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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황녀님의 호위기사, 그 남자>
공작의 업무와 겸임하고 있는 기사단의 임무가 막중하지만 호위 업무를 위해 황제가 휴가를 내려줬다는 건 다 거짓말, 완벽한 거짓말이다. 아버지는 옛날부터 사람을 이리저리 부려먹는 데 능숙했다. 라나는 오른손에 붕대를 더 단단하게 감으며 오로지 서류에만 집중하고 있는 청남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힐끗 훔쳐보았다. 종이가 아까운 듯 앞장부터 뒷장까지 빽백히 채운 까만 글씨를 눈이 아프지도 않은지 순식간에 읽어내리고 일필휘지- 화려한 서명을 믿을 수 없는 빠르기로 적어넣는 동작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 멍하니 빠르게 움직이는 남자의 손을 응시하느라 힘이 빠진 손에서 데구루루 굴러가는 붕대를 알아채지도 못한다. 툭. 별안간 남자가 쉴새없이 움직이던 펜을 놓고 소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한 눈 팔지 마십시오. 붕대는 다 감으셨습니까?"
"감았어요."
주워주는 붕대를 낚아채며 부루퉁하게 말하는 소녀의 가녀린 손목을 남자는 망설임없이 휙 치켜올렸다. 이리저리 돌려보고 매듭부분을 꼼꼼하게 눌러보고, 잘 감았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내가 매듭도 제대로 못 매는 어린앤가 뭐. 하고 입을 삐죽여보지만 한 손으로 매듭 묶기란 정말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서늘한 손이 가볍게 끝부분을 잡아당기자 스르륵, 쉽게 풀린다. 라나는 낭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그는 질책 대신 자신이 직접 붕대를 다시 묶어주었다. 아까의 엉성한 느낌과는 달리 붕대가 꽉 조이는 느낌으로 소녀의 손목을 감싼다.
"당분간은 붕대로 보호대를 대신하겠습니다. 황궁에 있는 보호대를 구하려니 아슈펠 님이 전부 중량화 마법을 걸어놓으셨더군요."
아슈펠은 6서클의 마법사로 황실 마법사단 버베인의 부단장이다. 공작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미 황궁 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이지. 하긴, 그 정도로 능력 좋은 사람이 꼭 필요한 인맥조차 쌓지 않을 리가 없다. 라나는 허옇게 탈색된 수염을 휘날리며 사람좋게 웃는 노마법사를 떠올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뭐라고 했지? 중량화 마법이 뭐라고?
"난 괜찮아요. 중량화 마법이 걸려있으면 훈련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벼운 한숨을 눈치챈 소녀는 커다랗게 눈을 떴다. 혹시 내가 말을 잘못 한건가? 기사단이 다 써야 해서 남은 게 없는데, 나한테 그렇게 말하기는 미안하니까 돌려 말한 거라던지. 빈틈없어 보이는 남자가 내쉬는 한숨은 라나에게 상상이 잘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 라나는 입을 딱 벌렸다.
"그 중량화 마법이라는 게 착용하는 사람의 몸무게만큼 무거워지도록 설정된 모양입니다. 기사 하나가 멋모르고 착용했다가 손목뼈가 부러져서 아슈펠님께 항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만, 수량이 워낙 많아 시일이 좀 걸린다고 하더군요."
"아하."
라나는 자신의 오른 손목에 솜씨좋게 감아져있는 붕대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남자가 한숨을 내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득 손목 한 부분에 자신이 매달린다고 생각하자 끔찍해졌다. 아, 라나는 그제서야 아슈펠에 대한 것이 하나 더 떠올랐다. 괴짜 마법사 아슈펠 크로이카. 평범한 마법도 엉뚱하게 걸어 주위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게 그의 취미이자 특기다. 그 기사만 불쌍하게 됐다. 잠시 이름모를 기사에게 동정을 표하던 소녀는 곧 손에 들리는 양동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윽, 이게 뭐에요?"
"들고 계십시오."
"그러니까 이걸 왜 들어야 하냐고요?"
남자는 대답없이 손에 들린 양동이에 물을 천천히 가득 부었다. 그리고 준비된 다른 양동이도 소녀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마찬가지로 물을 부었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에 라나는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소녀가 비틀거리는 과정에서 튄 물방울이 연무장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모래를 적셔 갈색 얼룩을 만들어낸다. 이럴수가, 고작 양동이에 물을 채워 넣은 것 뿐인데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 중력의 무게와 맞물린 양동이의 무게는 배의 배가 되어 소녀의 목을 내리누른다. 라나는 꺽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왜…드냐구…요!"
"훈련입니다. 허리를 똑바로 펴고 제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그 자리에 계시면 됩니다."
"검…술 가르쳐…준다면서…!"
"기본을 다져놓는 게 순서입니다."
기본이 안된다는 데 더 무엇을 말하리오. 라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점점 흔들림의 강도가 심해지는 몸을 바로하려고 애썼다. 엘로디가 언니의 실력이 어떠하냐고 물었을 때 기본은 탄탄하다고 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면서도 일말의 가책도 없는 듯 남자는 무심히 내려두고 온 서류뭉치를 집어들었다. 사각사각, 끙끙.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보내며 남자와 소녀는 오전을 함께한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 라나는 부들부들 비명을 질러대는 온 몸의 근육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 박힌 듯 꿋꿋이 버텼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서류 한 뭉치를 다 처리하면 잠깐 사라졌다 새로운 일거리를 가져와 또다시 처리하는 남자의 모습과,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의 강도로 시간을 가늠할 뿐이다.
