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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예썰의 전당’에서는 11일 오후 방송에서 김구라, 재재, 미술학자 양정무, 정치학자 김지윤, 역사학자 심용환, 피아니스트 조은아가 출연했다.
첫 번째로 소개한 작품은 바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Guernica)’. 피카소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그려진 ‘게르니카’에 출연자들은 낯익은 작품이나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구라 또한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데 사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작품, ‘게르니카’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일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게르니카(Guernica)〉, 1937, 캔버스에 유채, 349.3x776.6cm ⓒ 2015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가 〈게르니카(Guernica)〉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게르니카(Guernica)〉를 위해 그렸던 스케치, 1172x1025cm
1937년, 피카소는 고국 스페인의 게르니카에서 일어난 학살 소식을 듣는다. 스페인 내전 중, 원조 요청을 받은 독일이 신무기 성능을 실험하고자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폭격을 가해 1,600명이 넘게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끔찍한 비극에 분노한 피카소는 게르니카에서의 참상을 그리기로 결심했고 한 달 여 만에 완성한 작품이 ‘게르니카’다. 거대한 규모의 작품 속엔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부터 널브러진 시체, 사지가 찢긴 말까지 전쟁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림이 공개된 후 폭격의 가해국인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이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인체 부분들의 잡동사니”라고 폄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게르니카’는 독일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데, ‘게르니카’가 전 세계 분쟁 지역을 순회하며 폭격의 참상을 드러내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게르니카
✺ 영화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3) >
◦ 원작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 감독 : 샘 우드(Sam Wood, 1943) -
◦ 주연 : 게리 쿠퍼(Gary Cooper) - 로버트 조단(Robert Jordan) 역, 잉그리드 버그먼(Ingrid Bergman) - 마리아(Maria) 역.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세계적인 명작 영화이다.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파시스트당(fascist Party)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주인공 로버트 조단(Robert Jordan)이 게릴라전을 펼칠 때 만난 마리아(Maria)라는 한 여성과의 운명적 사랑을 감동 깊게 그렸다. 로버트 조단(영화 속에서 스페인들이 '로베르토'로 부름)은 파시스트들에게 아버지가 사살되고 자신도 큰 피해를 당한 불행을 가지고 게릴라 활동하는 마리아를 만나 그녀의 순수함에 빠져들어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푸른 달빛이 가득한 바위 틈에서 이루어지는 로버트 조단과 마리아의 키스는 영화사에서 길이 빛나는 명장면이라고 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주의(republicanism)가 패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로버트 조단(Robert Jordan)은 다리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현지 게릴라(guerilla) 요원들과 작전을 세우지만 작전 내용이 적에게 누설되어 다리 폭파 공격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로버트 조단은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끝내 다리를 폭파한다. 하지만, 로버트 조단은 다리 폭파 뒤 철수하면서 적으로부터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그러자 로버트 조단은 마리아(Maria)와 요원들을 적의 공격에서 무사히 빠져 나가게 하기 위해 혼자 남아 기관총을 쏘며 자신의 목숨을 희생합니다. 마리아와 로버트 조단이 이별하는 장면과 대사 역시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화는 여운이 긴 종소리를 울리며 끝이 난다. 1부와 2부로 되어있다. 시간이 충분히(2시간 40분) 나실 때 감상하시면 좋겠다. 화면을 더블 클릭하시면 모니터 전체 화면으로 보실 수 있다.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부 (Running Time : 1h 34m 54s) ♣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2부 (Running Time : 1h 05m 24s)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도라 마르의 초상(Portrait of Dora Maar)〉, 1937년, 캔버스에 유채, 92 x 65cm.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Dora Maar au Chat)〉, 캔버스에 유화, 129.5×97cm
“나에게 그녀는 우는 여자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녀를 고통당하는 형태로 그렸다.
가학증 때문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녀 자체의 이미지가 나를 이끄는 대로 그린 것이다.
피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한 실체가 담겨 있다.”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울고 있는 여인(La Femme qui pleure)〉, 1937, 캔버스에 유채, 60.8×50cm.
〈울고 있는 여인〉은 〈게르니카〉의 한 부분을 닮아 있다. 〈게르니카〉 벽화에서 아이를 잃고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유화로 그린 작품이 이 〈울고 있는 여인〉이다. 〈게르니카〉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게르니카〉의 참상은 〈울고 있는 여인〉에서 선명한 색채로 되살아나 있다.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원색과 함께 여인의 얼굴은 하얀 눈물로 온통 덮여 있다. 하얀 눈물은 여인의 볼과 입술, 목으로 흘러내린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에스파냐 내전과 게르니카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피카소는 도라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이 슬프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왜곡되고 뒤틀린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그림에 그려진 모습처럼, 도라의 인생은 피카소에 의해 굴절되었다. 1943년,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인 젊고 아름다운 여자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를 만났다. 피카소는 자신의 정물화 몇 점과 프로방스에 있는 집을 주어 도라를 쫓아 보냈다. 버려진 도라는 정신발작을 일으켰다. 그녀는 훗날 정신병에서는 회복되지만 피카소를 만나기 전에 자신이 추구했던 사진과 그림의 세계로는 되돌아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도라에게 피카소는 파멸로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정원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Femme Assise dans un Jardin)〉, 1938년, 캔버스에 유화, 130×97cm.
