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65) - 양녀
추석에 찾아간 보육원에서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밟히니 임금이 서 대감과 이 참판을 특히 신임하는 건 청렴하고 색(色)을 멀리해 첩살림 한번 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두 사람은 사돈이 되기로 약속했다. 십여년이 흘러 고향에서 이 참판의 딸 지혜와 서 대감의 아들 서 초시의 혼례식이 열려 강원 영월이 떠들썩했다. 신랑 서 초시는 재작년 열여섯살에 소과에 합격하여 초시가 되었고 이 참판의 딸 지혜는 출중한 미모에 사군자 치는 솜씨가 빼어난 요조숙녀다. 고향 영월 서 대감의 넓지 않은 집이지만 장남이라 세간을 내지 않고 아래채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서 초시는 아버지의 권유도 있고 해서 대과를 포기했다. 아버지가 곧 은퇴하고 고향에 내려올 참이라 고향 집에서 부모님 모시고 중농 집안 농사를 챙기며 살기로 했다.
신혼부부는 깨가 쏟아졌다. 신부가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고 삼년 터울로 또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심한 하혈에다 산독으로 친정에 가 병석에 누웠다가 두달 만에 가마를 타고 차남을 품에 안고 시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유증으로 단산(斷産)이 되었다. 의원의 권유가 방 안에서 사군자만 치지 말고 좀 걸어 다니라 해, 장날마다 서 초시는 부끄럽다고 뿌리치는 새 신부 지혜의 손을 잡고 장으로 나란히 걸어가면 동네 아낙네들이 부러워서 넋을 놓고 쳐다봤다. 방물 가게에 들러 노리개다 목걸이다 비단 색실을 사고 요릿집에 가서 너비아니를 구워 먹었다.
집에 올 때 내를 만나면 서 초시는 신부를 업고 개울을 건넜다. 두 손으로 엉덩이를 받치고 건너느라 춘정이 동하면 솔숲으로 들어갔다. 서 초시는 낮에는 머슴들과 논밭에 나가 함께 농사일을 하고 밤이면 가끔 친구들과 저잣거리에 나가 술을 마셨다. 때때로 기생집에도 가지만 주로 주막에서 마시고 떠들썩하게 고담준론을 펼쳤다. 흉년이 들면서 버려진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남의 집 대문 앞에도 저잣거리 길가에도 우마차 위에도 포대기에 싸인 아이가 울었다. 조정에서는 제생원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워 진장(賑場)이라는 보육원을 만들었다.
제생원을 통해 곡식을 보내주고 노비가 고아들을 돌보게 했지만 살 만한 집에서 고아들을 데려가기 바라 여러가지 혜택을 주었다. 어느새 추석에 서 대감의 안방마님이 송편을 한 고리짝 만들어 하인이 지게에 지고 진장에 갔다.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송편을 보고 달려들겠지만 노비의 눈치를 보며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게 마님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이름이 분이라는 세살 난 여자아이 하나는 안방마님이 안으면 유난히 착 달라붙었다. 며느리 지혜도 서 초시와 함께 홍시 한 소쿠리를 들고 진장을 찾았다. 분이가 서 초시 품에 꼭 안겼다.
어느 날 저녁상 앞에서 분이 얘기가 나와 “그 애가 자꾸 눈에 밟히데” 노마님이 말하자 서 초시도 “저도 그래요”, 지혜도 “우리 집에 데려옵시다, 어머님” 하더니 이튿날 세 사람은 아침 수저를 놓자 곧바로 진장으로 가 입양 절차를 밟고 분이를 데려왔다. 오빠 둘이서 새로 생긴 여동생을 너무 좋아했다. 아들만 두 형제가 있다가 딸아이가 생기니 집안에 웃음꽃이 끊어질 날이 없었다. 분이가 무럭무럭 자랐다. 여섯살이 돼 색동저고리를 입고 오빠들 손을 잡고 동네 나들이를 하면 어른들이 세 남매가 빼다 꽂은 듯이 닮았다고들 말했다.
호사다마, 집안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친정집 큰일에 서 초시와 함께 다녀온 지혜가 앓아누웠다. 백약이 무효, 일어나지를 못했다. 서 초시는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지혜 곁에서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다. 댓돌 아래 약탕관 풍로에 부채질하면서도 서 초시는 흐느꼈다. 가을 햇살이 담뿍 내려앉은 방문을 열자 낙엽 한 잎이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초시 어른, 소첩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매월 보름이면 여승 한 분이 우리 집 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숨었다가 대문이 열리고 분이가 안마당에서 오빠들과 뛰어놀면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분이의 생모지요.” 가쁜 숨을 다듬고 “소첩이 죽거든 사십구제만 지내고 탈상을 한 후 여승을 잡아 안방에 앉히세요. 소첩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부인!” 서 초시가 이불 위에 엎어져 통곡했다. 아버지가 삼년을 병석에 누워 빚더미에 쌓였던 집의 장녀가 스스로 돈을 받고 기생집에 동기로 팔려 갔다. 머리를 얹어준 사람이 바로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합방을 한 서 초시였다.
[출처 ] 농민신문 사외칼럼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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