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섭이 안정을 찾기를 기다려 스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혜원 대사이고, 여기가 네가 24개월 동안 있을 곳이다. 물론 너의 성취가 빠르면 그 기간은 단축될 수 있지만 기대하지는 말아라. 나는 우리나라 고대 무술인 합격 술의 마지막 계승자다. 그동안 나는 내 무술을 전수해 줄 사람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다가 너희 연대장 도움으로 너를 만났고 너라면 합격 술을 전수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연대장과 협의해 너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연대장도 무술인으로 전통무술에 관심이 큰 사람이다. 그래서 너를 나에게 인계해준 것이다. 합격 술이 얼마나 강한지는 묻지 마라. 그것은 나도 잘 모른다. 아직 누구와 대련을 해본 경험이 없어.
합격 술은 우선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고 그 훈련은 혹독할 것이다. 그래서 네가 참고 견딜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묻겠다. 너는 나에게서 합격 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냐? 심사숙고해서 대답해라. 네가 싫다면 도로 부대로 보내준다.”
“부대에서는 제가 영창 간 것으로 알 텐데요.”
“그거야. 서류가 잘못돼 사람을 착각했다고 하면 될 일.”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 영섭이
“스님이 저를 택하신 까닭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합격 술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유연한 몸놀림이 특징인데 너의 육체나 태권도 솜씨는 유연한 면이 많다. 앞으로 더 많이 다듬어야 하지만.”
“정신교육을 위한 훈련은 어떤 것 입니까?”
“너는 하루에 한 번씩 2시간 동안 매를 맞아야 한다. 한 5개월 동안 어쩌면 더 길 수도 있다.”
“네? 무슨 훈련이 매를 맞는 것으로 합니까?”
“매를 맞으므로 정신력도 강화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격으로 받는, 경우에 자기 몸을 보호하는 기를 기르게 된다. 그 때문에 고통도 크다.”
“죽기야 하겠습니까?”
“글쎄 그야 모르지. 어찌하겠느냐? 배우겠느냐? 그냥 내려가겠느냐? 일단 네가 배우기로 결정하면 도중에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아라.”
“그러면 이곳에 오기 전 산에서 만났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고---”
“어쩜 나도 네가 탐이 났었는지 모르지.”
영섭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저의 군 생활은 어떻게 됩니까? 24개월이 더 연장되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지는 않다. 수색 중대에는 그대로 네 일보가 잡혀 있으니까. 여기에 있는 동안도 군대 생활에 포함된다.”
“합격 술의 계승자가 되면 어떤 일을 하여야 합니까?”
“특별히 주어지는 임무가 있다면 우리나라 정통 무술을 승계하는 것이고 너를 이을 후계자를 찾아 계승시키는 일이다. 그 외에는 특별한 임무가 없다. 혹 네가 합격 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
“전통무술을 승계하라는 말씀이군요.”
“간단히 말하면 그렇지. 이제 내가 너에게 할 말은 다 했으니 결정을 해라.”
“지금 당장 결정을 하기가 어려우니 저녁때까지 시간을 주십시오.”
“알았다. 내가 산사에 내려갔다 저녁때 올 테니 그때까지 결정해라.”
영섭의 신중한 태도가 마음에 든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산사 쪽으로 내려가신다.
혼자 남은 영섭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다.
남자로서 더구나 태권도 유단자로서 다른 무술을 그것도 우리나라 전통무술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으나 매를 맞는 훈련을 하여야 한다니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시간이 자기를 더욱 강하게 하는 시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스님이 자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영섭의 가슴에 걸렸다.
이렇게 저렇게 오가는 생각으로 결정 못 하고 고민만 하는 동안 저녁때가 되어 스님이 올라오셨다.
“자 이제는 결정해라. 어찌하겠느냐?”
“알았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잘 지도해 주십시오.”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런 대답을 하며 나도 이 스님에게 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해보겠느냐?”
“네 해보겠습니다.”
“후회하지 않겠지.”
“설마 스님이 저를 죽이기야 하시겠습니까?”
“또 모르지. 너는 불온 사상자로 잡혀 왔으니까?”
“네?”
“아니다. 농담이야. 하지만 죽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부터 차라.”
하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간 스님은 한쪽에서 부대를 하나 꺼내어 들고나와 쏟았다.
부대에서 쏟아진 것은 토시 모양의 팔찌와 각반 모양의 족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특수한 철로 만들어 인체에 해롭지 않게 된 도구들이다. 이것의 무게는 팔찌가 각각 2.5kg, 족쇄가 각각 5kg이다. 이것을 발목과 손목에 차고 24 개월간 떼지 말아.”
영섭이 그것을 받아 팔과 종아리에 찼다.
