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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와 헤어져 적성행 버스를 탄 영섭은 확실한 희수의 마음을 안 것 같아 절로 신이나 속으로 예스, 예스 하다 그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와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희수도 집으로 향하며 영섭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보고 영섭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가슴이 부풀고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사〜랑에 노래 들려온다~아, 옛날을 말하는가, 기쁨 우리 젊은 날-
사랑의 세레나데 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이 기분
입속으로 영섭이 오빠하고 부르면 가슴에는 설레임이 출렁인다.
집에 도착해서도 들 떠 있는 희수를 보고 어머니가 물으신다.
“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 왜 그렇게 기분이 좋으냐?”
“오늘은 슬프고도 즐거운 날이 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일이 있어요.”
“미친 계집애.”
어머니가 가볍게 나무라신다.
영섭의 입대를 삼 일 앞둔 일요일 아침나절 영섭은 보영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 내려왔으니 만나자고, 만나서 감악산 등산을 하자고. 그리고 점심은 자기가 준비할 테니 따로 준비하지 말라고.
현영이도 있으면 같이 가면 어떻게냐는 영섭의 물음에 보영이 괜찮다고 했으나 현영은 학기 초에 시작한 ROTC 훈련으로 내려오지 못 했다.
실은 보영은 집에 오기 전에 현영이 ROTC 훈련 때문에 집에 내려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영섭의 제의를 반대하면 영섭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모른 척했다.
그러나 혹 현영이 집에 있었다면 반대했으리라.
감악산은 높이가 675m인 파주에서는 제일 높은 산으로 적성면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영섭이 사는 마을에서는 5km 정도 보영이 사는 동네에서는 7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여기에는 옛날에 임꺽정이 있었다는 임꺽정 동굴이 있고 6.25때는 후퇴를 못 한 국방군과 피난을 못 한 젊은이들이 이산에 숨어 결사대를 조직하여 북한군과 싸웠다고 한다.
영섭의 할아버지도 6.25때 이 산에 숨어 결사대로 활약을 하셨다는 말을 영섭은 아버지한테 들었다.
둘이는 적성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에 버스정류장으로 나간 영섭은 등산복을 입고 작은 배낭을 메고 있는 보영을 보자 갑자기 중학교 때 감악산 응개폭포에서 만났던 때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보영은 영섭의 웃음이 늘 만날 때 일상으로 웃는 웃음과 좀 다른 것 같아
“왜 그렇게 웃는 거야?”
하고 물었다.
“오늘 너를 보자 옛날 중학교 때 감악산 응개폭포에서 만났던 게 기억나서.”
“왜 뜬금없이 중학교 때 생각을 해?”
“글쎄 말이야.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났을까?”
“너 지금도 혜숙이 생각하냐?”
“아니야, 전연.”
“그런데 왜?”
“모르겠다. 아마 오랜만에 너와 둘이서 등산을 하게 되어서 인가 봐.”
보영은 혜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아파 오는 속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러면서 현영이도 없는 이번 등산길에 감추어진 지나간 사연을 말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영섭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고 또 군대에 입대하는 마당에 그 말을 하면 공연히 영섭이만 혼란에 빠뜨리고 자기의 입장도 떳떳하지 않을 것 같아 망설여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버스가 감악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려 등산로로 들어섰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드리우고 산들바람이 분다.
등산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날씨 참 좋네.”
보영이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바람도 적당히 불고.”
“영섭의 군 생활이 이 날씨 같기를 바래.”
“고맙다.”
“네가 군대 가기 전에 같이 등산이 하고 싶었어. 그러면서 네가 군 생활에서 혹 어려움이 생기면 오늘의 등산이 추억이 되어 조금이라도 도움에 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너 같은 친구를 두어서 난 참 행복하다.”
영섭의 그 말을 듣는 보영은 영섭에게는 참으로 여인으로서 다가가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에 기쁘기보다는 슬픔이 더 컸다.
‘그래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초등학교 동창이란 말이지.’
라는 말이 목 구명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이른 봄 산에서는 약동하는 생물들에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풀포기 나뭇가지가 모두 봄의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꽃다지, 민들레, 할미꽃과 산수유가 피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살랑이는 봄바람 속에는 먼 남쪽에서 싣고 온 봄꽃의 향기가 스며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짝을 찾아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려는지 한결 활발해진 것 같은 산새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는 영섭이들은 봄 산에 묻혀서 자연의 일부분이 된다.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르니 점심때가 되었다.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저기는 어디쯤이고 여기는 어디쯤이라고 하면서 잠시 동안 사방을 조망하며 경치를 구경한다.