라나는 불평 한 마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한 손에 밖에 들리지 않은 양동이의 불균형한 무게로 자꾸 오른쪽으로 기우는 몸만 제자리로 돌리려 애쓸 뿐 내가 배우고 싶은 건 검술이지 이런 단순한 게 아니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역시, 어쩌다 한 번 이쪽저쪽 흔들리는 물이 왠만큼 비었다 싶으면 다가와 물을 다시 채워넣고 갈 뿐 자그마한 소녀에게 격려 비슷한 말조차 하지 않는다. 참 지독한 스승에 제자라고 결론지으며 엘로디는 몰래 지켜보던 몸을 미련없이 돌렸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반 협박에 싫은 티 팍팍내며 이곳까지 왔다. 뒤로 꽂히는 남자의 시선을 한 손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가볍게 차단하고 소녀는 느릿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급급해, 라나는 동생이 몰래 왔다 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비 오듯 흘러 온 몸을 적신 땀에, 연무장의 한 가운데서 여과없이 오래도록 햇살에 노출된 탓에 눈 앞이 까매졌다 노래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중도 포기. 그것은 소녀가 제일 증오하는 것 중의 하나였으니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그만하면 됐습니다."
"아…."
남자의 말이 귓가를 파고듬과 동시에 온 몸을 짓누르던 무게들이 사라졌다. 눈부신 빛이 두 눈을 아프게 찔러댄다. 라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그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얗게만 보이던 세상이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제 색을 찾는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우드득, 흡사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격렬한 소리가 났다. 라나는 민망한 웃음을 띄고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으로 뒷목을 꾹꾹 주물렀다. 찌르르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퍼진다. 다리도 탁탁 바닥을 차며 풀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이 신발에 엉겨붙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끝내기 몇분 전에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으니까.
"끝에서 끝까지, 전하께서 내실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르기로 움직여 보십시오."
"에?"
난데없는 남자의 말에 의아한 시선을 던져보지만, 대답은 없다. 새삼스레 무례하다! 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라나는 군말없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연무장 끝에 섰다. 무지막지한 무게가 사라져서 그런지 몸이 한결 가볍다. 정말로 끝까지 뛰어가냐고 물어보듯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포착하고는 한 발을 내딛어 크게 도약했다. 그리고, 놀랐다.
"우아아앗!"
다시 땅에 발을 디딜 새조차 없었다. 그대로 화살이 쏘아져 나가듯 앞으로 쭉 나아갔다.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라나는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그 순간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착지하십시오."
"하, 하지만 어떻게…!"
"발을 땅에 대시면 됩니다."
너무도 당연한 대답에 라나는 인상을 살풋 찌푸렸다. 그러나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오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탁. 가벼운 착지. 그 흔한 흔들림도 없다. 그저 평소대로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선 것 처럼 조용했다. 잠시 넋을 잃어버린 라나는 바로 코앞에 있는 나무의 까끌한 표면을 바라보다 커다란 눈을 무의미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방관자의 전형적인 자세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남자를 봤다.
"그러니까, 내가 똑바로 멈춘거군요."
"바람의 압력을 이겨내신 것을, 중심을 제대로 잡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전혀 축하하는 어조가 아니었지만 라나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휴식을 취하지 못한 몸이 아프다고 거칠게 반란을 일으키는 소리에 머리까지 띵했지만 기쁘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르기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빠르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착지할 수도 있다. 어떻게 이만큼 짧은 시간안에 성과가 나오는 건지 스스로가 신기했다. 그런 소녀의 궁금증을 남자는 간단하게 해결했다.
"기본이 좋기 때문입니다."
"아까는 기본을 다져놓는다면서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전하는 스피드에 대한 기본은 있지만 몸의 중심을 잡는 기본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의 중심을 바르게 잡고 그 빠르기를 다듬는 훈련을 한 겁니다."
아니, 이러면 내가 화를 낸 게 무안해지잖아? 라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까딱 고개를 숙였다. 빈말로 내뱉은 건 아닐까, 설마 제대로 가르쳐 줄까- 약간의 의심마저 모두 사라졌다. 양동이를 들으면서 가뿐해진 오른손 덕에 할아버지가 주신 그 단도를 들어도 무겁지 않을 것 같다.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인 것 같으니까, 로르네프로 돌아가서 일단 씻고봐야지.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던 라나는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오찬 드시고 다시 오십시오.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전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
"배우기 싫으십니까?"
"…아니요."
"그럼 오십시오."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 힘없이 걸음을 옮기던 라나는 뭔가가 등으로 다가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날아오는 것을 낚아챘다. 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다니, 공작에게 매우 미안했다-손에 감겨오는 폭신한 느낌은… 약초뭉치?
"욕조에 풀어놓고 몸을 담그시면 훨씬 나을 겁니다."
"고마워요, 듀르한 공."
말 한마디로 사람 기분을 지옥까지 추락시키다가, 가벼운 행동 하나로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정말로 반칙이야. 속으로 읊조리며 서서히 고파오는 배를 쥐고 라나는 남자를 뒤로하고 로르네프로 달려갔다.
"아슈펠님의 아티펙트가 그래도 효과는 있었군."
아르카센 F. 듀르한. 1황녀의 검술선생직을 맡은 그 남자는 밑바닥에 복잡하게 마법진이 그려진 양동이를 보며 어두운 기운이 풀풀 날리는 미소를 지었다.
