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19-22)
오늘 본문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준 'A.W.토저'에게 빚진 마음입니다.
그가 쓴 ‘하나님을 갈망다’라는 책을 읽은 자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에 인간의 최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의 24 장로들은 이 영원한 진리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4:11) 라고 찬양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 목적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성자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으며,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평안을 모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기쁨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분과 우리가 거룩한 교제를 통해 신비로운 사귐을 즐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고, 함께 살고, 그분의 미소를 즐거워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향한 사랑과 순종을 버리고 죄책감과 두려움에 쫓겨 그분 앞에서 멀리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분 앞에서 도망할 수 있겠습니까? 아담처럼 하나님을 멀리하기 위해 도망해 보지만 그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요나가 도망쳐도 그분 앞에 다시 서야 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도망 다니다가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라”고 고백하며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고 부르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을 만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지성소 휘장 뒤에 계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거룩한 장막에 거하셨습니다.
이 거룩한 장막을 성막이라고 부릅니다.
성막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번제단에서 피를 뿌리고, 더러워진 몸을 물두멍의 물로 씻었습니다. 그 후 성소 휘장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빛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금등잔대가 빛을 발합니다. 오른편에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12개 떡이 상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앞에는 기도를 상징하는 분향단에서 향을 태우는 연기로 지성소를 가리게 합니다.
분향단 뒤에 휘장이 있습니다. 휘장 뒤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 바로 지성소를 가리고 있는 두 번째 휘장인 것입니다. 이 휘장이 찢어지므로 세상의 모든 예배자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20절에서 ‘새로운 살 길’이라 하였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지성소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머물고 교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휘장 뒤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멸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분의 임재가 없어서 영적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병든 신앙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우리가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불로 계시하셨습니다.
모세를 만나실 때 떨기나무 불꽃에서(출 3:2) 나타나셨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40년 동안 불기둥으로 나타나셨고,
오순절에 성령의 불로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교리적으로만 하나님을 알면 그분을 뜨겁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과 하나님에 대해 배운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지성소 휘장을 찢어주셨다.
본문 20절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임재하신 거룩한 장소입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이 내려져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하신 지성소의 자리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이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구분하던 휘장이 둘로 찢어지므로 누구나 지성소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기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제거되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던 휘장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백성의 속죄를 위해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가 성도들에게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서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아가 그분과 함께 교제하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누리고 즐기는 시간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기도의 자리입니다. 말씀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지성소 밖에서 주저하고 있나요? 그분을 만나기 위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단지 밖에서 평생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신랑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고 부르시는데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맴도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마음이 냉랭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차가워진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는 휘장입니다.
첫 번째 지성소 휘장이 제거되었어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휘장은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영혼의 휘장을 찢어야 합니다.
A.W. 토저는 이 영혼의 휘장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아무 판단도 받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고, 거부되지 않은 채 계속 살아 있는 육신적인 타락한 본성이 바로 이 휘장입니다. 이 휘장을 찢어야 합니다.
이 휘장은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삶’입니다. 이것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진심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이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만 하면 휘장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원수이자 영적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이 마음의 휘장은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만들어집니다. 마음 속의 죄들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우리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에 의해 드러나기 전에는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죄는 자기연민, 자기과신, 자기충족, 자기도취, 자기사랑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자아를 가진 자들은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욕심을 이룹니다. 이러한 자아는 주님의 이름으로 일하기 때문에 자기를 감추고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서 자아는 여전히 죽지 않고 기승을 부립니다. 자아는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가리는 불투명한 휘장입니다.
이것은 교육으로 제거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험할 때 제거됩니다. 이 휘장을 제거하여 자유롭게 되려면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아를 따라 살지 말고 그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예수님의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은 내가 죽어지는 고통이 따릅니다.
휘장을 찢는 것은 내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휘장을 찢으면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행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고백하고, 버리고, 거부해야 합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울처럼 내 안에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남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진멸해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설교=김상원목사/목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