팔찌와 족쇄는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팔과 종아리가 조금 굵어 보일 뿐 얼른 봐서는 팔찌나 족쇄를 찼다고 알기가 어려웠다.
15kg을 몸에 매단 꼴이 된 영섭은 그 행동이 완전히 굼벵이가 되어 버렸다.
영섭은 자기의 행동이 우스워 피식 웃음을 웃었다.
“우습냐?”
“네!”
“지금은 웃을지 몰라도 네가 그것 때문에 울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계시는 부모님 외에 누구에게도 편지해서는 안 된다. 정신을 분산시키는 일은 일체하지 마라. 집에도 육 개월에 한 번 정도 안부 편지를 하고 네가 합격 술을 연마한다는 것은 절대로 비밀로 하여야 한다. 부모님께도. 알았느냐?”
“그렇게 비밀로 하여야 할 까닭이 있습니까?”
“합격 술은 우리나라 고대에서부터 전해오는 우리나라 고유 무술이다.
그리고 나중에 설명도 하고 배우며 너도 자연 알게 되겠지만 합격 술은 급소를 공격하는 무서운 무술로 현존하는 무술에 비하여 강하기가 월등한 무술이라 할 수 있어 이 무술이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너도나도 배우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무나 어설프게 알게 되어 이 무술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더욱이 폭력배 집단 같은 곳에서 알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합격 술을 배우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많은 무서운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해서 우리는 엄선된 계승자를 찾아 그 계승자 한 사람에게만 무술을 전수시키는 것이 합격 술의 전통으로 되어있다.
합격 술의 맥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어찌 믿으시고 그런 무술을 저에게 가르치시려 하십니까?”
“그동안 연대장님이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시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서 추천해 주신 거야. 그러니까 나도 믿을 수 있지.“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영섭에 뇌리에 보영이 얼굴과 희수의 얼굴이 지나간다.
그들과도 연락을 끊어야 한다면 이 건 보통 고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그런데 한두 사람도 안 됩니까? 육 개월에 한 번씩이라도?”
하는 물음이 저절로 나왔다.
“너는 지금부터 한 사람에게만 전수되는 우리나라 전통무술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정신이 헤이해서 되겠느냐?”
스님의 질책을 받은 영섭은 머쓱해졌다.
이렇게 해서 영섭의 동굴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부터 영섭은 아침부터 4시에 일어나서 6시 반까지 명상을 하고 밥 짓고 빨래하고 산에 가서 땔나무도 해오고 혜원 스님의 심부름으로 산사에도 다녀오고 여가 시간에는 태권도 수련을 하고는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그것이었다.
빈 몸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갑자기 몸에 15kg을 지니고 하여야 하는 이 생활은 힘이 들었다.
그동안 스님은 산으로 다니시며 약초를 부지런히 캐오셨다.
그렇게 1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스님이 영섭을 부르시더니, 이제는 15kg의 무게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터이니 내일부터는 훈련을 시작한다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아침 명상 후 7시쯤 식사를 마치고 나서 8시쯤 공터로 부르신다.
따라 나간 영섭에게 가벼운 배낭을 메신 스님은 앞에 있는 봇짐을 메고 자기를 좇아오라고 하시며 뒷산으로 향하신다.
봇짐을 들어 본 영섭은 그 무게에 놀랐다.
봇짐의 무게는 적어도 25Kg은 될 것 같다.
이런 무게의 봇짐을 지고 빠르게 산을 오르시는 스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던 영섭은 빨리 따라오지 않고 무엇하느냐는 스님의 독촉으로 봇짐을 메고 일어나 스님을 따른다.
스님은 영섭을 데리고 산을 오기 시작한다.
영섭은 전체적으로 40kg 무게의 짐을 달고 스님을 따라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죽기 살기로 1.0Km 여를 따라가던 영섭은 점점 속도가 늦어지고 나중에는 100m도 못 가서 주저앉아 버린다.
스님은 젊은 놈이 그까짓 것 가지고 그렇게 끙끙거린다고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모양이라며 다 굿 치신다.
영섭의 몸에서는 땀이 물 흐르듯 하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난다.
맨몸으로도 따라가기도 힘든 스님을 40Kg을 달고 따라가려니 말이 되는 가? 영섭은 더는 못 갈 것 같은 한계에 다다르자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제야 스님이 쉬는 시간을 주신다.
이렇게 해서 정상에 도착한 것이 11시 반, 동굴을 떠난 지 3시 반 만에 깎아지른 비탈과 돌길을 걸어 560여 미터 높이에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정상에서 쉬는 동안 스님은 배낭에서 자기가 만든 대나무 젓가락을 다섯 묶음 꺼내더니 땅에다 묻으시며 그 묻힌 곳을 영섭에게 잘 보아두라고 이르시고 내일부터는 네가 혼자 와서 이 젓가락을 하나씩 가져와야 한다고 하신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다시 봇짐을 진 영섭은 스님과 같이 하산을 시작했다.