좀 있으면 오찬 시간이 끝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고나 할까? 간신히 엘로디가 음식을 다 휩쓸어버리기 전에 도착한 소녀는 새로 음식을 준비해야 겠다며 나오려다 말고 다시 위생용 장갑을 착용하는 주방장에게 눈인사로 고마움을 표하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막 커다란 닭다리를 하나 집어들어 공략하던 엘로디는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일까?"
"…밥이나 먹어!"
퍽.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나간 오른손이 동생의 뒤통수를 가벼이 토닥여주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자신이 막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자업자득이다, 동생아. 아프 뒤통수를 문지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있는 동생에게 경고가 담긴 상큼한 미소를 지어준 라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멀리서 시립해있는 시녀들이 이상하게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엘로디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거의 결벽증에 걸리다시피 한 시녀들이 당장에 경기를 일으키며 씻으라고 잔소리를 퍼부을 텐데.
엘로디가 툭하니 말했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벌써 소문 쫙 퍼졌는데. 새로운 듀르한 공작이 1황녀한테 검술 가르친다고."
"소문이 퍼졌다고? 어떻게?"
애꿎은 스파게티의 면을 포크로 사정없이 휘저으며 엘로디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 언니랑 그 공작님이 훈련하는 거 영상석으로 몰래 보다가 능구렁이 내무대신한테 들켰어."
라나의 얼굴이 소태 씹은 것 마냥 굳었다. 내무대신 제이한 T. 아자르. 그가 누구던가, 황태자의 최측근으로써 정작 당사자들은 눈곱만큼도 관심없는 황위를 1황녀가 노린다 어쩐다 하는 헛소문을 만들어 결성된 1황녀 견제파의 수장이다. 소녀에게 세르틴데라는 이름뿐인 여대공의 작위를 내리라 재촉한 것도 그 영감탱이였다. 라나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도움이 되는 일이 없구만. 일단 그 전에…
"에르로디엔 라마야."
"미안! 미안해! 난 어쩔 수 없었다고! 아버지가 부득불 우기시는데 내가 어떻게 거역해. 응? 난 잘못 없다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싹싹 비는 동생을 보자니 화 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다. 소녀는 포크로 살이 두둑하게 올라있는 스테이크를 푹 찔렀다. 그 적나라한 소리에 엘로디가 움찔하거나 말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을 한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난리가 났겠네."
"응. 지금 회의 들어갔을 거야. 그 능구렁이, 옛날부터 언니 옆에 힘 되는 한 사람이라도 붙어있는 걸 못봤잖아."
"그 덕에 누린 자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
한낱 귀족가의 영애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곁을 지키는 호위기사가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제국의 황녀쯤 되면 한 명은 무슨, 친위부대를 결성할 만큼의 기사가 모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 황녀는 그 어떤 것도 누릴 수가 없었다. 라나는 아우스탄디의 기사들이 알아서 지킬 텐데 뭣하러 호위기사를 따로 두냐는 것이고-그 작자는 황궁에 사병을 들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 엘로디는 어차피 황위 계승권도 없는 허울뿐인 2황녀를 노릴 인간들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기사따위는 필요없다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그리고 황제의 노기를 가라앉힌 것도 두 황녀다. 기사가 지키지 않는 몸은 혼자서 지키면 된다고, 나는 자유로운 게 훨씬 좋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접시에 부딪힌 포크가 끼리릭,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라나는 제대로 된 스승을 귀족들의 혀놀림으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아르카센 F. 듀르한 공작은 나의 호위기사라고 도장을 찍어둬야 했다. 부수적인 효과. 그래, 그 말 마음에 든다. 자유를 제한 당함으로써 딸려오는 다른 많은 혜택들을 떠올리며 라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나서야겠어."
"뭐? 하지만, 지금은 회의가 한창일 텐데…."
"그래서 가는거야. 엘로디 넌 마저 밥이나 먹어. 마키!"
멀리 떨어져 있던 시녀가 부름에 급히 다가왔다.
"네, 라나님."
"최대한 빨리 나를 단장시켜줘. 에르페 궁으로 갈거야."
"분부 받들겠습니다."
시녀와 주인이 빠른 속도로 식당을 빠져나간다. 홀로 남은 엘로디는 털썩, 온 몸에 힘을 빼며 자리에 앉았다.
"언니가 가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고, 정말."
(2)
모든 동작이 빠르게 이어졌다. 라나는 땀에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먼지가 뒤덤벅된 몸을 깨끗이 씻어내리는 시녀의 손을 재촉했다. 남자가 준 약초뭉치는 탁자 위에 놔둔 채 손도 대지 못했다. 한가롭게 목욕을 즐기기엔 시간이 없었다.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회의가 끝나버릴테니까. 시녀의 손에 들린 수건으로 손수 머리를 흘러내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한 라나는 언제나처럼 온 몸을 가리는 고아한 드레스를 입었다. 목까지 올라오는 끈단추를 능숙하게 잠그고, 아래로 갈수록 화려하게 퍼지는 풍성한 치맛자락을 잘 다듬었다. 마침내 어느정도 물기가 마른 머리를 틀어올려 에메랄드로 된 핀으로 고정하자마자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어떻게든 회의가 끝나기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 그 전에만.
소녀는 마키가 남몰래 쥐어준 은빛 단도를 치렁치렁한 소맷자락 속에 깊숙히 숨겼다.
