 하필 그렇게 흉측한 것들을 만들었을까? 보다 이쁘고 귀여운 것도 많잖아. 과학자들이 예술과는 거리가 먼 건 알지만... 분명히 남자 일거야 여자였다면 그런 것들을 만들었을 리가 없어. 분명해."
"제 생각엔.... 지금 상황은 누구보다는 왜라는 질문이 더 필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바비가 금세 장난스런 얼굴로 돌아간다.
"오∼∼ 제법인데 스캇! 군발이가 아니라 꼭 철학자 같아."
"바비!!"
도착
"왜 로베르토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지요?"
론이 진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이용해 물어왔다.
"로베르토가 수상해요."
"예?"
"안경에 관한 것도 그렇고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또 군인의 느낌입니까?"
이번엔 입술 끝만 아닌 왼쪽 눈썹 끝도 따라 올라간다.
"여자의 느낌이죠."
론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언제까지 AV 일행을 대기시킬 작정입니까?"
"우리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겠죠. 그러니까 그들은 일종의 보험, 히든카드(Hidden Card)인 거에요."
"잘 알겠습니다."
론이 병정놀이하는 아이처럼 경례를 한다.
"알았으면 됐습니다."
진이 경례를 받으며 답했다. 그때 하얀 망토를 쓴 레피탄 한 마리가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처음 신전 홀에서 로베르토를 부르러 들어갔던 그 레피탄 이였다.
"나오십시오. 신, 하늘 내려옵니다."
론과 진은 이네 질려버린 얼굴이 되었다. 레피탄이 인간의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 뒤로 로베르토가 등장했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인간의 말을 했소."
손가락으로 그 문제의 레피탄을 가리키며 론이 말했다. 로베르토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웃음을 지으며 손짓한다.
"이 친구가 파더라는 말을 했던 레피탄입니다.
"란"
이라 불리지요. 이 신전의 사제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어서들 나오십시오. 팀원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론과 진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따랐다.
신전 뒤, 돌로 만들어진 단상이 있는 공터는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도 로베르토가 신으로 받들어진 바로 그 곳이라는 걸 쉽게 예상케 했다. 축구경기장 크기 만한 그 공간에서 300마리의 레피탄들이 포효하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당시 로베르토의 당황 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윙 ∼∼ 공터 한가운데로 찡그린 얼굴이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천천히 베이스, 그리고 2기의 이카루스들이 지면과 맏다아 갔다. 베이스의 문이 열리며 리나가 뛰어 나온다. 그녀는 무척 흥분한 표정으로 론에게 다가온다.
"캡틴, 그 동안 잘게셨어요. 방금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고 개세요?"
소녀 같은 그녀의 행동에 론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물론이죠. 세이비어양."
그녀는 흥분에 겨워 계속해서 하늘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음."
로베르토의 헛기침에 그제 서야 그를 처다 본다.
"로베르토!! 얼마나 걱정 한 줄 알아요?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하며 그를 끼어 안았다. 로베르토 역시 근황을 묻고 답하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이 그들 곁으로 도착했다. 로베르토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한다.
"모두들 안녕 하셨습니까. 저 때문에 걱정들 많이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덕분에 전 이렇게 건강하게 이곳 레피탄의 마을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레피탄들의 성지인 겜마 성지입니다."
"겜마?!"
론이 낮게 읍 조렸다.
"레피탄들에게는 아주 성스러운 곳이라 할 수 있지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곳에 왔다는 건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생긴 모습은 달라도 그들은 우리의 친구라 생각하시고 아무튼 편한 마음으로 지네시기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마치 관광가이드 풍의 인사와 설명을 끝마친 로베르토가 손으로 뒤에 있던 란을 가리키자 팀원들의 표정에 희비가 교차됐다. 이것이 진정 안전하다 믿고 대할 수 있는 생명체인지 의심이 가득 했다. 그걸 눈치 첸 로베르토가 말한다.
"란, 이분들에게 앞으로 묵으실 숙소로 안내바라네."
