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병원에 가서 소위 신체검사를 받았다.
의보에서 2년마다 검진하라는 해가 올해이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 하단에 있는 삼성냇과에 가서 받았는데 해운대서 거기까지 가려니 너무 멀었고
또 집사람이 혈압약을 연산동과 가까운 물만골역 인근에 있는 김용태 내과에서 처방받아 타면서
괜찮더라고 하여 그쪽으로 가기로 정했던 것이다.
음식이 맛이 있어야 손님이 몰리듯이 병원도 손님이 몰리는 곳이 아무래도 나은 편이다.
대장내시경검사를 미리 예약했더니 하루 전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말고 당일 새벽부터
관장약을 물에 타 20분 간격으로 8번이나 마시라고 하였다.잠시후부터 설사를 줄줄 해댔다.
예약시간이 11시반이어서 집에서 10시50분에 나섰다. 집을 나서는데도 밑구멍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나와서
유아들 기저귀 차듯이 크리넥스 티슈를 서너 장 접어서 끼웠다.
병원에 갔더니 접수실 앞에 손님들이 20~30명은 대기하고 있었다.
접수원에게 대장내시경 검사하러 왔다고 하니 초진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종이를 한 장 주면서 필요사항을 적어라고 했다.
이름,생년월일(뒷주민번호까지),주소,연락처를 적었다.
담당자가 모니터를 보면서 필요사항을 기재하더니 무슨 아이템을 할 것인가 물었다.
위내시경,대장내시경(수면),초음파검사(간,췌장,신장,쓸개),심전도,혈액검사(당화혈색소)등을 하겠다고 했더니
용종이 없으면 16만원정도 나올 것이고, 만일 용종이 발견되면 제거비용이 추가된다고 했다.
심장과 혈관은 어쩔거냐고 물었다. 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심장과 혈관검사는 필요없다고 했다.
병리검사실에 들러 심전도검사부터 한 다음에 팔둑에서 피를 뽑았다. 그리고선 주사기를 뽑은 자리에 소독한 솜을 붙여주더니
꾹 눌러라고 하면서 밖에 나가 대기 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료실로 갔더니 50대초반으로 보이는 약간 뚱뚱한 의사가 병력과 가족중의 병력을 물었다.
오래전에 결핵을 앓은 적이 있다고 했더니 수면내시경을 하므로 X레이도 다시 찍어보자고 했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링거를 꽂은 채 침대에 누워서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다.
1시5분에 이름을 부르더니 간호원이 검사실로 안내했다.
입 안에 스프레이를 뿌린 후 호스가 들어갈 수 있도록 마우스 피스를 물리는 순간 이후에는 마취가 되었는지
검사가 다 끝날 때까지 의식이 없었다.
회복실에서 잠시 누웠다가 옷을 갈아 입고 원장의 판별을 듣기 위해 원장실로 들어갔다.
판별(判別;판단할판,다를 별)의 사전적인 의미는 시비나 선악을 구별함 또는 분명히 가름이라고 돼 있다.
내가 판별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 수학시간에서였다. 2차방정식에 근의 공식인 판별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2차방정식은 인수분해로 풀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판별식을 알려주셨다.
판별식을 알고 나니 2차방정식 근을 구하는 문제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2차방정식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판별당한다고 하니 조금은 긴장되었다.
원장은 검사결과(사진,혈액,심전도)를 보고 병의 유무와 대처방법 등을 환자에게 알려준다. 필요시엔 처방전을 발행하여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복용토록 하는 것이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가 약간 희끗희끗하고 숱이 적어 보이는 원장인듯한 사람이 웃으면서
의자에 앉으라고 하였다. 모니터에 나오는 신상명세서를 보더니 "장팔팔내과에서 기본적인 검사는 하셨네요"했다.
개인적인 의료정보가 모두 공유되기 때문이다. "여기가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검사결과표는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2년전에는 대장내시경 검사시 작은 용종이 2개정도 있어서 제거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용종이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다.
보통 병원에 가서 검사결과를 알아보려고 원장 앞에 앉으면 고양이 앞에 앉은 쥐처럼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혹시 무슨 암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죽을 병은 아닌지...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생명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환자의 가슴은 쿵쾅거리게 마련이다.
만년총무 K는 심근경색으로 119에 실려갔다가 왔다. 심장에 통증이 와서 자기가 119에 신고를 해서 살았다.
서울 아무개 친구는 심장수술 날짜까지 잡아놓고 마산에 사는 친구아들 결혼식에 내려왔다가 밤에 후배들과 한 잔 하다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집트 피라밋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이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파리의 루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데
벽화중에는 '사자의 서'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는,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 먼저 죽기 전 세상에서 선행을 많이 행했는지 아니면
악행을 많이 저절렀는지 심장을 도려내어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 판별한다.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면 천당행이요, 악행을 많이 저지른 것으로 판명되면 지옥행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집트 특별전을 할 때 메모를 해 두었건만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
어찌됐건 원장의 판별에 별 이상이 없다니까 다행이다.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기대수명이 80세가량 된다니까 80까지는 가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