睡中突然壓醒月-자다가도 문득 가위눌려 깨는 달
歎息觸頭的六月-휴, 한숨을 쉬며 머리를 만져 보는 6월
仍然多淚歲月流-아직도 더 많은 눈물과 세월이 흘러야
惡夢苦痛脱苦吗-이 악몽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時間流逝忘怨恨-시간이 흐른다고 그 한을 잊을 수 있다면
七三不長歲不短-73년이 길지 않고 짧은 세월이란 말인가
炎六二五此江山-뜨거운 한낮 6.25 이 나라 금수강산이
北傀銃下身是血-북괴의 총칼아래 민족은 피투성이가 되어
山紅江血血河流-산은 붉게 물들고 강은 피로 홍수가 되었다
休戰老樹誰鐵帽-지금도 휴전선 늙은 나무 아래 주인 잃은 철모
不如日蘇若蠻行-차라리 일본이나 소련의 만행이라면
我國力微然歎息-내나라 국력 약한 탄식이라도 하지만
天地萬古殺血肉-천지 만고에 혈육을 죽이는 만행
宇宙數星何處哪-우주의 수많은 별중에 어디에 있을까
螞蟻蜜蜂同族保-개미 꿀벌도 동족끼리는 서로 보호하고
動物相族不相殺-짐승도 가족끼리는 죽이지 않는다
痛哭擊地能悲解-울고 땅을 친다고 슬픔이 해결이 된다면
淚掌現在能留在-눈물과 손바닥이 지금까지 남았겠느냐
現今進行痛苦悲-아직도 진행형인 이 고통 속의 슬픔은
咽喉塊癌遺恨在-목구멍에 멍이 되어 한으로 남아있다
佛陀讀經不復生-부처의 독경으로도 환생이 되지 않고
耶穌十字救不了-예수의 십자가로도 구원하지 못하니
顯忠握骨一碑立-현충원 한줌 뼈에 비석하나 꽂아주고
瘀血胸部一勳章-피멍든 유족가슴 훈장하나 단다고
胸中結恨能解吗-가슴속 맺힌 한이 풀릴 수 있겠느냐
旣死血肉能活吗-죽었던 혈육이 살아 올수 있겠느냐
自身家族不失人-자신의 가족을 잃어보지 않은 자는
不知國民六月痛-국민의 피맺힌 6월의 슬픔을 모른다
焉敢生心親北口-어찌 감히 친북 말이 입에서 나오고
父兄殺者抱擁吗-부모형제죽인 원수를 껴안는단 말인가
天安艦魂九泉浪-천안함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漁公冤魂不怕吗-어업공무원 원혼이 무섭지도 않느냐
殺父怨讐稱清善-부모죽인 원수를 맑고선하다 하니
六二五恨權足踐-6.25의 원한이 권력 발에 짓밟힌다.
농월(弄月)
안철수! 김일성주의자 간첩 신영복을 “맑고 선한 분” 극찬 !!!
김일성주의자 통일혁명당 간첩
신영복을 극찬한 안철수는 어떤 사람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안철수의 생각을 알았다면 단일화 안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말은 안철수와 연대를 안 해서 대통령에 당선 안 되어도 연대는 안한다의
결심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문제다.
아래에 신영복에 대한 약력이 있기 때문에 신영복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신영복 통일혁명당 간첩으로 복역한 신문기사 자료가 여렀있다.
신영복에 통일혁명당 간첩 대하여 요약해서 말하자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단절되어 영원한 민족의 불행이 있는 것은
김일성 공산주의자가 남침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국가는 남북으로 절단되었다.
역사를 보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안철수도 1962년 2월 26일생이기 때문에 6.25한국 전쟁 때 출생 안했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을 듣고 책으로 통해서만 알고 있다.
책과 사람의 실제 행위는 다르다.
안철수는
잔인무도한 김일성 공산주의를 옳다고 주장하는 통일혁명당의 신영복을
【주위사람들 모두 맑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시대의 위대한 지식인】
【맑고 선한 분】이라고 하였다.
신영복이 쓴 책을 읽고 신영복을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안철수의 이 말에 말문이 막힌다.
필자도 독서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 플로레타리아. 코민테른(Comintern)
마르크스주의 혁명당 연합 “제3인터내셔널”
(Union of Revolutionary Marxist Parties “Third International”)
등을 읽어 보았다.
책에는 엿처럼 달콤한 것이 공산주의 이론이다.
일안해도 절로 밥이 생긴다.
그야말로 이상향(utopia理想鄕)이다.
그리고 안철수는
신영복이 김일성주의 통일혁명당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였다.
세 살먹은 어린애가 웃을 대답이다.
신영복을 몰랐다 !
아무리 요즘 몰랐다가 유행이지만
안철수가 신영복이 김일성주의 통일혁명당이라는 것을 몰랐다?
인터넷에 “안철수”입력하면 약력이 나온다.
서울대학을 나오고 국회의원까지 한 안철수가 신영복이 김일성주의 통일혁명당
간첩이라는 것을 몰랐다?
▶신영복 스스로 말하고 있다
“전향서는 썼지만 사상(思想)을 바꾸진 않았다.
통혁당 가담은 양심의 명령이었다”
신영복은 6.25로 그 많은 남북한 국민이 죽은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신영복을 찬양하는 안철수는 어떤 사람인가?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였다
마르크스주의를 내면화한 급진적 지식인이었다
오랜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잘못된 세상에 분노하고
그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혁명적 인간”이었다
사람을 키워내 혁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생각했다
신영복 교수의 '혁명적 의식'은 청년 시절 형성됐다.
1960년대 젊은 경제학도였던 그는 한국을 식민지로 생각했다.
감옥에서 만난 빨치산과 남파 공작원 등 장기수들을 통해 해방 전후사와
분단 현실을 대면했다.
신영복은 자본주의를 싫어하고 동양 사상을 통해 비판하려 한 것이다.
그는 근대를 향한 한국인의 치열한 경제성장의 고생스런 노력을 외면했다.
(위의 내용은 조선일보 2016.01.15.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신영복체”로 쓴 원훈석(院訓石)을 교체하였다.
경기도교육청도 신영복체로 쓴 교육감 직인(職印)을 바꿨다.
(조선일보 2022.10.11.)
농월
▶약력
1941년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 유곡초등학교 교장 사택에서 태어남.
1959년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강사
1966년 8월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수사관 중위 임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 3월: 성공회신학대학 경제학과 강사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1998년 5월 ~ 2006년 6월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1999년 12월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
2002년 2월 동아시아문화공동체포럼 대표
2003년 3월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 원장
2004년 3월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원장
2006년 8월 정년퇴임
2006년 ~ 2014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2016.01.15.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