란은 모두를 향해 머리 숙여 인사하고는 따라오라는 듯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괴물이라 보기에는 너무나도 정중해 보이는 인사에 팀원들은 첫인상의 불신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었다. 스와르가 앞서 그를 따라 간다. 그 뒤를 팀원들이 따라갔고 진이 막 그들을 따르려는데 론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왜 그러시죠?"
"방금. 로베르토가 했던 말 기역 하십니까?"
"글세..."
"그는 이곳이 성지라 했습니다. 성지라는 건 보통 신으로 추앙 받던 분들의 탄생지나 행적지에 붙여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요. 좋은 예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부처의 인도, 또 비록 신화이긴 하지만 제우스, 헤라 등의 신들이 살았다는 아테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이곳이 성지라 불리 워 지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안경의 주인이 이곳에 살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또 그가 이곳에 살았다면 무언가 자취를 남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슨...?"
"제 생각에 레피탄의 신으로 여겨졌던 걸로 추정되는 안경의 주인은 인간이고 또 인간 중에 과학자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과학자였다면 이곳 어디엔 가 연구소가 있을 거라는 겁니다."
"연구소요?"
"뭐라 불리건 레피탄, 개구리, 거대악어 등을 만들던 곳 말입니다."
"그런 곳이 이곳에 있다고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 곳만 찾아낸다면 지금 우리들의 수수께끼에 해답을 알아 낼 수 있을 겁니다."
"해답?"
론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총총 걸음으로 일행과의 거리를 좁혀 나아갔다.
잔치(Party)
마을 중앙 원형 광장에 만들어진 높이 4m에 이르는 장작더미 위에 로베르토가 불을 붙이는 것을 시작으로 일행의 환영 잔치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덕의 모습은 그 열기만큼이나 잔치의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풍성하게 차려진 술과 음식,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북과 대나무 속에 돌멩이를 넣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타악기 등으로 연주하는 음악, 그 음악에 맞춰 전사계급의 등치 좋은 레피탄들이 화덕 주위에 둥그렇게 둘러서서 추는 춤, 이 모든 것이 과거 인간 원시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일행들은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리나가 론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캡틴, 저는 솔직히 옛사람들의 생활상은 잘 모르지만. 지금 저들이 하는 행동이 원시 인간들의 모습과 동일할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춤을 추고 있는 레피탄에게 시선을 주고 있던 론이 리나를 처다 본다.
"세이비어양. 잘 보셨습니다. 이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행동들은 과거 원시의 인간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동물들이 아닙니다. 인간처럼 지능도 있고 그걸 이용하여 생각할 줄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처럼 생활하고 있는 건 이들이 미개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시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죠."
리나의 눈이 물끄러미 화덕을 향한다.
"누가 왜 이들을 만들어 냈을까요?"
론의 눈 역시 리나를 따라간다.
"글쎄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곳 알게 되겠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분명히 밝혀 낼 겁니다."
"만약에 이들이 우리가 이들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리나의 우울한 눈빛을 바라보며 론이 답한다.
"아직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라 뭐라 드릴 말이 없군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신이 아니라 해도 우리 쪽에서 그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유 없이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앞으로 우주에 있는 사람들을 지구에 대리고 왔을 때 인간이 이들과 더불어 잘 살아 갈 수 있을까요?"
"미지수죠. 세이비어양은 잘 모르시겠지만 인간은 보기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동물입니다. 같은 인간들끼리도 끈임 없이 싸우고 다투는데 다른 개체와의 단합이란 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안습니까. 좋던 싫던, 이들은 엄연한 지구의 새 주인인데 서로 타협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겠지요."
"조화.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론의 목소리가 어두워진다.
"비참해 지겠지요. 서로 죽고 죽이는...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테니 까요."
"이들의 생활상을 보면 볼수록 자꾸 불안해져요. 단순한 육식동물이 아니라는 게 오히려 두렵 내요. 지금은 이들이 우리를 신으로 생각하고 따르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는..."
