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 덜 ♡
(정의) 있는 돈, 없는 돈 다 쓰고 나면 먹고 죽으려 해도 그럴 돈이 없는 경우를 ‘거덜이 났다’고 표현합니다. 즉, 물질이나 재화의 소비가 심하여 경제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를 말하는 거지요
거덜은 조선시대에 가마나 말을 맡아보는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에서 말을 맡아보던 하인을 가리킵니다. 거덜이 하는 일은 궁중의 행차가 있을 때 앞장서서 앞길을 틔우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따라가며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고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던 하인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 ‘거덜’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체높은지배자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권마성을 외치는 거덜은, 단지 권마성을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수도의 주요 통로였던 종로 주변의 백성들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제 갈 길을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거덜의 발길질에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죠.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길’ 입니다. 이른바 ‘힘없는 백성들, 즉 아랫것’들은 아예 구불구불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이죠. ‘피맛길’은 높은 사람의 말[馬]을 피(避)한다는 데서 온 말인데, 사실은 그 말 옆에 따르거나 앞장서서 거들먹거리는 거덜을 피하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비록 낮은 신분이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에 사로잡혀 몸을 몹시 흔들며 우쭐거리며 걸었습니다. 재산이나 살림도 흔들리면 허물어집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리켜 ‘거덜거린다’, ‘거들먹거린다’ 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는 거덜들의 횡포가 심하여 착취를 당하는 관계로 몽땅 털어 먹었다거나, 거덜났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기도 하구요. 오늘날에는 살림이나 그밖에 어떤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결딴이 나는 상황을 가리킬 때 ‘거덜 나다’라고 사용합니다.
기록에 남는 자료에 거덜은! 관직상 명칭은 견마배(牽馬陪)이며 영조 때 11명이 있었다고 한다.종7품의 잡직이었다네요
피맛길은 종로의 먹거리골목입니다. 종로1가 청진동부터 종로6가까지 였지요. 빈대떡, 해장국 집 등으로 유명하며, 2009년 이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반대가 심하자 종로3가 까지만 다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모셔온 글)
무더위에 건강 살피시고 이방 저방 구경하신 후 댓글도 부탁 드립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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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