산 위에 서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저 아래 세상이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같고 나는 걸리버가 된 기분이 든다.
구경하며 산바람을 맞아 올라오느라 흘린 땀이 어느 정도 마른 후 햇볕이 들고 바람이 맞지 않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난 후 보영이 풀어놓는 점심 배낭을 보고 영섭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에서는 영섭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다.
유부초밥, 고구마튀김, 찹쌀떡, 고기만두가 그리고 한라봉과 딸기 모두가 영섭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특히 영섭을 감동시킨 것은 보온 통 안에 들어있던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산에서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던 영섭으로서는 보영의 배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고맙다. 언제 이런 음식을 장만했냐?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어제저녁에, 이 음식들 찹쌀떡 말고는 모두 내가 만든 거야.”
“야 너 음식 솜씨가 굉장하구나.”
“맛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디 맛 좀 볼까.”
하고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먹어 본 영섭이
“이거 정말 네가 만든 거야?”
하고 묻는다.
“왜 맛이 없니?”
“그래! 무슨 맛이 이러니, 너무 맛이 없어 못 먹겠다.”
그 말에 울상이 된 보영이
“그러냐? 아침까지도 맛이 괜찮았는데. 그사이에 상했나?”
하며 한 숟갈 떠먹어보려는 보영의 손을 제지한 영섭이
“그런데 어쩜 우리 어머니 솜씨와 똑같으냐? 난 우리 어머니만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드시는 줄 알았는데.”
“무어야? 그럼 너 날 놀린 거야?”
“그래! 찌개 맛이 일품이다.”
그 말에 보영이 활짝 웃으며
“맛이 좋다니 다행이다.” 했다.
다른 음식들도 모두 맛이 좋아 영섭은 맛이 있다는 소리를 연발하며 보영이 준비한 음식을 먹었고 보영은 자기가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을 영섭이 맛있게 먹는 것이 너무 좋아 영섭에게 이것저것 집어주며 먹기를 권한다.
그럴 때마다 너도 먹으라는 영섭의 성화에 같이 즐거운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한라봉과 딸기로 후식까지 하고 난 후
“이렇게 맛있고 즐거운 점심 식사는 처음이야.”
하는 영섭의 치하에
“네가 맛있게 먹어주어 나도 기쁘다.”
고 보영이 응답했다.
점심 후 정상에서 쉬며 봄볕을 즐겼지만, 보영은 의도적으로 영섭의 군 입대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안 했고 영섭도 그런 보영의 배려에 감사하며 입대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후에 하산한 이들은 적성에 도착하여 헤어지기 전 다방에서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놓고 앉았다.
이 자리에서 보영은 다시 망설여졌다.
이제 군대 가면 2년 반 이상을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 안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는데 이 사연을 그냥 내가 혼자 안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 사연을 영섭에게 말하지 않고 나만 간직하고 가기에는 내가 너무 어굴하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섭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데.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혹 영섭이 이해는 하더라도 이해할 뿐이지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지는 않겠지, 그럼 나만 초라한 모습이 된다. 더욱이 군에 입대하는 영섭에게 그 이야기를 하여 혼란스럽게 하여서 좋을 것이 없겠지.’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서 영섭을 만났을 때의 상념이 또다시 보영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
하는 영섭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보영이
“아 아냐. 그 보다 이제 3일 후면 군에 가 있겠구나. 입대하는 날은 배웅하러 안 나갈래, 너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오면 너무 쓸쓸할 거야.”
“알았어. 네가 오늘 해준 송별회만으로도 나는 감동했다.”
“송별회라고 하지 말아, 우리가 아주 헤어지냐? 군대 다녀오면 나 또 안 볼 거냐?”
“그야 물론 다시 만나야지, 우리의 우정이 변치 않는 한.”
“그럼 너는 변할 것 같냐?”
“나는 절대 아니야, 네가 변하지 않는 한.”
“고맙구나! 그렇게 생각 해주서, 나도 절대 아니야. 그리고 시간 나면 편지해라 답장은 꼭 해줄게.”
“그래! 나 군대 있는 동안도 소식은 끊지 말자.”
“내가 바라는 바다. 그럼 나 이만 갈게, 그리고 너의 무운을 빌께, 잘 다녀와.”
“그래! 오늘 참 즐거웠다. 잘 가라.”