말끝을 흐린 리나의 눈이 다시 춤추는 레피탄에게로 마쳐진다.
"저들을 보세요. 우리, 신들을 위해 정열적으로 추고 있는 저 춤 속의 의미가 아무 가치 없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 저들은 어떻게 그걸 받아 드리게 될까요."
"세이비어양이 너무 걱정하고 있는 것 같군요. 이들을 만들어 낸 건 인간이 분명 합니다. 신이라는 말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창조자 인 건 사실이니 까요. 동급인 우리를 적 대화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신이라 자처 한 것도 아니고요. 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이들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고 느끼며 또한 우리의 상황을 설명한다면 앞으로 그들과의 조화를 이룸에 튼튼한 기틀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만들어 내고 인간을 멸하고 인간은 이들을 만들어내고 다시 인간이 이들을 멸하는 그런 악순환은 없었으면 좋겠내요. 제발, 캡틴의 말처럼 되었으면..."
말을 마친 그녀의 짙 녹색 우주 안으로 붉은 화덕이 가득 찾다.
레피탄(Repitan)
그들이 마을에 도착한지도 이틀이 지났다. 이제 어느 정도 징그럽기만 하던 레피탄들의 모습과 생활방식도 조금씩 익숙해 졌고 끼니때마다 차려지는 기괴하지만 맛 나는 음식들과도 친숙해졌다. 로베르토의 말처럼 그들은 사람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레피탄들의 정성은 대단했다. 한번은 밥상에서 긴 혀 바닥으로 음식을 낚아 체 먹는 개구리를 보고 놀란 일행 앞에서 레피탄 중의 한 명이 그 개구리의 혀를 잘라 버린 일도 있었다. 일행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레피탄들에게 호소했지만 그만큼 그들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대했다. 일행들은 이 껄끄러운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 같은 친구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반면 로베르토는 레피탄들의 충성과 믿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드리고 그걸 이용하였다. 인간들 개개인이 레피탄들의 신 이였다면 로베르토는 신중의 신 이였다. 그의 한마디, 행동 하나가 레피탄들에겐 법이요 진리였다.
한편 리나와 라밍은 레피탄들의 생활상을 연구,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후에 그들과의 조화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 이였다.
레피탄에 관한 보고서 1.(Report 1.)
레피탄들에게는 완벽한 언어구조가 존재한다. '라판어' 라 불리 우는 이 언어는 그들의 성대 구조에 알맞게 만들어 진 것으로 18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영어와 비슷하여 필시 그 안경의 주인이 이 언어를 만들어짐에 큰 공언을 하였을 것이라 추정해 본다. 또한 레피탄들은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가족의 수는 제각각 이였으나 보통이 4마리로(부모와 자식 2마리) 구성되어 있었고 가족의 숫자에 따라 벙걸로의 크기가 정해 졌다. 이들의 암수 구별은 암컷이 약간 수컷에 비해 조금 작다는 것이 전부였는데 사람의 눈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았다. 또한 옷 입는 것과 생김새가 거의 똑 같아서 그들 스스로 조차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자아낼 정도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소와 돼지, 닭, 양과 같은 가축들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곡식도 재배하고 있었다. 마치 그 옛날의 원시 부족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어떻게 소와 돼지 등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걸까? 100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레피탄들은 어떻게 농경의 지혜를 터득한 걸까? 그들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궁금증은 더욱 늘어만 간다.
- 라밍 -
겜마 성지
'쿵'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 가볍지 안은 마찰음이 들려왔다. 석식 후 디저트의 달콤함에 빠져 있던 일행의 주의가 한꺼번에 몰려든다. 테이블 한가운데로 던져진 그것은 짙은 갈색의 넓적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론이 그것으로 손을 가져간다. 수없이 많은 주름 속 한 부분을 집어 반으로 나눈다. 부드럽게 반으로 갈라진다. 그 안에는 작고 고불 고불한 지렁이 같은 것들이 가득하다.
