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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의 도량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오대산에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곳이었고 그 중에 남선사라는 이름의 사찰에 머무르고 있는 한 남자는 초조한 얼굴로 창 밖으로 보이는 오대산의 봉우리들을 올려보았다. 달빛 아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어우러진 오대산의 모습이 눈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자가 눈치를 챘다면 어떡하지?"
초조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그는 벌떡 일어섰다. 약 이십여장 정도의 거리가 있었지만 숨이 턱에 차서 달려오고 있는 여자의 숨소리를 듣게 된 탓이었다.
"그녀다!"
그는 머무르고 있던 선방에서 뛰쳐나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여인을 향해 달려갔다.
"헉 헉, 나으리 이것."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지 한 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굽히며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여자는 한 손으로는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수고했다."
왕질악은 말하면서 종이를 펼쳐 보았다. 예상대로 북해의 깊은 곳에 있다는 빙궁으로 가는 지도였다.
"이제 네 할 일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면 네 가족들을 대리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나거라."
"그럼 아버지가 진 빛은 모두 사라진 것입니까?"
"이미 네 가족이 진 빛은 모두 사라졌고 또 은자로 천냥이라는 돈이 따로 네 집에 전해졌다. 그 정도 돈이면 어디가서든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감사합니다."
"어서 떠나라. 지금은 너와 네 가족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녀는 몇번이고 머리를 꾸벅이며 인사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우."
멀어져 가는 여자를 바라보며 왕질악은 한숨을 내뱉었다. 칠호가 일으킨 홍방이라는 단체가 단지 무림의 단체였다면 무림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피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방이라는 단체는 단지 무림에 국한된 단체가 아니라 상인들과도 연결된 단체였다. 일반 백성들 그리고 상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아주 거대한 기업이었다.
칠호는 모습을 감추면서 홍방을 해체였고 그 결과는 끔찍한 것이었다. 수십명의 상인들이 몰락했고 그와 연결된 수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생활고를 못 이겨 자살한 사람도 생겨났고 지금 멀어지고 있는 여자처럼 가족이 모두 노비가 될 위기에 처한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칠호가 돌아오면---. 홍방의 모두가 다시 잘 살 수 있게 될까?"
말을 하면서 왕질악은 다시 몸을 돌려 조금 전까지 머물고 있던 승방으로 돌아온 왕질악은 자신이 북해로 가지고 갈 물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손바닥만한 자기병을 집어들면서 왕질악은 입가에 고소를 지었다.
"이 극락산 한방울이 금화 천냥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 여자가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산적들에게 이것을 쓰게 되다니---, 하여튼 오대산을 더럽히는 무리도 사라졌고 원하던 것도 얻었으니 나도 다시 북해로 가야지. 군산에서 떠난 자들이 북해에 들어서기 전에 내가 먼저 가서 그들을 처리해야할 준비를 해야하니--."
왕질악은 자기병 대신에 손바닥만한 쇠 구슬 열 개를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그자까지 해결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될까? 그나저나 그 요리사가 안됐군. 살인죄를 뒤집어 쓴데다 하필 오대산 산적들에게 가 있게 되다니--. 아무리 동료들이라지만 정나미 떨어지는 친구라니까, 산적들이야 악당들이니 그렇다치고 아무 죄도 없는 요리사까지 끌어들이다니---. 칠호가 있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는 일은 없었는데---. "
중얼거리면서 짐을 챙긴 왕질악은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미리 북해로 가서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은 그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오대산의 한 봉우리 중턱에서 소구는 심각한 얼굴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다가 또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는데---, 겨우 회복한 내공을 다시 소모할 수는 없는 일. 혼천독보는 사용하지 말자."
사문인 혼천문의 무공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지만 소구는 심각하게 고민해야했다. 가는 도중에 어떤 적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고, 한번 사용하고 나면 적어도 이틀은 쉬어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개를 한번 내 저은 소구는 몸을 하늘로 솟구쳤다. 이제 이곳에 볼일은 없었고 그는 정각 사부가 있는 북해의 빙궁에 서둘러 가야했다. 산적들의 시신은 이제 모두 재로 변해 있었고 불도 모두 꺼진 상태였다.
