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11.28.) 말씀/ 누가복음 23:34
아름다운 삶의 마침표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지난 주 23일 역사 속에 말 많던 전 전 대통령 전두환씨가 오전 8시55분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5.18 주범입니다. 저는 당시 군대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많은 광주시민들이 경상도출신 계엄군들에게 처참하게 학살당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철권독제 공포정치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남영동 지하에서 오갖 고문과 종북 빨갱이란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고 사형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아서도 말이 많았지만 죽어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대게 잘 못 살았어도 죽으면 안타까워하며 조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사람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전두환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내란 학살 주범"이다 "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께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조문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전씨의 사망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하다 안 가겠다고 말을 번복했습니다. SNS에 그 죽음에 대해서 이런 멘트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의 죽음에 어떠한 의미도 두지않겠습니다. 대신 당신에게 사과 받았어야할 수많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의미있는 멘트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먼저 전두환 조문을 가야 하는 것이 옳은가 안가는 것이 옳은가? “당연히 안 가야죠. 살인마인데.” 그러나 또 이렇게 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치를 배제히고 고인이 되었으니 고인의 대한 예의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느냐 마느냐? 그냥 다툼과 싸움만 됩니다. 둘다 맞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유족들과 그 마음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갈 수 없는 것이고, 전 씨의 가족들 일가친족 그 밑에 붙어살던 사람들, 동조하던 사람들은 당연히 갈겁니다. 김진태를 비롯하여 국민의 힘 의원들도 줄줄이 조문을 하였습니다. 광주시민에 대한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마당에 적절치 않다'고 예의를 지키고, 광주시민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바른가요? 왜 우리는 생각을 해보야하는가요? 사람들은 생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르면 바른 삶을 사는 것이고. 생각이 삐뚤면 삐뚤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이것이 행복이다. 이것이 출세다. 이것이 잘 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남용하고 함부로 칼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고, 옳지 않다 하는 사람은 불의에 거리를 두고 사악한 무리들에게 부하뇌동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문제는 지금 우리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유태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이라는 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하여 그를 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이 있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유태인 600만을 학살하는데 중간책임자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고 있다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체포당하여 압송되고 재판에 부쳐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단지 명령에 따른 것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가 학살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고, 그 일을 자쳐하지도 않았으니 억울하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논리대로 라면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충실히 따른 성실한 관료일 뿐입니다. 오히려 훈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그게 맞습니까? 600만 무고한 생명이 죽었는데 그는 정말 잘못이 없는 것일까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보고서를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출간 전부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미국 신문사 뉴요커의 기자신분으로 재판에 대해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하였고, 이를 책자 화 하였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재판 보고서의 내용을 활용해 이스라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을 바라보는 관점, 이스라엘 법정의 정의의 관점에서 당위성 여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이히만의 납치, 이스라엘에서의 재판, 2차 세계대전 당시 제3제국에 의한 유대인 대량학살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잘못은 단지 행동만이 아닙니다. 그 행동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사이토 다카시 일본 작가는 이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잘못은 인간으로서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지 않고, 무고한 유대인을 단지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죽이는 것이 옳은지, 비판적으로 생각지 않은 것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이런 한 개인이 무심코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결과가 오지 않았을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한나 아르렌트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할 의무”라고 말합니다. 인간으로서 바르게 생각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바로 판단 받아 마땅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유죄인 것입니다.