"일기장이군요."
론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일기장이 날아온 방향에 서있는 로베르토를 향해 흥분 석인 어조로 물었다. 가볍게 끄덕여 보인 로베르토가 테이블 중앙에 선다.
"이건 바로 그 안경 주인의 일기장입니다."
모두가 흥미 어린 눈으로 그를 경청한다.
"그의 이름은 겜마, 성이 없이 그냥 Dr. 겜마라 불렸던 것 같습니다."
"겜마?!"
론이 급히 일기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예. 바로 이 마을의 이름과도 같지요. 겜마 성지."
진이 이제야 론의 말이 맞았음을 인정하는 듯한 시선으로 일기장을 쳐다본다.
"일기장을 읽어보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어떻게 그가 폭발 속에 살아났으며, 레피탄들을 만들었는지.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행동했는지 등의 모든 것이 말이지요."
"이런걸 왜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거지요?"
스와르가 차갑게 말하며 로베르토를 쏘아 봤다.
"그건 여러분께서 이 일기장을 보시기 전에 레피탄들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없애 버렸으면 하는 바램 때문 이였습니다."
진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한다.
"로베르토 너에겐 그런걸 결정할 만한 권한이 없어. 이런걸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캡틴에게 먼저 고해야 했을 거야."
로베르토는 아무렇지도 안은 표정으로 덤덤히 답한다.
"물론 저와 캡틴 그리고 다른 분들이 함께 이곳에 도착하여 이 일기장을 발견했다면 그렇게 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이였고 단신 이였습니다. 자물쇠로 잠겨진 방에 있던 이 일기장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전 아마 지금까지도 레피탄들이 저를 살찌워 먹으려 계속해서 끼니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까지 잠자코 지켜보던 커크가 말을 꺼낸다.
"로베르토씨가 말하는 방이란 당신 방에 있는 그 자물쇠가 걸려진 방을 뜻하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열쇠는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갑자기 로베르토의 얼굴에 득이에 찬 미소가 번진다.
"놀랍게도 안경이 들어 있던 상자 속에 있었습니다. 안경 밑에 솜에 가려져 있더군요. 우연히 찾아냈지만 전 그것이 그 자물쇠의 열쇠라는 걸 금방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 일기장 이외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요. 제 생각입니다만 Dr. 겜마라는 사람은 오직 자신의 일기장을 보관하기 위해서 그 방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방안에는 좁기도 했지만 창문이나 기타 가구들도 없이 커다란 상자 안에 그 일기장만이 홀로 담겨 있었으니까요."
"정말 일기장 밖에 없었습니까?"
로베르토를 투시그릇 보듯 쳐다보고 있는 스와르가 다시 물었다.
"하하하 제가 여러분을 왜 속이겠습니까."
다소 과장된 웃음을 지어 보인 로베르토가 일기장을 가리키며 말을 잊는다.
"일기장을 들여다보십시오. 왜 레피탄들이 그토록 우리를 절대적으로 대하는지 모든 이유가 쓰여 있으니 까요."
"겜마...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이군요. 언젠가 들어 봤던 것 같아요."
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때까지 일기장을 들쳐보고 있던 론이 말한다.
"이거 정말 대단하군요. 이 사람은 폭발당시 무슨 지하 기지 안에서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구폭발 후 43년 뒤에 이 세상에 올라왔다는 군요. 기지는 과거 미국의 군사시설 같은 곳 인 것 같은데..."
"43년?! 그렇담 그는 무척 늙은 노인 이였겠군요. 폭파당시 20살 이였다고 해도 63살에 땅으로 나왔다는 계산이 되는데 그 후에 레피탄을 만들어 내고 가르치고 했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이 신전을 계산하면... 약 100살 가량. 아니 130살 가량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 까요?"
스와르의 냉철한 추리력에 새삼 놀라면서 마이클이 반박한다.
"폭발 후에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지 안겠습니까. 그 알 수 없는 기지시설 속에 그 사람 하나만 달랑 들어가 있었다는 건 오히려 설득력이 없잖아요."