비록 혼천독보는 사용할 수 없는 소구였지만 경공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오대산의 하늘 위로 솟구친 소구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 하늘에 하얀 궤적을 남기며 북으로 쏘아져 나아갔다.
소구가 북해를 향해 길을 떠나고 있는 동안 소림사에 무사히 도착한 방화련은 곧바로 현재의 소림사의 주지가 된 방진과 마주 않게 되었다.
"그래, 기쁜 소식이 있다고요?"
"예, 정각 대사가 어디에 계신지 드디어 알아내고 소구가 그분을 모시러 떠났습니다."
"정각 장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단 말입니까?!"
방진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예, 그분은 북해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렇게 시작된 방화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방진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방화련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방진은 침울한 얼굴이 되어서 물었다.
"결국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가봐야 안다는 그런 말이군요."
옆에서 침묵하고 앉아 있던 천궁 옥형진이 방진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방진 대사, 너무 침울해 하지 마시오. 그분의 능력이라면 결코 얼어죽을리 없지 않소? 우리가 이곳에 온 까닭은 소구와 정각 대사 그리고 그 소구의 사형이라는 양평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처님에게 빌어보는 일 밖에 없구려."
방진은 말을 하고 있던 천궁에게서 시선을 돌려 방화련을 바라보았다.
"제가 이곳에 온 까닭은 이 일에 대해서 소림사에 알리는 것과 부처님에게 백일동안 기원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천궁 옥 대협은 저의 호위를 위해 따라오신 것이고---."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이 머무를 숙소를 곧 마련해 드리지요."
방화련은 앞에 놓인 금불상을 바라보았다. 앞에 놓인 것이 진짜 부처가 아니라 단지 조각에 금박을 입혀 놓은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의지할 것이 필요한 그녀는 그 금불상을 향해 끊임없이 기원하고 있었다. 가족의 평안과 소구가 정각 대사를 무사히 데리고 오기를---.
방화련이 경건하게 부처를 향해 기원을 올리고 있을 때, 소구의 다른 식구들은 모두 제각각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으 아 악!"
오늘도 폭주하는 업무에 반쯤 미쳐버린 정옥의 괴성이 집무실에서는 터져 나오고, 그의 아내인 방수련은 후원에 나와서 날마다 금(琴)을 연주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리고 소구의 세 아내는---.
"어서 패 돌려!"
"아야야, 언니들 너무 하다. 이렇게 세게 때리는 법이 어디 있어?!"
오늘도 변함없이 마작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꼴찌가 된 라리슈카는 이마에 커다란 혹을 달고 투덜거리면서 다시 마작 패를 섞어서 돌리기 시작하고--.
방화련이 알았다면 무척이나 억울해 했을 모습들이었다. 혼자만 소구를 걱정하고 정각 대사가 무사히 살아 돌아오라고 부처에게 빌고 있었으니---.
어딘지 모를 산봉우리에 서 있는 소구는 낭패한 얼굴로 자신의 빈손을 바라보았다.
"제기랄, 그 여자다! 지도를 훔쳐 가다니---. 어떡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가야할까?"
소구는 북쪽과 남쪽을 번갈아 바라보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기억을 더듬어 땅바닥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도를 도둑맞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하면 놀릴 인간들이 수북했다. 거기다가 집으로 이대로 돌아 갔다간 두 누나와 함께 취하와 취앵이까지 합세해서 소구를 괴롭힐게 분명했다. 절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서 놀림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낮다. 그러니까 여기서 북쪽으로 이백장, 여기서 다시 서쪽으로---."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빙궁으로 가는 길을 땅바닥에 그려보고 있던 소구는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추고 땅바닥에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여기 빙하의 계곡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 근처 어디라고 한 것 같은데--? 가보면 알겠지. 봉황의 모양을 한 얼음산을 찾으면 그 근처라고 했으니---."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잃어버린 지도를 그려보면서 궁상을 떨고 있던 소구는 벌떡 일어섰다. 대충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아내었으니 이제 출발할 차례였다.
경공을 전개해서 아주 빠르게 북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소구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고 그러나---.