피카소가 도라 마르를 만난 것은 그 전 애인인 마리-테레즈 월터가 자신의 딸을 낳은 1935년이다. 이 그림은 도라 마르를 만난 지 3년쯤 되었을 때 그린 것이다. 1941년에 그린 〈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보다 3년 앞서 그린 작품이다. 두 그림 모두 모델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억세고 강인한 느낌의 이 여성이 한 사람, 즉 도라 마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입체파 특유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입체파 그림은 여러 시점에서 본 사물을 한 평면에 그려 넣어 사물의 형태가 여러 개의 도형으로 쪼개진 듯 보인다. 정원에 있는 도라 마르를 그린 것이라 뒷배경에 갖가지 식물 형상이 보인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파란 외투를 입은 자화상〉, 1901, 캔버스에 유채, 81×60cm, 프랑스 파리 피카소 박물관.
"좋은 예술가는 따라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
- 파블로 피카소 -
"다른 사람이 글로 자서전을 쓸 때 나는 그림으로 내 자서전을 쓴다."
- 파블로 피카소 -
이날 녹화에선 ‘게르니카’가 완성되기까지 조력자가 되어준 인물,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김지윤은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가 피카소와의 첫 만남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 행위를 선보였다는 ‘썰’을 전했는데 이야기를 들은 김구라는 “예술가들의 광기”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피카소와 도라는 첫 만남만큼이나 강렬한 예술적 시너지를 보여주었다. 도라 마르는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작업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피카소는 ‘게르니카 폭격 사건’을 접하고 슬퍼하는 도라 마르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우는 여인(La Femme qui pleure)’이란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게르니카’ 속 인물들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는데. 피카소는 전쟁의 참상 속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한국에서의 학살(Masacre en Corea)〉, 1951, 패널에 유채, 110x210cm, 피카소 미술관, 파리.
한국에서의 학살(스페인어: Masacre en Corea)은 파블로 피카소가 1951년 그린 그림으로 6.25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캔버스 왼쪽에는 벌거벗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오른쪽에는 이들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있는 철갑 투구의 병사들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전쟁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드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808년 5월 3일의 총살' 은 에스파냐 민간인 5,000여 명을 학살한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다. 1808년 에스파냐를 침략한 나폴레옹은 에스파냐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형을 왕으로 앉혔다. 이에 에스파냐인들은 마드리드 봉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전국적인 저항을 전개하였는데, 나폴레옹 군대는 저항하는 에스파냐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고야는 희생자들의 공포스런 표정과 총을 쏘고 있는 군인들의 무표정한 대조적인 모습을 통하여 전쟁의 야만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하였다. 이것은 피카소에게 여향을 주어 게르니카나 ‘한국전쟁’같은 전쟁참상을 그리게 하였다.
전쟁과 평화를 향한 피카소의 시선은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에까지 닿는다. 노년의 피카소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작품을 남겼는데, 바로 한국의 평화를 염원하며 그린 ‘전쟁과 평화’와 6.25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이렇게 피카소가 그림을 통해 계속해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반전을 이야기한 데에는 시대적 영향이 크다. 20세기는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폭격이 끊이질 않던 시대였다. 이처럼 계속되는 비극 속에서 피카소는 그림으로 전쟁에 맞선 것이다.
예술의 역할에 대해 피카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가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일에 무관할 수 있습니까? 그림은 아파트나 치장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은 적과 싸우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하나의 무기입니다”
21세기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여전히 ‘게르니카’가 전하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게르니카’는 폭격당한 모든 도시에 대한 그림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2022년 ‘게르니카’는 UN 안보리에서, 세계 곳곳의 반전 시위에서, 폭격당한 우크라이나의 다리에서 평화를 향한 목소리와 함께 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1966년 파블로 피카소(게르니카) 단편 우표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 파블로 피카소 -
"라파엘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쳤다"
- 파블로 피카소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년. 캔버스에 유화, 243.9233.7cm, 뉴욕현대미술관, 미국 뉴욕.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은 피카소가 1907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뉴욕 근대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1906년부터 1년간에 걸쳐 제작된 미완성의 대작인 이 작품은 작가 피카소의 화력(畵歷)에 중요한 전기를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회화로서도 기념비적 가치의 전환을 의미하는 의미 깊은 작품이다. 아비뇽이란 바르셀로나의 서민가에 있는 마도로스 상대의 창녀가 출몰하는 뒷거리의 명칭이며 화면에 그린 것은 이 뒷거리에 있는 창부들이다.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출처: KBS1 ‘예썰의 전당’(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사진=KBS 제공, Daum·Naver 지식백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