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할미꽃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동강 주변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의 특산 식물이다.
꽃은 4월에 피고, 잎은 7~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강할미꽃 전설
동강할미꽃에는 전설이 전해 옵니다.
동강가 어느 할머니가 어렵게 손자를 키웠습니다.
아이는 자라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그는 때목군이 되어 강물을 타고 한양으로 내려갔습니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중수하면서 많은 목재를 조달했는데
영월 주위에서 벌채해서 강을 따라 실어 날랐습니다.
당시 때목을 한 번만 운반하면 일 년을 먹고살 운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때돈을 번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강물에 때목을 띄우고 그 위에서 먹고 자면서 강을 내려가는 일은 무척 위험해서
많은 이들이 강물에 휩쓸려갔다고 합니다.
목재를 운반하고도 돌아오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가에는 주막이 늘어서 있었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주색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남자들은 돌아오는 길에 돈을 모두 탕진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님을 떠나보낸 여인들은 동강가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동강가에서 불리는 많은 아리랑은 이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하며 전국의 장인들을 불러모왔습니다.
궁궐을 짓기 위해 과다한 세금을 징수 해야만 했고 사람이 서울을 드나들며
생활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혹한 현실을 풍자하거나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고
이때부터 아리랑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동강할미꽃은 동강가에서 어렵게 키운 손자를 때목군으로 떠나보내고
그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실족한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 합니다.
지금은 그때 여인들이 부르던 아리랑을 읊조리며 강물은 흘러갑니다
동강할미꽃이 동강에서 자라는 이유
동강할미꽃은 동강에서 자란다기보다 동강 가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강이라는 환경적 조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석회암이라는 알칼리성 토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할미꽃의 특성과도 일치합니다.
수분 스트레스에 약한 식물들이 물 빠짐이 좋은 석회암 지대를 선호하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
즉, 강보다는 석회암 지대라는 조건이 동강할미꽃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강할미꽃처럼 석회암 지대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호석회성 식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 보니 동강할미꽃은 강가의 절벽뿐 아니라 강원도의 깊은 산지에서도 곧잘 발견됩니다.
할미꽃은 왜 할미꽃일까요?
어느 산골에 한 늙은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비록 늙었지만 두 손녀를 예쁘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매일같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큰손녀는 얼굴이나 몸내가 아주 예뻤으나 마음씨가 나빴고,
게다가 질투심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욕심도 많았습니다.
반면 작은 손녀는 비록 얼굴이 못생겼지만 마음씨가 비단결같이 고왔습니다.
그 두 손녀는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도 조금 달랐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기는커녕 매일같이 불평불만만 늘어놓았고,
그러면서 자기몸 치장하는 일에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반면에 작은 손녀는 할머니가 자기들을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할머니의 일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두 손녀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어느덧, 두 손녀는 곱게 자라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그 청혼의 대부분은 큰손녀에게 왔습니다.
물론 큰 손녀가 먼저 결혼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도 큰손녀의 용모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아들의 청혼을 받아들인 큰 손녀는 그 부잣집 아들과 결혼하고
할머니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작은 손녀와 함께 살면서 작은 손녀를 결혼시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혼처는 고사하고 청혼이 들어오는 곳도 없었습니다.
작은 손녀는 할머니가 자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저는 시집가시 않고 이대로 할머니와 함께 살래요."
"얘야, 그런 소리는 두 번 다시 하지 말아라. 내가 죽고나면 네 혼자 살아가기란 무척 힘들단다."
어느날, 작은 손녀에게도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곳은 고개 너머 마을의 아주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심사숙고한 끝에 그곳으로 작은 손녀를 시집보내기로 했습니다.
비록 그 집은 가난했으나 청혼한 청년이 부지런하고 마음씨도 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손녀는 늙은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시집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생각 저생각 끝에 중매쟁이에게 부탁했습니다.
"제가 시집가더라도 할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중매쟁이가 이같은 사실을 청혼한 집에 전하자, 그 집에서는 작은 손녀의 착한 마음과 사정을 알고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큰손녀는 자기의 체면도있고 해서 집으로 찾아가 작은 손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할머니를 모시고 시집간다고 했다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언니." "그건 안돼." 언니의 이 말에 작은 손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되다니?" "네가 시집가는 집은 몹시 가난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집으로 할머니를 모실수는 없단다.
그집에서도 좋아하지 않을 뿐더라 할머니가 그런 집에 가서 살면 고생할 게 뻔하잖니."
"그럼 어떻게...." "내가 돌봐 드리면 돼."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손녀는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작은 손녀가 시집간 후, 큰 손녀를 홀로 계신 할머니를 돌봐드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 찾아가는 일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할머니는 끼니조차 이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렇건만 큰 손녀는 할머니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음씨 착한 작은 손녀가 그리웠습니다.
죽기 전에 작은 손녀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작은 손녀를 찾아 산너머 먼 마을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산고개를 올라가다가 그만 기진맥진하여 작은 손녀가 살고 있는 집을
저멀리 바라보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작은 손녀가 허겁지섭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싸늘한 할머니의 시체를 부등켜 안고 땅을 치며 발을 구르고 슬퍼한다고 해서
돌아 가신 할머니가 다시 살아 올리는 없었습니다.
작은 손녀는 할머니의 시신을 자기기 사는 마을의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봄이 되자 할머니의 무덤가에 이름모를 풀 한 포기가 나오더니 꽃을 피웠는데,
그것은 흡사 할머니의 허리같이 땅으로 굽은 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꽃을 할머니가 죽어서 피어난 꽃으로 믿고 할미꽃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산여행의 여행 블로그
http://blog.daum.net/jwk490/307
첫댓글 두루 두루 잘 보았습니다.
여기 꽃이 더 예쁜네요.
멋진사진 즐감합니다
멋진 사진과... 공부하고 갑니다...^^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출사길에 더 많은
느낌 그리고 고운시선
참으로 신선하네요
먼길 수고 하셨어요
재미있고 , 다시 한번 할미꽃을 보았습니다, 즐감합니다
멋진사진과 여행기 잘 감상 했습니다.
감사 합니다
산여행친구~
수고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전설속에 잠시발길 멈춰봅니다.
멋지게 잘 담은 할미꽃 즐감하고 갑니다 ~
사진도 멋지고
공부도 잘 하고갑니다~
세심한 정성들인 좋은작품 잘 감상하고 갑니다.
멋찐 사진 잘 보고 공부도 많이 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산여행님 반가웠습니다..
몇번 뵈어도 인사만 드렸는데 처음으로 얘길 했네요..
동강 할미꽃 전설과 여러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생전 처음 다녀와 오늘은 하루종일 몸살이 와서 쉬었습니다
좋은 시간 였어요..사진 정말 잘 담으셨어요..^^
동강 할미꽃 전설과 여러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동강에서 할미꽃에 흠뻑 빠지고 온 출사였답니다.
멋진사진 즐감했습니다.
이야기와 함께 멋진작품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