영섭과 헤어져서 버스에 오른 보영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언제나 연인이기보다는 친구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자기의 입장이 못내 안타까워
보영과 헤어진 영섭은 오늘의 보영이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친구에게 대하는 것보다는 연인에게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느끼며 자기가 보영의 배려에 너무 감동하여 그런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손을 잡고 내가 몸이 성하면 너를 논산까지 배웅할 텐데 하시며 아쉬워하시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못 가시니 나라도 논산까지 같이 가겠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다음 날 입대 출발을 했다.
서울서 군에 입대 전에 학교의 친구들을 만나보기 위해.
이렇게 입대 전날 서울에 올라온 영섭은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학교 친구들과 현수, 현영을 만나 송별회를 하고 다음 날 논산훈련소에 입소 했다.
이때까지는 그런대로 현영과 사이가 유지되고 있었다.
송별회에서 군에 갔다 온 선배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총각 딱지 떼고 가야한다며 술집 아가씨를 하나를 영섭에게 붙여 주며 아가씨에게 내일 입대하는 사람이니 오늘 저녁에 꼭 총각 딱지를 떼어주라고 부탁을 해 놓아서 막무가내로 붙잡는 아가씨를 억지로 떼어 놓느라고 영섭은 진땀 꽤나 흘렸다.
술을 조금만 더 먹었어도 그 유혹에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하며 새벽 열차를 탄 영섭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논산역에 내려 훈련소까지 택시를 타고 훈련소 정문 가까운 곳에서 영섭이 내렸을 때는 아직은 입소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정문 근처에는 부모나 애인과 같이 온 입소자들이 헤어지기 전의 잠시 동안의 아쉬움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개중에는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울먹이는 연인과 아들에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는 어머니의 뺨에도 눈물이 흐른다.
그것을 보며 영섭은 혼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자기가 오시지 말라고 하고 집에서 혼자 떠났고 고등학생인 희수는 말할 것도 없고 현영과 현수는 오고 싶어도 ROTC 훈련 관계로 못 오고 보영은 미리 안 오겠다고 말해서 올 사람도 없었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영섭은 누가 어깨를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돌아다보고는 어깨를 칠 때보다도 더 놀랬다.
거기에는 보영이 웃고 서 있었다.
“아니 너 어떻게 된 거야? 언제 왔어?”
“지금 막 도착했어, 늦지 않았지?”
“그래 늦지 않았어, 그런데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안 온다고 했잖아?”
“안 온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네가 부모님이 오시는 것은 반대했을 것이고 다른 친구들은 ROTC 훈련 관계로 못 올 것이 뻔해, 너 혼자 쓸쓸할 것 같아 내가 내려왔어.”
“고맙다.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은 역시 너뿐이 없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그럼!”
“네가 이렇게 반겨주니 오기를 잘했다. 군대 가는 너보다도 오히려 내가 위문을 받는 것 같다.”
“아니야, 정말 반가워 실은 가족이나 애인들하고 같이 온 사람들이 부러웠거든.”
“영섭이도 별수 없구나.”
“나는 사람 아니냐?”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입소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그래! 들어가 봐.”
“오늘에 이 우정은 절대 안 잊을 거야. 영원히 내 마음에 새겨둘게, 그리고 언제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내가 오길 잘했네. 너 너무 감동 먹은 것 같다.”
“그래! 감동 먹었다.”
“알았어, 몸 건강히 군 생활 잘해.”
“그래 잘 올라가라. 내가 자리 잡는 대로 편지할게.”
“그래! 알았어.”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영섭을 보내고 오는 보영은 쓸쓸하고 외로움에 옷깃을 여러 번 여몄으나 영섭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오늘 내려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섭이 입대한 후
현영은 ROTC 훈련을 받으며 틈틈이 희수를 만나려 신산리로 내려갔다.
입시공부로 바쁘다는 희수의 핑계로 그때마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희수가 정말 공부를 위해선지, 영섭을 좋아해서 자기를 피하는 것인지 몰라도 입시공부를 하는 동안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계속하여 관심을 표현하고 희수가 대학을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희수에게 접근하여 희수의 마음을 잡아 내 사람이 되게 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희수는 현영이의 접근을 대학입시 공부를 핑계로 되도록 피하면서 대학에 들어가 영섭이 앞에 대학생으로 떳떳이 서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고
보영은 졸업 전에 합격하려고 계획한 사법고시를 보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지키미님!
무혈님
다녀가심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