◇ ◇ ◇
"아니됩니다, 폐하! 1황녀전하의 손에 감히 검을 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서나 예외는 있네. 후작, 그대도 잘 알텐데? 암흑기에 전장의 선봉에 선 누님들의 혁혁한 공을."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입니다, 폐하! 동대륙, 서대륙 모두가 폐하의 영명한 통치 아래 빛나는 제국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지금입니다. 평화로운 이 때에 황녀전하께 검술을 가르치다니요! 아니됩니다!"
황제는 치받는 노기를 숨기지 않으며 세치 혀를 서슴없이 놀리고 있는 내무대신을 노려보았다. 언제나 아우스탄디 대공을 누르지 못하고 자신이 권력의 정점이 아니라는 것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작자다. 엉뚱하게 아무 잘못도 없는 맏딸을 걸고 넘어지니 천불이 난다. 황제는 괄괄한 성정 그대로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겨우 내리 누르며 비어있는 아우스탄디 대공의 자리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무관심한 청남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힘주어 봤다. 말로는 아우스탄디 대공의 편이라고 소리치는 잔챙이 귀족따위는 필요없다. 그 치들은 이미 대공의 부재를 알아차림과 동시에 회의실을 쥐고 흔드는 아자르 후작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었다. 황제에게는 딸의 호위를 맡긴 새로운 듀르한 공작의 지지가 필요한데, 정작 공작은 억지로 호위를 맡긴 것이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싫다, 좋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 후작이 펄펄 날뛰는데도!
"듀르한 공작, 그대는 뭐라 할 말이 없소?"
아자르 후작은 점점 자신에게 기울어가는 회의 분위기를 믿고 있었다. 하늘이 그의 편인지 앙숙인 아우스탄디 대공도 없을 뿐더러, 이제 갓 공작의 위를 받은 새파란 애송이는 말 한마디조차 꺼내지 않는다. 흥, 후작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마검사가 알면 뭘 알겠어. 검만 다룰 줄 알면 그뿐-. 그래도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건 것은 어느정도의 체면치레다. 너도 그 골칫덩이 황녀를 떠맏고 싶지 않을테니 알아서 이 떡밥을 잘 물라는. 그리고 그러한 속을 모를 리 없는 황제는 노성으로 공작의 입을 막았다.
"시끄럽소! 공작은 이미 내 명을 받아들였소! 후작은 지금 듀르한 공에게 황명을 거역하라 하는 것인가!"
"폐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거역이라니요! 소신은 그저…"
회의를 빙자한 무의미한 황제와 내무대신의 기싸움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
방음이 꽤 잘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과없이 모든 소리가 들릴 정도로 험악한 회의실의 분위기를 간파한 라나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회의는 끝나지 않았지만 저기서 자신이 나서봤자 상황이 타개될지조차 불분명하다. 오히려 황녀가 회의에 참석해 국정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이런 개소리가 또다시 떠돌지도 모르지. 몸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는 금빛 드레스를 꼭 말아쥔 손에서 땀이 슬밋 배어나온다. 라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전하, 고할까요?"
"잠깐만. 잠시만- 내가 여기 들어가도 별 문제가 되진 않는거죠?"
테르반 펠레스 2세. 지금의 황제를 근 20년간 보좌해온 시종장은 주름진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띄웠다. 아직은 어린 황태자와 황녀들의 성장을 빠짐없이 지켜봐온 그다. 언제나 당당하던 1황녀의 풀 죽은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그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늘 그래왔듯 믿음이 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전하께서는 정당한 황위 계승권을 가진 1황녀십니다. 이 제국에 전하께서 가지 못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좋아요, 고해줘요."
"라온제나 세르틴데 1황녀 전하께서 드십니다!"
라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맨살에 닿는 차가운 은빛 날에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서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린 문으로, 소녀는 이제까지의 망설임을 지워버리고 성큼 발을 내딛었다.
제일 처음 마주친 건 놀라움으로 커진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였다. 딸은 아버지에게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놀란 여타 다른 귀족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왕 가장 가까이에, 아우스탄디 대공 다음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도 훈련이 끝나자마자 불려 온 건지 헤어지기 전 모습 그대로다. 라나는 마주쳐오는 까만 눈을 피하지 않고 보며,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여유도 부렸다. 소녀의 생생하게 빛나는 레드와인 빛 눈동자는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아자르 후작이 정신을 차린 건 막 황녀가 공작의 곁에 다가섰을 때였으니까.
"전하! 어찌 전하께서 폐하와 저희들이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 오신 겁니까!"
아자르 후작은 새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라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는 하지만 황제가 있고 다른 귀족들이 있는 앞이다. 일개 후작밖에 되지 않으면서 감히 황녀에게 저렇게 언성을 높일 수 있는 이가 과연 신하라고 할 수 있을까? 라나는 호통을 치려는 황제의 앞을 조용히 가로막고 얼굴이 벌개진 후작에게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국정을 논하고 있었나요, 후작? 바깥에서 듣기로는 나와 내 호위기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같던데요."
"그…!"
뭐라고 항변하려는 말도 웃는 낯으로 단호하게 잘랐다.
"아니면, 1황녀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소리를 질러대신 것인지? 이런, 어쩌나요, 후작. 안타깝게 됐군요. 남녀가 평등한 제국법상 정통한 황후의 몸에서 태어난 나에게도 황위 계승권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국.정.을.논.하.는. 자리에도 참.석.할.권.리가 있답니다."
