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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여행을 싫어하면서도 자전거 여행을 또 계획하고 떠난 어제 하루, 낯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 무엇이 있어서인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그리워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마당에 나가 보니 비가 내리고 있지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어텍스로 중무장한 탓에 우의도 없이 그냥 나선다.
봄비에 마당 한 켠에 서 있는 목련의 꽃눈이 더한층 커지리란 생각이 든다. 재작년에 고창 선운사에서 얻어온 상사화의 푸른 잎은 신기하게도 겨우내 싱싱하게 그 잎이 살아있다. 구월 경에 꽃대만 올라와서 피고지고는 꽃대가 스러지고 나니 잎이 나서 겨우내 그대로 있는 것이다.
간밤에 이미 다 준비해 놓은 배낭을 메고 분해해서 가방에 넣어 놓은 자전거 가방도 메고서 대문을 나섰다. 집 앞 이면도로의 가로등이 붉은 수은등 불빛을 밝히고 섰고, 아직 동네 사람들이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모양으로 앞집 옆집 뒷집 차들이 모두 제 자리에 있고, 온 골목이 조용하다. 동네에서 내가 가장 먼저 나서는 참이다. 평소엔 7시에 일어나기도 힘들지만 휴일만 되면 4시 혹은 5시에 일어나서 집을 나서니 나도 보통 병이 든 게 아닌 모양이다.
차에 배낭과 자전거를 넣고 밀양역 앞에 도착하니 20분이 지났다.
다시 배낭을 메고 자전거 가방을 어깨에 지고 택시 승강장 옆으로 올라가니 택시 기사들이 자전거지요 하고 물어 온다. 대답을 하고 지나가는데 그들의 담배 연기 냄새가 코에 스민다.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추고 그들 사이를 빠져 역사로 들어선다.
역사의 전광판 시계는 다섯 시 삼십육 분을 지나고 있다. 차가 49분에 출발하기로 그대로 나서서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다.
무궁화호 1202호 일반실 2호차 38호석을 찾아 자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흘낏 보니 옆자리엔 얼굴이 반반한 중년의 여인이 단발머리에 두 눈을 감고 그럴듯한 옷차림에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꼿꼿이 앉아있다. 마흔 중반에서 쉰은 되어 보인다.
자전거 가방은 열차 출입구 들어서자마자 차문 안 의자 뒷공간에 넣었다. 공간과 크기가 안성맞춤이다. 평소에 무궁화호 열차의 어디에다 자전거를 보관할까 생각하며 눈여겨 봐 두었던 공간이다.
배낭에서 아침 삼아 먹으려고 더온이라는 물을 붓고 발열용액을 섞어 주면 뜨거운 비빔밥이 된다는 신기한 것이 있기에 온라인으로 주문하여 배달받은 놈을 한 봉지 꺼내어 열차의 맨앞 우측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2리터짜리 물병도 가져가서 자리를 잡고 탁자를 펼쳐놓고 더온이란 그 전투식량 비슷한 놈을 윗뚜껑을 잘라내고 방부제와 숟가락, 참기름 봉지를 꺼내고 종이박스 받침대 위에 놓고 물을 붓고는 지퍼를 잠그고 발열용액을 찾아보지만 어디에 있는지 없다. 실내가 어두운데다 나이가 들어 시력이 좀 약해진 탓에 봉지에 쓰인 설명서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발열용액이 어디에 있다는 말은 없다.
결국 발열용액 붓는 곳을 뜯어 그 안을 보니 발열용액이 들어있고, 또 종이봉지에 발열매체가 하나 더 같이 들어있다.