다리가 풀린 영섭은 하산이 등산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어렵게 내려오는 영섭이 딱하게 보였는지 스님이 나무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주신다.
나무 지팡이를 짚으니 조금 덜 힘이 드는 것 같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그래도 올라갈 때보다는 덜 걸려 3시간 만에 내려왔다.
동굴에 도착하여 좀 쉬려고 하는 영섭을 데리고 산사 근처의 계곡으로 가서 같이 목욕을 하고 동굴로 돌아오신 스님이 차를 한잔 끓여서 주시며 마시고 쉬고서 6시에 저녁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하라고 하신다.
차를 끓일 때부터 향긋한 냄새가 나더니 찻잔을 입에 대니 향기가 코에 진동하고 입안에 든 차는 전신을 상쾌하게 한다.
한잠을 자고 5시에 일어난 영섭은 아직 피로하지만, 생각보다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이 다려주신 차 덕분인 것 같다.
저녁 후 7시에 공터에서 스님이 부르신다.
공터로 나간 영섭에게 태권도 식으로 대련을 하자고 하시며
“지금부터 너의 모든 실력을 발휘하여 나를 공격하며 또 나의 공격을 막아라. 그리고 내가 때리는 곳을 기억하여 두어라. 오늘은 모두 열 곳을 열 번 때리겠다.”
하셨다.
“스님! 그러면 팔찌와 족쇄를 풀고---”
“쓸데없는 소리. 그것은 네가 여기 있는 동안은 물론 어쩌면 거의 평생을 하고 있어야 한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 건 네가 나중에 알게 될 일. 그럼 시작한다.”
하고 대련이 시작되자 영섭은 일방적으로 맞을 수뿐이 없다.
스님은 젊은 영섭보다 훨씬 날렵하시어 영섭이 빈 몸으로 대련을 하더라도 도저히 상대가 안 될 터인데 15kg의 무게를 달고 스님과 대련을 하니 이것은 도저히 적수가 안 된다.
스님은 영섭을 데리고 장난치는 것 같다. 마치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어린이를 데리고 노는 것 같이.
그런데 그 손길에 맞는 영섭의 고통은 심하여 맞을 때마다 아 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팔찌와 족쇄의 무게만 아니라도 좀 더 민첩하게 스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더욱이 손목과 발에 찬 팔찌와 족쇄의 무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무거워지고 나중에는 팔다리가 천근같이 무거워 팔을 들고 발을 뻗을 수가 없다.
등과 배, 다리와 팔을 차례로 때리시는 스님의 매는 일정한 속도와 강도를 가지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자 이제 마지막 10번째다. 지금까지는 너의 몸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부터 정말로 때리는 것이고 진짜 고통은 지금부터야.”
말을 마치신 스님이 일장을 때리자 영섭은 가슴이 턱 막혀 주저앉았다.
10여 분을 고통과 싸우다 일어나려는 영섭을 스님이 또 일장을 치자 이번엔 영섭이 뒤로 벌렁 누어서 소리도 못 지르고 끙끙거린다.
다시 10여 분이 지나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아 일어나는 영섭을 스님이 다시 일장을 치자 이번에는 모로 누어 옆구리를 잡고 신음하는 영섭
이것은 무술 훈련이 아니라 정말 매타작이고 매타작도 극심한 고문에 가까운 형벌이다.
이렇게 자빠지고 엎어지고 구르고 뒹굴고 하기를 열 번 마침내 대련이 끝났을 때 고통을 참느라고 찌그린 영섭의 얼굴은 흘린 눈물과 콧물 그리고 땀으로 때 묻고 쭈그러진 깡통같이 되고 땅바닥에서 구르고 기고 발버둥 친 옷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영섭은 한참을 땅에 누워있다가 스님이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났다.
“괴로우냐?”
스님의 온화한 음성에 고통에서 겨우 풀려난 영섭의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후회하느냐?”
스님이 조용히 물으신다.
영섭은 사실 후회하는 마음이 컸다.
훈련의 고통이 이렇게까지 크리라고 생각도 못 했다.
“네.” 영섭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 하다.
“그만두고 싶으냐?”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러나 저도 무술을 하는 사람, 참을 수 있는데 까지 참아 보겠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영섭의 대답이다.
아니 어쩌면 오기인지 모른다.
“그래, 그러면 목욕하고 오너라.”
산사 계곡으로 내려가 몸을 씻는 영섭은 온몸이 탈진 상태이고 몸의 여러 군데가 아파 손을 델 수가 없고 팔과 다리에는 근육이 굳어지고 알통이 생겨 발을 들고 걷는 것도 손을 들어 씻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지키미님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