치미는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눈동자를 허옇게 까뒤집는 후작을 보며 라나는 천진한 미소를 얼굴 가득 띄웠다. 문 앞에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소녀는 이곳에 없다. 높디 높은 황좌에 앉아서, 첫째딸이 뱀의 혀를 가진 내무대신에게 다치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 못하던 황제는 소녀의 미소 띈 얼굴을 보고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황제는 이제 한결 편하게 푹신한 의자에 기대며, 딸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려고 싫어하는 귀족들이 득실거리는 회의장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함이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너의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 허나, 단지 회의 중간에 끼어든 이유가 그 국정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엄벌을 면치 못할 게다. 황녀야, 무엇을 제안하려 왔느냐?"
라나는 귀족들의 앞에서만큼은 근엄하게 변하는 아버지를 힐끗 올려다 보며 장난기 가득한 레드와인 빛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 전에 싸늘한 미소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사주로 엘로디가 자신과 공작의 훈련 장면을 영상석에 담아갔고, 그로인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황제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맏딸은 두렵다.
"아자르 후작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황녀인 내가 검을 드는게 못마땅하다지요?"
"전시도 아닌 이 때에 전하께서…"
"후작에게 물은 게 아닙니다."
아자르 후작은 입을 다물고 어룰이 벌개진 채 자리에 착석했다. 또다시 후작의 말을 잘라버린 라나는 후작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오로지 황제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락바락 소리지르며 회의의 분위기를 어지럽히던 후작을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만든 딸에게 기특한 눈빛을 보낸 황제는 후작이 하려던 말을 끝맺어 주었다.
"그렇다. 후작의 말로는 평화로운 제국의 성흥기에 굳이 황녀까지 검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 하였다."
"동대륙 격언에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국이 분열된 동, 서 대륙을 잘 조율해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는 하나 잠시도 마음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것은 정 중앙에 있는 제국이 될 게 분명할 터. 앞일을 알 수 없는 국제정세를 운운하며 검술 수업을 막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회의장은 쥐 죽은듯이 조용했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황녀의 말을 반박하기에는 옳은 이유밖에 없다. 지금은 평화롭다고 하나 서로 상극인 두 대륙이 또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른다. 그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건 제국. 그 중에서도 검을 다룰 줄 모르는 황녀들이다. 두 대륙이 황족들을 인질로 삼아 협조를 요구한 경우는 역사에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귀족들은 재빠르게 바뀐 회의의 분위기를 감지하며 머리를 굴렸다. '싸워라, 싸워라!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공식은 언제 어디서든 적용이 된다. 그것은 아자르 후작과 함께 라나를 견제했던 사디자엔 백작에게도 여실히 빛을 발했다.
"전하. 저희는 단지 전하의 명성에 누가 될까 걱정을 하는 것 뿐입니다."
조용하게 말하는 백작의 말에 악의는 없어보였다. 라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반문했다.
"내 명성에 누가 되다니요?"
"듀르한 공작 각하가 정식 호위기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폐하께서 내게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나요?"
중년의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나는 그 말 속에 숨겨진 뜻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러니까, 결혼 적령기의 황녀가 온전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호위기사- 그것도 젊은 공작에게서 검술 수업을 받는다.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작자들이 온갖 조잡한 소문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라나는 눈썹을 모았다. 황독 모독죄로 이름붙일 만한 내용이지만 가장 큰 문제점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준비해온 것이 있지 않던가? 라나는 치렁치렁한 소매 속에 잘 숨겨둔 단도를 꺼냈다. 헉! 여기저기서 숨 들이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물잔을 뒤집어 깨끗하게 비운 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단도를 움켜쥐고 귀족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대들 앞에서 기사의 맹약을 하겠어요."
은빛 단도가 찬연하게 빛났다. 지금은 자리에 없는 아우스탄디 대공- 라나의 외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소녀에게 직접 건네준 귀한 단도다. 다루기 적당한 크기지만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쓸 생각도 못했던 것이 손에 쉽게 들려있다. 꾸준히 훈련을 거듭하면 다른 단도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설사 지금의 이 맹약으로 훈련을 하기 전에 했던 모든 약속이 무효가 된다 해도 포기할 의향은 전혀 없었다. 소녀 스스로도 느끼고 있듯 황가의 피보다는 아우스탄디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은 황녀보다는 후대의 암살공.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건 듀르한 공작에게서 받는 훈련.
한발 한발, 기다란 드레스 자락이 바닥에 끌리며 부드럽게 물결쳤다. 까만 눈동자가 알 수 없는 빛을 담고 라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앞에 도달했을때, 놀랍게도 남자는 자리에서 잃어나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댔다.
'기사의 맹약'을 하기 위한, 온연한 충성을 주군께 바친다는 뜻의 자세. 공작이 순순히 황녀의 뜻에 따를 줄 몰랐던 아자르 후작은 이미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입술을 더 힘껏 깨물었다. 후작의 빛이 바랜 갈색 눈에 당연하다는 듯 장갑게 가려진 한 손을 내미는 황녀가 가득 담겼다. 이럴 순 없어! 황태자의 부재가 길어지고 있다. 이곳 저곳 놀러다니기만 좋아하고 할 일은 나몰라라인 황태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이대로 만만치 않은 듀르한 공작의 세까지 얻게 된다면 1황녀가 황위를 이어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후작과 그 무리들은 무조건 몰락이었다. 후작의 눈이 어두워졌다.
장갑의 재질인 매끄러운 실크 위로 와닿는 입술의 감촉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손을 내밀면서도 신경은 온통 후작쪽으로 곤두서 있던 라나는 그 생경한 감촉에 정신이 흐트러졌다. 마냥 커 보이기만 하던 남자가-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있다. 솔직히 이렇게 혼자서 멋대로 정한 결정을 따라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지? 어째서? 영민하게 빛나던 레드와인 빛 눈동자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으로 흐려진다. 그러나 의문을 밖으로 꺼내놓을 때는 아니다. 라나는 곧 고개를 들어 정확하게 마주쳐오는 남자가 읊조리는 맹약에 귀를 기울였다.