발열용액을 찾아내어 입구를 뜯고 봉지 옆구리에 용액을 붓는 곳에 부으니 갑자기 김이 술술 나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무궁화 열차가 세상에 나온 것이 아마도 사십 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비둘기호가 사라지고 ktx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무궁화호가 가장 싼 열차로 되었지만 무궁화호가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특급열차였다. 그러다가 새마을호가 나오면서 무궁화호는 2등 열차로 강등되고, 다시 ktx가 나오면서 삼등열차로 급이 낮아진 것이지만 예전의 무궁화호와 달리 열차의 객실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좌석도 편하지만 출입문도 자동으로 바뀌었고 예전의 무지막지하게 소음이 귀가 멍멍하던 그 무궁화호와 이름은 같아도 객차 자체가 너무 바뀌어서 안락하고 많이 깨끗해지고 달라졌다. 집으로 치면 뼈대만 놓아두고 완전히 리모델링을 했다고 해야 할까, 무궁화호 천정에도 ktx 천정에 달린 액정화면이 달려있다. 비록 그것이 꺼져 있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더온이라는 불고기 비빔밥이 되기를 기다린지 십오 분 가량 되었을까 동봉한 일회용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참기름을 섞어 먹어보니 맛이 그럭저럭 그렇고 그렇다. 우선 시장기만 속이자 싶어 그 뜨거운 놈을 억지로 다 삼키고 물을 마시고, 치실도 좀 하고 빈 봉지를 처치하고 보니 배가 차지 않는다. 먹은 것 같지도 안한 것이 원래 내용물이 달랑 백 그람 밖에 되지 않아 양이 너무 적다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먹어도 전혀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장한 것도 아니었다.
물병을 들고 자리에 돌아와서 선반의 배낭을 내리는데 그만 실수로 눈을 감고 앉아있던 그 중년부인의 발을 나의 커다란 등산화로 밟고 말았다. 여인은 깜짝 놀라 눈을 뜨고는 발이 아파 얼굴을 찡그리는데 당황한 나는 미안하단 말을 연거푸 몇 번이나 하였다. 그런데 여자는 아무 말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 일어서서 마침 도착하고 있는 대구역에서 내리고 만다.
민망하고 미안하기도 하였지만 사과하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상대방의 행동거지가 약간 얄밉기도 한 감정이 들어서 씁쓸했다. 즐거운 여행의 꼭두새벽부터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7시 01분에 왜관역에 도착하였다.
배낭과 자전거를 메고 나서니 이미 하늘은 밝아져 있지만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역사 안에서 자전거를 조립하여 출발한 시각이 7시 24분이다.
오늘 목표는 왜관에서 구미, 상주를 거쳐 안동댐까지 정확히 150킬로인데 가는 도중에 삼강주막도 가보고, 회룡포도 가 보리라 생각하였던 것인데, 안동은 등산을 다니면서 많이 지나가기는 하였지만 한 번도 관광을 위해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도시라 그 유명한 하회마을도 가보리라는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절로 기분이 좋았다.
미리 준비한 차량 내비게이션이 배터리 불량인지 작동이 잘 되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나섰기로 지도 한 장 없이 나서 약간은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낙동강 종주길이란 것이 강 따라 달리는 단순한 길이므로 왜관 역사를 빠져나와 큰 길을 만나자마자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타난 회전로타리에서 어딘지 분명하진 않지만 무턱대고 강 쪽으로 난 길로 들어가니 종주길이 나타난다.
종주길에 들어서기 직전에 낙동교라고 왜정 때에 세운 철교가 남아있어 사진에 담고 출발한다.
07시 41분, 출발한지 이십 분이 채 안되어 칠곡보에 도착한다.
칠곡보 사진을 찍고 바로 통과하여 08시 04분 길가에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서서히 몸이 덥혀지고 땀이 나서 온 몸이 푹 젖는다.
아침에 먹은 밥이 부실하여 밸런타인데이에 받았던 초콜릿을 너덧 개 먹고 전날 준비한 2리터짜리 꿀물을 최대한 들이킨다.
자일리톨을 한 알 입에 넣고 다시 나서서 달린다.
08시 41분 남구미에 도착한다. 강 건너편에 거대한 구미 LG전자 공장이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탁 트인 낙동강의 조망이 너무 좋다.
어느 새 비도 그쳤는데 바람이 좀 세게 불고 있다. 북풍이 맞바람으로 불어오는데 도저히 속력을 낼 수가 없다.
