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월드컵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경쟁이 막을 올렸고,
이는 남미지역 '전통의 강호' 우루과이도 예외가 아니다.
통산 2차례 우승 전적을 보유하고 있는 우루과이는
그러나 현재 남미예선 하위권으로
순위가 곤두박질치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1930년 월드컵 원년대회 우승에 이어 195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2번째 우승을 차지한 우루과이의 위상은 대단하다.
특히 17번의 월드컵 역사 속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팀이
단 7국가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우루과이 축구의 수준을 결코 평가절하 할 수 없다.
1950년 월드컵은 우루과이 국민들에게는 더더욱 잊을 수 없는 대회였다.
남미를 넘어 세계적인 강호이자 남미의 라이벌인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고 우승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브라질 축구의 메카로 꼽히는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경기였다.
당시에는 토너먼트를 통한 결승전이 아닌 결선 라운드를 통해
우승을 가리던 방식이었는데
우루과이는 마지막 경기였던 브라질전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저력을 발휘하며 막판 2골을 터뜨려 멋진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이후 우루과이는 브라질과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등에서
계속해서 대전했지만 브라질의 홈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아직 한 차례도 기록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루과이의 2006년 독일월드컵 지역예선 행보는 심상치 않다.
예선의 절반 정도 일정을 소화한 가운데
비록 승점 차이가 심하지는 않지만 7위에 쳐져 있어
독일행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예선 초반 남미에서는 비교적 약체로 꼽히는 베네수엘라에
홈에서 0-3의 완패를 당했고 이어 페루에게도 충격의 1-3 패배를 당했다.
또한 6월 초에 벌어진 콜롬비아 원정에서는
치욕의 0-5 대패를 당하기까지 했다. 콜롬비아전에서의 대패 이후
우루과이는 10개팀이 참가하는 남미 예선에서
9위까지 추락하는 망신까지 당했으니 이래저래 체면을 구긴 셈이다.
일련의 결과로 지난 3월말 대표팀 감독이던 후안 라몬 카라스코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감독 경질이 단순히 한두 차례에 그치지 않고
이미 지난 5년간 6명의 새로운 감독을 맞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루과이의 문제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라스코의 후임으로 새롭게 우루과이의 사령탑에 오른 인물은
호르헤 포사티(52)였다. 지난 5년 사이에 대표팀을 맡게되는
바로 6번째 인물이다. 일단 그의 등장도
우루과이의 월드컵 예선 성적에서의
뚜렷한 상승 곡선을 보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가 치른 3차례의 예선 경기에서 1승2패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는
그간 실의에 빠졌던 우루과이와 우루과이의 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3위를 차지하며 다시금 남미의 강자다운 모습을 보여준 데다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타깝게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별 라운드는 물론 파라과이와의 8강전까지 보여준
화끈한 공격 축구는 그간 실망을 안겨준 자국 국민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받았다.
포사티 감독의 색깔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대표팀이 본궤도에 올라가고 있기 시작한 시점이지만
우루과이는 현재 또 다른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는 바로 다름 아닌 자국 리그의 파행적인 운영이다.
포사티 감독이 부임하기 전인 3월을 전후해 우루과이 리그의 선수들이
수도인 몬테비데오를 중심으로 리그의 파업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리그가 중지되었음은 물론 파업 기간이 무려 40여일이나 지속되면서
리그는 완전히 뒤죽박죽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국가 대표팀은 물론 한 나라의 축구에 근간이 되는
프로 리그가 제 모습을 찾지 못하면
결국 그 모습이 어떻게 될 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현재는 물론 파업이 끝난 상황이지만 여전히 재발의 조짐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루과이의 이러한 리그 파업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재정 한파는 유럽에만 몰아닥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 한파가 몰아닥치면서
가뜩이나 유럽에 비해 재정적인 기반이 약한 남미의 클럽들 또한
예외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많은 남미의 유망주들이
유럽의 전초 기지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클럽들을 택함으로써
여타 남미 리그들은 그나마 기본적인 팀 최소 유지비 또한
마련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레코바, 체반톤, 포를란 등 훌륭한 재원들을 보유하고도
제 2, 제 3의 이러한 선수들을 발굴
유지할 기반이 없으면 우루과이의 미래도 없는 셈이다.
매년 수십명의 선수들이 우루과이를 떠난 외국리그로 향하는 이유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자국 리그의 황폐한 재정 상황 때문이다.
극히 일부의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프로 선수라고도 부르기조차
민망한 월봉 미화 1,000달러 정도의 돈을 받고 있는 것이
우루과이 리그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제때 지급되지 않고 밀리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니
선수들이 파업을 단행한 것이나 기회가 닿으면 무조건적으로
외국 리그로 향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다.
현재는 파업을 철회한 상황이지만 그
렇다고 여건이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도 전혀 없다.
지난 코파 아메리카에서 3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 우루과이지만
우루과이 축구 협회가 선수들 각자에게 지급한 돈은
단지 400달러에 불과했다는 점만 봐도
바닥을 드러낸 우루과이 축구 협회의 재정 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루과이를 양분하는 두 명문 클럽인 나시오날과 페냐롤간의 맞대결이
열리는 날에도 경기장은 파리가 날릴 정도로 텅텅 비어 있는 것이
요즘 자국 리그의 현실이다. 너무나도 비싼 입장료가 그 이유이다.
클럽들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적으로 경기 침체에 빠져있어 국
민들이 축구 경기 한 경기를 위한 지갑을 열기에도
벅찰 정도라는 이야기이다. 돈을 벌 수 없는 자국 리그를 떠나
유망주들이 외국으로 저마다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자국 리그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게 되고
리그 전체적인 수준이 저하되었다.
따라서 남미 클럽들의 경연장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주객이 아닌 방관자로 전락하면서 관중들이 더더욱 외면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루과이의 모습이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의 우승이 근 20년 동안
1998년 나시오날이 전부였을뿐 우루과이 팬들의 자국 리그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멀어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사실이다.
90년대 후반인 97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99년에는 브라질에 이어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잠시나마 부활의 날개짓을 했던 우루과이 축구가
현재의 난관을 뚫고 다시 한번 그때의 저력을 발휘하며 과거 화려했던
월드컵에서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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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다리오실바는 어떻게 지내시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