"아르카센 F. 듀르한. 나의 진실된 이름을 목숨을 걸고 지켜드릴 단 한분께 바칩니다. 그 무엇도 당신을 해할 수 없음을 맹세하며 당신을 해하려는 이를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존재함을 용납치 않음을 …께 맹세합니다."
"에?"
스쳐지나가듯 들은 말에 라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남자를 봤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라나는 자신이 잘못 들었겠거니 생각하고 얼른 맹약에 답했다.
"그대의 이름을 받아들이며 라온제나 세르틴데 A. 에노필레아. 마찬가지로 나의 진실된 이름을 나를 지켜줄 그대에게 허락합니다. 그리고-"
귀족들은, 심지어 아자르 후작마저도 홀린듯 말을 멈추고 장갑을 벗는 라나를 주목했다. 소녀는 깨끗하게 비운 물잔을 아래에 대고 드러난 흰 팔목에 단도를 가져다 댔다. 그제서야 황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귀족들이 너도나도 안된다고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예리한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새빨간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라나는 떨어지는 피를 물잔에 받아 남자에게 내밀었다.
"그대에게 피의 맹약을 청합니다."
피의 맹약. 단순히 기사의 맹약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피의 맹약까지? 잠자코 딸의 행동을 지켜보던 황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옛날 글라디올러스의 기사단장으로 있던 이셀리나 황후와 황제의 맹약 이후로는 피의 맹약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피의 맹약. 선천적으로 피를 나누는 것은 혈연이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자신 자체가 온전히 녹아있는 피로 하는 맹약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박됨을 뜻했다. 보통의 귀족들이 하는 맹약은 형식적인 기사의 맹약이 전부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는다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한 절차는 기사의 맹약으로도 충분했기에. 딸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피의 맹약을 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철저히 듀르한 공작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다.
황제는 다시 눈을 떴다. 피의 맹약은 기사의 맹약을 읊는 것이 끝나고 주군이 기사에게 청했을 때, 그 기사가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피의 맹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오로지 기사의 선택이다. 남자가 칼을 받아들자,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받아들입니다."
간결한 말을 내뱉으며 남자는 팔목에서 흐르는 피를 물잔에 받았다. 비릿한 피 냄새가 번졌지만 아무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조용했다. 엄숙한 분위기에 눌려 맹약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동안 넋을 놓고 있던 귀족들은 진중하게 내리눌러진 황제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두 피가 섞였다. 듀르한 공을 1황녀의 호위기사로 인정하는 바이다."
-피의 맹약이 완성되었다.
라나는 미소지었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올려다보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꿋꿋히 시선을 마주쳤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르카센 경."
완벽히 바뀐 칭호에 남자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지만 개의치 않는다. 소녀는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앞을 막아선 그대로 생글거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하."
"이런이런, 맹약할때 내가 뭐라고 했죠? 내 이름을 허락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라나라고 불러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온제나 전하."
융통성 없는 남자라니까. 하지만 만족하기로 했다. 라나는 우아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길을 터주었다. 성큼 지나가며 하는 말이 귀에 들렸다.
"오늘 오후 훈련은 미루겠습니다."
"좋을대로요."
"일이 넘쳐날겁니다."
"에? 뭐라구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날, 제국 에노필레스의 1황녀, 라온제나 세르틴데 A. 에노필레아와 새로운 듀르한 공작이자 몇 없는 마검사인 아르카센 F. 듀르한이 피의 맹약으로 맺어졌다는 사실은 사방팔방, 멀리멀리 뻗어나갔다.
(3)
이름 : 아르카센 F. 듀르한
작위 : 듀르한 공작이자 글라디올러스의 기사단장.
별명 : 아리(이것은 순수히 내 재미를 위해서만 부른다) 또는 흑안의 공작.
나이 : 우연히 입수한 서류상 26세.
성별 : 남.
키 : 188cm로 추정하고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클지도?
몸무게 : 이것은 아직 알 수 없다-안타깝게도-.
특징 : 라펠시온 대륙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소한 마검사
& 엄청난 스모커
성격 :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이 차갑고 냉정한 성격 같다가도 사람 약 올리는데는 아주 타고난 재능이 있는 듯. 그 남자가 짓는 웃음은 아주 사악한 것이어서, 왠만큼 강심장이 아니라면 몸이 오싹 떨린다. 안 그렇게 생겨서 잔소리는 어찌나 많은지, 지금 당장이라도 아버지 찾아가서 맹약 물리면 안되냐고 떼쓰고 싶다. (필체가 약간 흐트러진다) 거봐, 거봐. 지금도 내가 딴 짓 하니까 와서 잔소리…. 아씨, 알았다구요! 그놈의 내려긋기 이천번 하면 될 거 아니야! (종이가 파일 정도로 굵은 선이 북 그여 있다)
------------듀르한 공작 관찰일지 中-------
"아리 경,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에요?"
"…그렇습니다만. 그것보다 그 호칭은 언제 바꿀 겁니까?"
"글쎄요?"