바람만 없으면 평속 이십은 꾸준히 나올 것인데 정면에서 불어오는 북풍이 너무 세다. 뒤돌아서 있으면 절로 굴러갈 판이다.
09시 구미대교에 도착한다.
역풍 속에 달리기 두 시간이 지났다.
9시 24분, 구미 시루골 앞 양수장 뒤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쉬었다.
역시 초콜릿과 꿀물을 들이키며 멀리 시루골 마을 집집마다에 태극기가 대문 위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삼일절임을 깨닫는다.
그 마을을 사진을 찍었다. 마을 뒤로 비스듬한 낮은 구릉 같은 밭 뒤로 골프 연습장 그물이 우중충한 색을 하고 서 있다.
역풍 때문에 두 시간에 20킬로 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감이 든다.
다시 나서서 힘을 내어 달린다.
10시 35분 구미보에 도착하였다.
3시간째 달려도 바람은 그칠 줄 모른다. 달리면서 계획을 수정해야 하나 어쩌나 하고 심각하게 고심한다.
12시
낙단보 못 미쳐 다리 아래 다릿발 뒤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잠시 쉬었다.
역시 먹을 것이라곤 초콜릿과 꿀물이다.
12시 13분 낙단보 직전 낙동마을에 도착하였다.
배낭에는 더온이 두 봉지 더 있었지만 한 끼라고 들어있는 곡기가 달랑 백 그람 밖에 되지 않아 먹어도 전혀 배가 부르지 않으니 정말 허기만 때우는 것이라 마침 눈앞에 보이는 중국집에 들렀다.
중국집의 현관 안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려니 주인아저씨가 자기가 자장면 만들면서 눈에 바로 보이는 자리라며 문 앞에다 세우라고 한다. 그래 문 앞의 유리창 손잡이에 자전거 프레임을 걸어서 자물쇠를 함께 채운다.
자장면 집에 들어서서 배낭을 벗고 자리에 앉으니 금방 음식이 나온다.
들어서면서 주문한 간짜장 곱빼기가 채 오 분도 되기 전에 나온 것이다.
식당 안은 오래된 벽지가 시골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데 벽에 걸린 커다란 숫자만 있는 달력의 아래를 보니 어디 근처 지역 농협에서 나온 것으로 주소가 상주시 낙동면 상촌리 몇 번지로 되어있었다. 이제 상주시 관내로 온 모양이다.
주인장이 내가 배가 몹시 고픈 것을 눈치 챘는지 자장면 곱빼기 양이 보통집 곱빼기의 1.5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많은 자장면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삼키고 12시 44분 나섰다.
자장면을 먹는 동안에 사람들이 어찌나 들이닥치는지 자리가 없어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내옆에도 이십대 초반으로 뵈는 아들과 그 아버지가 들어와서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자장면을 시켜 먹고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고, 아버지는 아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진지하게 듣고 있다. 그 아비는 얼핏 보면 늙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보다는 나이가 좀 어려 보였다.
간짜장 곱빼기는 육천 원이었다.
집을 나서니 바로 길 건너에 커다란 이층 누각이 서있다. 현판에 보니 관수루라 씌었기로 좋은 이름도 많을진대 굳이 물을 바라보는 누각이란 이름을 지은 까닭이 무언가 하고 생각타가 그 아래 절벽 까마득히 흐르는 푸른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고인이 그 누각의 이름을 그리 지은 까닭을 어찌 알리오마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날 그 누각 위에서 책을 보다가 낮잠을 즐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미시를 통과할 즈음 비는 그쳤고, 날은 화창하게 맑아져 가고 있었다.
그곳 관수루를 지나고 5분 만에 도착한 곳이 낙단보다.
낙단보에서 사진을 찍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려다 말고 안내판을 보니 낙단보를 건너가라고 하고 있다.
