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감상 / 박준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시집 『어떤 개인 날』 (중앙문화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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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일에도 요령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먼저 위치 선정이 중요합니다. 고르고 평평한 바닥이 제격입니다. 시야가 확 트여 멀리까지 보이면 더욱 좋습니다. 기다림의 자세는 간결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니 까치발을 들고 있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듯 서성이거나 지나치게 주변을 두리번거려서는 안 됩니다. 쉽사리 힘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절대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없습니다. 느긋하지만 늘어지지 않고 편안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결국 스스로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합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그때에야 비로소 끝이 납니다.
박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