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프로이센의 장군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과의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 전쟁은 결코 총칼과 대포의 숫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이 깨달음을 저서 『전쟁론(Vom Kriege)』에 담았고, 이 책은 오늘날 ‘서양의 손자병법’이라
불리는 현대 군사학의 고전이 되었다.
손자병법이 전쟁의 ‘기술’을 논한다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본질’을 파헤쳤다. 특히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그의 명제는 21세기 전장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쉰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어느덧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핵 시설이 불타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세상은 압도적인 화력과 첨단 무기의
향연에 주목한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살아 있다면, TV 화면 속 섬광보다 그 이면에 감춰진 ‘정치의 움직임’을 먼저
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전쟁은 결코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이 지도부를 타격하고 이란이 보복 드론을 띄우는 진짜 이유는 상대를 물리적으로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결과물인 ‘핵 봉쇄’와 ‘체제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잠시 외교적 협상의
무대를 전장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전쟁은 어느 한 군대의 전멸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달성되거나 혹은 수정되는 지점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계산기 두드리듯 매끄럽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승부를 금방
가를 것 같지만, 현실에는 언제나 ‘마찰(Friction)’이라는 방해꾼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완벽해 보였던 공습에도 이란의 미사일은 여전히 발사되고, 지도부가 사라지면 무너질 줄 알았던
세력들은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마치 기름칠 잘 된 기계 속에 모래알이 박힌 것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승리의 방정식을 뒤흔드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종결 단계(winding down)”를 언급하면서도 강경한 메시지와 추가 군사 배치를
병행하는 것은, 현실적인 마찰 앞에서 정치적 목표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는 전쟁의 속성을 보여준다.
전쟁에서 승부의 열쇠는 상대의 힘이 모이는 핵심, 즉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을 누가 먼저
무너뜨리느냐에 있다.
미국은 이란의 물리적 급소인 방공망과 핵 시설을 파괴했고, 이란은 세계 경제의 동맥인
호르무즈라는 전략적 급소를 봉쇄하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경고했듯, 이런 급소공격만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완성할 수 없다.
최후의 승리는 적의 ‘저항 의지’라는 마지막 무게중심까지 꺾어야만 얻을 수 있다.
이 의지를 결정짓는 것은 클라우제비츠가 강조한 ‘전쟁의 삼위일체’다.
이란 국민의 불타는 적개심(열정), 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군대의 운과 용기(우연), 그리고 이를
냉철하게 조율하는 정부의 계산(이성)이 어떤 균형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2026년의 이란 전쟁은 우리에게 고전의 유효함을 다시금 증명한다. 첨단 미사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정치적 이성과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다.
정치가 전쟁을 시작했듯, 이 혼돈을 끝내는 것 또한 군인의 총구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일 것이다.
결국 이란 국민과 남은 체제유지 세력이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이 전쟁의 향방이 달려 있다.
이것이 200년 전 프로이센 장군이 『전쟁론』을 통해 우리에게 해주는 얘기일 것이다.
<오늘의 샹송> Les Hommes / Sylvie Vartan
Sylvie Vartan(실비바르땅)은 1944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세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프랑스 샹송가수다.
60년대 영화 "우상을 찿아라"의 주제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70-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그녀는 전통적인 샹송
가수와 달리 록큰롤을 가미한 경쾌한 멜로디로 당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대표곡으론 La Maritza(마리짜강변
의 추억),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등이 있다.
Les Hommes(무명용사)는 1947년 알제리 전투와 63년도 베트남전에서 희생당한 외인부대의 무명용사들을 애도하
는 내용의 노래다.https://youtu.be/ZKCLO1e38tw
첫댓글 기원전 4-5세기 춘추전국시대
손자 병법.. 오자 병법이 그때는 유효했겠지요...
하지만 말씀하신 클라우제비츠가 활약했던
200년전 전장의 모습은 무기의 질이라든가 싸움의 방식이 크게 달라
근대전에서는 역시 크라우제비츠가 유효하다~~이런말도 나왔겠습니다..ㅎ
하지만
현대전은 또 다른 양상이겠지요.
아무래도 200년전과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환경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을 테니까요.
말씀에 많은부분 수긍하면서..
그러하더래도 지금은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의 머리에서 상황 설정이 자유자재 수시로 변하는 가운데
매듭을 향해 간다는 느낌인데..
사실 승패는 전쟁시작전 이미 결론이 난 것이고..지금 전개되는 모습들이란 건
단순히 전쟁 승리가 아닌.. 전후의 이란 통치환경 변화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그걸 염두에 두면서 숙고하는 단계가 아닌가~~이리 생각됩니다.
지난날 걸프전에서도 전쟁으로는 압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후 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뼈아픈 교훈이 이번에 작용할 것 같습니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진정한 승리는 군사적 압승이라는 '수단'을 넘어,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와 호르무즈자유통행권 확보,이란의 국제 질서 순응'이라는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때 완성됩니다.
말씀하신 걸프전 사례처럼 압도적 화력으로 적을 궤멸하고도 전후 안정화에 실패한다면,
이는 군사적 승리일 뿐 클라우제비츠적 관점의 '정치적 승리'라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미국이 고심하는 지점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이란 지도부가 스스로 저항 의지를 꺾고
미국의 의지에 부합하는 '강요된 합의'에 도달하게 만드는 결정적 지점을 찾는 것입니다.
고견주셔서 감사합니다.가을이오면님.
남의 나라
까지
풍지박산
뒤흔들어 놓는게
강대국입니까?
트럼프 지 는. 다 잘하고 산답니까?
전쟁도발을 먼저 하는쪽은
지탄 받아야 마땅합니다
말씀대로 전쟁이 초래하는 참혹함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강대국의 무력 행사는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미국으로서도 핵무기 개발과 테러 단체 지원, 그리고 민주화 요구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등 중동 정세를 위협하는 이란의 행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전략적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리야님.
"정치가 전쟁을 시작했듯,
이 혼돈을 끝내는 것 또한 군인의 총구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일 것이다."
정답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