불과 십리를 못 가서 몸을 멈춘 소구는 요란한 풍악 소리와 음식냄새가 진동하는 장소를 찾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침내 숲속 한 가운데의 공터에 이른 소구는 그곳에 쳐진 천막과 그 앞에 차려진 화려한 음식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남의 것을 함부로 뺏어먹을 정도로 악하지는 못한 소구였다. 그래서 소구가 음식상을 바라보면서 침만 삼키고 있을 때, 천막 안에서 속이 비치는 하얗고 투명한 망사 옷을 입고 있는 반나체의 요염하게 생긴 여자가 나와서 멍하니 음식상만 바라보고 있는 소구를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나?"
소구는 주위를 둘러보다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 여자는 요염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리가 백초당의 방소구 방 대협이 맞는지요?"
"그렇긴 한데----, 여기서 음식상을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냐?"
"예, 소녀는 장가구에서 기녀로 일하는 난화라고 하고요, 나리를 이곳에서 모시라는 명을 받았지요. 북해에 들어가면 음식도 없고 쉴 장소도 없으니 이곳에서 마음껏 먹고 충분히 쉬고 출발할 수 있도록 나리를 모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누가 명을 내렸는데?"
"----."
"누가 너에게 이 일을 시켰는지는 모르냐?"
"잘 모르겠습니다. 소녀가 일하는 애향원은 청방 소속의 기녀원이고 이곳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나리를 기다렸다 모시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흠--, 누군가 청방의 인물이 나를 위해 준비해 놓았나보군."
"나리 음식이 식습니다."
스스로 난화라고 한 기녀가 음식상을 가리키며 말하고 소구는 또 하나의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이걸 혼자 다 이곳으로 가지고 왔을 리는 만무하고---."
"애향원의 기녀들은 모두 약간씩의 무공을 배우고 있습니다. 짐승들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도 않고요. 이곳엔 저말고도 몇 몇의 기녀들이 같이 와 있습니다."
"흠---, 그래? 천막 안에서 자고 있는 다섯 명도 모두 기녀인가 보네?"
"예, 둘만 기녀이고 나머지 세 명은 기녀원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아무래도 좋다. 그러니까 이 음식상은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 맞으렷다?"
"나으리, 이리로 앉으세요."
음식상 앞으로 소구를 끌고 간 기녀가 바싹 몸을 붙이고 젓가락으로 요리들을 하나씩 소구의 입에 넣어줄 때, 천막 안에서 자고 있던 인간들도 잠이 깨었는지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소구와 기녀 난화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나머지 두명의 기녀들은 바로 소구의 옆으로 달려오고 나머지 세 명은 야외에 급조한 주방으로 달려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입안에 음식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소구가 물었다.
"이곳에서 며칠 동안 있으라고 하더냐?"
"나리가 이곳에 도착하면 오일간은 이곳에서 푹 쉬고 떠나도록 모시라고 했습니다."
난화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있던 소구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누나들은 절대 아닐 테고--, 매형이? 매형도 아니야. 매형도 내가 빨리 정각 사부를 데리고 돌아오기를 원할 테니---. 도대체 누가 이 일을 꾸민 거지? 모르겠다. 갔다 와보면 알겠지. 이곳을 지나치면 이제부터는 정말로 사람이 살지 않은 삭막한 땅으로 가게 될 터이니--. 이곳에서 실컷 먹고나 가자.'
결론을 내린 소구는 다시 입을 벌리고 입안으로 차려진 요리들이 부지런히 옮겨지기 시작했다.
숲속에 숨어서 소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질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구가 머무르고 있는 숲에서 빠져 나와 북해를 향해 경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크 크, 과연 저자는 먹을 것이라면 꼼짝을 못하는군. 엄청난 식탐이야. 먹을 것에 그리도 한이 맺혔나? 하여튼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이로써 군산에서 출발한 자들도 저자보다 먼저 북해에 들어올 테고--, 저자가 북해에 들어서기 전에 군웅들을 처리할 시간이 생겼으니---."
혼잣말을 하면서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땅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는 왕질악은 북해에서 사부 왕소팔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군산에서 출발한 군웅들을 이끌고 북해로 오고 있는 것은 사부를 음모로 죽이고 개방의 방주자리를 차지한 취문설개였다.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왕질악은 온 몸에 전율이 일고 있었다.
소구를 상대하는 일은 나중 일이었다. 일단은 복수가 우선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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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즐독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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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