아르카센은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면서도 사람 약을 바짝바짝 오르게 하는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는 레드와인 빛 머리의 소녀를 보며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쉬었다. 기사의 맹약- 더불어서 피의 맹약을 한 지 어느새 일주일 가량이 지났다. 전대 황후가 기사단장일때 황제와 한 피의 맹약 이후로 서로에게 속박되는 그 맹약을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딸이- 또다시 글라디올러스의 단장과 피의 맹약을 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온 대륙을 뒤흔들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제국의 기둥이 되어야 할 황태자의 부재는 모두가 알고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전대 황후의 딸로 정통한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1황녀에게로 권력이 쏠리는 구도 또한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글라디올러스의 기사단장이란 그 직위 하나만으로도 제국의 군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이와 피의 맹약을 맺는다- 여제의 탄생이 아닌가? 드러내지는 않지만 분열된 대륙은 그때만큼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있다.
아르카센 F. 듀르한 공작. 그 파장의 중심에 있는 남자는 멋모르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의 입을 모조리 지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기 저 높다란 의자에 앉아서 드레스에 잘 가려진,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고 있는 저 황녀는 결코 여제감이 아니다. 황족으로써 마땅히 다른 황족, 혹은 왕족에게 온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는 것은 의무일진대, 이번 사건으로 너무 많은 축하편지가 온다고 툴툴대며 한낱 호위기사인 자신에게 떠넘기는 것만 봐도 분명했다. 게다가, 이제 정식으로 호위기사도 됐고 하니 좀 친근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괴이쩍은 네이밍 센스를 발휘해 멋대로 남의 애칭을 '아리'로 정해버리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르카센은 반사적으로 제복 윗주머니를 뒤졌다.
"……."
없다. 또다시 그는 반사적으로 열심히 답장을 쓰고 있는 (척) 라나를 보았다.
"종이가 많은 곳에서는 금연이랍니다, 아리 경."
"…나가서 피우고 오겠습니다."
"그럼 안 되죠. 이걸 다 끝내야 경과 내가 수업을 시작 할 수 있다구요."
라나는 능숙하게 담배를 오른쪽에 있는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그동안 관찰해 온 바로는 자신의 호위기사가 된 이 남자는 담배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었다. 특히 소녀가 신경을 조금 건드리기만 하면 줄줄이 줄담배를 피워댄다. 표정 관리를 잘 하는 대신 담배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담배 한 개비는 일상. 두 개비는 난감. 새 개비는 짜증. 네 개비는… 글쎄? 키득키득. 즐거운 미소를 짓던 라나는 이내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숨을 딱 멈추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시선만큼 두려움도 배가 된다. 아르카센은 바로 소녀의 코 앞에 있었다.
"왜, 왜요, 아리 경?"
"……."
"아르카센 경?"
얼굴이 맞닿을 듯 점점 가까워진다. 의자를 힘껏 뒤로 빼보지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데다가 아르카센의 손이 의자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 무리다. 라나는 눈을 힘껏 감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입술을 떼기만 하면 닿을 것 같다!
달그락. 응?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전신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위압감이 사라진다. 소녀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재빨리 손을 내려 서랍을 더듬었다. 깔끔하게 열린 자물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당했다! 라나는 패배감 짙은 얼굴로 아르카센의 손에 들린 흰 담배곽을 응시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전하. 곧 훈련시간이라 가봐야겠군요."
"으이익…."
"그리고 부디 전하의 의무를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호위기사일 뿐, 당신의 의무를 같이 떠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후우우- 하얀 연기가 허공에 수를 놓듯 흩어진다. 라나는 망연히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질 순 없지! 이를 악 물고 펜을 들었다. 양식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준수하는- 표현은 미묘하게 달라도 내용은 같은 편지들이 수도없이 늘어져 있다. 리바사스 왕국의 1공주, 2공주, 3공주 일동… 이놈의 왕국은 공주밖에 없냐? 체얀제국의 황족일동… 일동이래봤자 황제, 황후, 태자밖에 없는 거 아니냐구. 리트로 공국… 테미란국… 사막왕국 프쉬제…
"끝이 없잖아! 난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편지가 많이 와 있냐고!"
국가끼리 맺은 협약에 따라, 황족 각 개인의 사교성과는 상관없이 예의로 오는 편지의 산에- 결국 라나는 절규하고 말았다.
"다 끝났다!"
손목이 시큰거렸지만 어쨌든 해방이다. 라나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엉망인 자신의 필체를 외면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열린 창으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점심도 시녀가 갖다준 빵과 우유로 대충 때우면서 열을 올린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라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화원의 궁 답게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이 너도나도 피워대는 향기가 그윽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결심을 재촉하는 그 무언의 응원에 소녀는 창틀을 딛고 힘껏 뛰어올랐다. 착지는 예상했듯 가볍다. 라나는 흰 커튼만이 펄럭이는 2층의 집무실을 힐끗 뒤돌아보고 빠른속도로 뛰어갔다.
무엇을 결심했는가?
듀르한 공작 미행! 그것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아르카센에게 하는 라나만의 소심한 복수였다. 누가 뭐래도 기척을 숨기는 것 만큼은 자신이 있다. 아직까지는 베일에 싸여 비밀, 그 자체이지만 어쩌면 이번 미행으로 남자의 약점을 집어낼지도 몰랐다. 소녀는 꾸깃꾸깃한 종이를 펴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까만 선, 파란 선, 빨간 선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는 그것은 듀르한 공작 저택의 내부 설계도였다. 배치된 기사들의 동선과 주요 인물인 집사가 주로 다니는 동선에, 설치된 마법진의 이용방법까지. 없는 게 없는 그 지도는 정말로 어렵게 입수한 것이었다. 덕분에 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까.