그림에 보니 길 어디로 가도 모두 산 속으로 달리도록 되어있다. 지도를 갖고 왔거나 네비 혹은 맛폰을 갖고 왔더라면 국도를 따라 가로질러 가고픈 마음이었지만 산 속에 무언가 보여줄 것이 있어 안내한 것이 아닐까 마음을 고쳐먹고 그 길을 따라 달렸다.
배가 든든하니 다리에 힘이 절로 실려서 맞바람을 안고서도 열심히 달린다.
바람을 적게 받기 위해서 로드의 아랫부분 손잡이를 잡고 엎드려서 힘껏 페달 질을 해 본다.
2시 50분 상주보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또 다시 달리기 시작하여 3시 27분 경천대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남은 거리는 오륙십 킬로 정도 되는데 열차 시간은 오후 9시 49분이다.
맞바람이 불지 않아도 빠듯한 시간이라 고민에 빠진다.
멀리서 자전거 박물관을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서 경천대에서 사진을 좀 찍고 다시 달리기 시작하여 상주 박물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뒤로 돌아 내려가니 웬 젊은 사내아이들이 너덧 명이 모여서 있다.
망루처럼 높게 만들어 둔 조망대 위에서 내려온다.
그 아래를 지나 경천대가 잘 보이는 목재데크 위로 내려가다 경천대를 향해 사진을 두 판 찍고 내리막을 달렸다.
잠시 가다 보니 새재 가는 길과 다리 건너 안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표시된 안내판이 있었다.
길바닥에 새재 가는 길이라 표기되어 있어 안내판을 보니 안동방면은 다리를 건너가도록 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가는 길에는 자전거길이란 아무런 표시도 없다.
다리 한 가운데서 자전거족 너덧 명을 만났다.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는 곳에 안내판이 붙어있다.
다시 둑을 따라 달렸다.
4시 17분 예천군 와촌 배수장 앞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미 해는 기울고 강바닥에는 떠내려 온 얼음이 하얗게 눈처럼 쌓여있다. 그 넓이가 굉장히 넓게 강가에 모여 있어서 마치 빙하가 떠내려 와 있는 것이 연상될 정도였다. 멀리 문경 새재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안동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 보이고 그 가운데 산자락은 무자비하게 파헤쳐져 있어서 흉물스러웠다.
느낌에 삼강주막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안동방면에서 오는 사람들이 여럿이 마주친다.
길을 따라 가다 보니 59번 도로 삼강로와 마주쳤다.
지도 내용이 기억이 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노인을 불러 세우고는 물었다. 삼강주막이 어디로 가냐고
묻자마자 그의 대답은 저 고개만 넘으면 바로 있다고 한다.
감사히 인사를 드리고 고개 위를 향해 달렸다.
이제 안동은 포기하고 삼강주막을 거쳐서 용궁역에 가서 열차를 타고 복귀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삼강주막에서 용궁역까지는 대강 7킬로 정도 거리다.
거의 9시간째 여행 중이라 지쳐서 그 고개를 타고 올라갈 수 없어 내려서 걸었다.
5시 03분에 삼강주막에 도착하였다.
관광객이 제법 있었다. 주차장도 드넓고 주막은 여러 채가 있었다.
초가지붕에 강 쪽 마을 어귀의 고목은 세월을 말해주고 있고, 어언 해는 서산에 걸려 노을이 강물 위에 지고 있다.
조금 전에 예천군 와촌면 배수장에서 바라본 삼강은 아니지만 이곳도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삼강이 있었고 주막이 이곳에 있는 걸로 보아 새재로 과거길이며 한양 가던 사람들이 이 길목을 지나 강을 건넜던 모양이다.
혼자서 사진을 찍고 경치를 구경하며 즐기다가 다시 자전거위에 올랐다.
다리를 건너서 용궁역을 향해 달렸다.
남은 7킬로미터는 맞바람만 아니면 삼십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바람이 아직도 세게 불고 있다.
한참을 달리다가 자전거를 세우고 가랑이 사이에 끼운 채로 서서 쉬었다.