물론 세상 법정은 단지 생각한 것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생각을 해도 그 사람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각을 오히려 판단의 기준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에서 5:27-28절에서 “또 간음치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실제 행위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생각이 시발점을 똑같이 죄로 여기는 것입니다. 형제에 대해서 노하는 자도 심판을 받게 되고, 라가라, 미련한 자라 하는 사람들은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분노하는 마음, 미워하는 생각을 살인과 똑같이 보는 것입니다(요한일서 3:15) 전도서를 보면 11: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8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찌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찌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9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청년의 날 한창 좋은 시절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고도 싶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캄캄한 날을 만나게되는데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늙고 쇠하고 죽음 앞에 서는 날이 오게 됩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먼저 된 자가 나중 이렇게 운명이 뒤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가? 생각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전두환씨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합니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죽었으면 얼마나 좋으냐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유서에 그런 것은 없는가도 봤지만 없습니다. 가족들이라도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없습니다. 총칼로 권력을 잡고 군부에 맞 서서 대항하는 대학생들을 잡아들이고, 죽이는 일을 서슴치않고 행하며 대통령 행세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생각 없는 사람들은 고인의 예를 표한다고 조문을하고 그 밑에서 함께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도 몰려들었습니다. 뉴스가 전두환의 죽음과 함께 5공 실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취재를 하였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약 한달 앞선 지난 11월26일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씨의 기분까지 챙기는 ‘심기경호'로 유명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85세의 고령으로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5공실세 '쓰리 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 중 허문도는 2016년 사망했습니다. 허화평은 대통령 '비서실 보좌관'으로 임명돼 '실세'로 군림했고, 허삼수는 사정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습니다. 두 사람은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에 이순자 여사의 가족이 연루된 것을 이유로,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사퇴를 건의했다가 5공 핵심에서 배제됐고 1992년 12월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이학봉 전 안기부 차장도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육사 동기로 12·12쿠데타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정호용 전 육군참모총장은 2년전 서울의 한 고급 식당에서 전 전 대통령 부부와 1인당 20만원에 달하는 비싼 코스요리를 먹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뉘우침이나 참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도 곧 죽는다는 것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 심판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심판이 없다면 이들이 실속 차리고 잘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라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잘 사는 길은 잘 죽는 것입니다. 잘 죽는 것은 반대로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살지 못하고 잘 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잘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생각의 판단에 따라 이길로 갈 수 있고, 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살려면 생각의 수준을 높혀야 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려면 아름다운 생각을 해야 하고, 가치있느 삶을 살고 싶으면 생각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절대로 원망들을 일 하지 말고, 남에게 피해주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심지어 하나님께 제물을 들리러 가는 중에도 원망들을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사화하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대통령을 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떵떵거리며 살았어도 원망을 남기고 간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잘 살려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하루를 살아도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자는 못 되고 권력은 없어도 좋습니다. 남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에머슨은 성공적인 삶의 대해서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고, 나로 인해서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는 삶을 살았다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칭찬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잘 사는 것 입니다. 그렇게 사실 수 있습니까? 아멘! 그렇게 삽시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에게 전해지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웃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죽을 때에는 당신은 웃고 있고 주위 사람들은 울게 될 것 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돈키호테의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라만차의사나이'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와 똑같은 내용의 장면이 나옵니다. 돈키호테가 눈을 감자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데 정작 본인 자신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왜? 그 이유는 자신이 살아 숨 쉬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살아 숨 쉬는 삶을 살았기에...죽음 앞에서 한 자락의 후회도 미련도 없었던 것 입니다. 반면 화려한 인생을 산 것 같아도 마지막 눈을 감을 때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 죽은 삶 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설 때에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이 산 자의 삶 이었는지 죽은 자의 삶 이었는가를 알게 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조차 절대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고한 아집과 고집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가. 아무 원망 시비 없이 사랑만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미원하며 살기에는 원망 들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사랑만하며 사는 자들이 됩시다. 세상에서는 힘없고 가난하고 별 볼일 없었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잘 했다. 잘 살았다” 칭찬 받는 사람들 되어야 겠습니다. 결론 우리가 이렇게 인생의 마침표를 아름답게 잘 찍으려면 잘 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잘 죽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연습 없이 공부 없이 잘 살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헛된 삶을 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아름다운 삶의 마침표를 찍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우리의 인생의 참 모델입니다. 이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땅끝까지 낮아져 오시고, 처음부터 죄인들을 섬기기는 삶을 사시다가 온갖 조롱과 멸시를 참으시며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 모함과 멸시, 조롱, 버림받는 아픔을 당하면서도 아무도 원망치 않으시고 자기를 찌른 자들의 죄를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신 예수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