라나는 지도와 더불어 자신의 계획을 더욱 공고히 해줄 그것을 찾아 열심히 뛰어갔다.
"으엑, 언니?"
"안녕."
세르엔의 2층 테라스. 둘째황녀 에르로디엔의 침실로 통하는 곳으로 기어올라간 라나는 머리카락에 이리저리 엉겨있는 나뭇잎을 떼어내며 얼이 빠진 동생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사람들 눈을 피해 움직이느라고 탁 트인 길을 놔두고 일부러 빙빙 돌아 온 탓에 행색이 말이 아니다. 값비싼 드레스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내는 손길이 분주했다. 옷매무새를 마저 가다듬고서 라나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준비했지? 줘."
애초에 상세한 설명은 커녕 일말의 언질도 없었지만 영리한 동생은 자물쇠로 꽁꽁 채워 둔 서랍장으로 가서 작은 약병을 꺼내들고 왔다. 손바닥 크기만한 약병에는 평범한 물인 듯 맑은 액체가 찰랑였다. 하지만 그건 결코 물이 아니었다. 라나는 엘로디가 같이 건네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서 병의 뚜껑을 열어 바로 머리에 들이부었다. 얼마 되지 않는 내용물은 놀랍게도 다갈색 염료로 변해 서서히 소녀의 머리색을 바꾼다. 약이 고루 스미도록 수건으로 몇번 문질러주자 곧 완연히 머리색이 갈색이 되었다. 옷에 묻거나, 바닥에 떨어져 얼룩이 생기지도 않는다. 종종 황궁에서의 일탈을 감행할 때 애용하는 이 염색약은 엘로디의 특제품이었다.
순식간에 아우스탄디 특유의 레드와인 빛 머리카락에서 제국 안에서는 가장 흔한 다갈색 머리칼을 지니게 된 소녀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전신거울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어느 부분에서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바꿔야 될 부분이 더 있다.
"엘로디, 눈 색은 어떻게 못바꿀까?"
"그냥 그렇게 가도 괜찮을… 아 참, 상대는 듀르한 공작이지."
라나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사실을 단박에 짚어낸 엘로디는 선연한 빛깔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난감한 듯 입술을 오므렸다.
"어쩌지? 눈동자 색 바꾸는 약은 저번에 내가 써버려서 지금은 없는데…."
"아우웃, 그럼 안돼. 눈 색이 그대로라면 다른 누구는 몰라도 아리 경은 알아챌 거라구."
아리? 내가 아는 듀르한 공작의 이름은 아르카센인… 아, 이게 아니지. 엘로디는 머리를 휘저어 잡생각을 털어내며 손바닥을 맞부딪혀 짝, 경쾌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라나가 주의를 돌리자 소녀는 더업이 발랄하게 말했다.
"대신,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것처럼 보이는 약은 있지. 어때, 쓸래?"
◇ ◇ ◇
"그래, 이름이 뭐라고?"
"라온…라르디아 입니다."
"그 눈은… 아, 그래. 아파서 며칠 쉬었다고 했지. 괜찮은겐가?"
"업무에는 지장이 가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음, 알겠네. 그럼 수고하게."
라나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멀어져가는 집사를 배웅했다. 이윽고 집사가 복도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깔끔하게 재단된 메이드복에 달린 손거울을 꺼내들었다. 악! 절로 비명이 터져나온다. 흰자위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새빨갛게 충혈된 붉은 구슬같은 눈이 거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거울에 비친 몰골은 끔찍했다.
다갈색 머리카락과 레드와인 빛 눈동자. 이질적인 색의 조합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던 소녀는 주저주저하며 쓴 엘로디의 약으로 누구라도 눈이 마주치면 0.3초만에 고개를 돌려버릴 모습을 한 채 듀르한 공작 저택에 잠입했다. 그나마 보이는 것만 이럴 뿐 자신은 전혀 아프지도, 시야가 흐리지도 않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라나는 몸서리를 치며 얼른 거울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고, 소녀는 1황녀의 궁 로르네프에서 잔뜩 초췌해진 채 올 아르카센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읏차, 그럼 가 볼까?"
라나는 씩씩하게 옆에 놓인 양동이와 대걸레를 집어들었다. 정밀한 내부 지도에. 듀르한 저택의 메이드복에, 완벽하게 바뀐 외모에, 라르디아라는 이름까지- 준비는 완벽했다. 이젠, 뭔가 득이 될 만한 정보를 낚으면 되는 거다. 그리고 그걸로 평생! 아리 경을 우려먹는 거지!
"후후후."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당당했다. 그러나 소녀는 곧 오싹 몸을 떨고 말았다. 평생? 어쩐지 그 말이 너무 익숙하게 다가와 두렵다. 에잇. 라나는 고개를 털어 불길한 생각을 지웠다. 일단은 지금 목적에 충실하자.
걸음은 정확히 아르카센의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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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 <
첫댓글 쿡쿡. 흰자위 모두.. 이거이거 상상해버렸군요. 쿡쿡. 그러고보니, 아리가 뭐 할지.. 궁금하긴 하군요. 쿡쿡.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나의 빨간 눈은 정말 압박이죠()
아아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 발견했네요ㅋㅋ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 < 힘낼게요!
ㅋㅋㅋㅋ 눈이 아에 빨가다면 음 귀신인가요 레드와인빛 머리카락에 눈이 빨게서 ㅋㅋㅋ 얼굴은 하얗고 귀신이군요
ㅋㅋㅋ 머리도 염색해서 지금은 갈색이랍니다?! 얼굴은 하얗고..... 귀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