"좋은 지적이요. 하지만 왜 그는 혼자였을 까요? 그가 기지 시설 안에서 태어났다면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어야 하지 안습니까."
로베르토가 그의 말에 끼어 든다.
"그런 내용까지는 쓰여 있지 않지만, 중국 옛 속담에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낮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들 한번씩 읽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2일 후에 우리는 성지로 향할 겁니다."
"성지요?!"
라밍과 리나가 동시에 외쳤다.
"그렇습니다. 일기에 쓰여 있는 옛 미군의 군사시설 Dr. 겜마가 폭발 속에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곳, 그곳에 가는 겁니다."
"잠깐."
진이 막아선다.
"정확하게 어디를 간다는 거지? 켑틴과 나와 상의 없이는 어느 곳도 갈 수 없어."
로베르토는 어깨를 으쓱 해 보이더니 자신의 소매 속에서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친다.
"이건 일기장 속에 있던 지도입니다. 이 지역을 담은 것이 지요. 이 붉은 점이 우리의 위치이고 이것이 성지입니다."
로베르토의 갈색 손가락이 지도 위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이 지역은 레피탄들에겐 성지로 불리 우는 곳으로서 레피탄들에겐 금단 땅이나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이 마을이 성지와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성지의 출입자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겜마성지라 불리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 마을에서 약 하루정도 떨어져 있어 출발한다면 아침 일직이 될 것입니다. 동행으로는 우리 일행과 란 등의 레피탄 신전 사제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진이 더 이상 할말이 없는지 론을 쳐다본다. 론이 보던 일기장을 덮으며 말한다.
"갑시다. 일기장에는 그가 그곳에서 땅으로 나온 후의 일밖에는 쓰여있지 않습니다. 겜마라. 흥미로운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의 출생의 비밀이 자못 궁금합니다. 레피탄과 기타 동물들 그리고 지구 밀림화 등 모든 지구의 비밀은 그곳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이 일기장이 결론이기도 하고요. 가서 그 진실을 밝힙시다."
론이 이렇게 나오자 모두들 반대 없이 2일 후의 출발을 기약하기로 했다.
"뭘 어떻게 준비하지요?"
마이클이 덥수룩한 자신의 턱을 만지며 물었다.
"여러분은 아무 것도 준비 하실게 없습니다. 란을 주시한 사제들이 모든 준비를 도 맞을 테니. 걱정일랑 마시고 편히 지내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전에 모두들 일기장을 읽어봐 주십시오."
아직 까지 못미더운 눈길을 던지고 있던 진은 그제 서야 론에게서 건네 받은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일기장(Diary)
일기장은 2082년부터 2110년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기장의 주인인 Dr. 겜마는 켈리포니아 남부 데스벨리(Death Valley)에 자리잡고 있던 미군 비밀 지하기지 시설 중 하나였던 'Noah's Arc-2000' (노아의 방주-2000) 이라는 특수제해대피 시설 속에 태어나고 살아가다 그가 17세 되던 해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홀로 거대한 식물의 낙원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그는 외로움을 느꼈고 17세의 천재 과학도였던 그는 DNA 복제와 합성법 연구에 몰두하여 같은 실패 끝에 2077년 레피탄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그는 그의 창조물들을 같은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길들였으며 그의 도움으로 레피탄들은 차츰 그들만의 문화를 이루어 가기 시작했다. 그는 또 어떠한 방법으로 라판어를 만들었는지, 집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지, 소, 돼지, 닭 등의 가축의 DNA를 복제해서 만들어내고 농경에 필요한 곡식들을 만들어 냈는지 등의 내용을 빠짐 없이 기록해 놓았다. 이런 대강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진이 일기장을 덮었다. 그녀의 눈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실로 믿기지 않는 현실 이였다. 그녀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가 세상을 만든 거야. 그가 이룩한 거야. 한 인간이 이 모든 걸... 그는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