어제 꿀 한 홉 정도를 녹여서 만든 꿀물 한 되도 모두 비우고, 초콜릿 몇 개가 남았을 뿐 먹을 것도 딱히 없다.
산에 비상식으로 갖고 다니는 건빵도 육포도 배낭에 넣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인 순간이었다.
몸이 지친다는 것은 차의 휘발유격인 영양이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다시 초콜릿 몇 개를 먹고 달린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아직 어둡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었다.
고어 삼중 재킷과 바지가 바람을 충실하게 막아주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달리기에 딱 좋은 날씨다.
한참을 달리다가 지도에 나오던 것과 달리 길이 너무 남서쪽으로 휘어지는 것만 같아 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보니 멀리서 키가 횃대만큼 큼직한 사내가 하나 길을 건너 휘적휘적 걸어온다.
잔차를 그리로 몰아 그에게 물었다. 말 좀 묻자고 하니 그가 하는 말이 "아이 케엔 스핔 코리안 랭귀지" 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키도 컸지마는 하얀 얼굴에 코도 크고 손발도 엄청 크다. 키가 2미터도 더 되지 싶다.
잘은 몰라도 저들이 하는 말이 케엔 하면 모른단 말이고 켄 하면 안다는 말이라더라 싶어 그냥 돌아선다.
다시 멀리 웬 할머니가 머릿수건이며 목도리로 온 몸을 감싸고 걸어오길래 달려가서 물었다.
할머니 왈 되돌아가서 마을이 나오면 그 길로 따라 가면 용궁면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 가는 길로 가도 되지만 둘러가니 되돌아가라고 알려준다. 감사히 인사하고 돌아서 내려오니 삼거리가 보인다. 회룡포 가는 삼거리다.
거기서 회룡포까지가 9킬로미터다.
탈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지도를 만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지만 어찌하랴.
네비 없던 시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던 대로 하지라고 생각하며 갈림길에 서서 기다리니 웬 외제승용차가 한 대 갖다 댄다. 물으니 자기가 온 동네가 용궁이라며 이 길로 쭉 가라고 한다.
거기서 2킬로 정도 올라가니 용궁시장이 나왔고, 시장 들어가기 전에 철길이 먼저 마주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시장에 들어서서 큰길까지 진출하여 웬 남자분께 역을 물으니 좌회전하라고 한다. 약국이 있는 사거리에서 보니
길가에 멋진 검정색 K7 승용차에서 웬 팔등신 미녀가 하나 내린다. 검정색 순모 짧은 재킷과 미니를 입고 스타킹에 굽 높은 검정색 고운 구두를 신었는데 어깨위로 물결치는 갈색 머릿결에 뒷모습이 여느 연예인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몸매다. 그녀가 차 안에 들여다보고 보자기에 싼 오봉과 커피보온병을 꺼낸다. 예전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니거나 직접 택트를 몰고 다녔지만 요즘은 번쩍이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배달 다니는 모양이다. 그녀를 지나쳐서 남쪽을 향해 달린다.
역 앞에 도착하여 보니 역 입구에 순댓국밥집이 두 곳 열려있다.
역사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무인역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웃 점촌역이나 또 어디 역으로 전화하라고 하는데 현지인들이야 지역번호를 알고 있으니 그대로 전화하면 되지만 멀리서 온 외지인에겐 지역번호를 몰라서 거기 쓰인 전화번호는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114에 물어서 지역번호를 알아내어 또 전화하기가 번거로워 집에서 출력한 열차 표에 적힌 1588-7788로 전화를 하였다. 안동에서 오는 저녁 9시 46분차 이전에 용궁역에서 탈 수 있는 열차가 없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없다였다. 그리고 원래 안동역에 예약해 놓았던 그 열차도 용궁역에는 정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꼭 그 열차를 타려면 안동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용궁에서 안동까지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 거기 열차시각 안내판에 보니 주말 순환열차라는 것이 있었다. (삼일절 공휴인건 맞지만 엄격히 말해 금요일이라 주말열차가 있는 진 모르지만) 주말에만 운행되는 용궁역에서 19시 46분에 출발하여 동대구역이 종착역인 순환열차로 그걸 탈 수 있냐고 물으니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전화로 미리 예약한 표를 해약하고 순환열차는 그냥 타서 열차 안에서 표를 사고 대신 동대구역에서 환승 출발하는 22시 11분차는 예약을 해 주면서 반드시 역에 도착하면 매표소에 가서 발권을 해야지만 해약이 안 된다며 꼭 발권을 하라고 하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역 앞의 입구 순대 집에서 저녁으로 순대국밥을 시켜 먹고 오천 원을 지불하고 다시 역에 돌아왔다.
역에 들어가는 입구 우측의 순대집 주인아주머니는 곱게 나이가 든 중년으로 외모 못지않게 마음도 친절하였다.
역사는 아직도 캄캄하였다. 주말 순환열차가 도착할 시간 까지는 한 시간 가량 남아있다.
이런 전화로의 예약과 해약 등 제반 열차의 발권서비스는 모두 사전에 코레일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어야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열차도 해결되었고, 국밥도 맛이 있었고, 친절하기도 그만이어서 흐뭇해졌다.
자전거를 분해해서 가방에 넣어야 하는데 역사 내에 불 켜는 스위치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스위치는 없다. 결국 컴컴한 역사 안에서 혼자서 안력을 돋구어서 자전거를 풀어 가방에 넣어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대구역에서 배낭에 자전거를 메고 다시 매표소에 가서 발권하여 승강장으로 오는데 허용되어 있는 시간이 단 십삼 분이다. 무궁화호가 동대구역 도착시간이 9시 58분이고 ktx 승차 시간이 10시 11분인 것이다.
다시 1588-7788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시간 안에 무거운 가방과 자전거를 메고 매표소를 왕복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걱정을 하니 핸드폰에다가 발권내용을 문자로 보내면 간단히 해결된다며 바로 문자로 전송해 주었다.
먼저 안내해 주고 발권예약해 주고 한 안내원도 고마웠지만 다시 전화 받은 이번 안내원은 너무 고맙고 친절하여 천사같이 느껴졌다. 이제 정말 모든 걱정이 다 해소된 것이다.
거리 백오십 킬로를 열 시간에 주파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맞바람만 아니면 시간당 이십 킬로는 달릴 수 있고 실제 주어진 시간은 새벽 7시부터 저녁 열시 경까지였으므로 열네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아무 걱정도 않고 탈출로도 준비하지 않고 출발하여 고생을 톡톡히 한 하루였다.
시간이 되자 무인역에 거짓말같이 열차가 나타났다.
캄캄하던 역사는 열차가 나타나기 이십분 정도 전에 불이 절로 켜졌다. 인근 역에서 조정하는 모양이다.
용궁역에서는 나 외에 젊은이 두 명이 도합 세 명이 탔다.
잠시 있으니 승무원이 와서 저녁 좀 먹고 끊어주겠다고 하고 사라지더니 도시락을 갖고 와서 가장 앞자리의 테이블 위에 놓고 식사를 했다.
승무원에게 동대구 도착해서 바로 환승할 수 있냐고 물으니 우리 열차가 도착하는 곳은 2,3번 통로이고, 환승할 곳은 5,6번 승강장이라고 친절히 일러준다.
감사드리고 폰으로 동대구역과 밀양역 도착할 시간 십 분 전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눈을 감았다.
밀양역에 도착하여 사람들 틈에 섞여 역 광장을 가로질러 대기하고 서 있는 버스들 앞의 건널목을 지나고 역전파출소 앞을 지나서
새벽에 주차해 둔 차에 도착하여 잔차와 배낭을 싣고 집으로 달렸다.
스맛폰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평소 네비와 지도 숙지를 잘하고 다녀 아무 필요가 없었기로 색다른 경험을 한 날이다. 앞으로 여행에서는 바람이란 변수를 생각하고 중도 탈출계획도 반드시 수립해야 할 일이란 반성을 해 보며
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