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여섯째 이야기
- 멧돼지의 분골쇄신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
이 친구 그야말로 어쩌다 임금이 되었는데
되고 나면 1년 365일 신날 줄만 알았건만
그러기는커녕 된 지 100일밖에 안 됐는데
이리저리 터지는 일에 우울해지는구나
창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저 놈의 비는 왜 이리 많이 오는 거냐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화만 자꾸 난다
그 날도 퇴근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가니가 웬일로 술상을 볼 테니 일찍 들어오래서
만사 제치고 들어가는데 뒤돌아 보니 정말 비가 장관이더군
언덕 위 높은 곳에 사는 것을 다행으로 알고
그냥 퇴근을 했는데 그 때문에 사달이 날 줄이야
그럴 때는 차를 돌려 재난대책본부라나 거기 가서
뭐 아는 건 별로 없어도 폼 잡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미처 몰랐다는 게 이리 두고두고 씹힐 줄이야
그렇게 자유가 없는 게 임금이라면 안 하는 건데
도승지도 이조판서도 모두 술자리에 갔던데
자리를 지킨 건 영의정이라 역시 노회하다
솔직히 내가 뭐 아는 게 있나
그냥 집에서 술 마시며 전화만 받으면 되는 게 아닌가
거기 가봤자 걸리적 거리기만 할 텐데
왜 그리 난리들인지 지금도 모르겠구나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폼 좀 잡으려고
노란옷 입고 판서 승지 내시 거느리고
현장에라는 데를 가서 한마디씩 했는데
반지하 살던 일가족이 죽었다고 해서
그 앞에 가서 내려다 보며 자다가 죽었군 했더니
그거 가지고도 지랄들을 한다
지상에서 반지하방을 내려다 보며
사진 한 장 폼나게 찍었더니 그걸 또 뭐라 하네
아니 할 말로 반지하 살다 죽은 게 내 탓이냐
옛말에도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무튼 이번 큰비로 멧돼지 스타일 다 구겼는데
말만 하면 실언 망언이요 움직이면 망동이렷다
때마침 멧돼지 붕당 선량이라는 인간이
수해복구 자원봉사한다고 나가서 한다는 말이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사진빨 잘 나오게
멧돼지 이 말 전해 듣고 솔직하다고 생각했것다
사실이지 지나 내나 사진 찍으러 가는 거지
전임 임금과 신하 중 안 그런 놈 있으면 나와 봐라
사실 큰비 내리기 전부터도 조짐은 안 좋았다
예조판서로 처음에 점찍은 인간 딱 멧돼지 스타일이었는데
가족끼리 어쩌구 장학금이란 걸 다 해 쳐먹었으니
본부장 비리라는 걸로 시달리는 것과 비슷하고
제자들한테 걸핏하면 막말했다고 하니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멧돼지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근데 이 인간 제일 먼저 스스로 물러나 버린 거라
물론 멧돼지 측근들이 압력을 넣기도 했지만
그래도 멧돼지는 같은 과라 버티길 은근히 바랐는데
할 수 없이 다음은 여성으로 점 찍었것다
하도 여성이 적다고 난리굿을 쳐서
그럼 여자로 해보자고 골라 보았건만
아 글씨 이 여자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거라
그것도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를 했다지
승지들 내시들 측근들이 다 걱정하는데
멧돼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것다
술 좋아하니 얼마나 꿍짝이 맞겠느냐
한가할 때 술 한잔 하면 좋겠구나
나는 임금 너는 신하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나누며 잘 놀아난다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여
너는 여자 나는 남자
여자와 남자가 술내기 하면서 잘 놀아난다
얼싸 좋네 아 좋네 군밤이여
군밤타령까지 속으로 흥얼거리며
가니 눈치만 살살 보았건만
이 판서는 임명까지 했음에도 낙마했는데
되자마자 학교 입학 연령을 한 살 내린다고 했것다
뭐 지 혼자 생각해서 그럴 리가 있겠냐
멧돼지나 도승지 등과도 다 이야기된 건데
백성들이 그렇게 싫어할 줄이야 진정 몰랐으니
별 수 없이 독박 쓰라고 하고 사퇴시켰는데
내용도 문제지만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않고 했단다
뭐 그 점도 멧돼지와 딱 체질이 맞긴 했는데
사실 소통이라는 게 판서야 임금과만 하면 되고
멧돼지야 가니나 법사, 스승과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래저래 인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날마다 터지는 일 수습하기도 어려운데
즉위 100일이 됐다고 기레기 모아 놓고 한마디 하란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안 되니 사과하는 목소리로 하라는데
멧돼지 원래 사과라곤 잘 모르는 성질이라
뭐라고 말할지 잘 떠오르는 게 없구나
생각 같으면 한마디 해주고 싶은 멧돼지
기레기 니들만 표현의 자유가 있고 나는 없냐
그저 씹지 못해 안달인 반대 붕당 놈들 기레기들
기다려라 내가 다 싹쓸이 할 거다
니들 열 놈만 잡아 놓으면 깨갱 하겠지
하면서 어퍼컷 한 대 날리면 다들 쫄겠지 했는데
가니가 편전으로 납시어
매직펜으로 손바닥에 써주는 네 글자
분골쇄신이란다 이게 뭐더라 옛날에는 알았는데
과거 합격한 후로는 책이라곤 본 게 없으니
아무튼 뭔가 좀 과격한 말 같은데
잘 모르겠어서 가니 얼굴만 쳐다 보니
오빠 잘 알겠지 분골쇄신하겠다고 해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순다는 말이야
아니 그럼 죽는다는 뜻 아니야
에이 멍충아 진짜 그런다는 말이겠어
그 정도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지
아하 그렇구나 이 말도 법사나 스승께서 주셨겠지
분골쇄신 분골쇄신 까먹을까봐 되뇌는데
가니가 나간 틈을 타서 승지 하나가 살짝 이르는 말
전하 자고로 분골쇄신은 뼈를 가루로 만든다는 말도 되지만
뼈에 분칠을 한다는 뜻도 되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고 성심을 굳건히 하소서
승지가 그러면서 알 듯 모를 듯 웃는구나
그렇지 뼈를 가루로 만들면 어찌 되나
분칠을 해야지 분칠을 해야지
그리하여 즉위 100일 기레기 만남은
분골쇄신으로 잘 덮어서 넘겼것다
이제부터 잘 되겠지 하고 기대하는 멧돼지
이제 지방 순시를 나가자 마음먹고
멧돼지를 열렬히 지지해 준 지역 시장을 가기로 했것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시장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네
인기가 떨어졌다더니 그게 아닌가 보네
기레기들이 지지율을 조작하는 건가
괜히 기분이 좋아서 으쓱해진 멧돼지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가 여기 온다는 일정이 미리 알려졌다고
승지 하나가 옆에서 작은 말로 속삭이는구나
무엇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임금이 행차하는 길이 알려지다니
어느 놈이 그런 역모와 같은 짓을 했다더냐
멧돼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는데
승지는 그냥 말을 못하고 쩔쩔매기만 하는구나
오빠 내가 팬클럽에 알렸어 뭐 잘못됐어?
생각해 봐 오빠가 행차했는데 썰렁해봐
그렇지 않아도 인기없는 임금인데 어떻겠어?
다 오빠 생각해서 내가 한 조치라구.
이건 또 뭐냐 가니가 그랬다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화만 삭이는 멧돼지
나를 위해서 그랬단다 나를 위해서 그랬단다
이렇게 분을 삭이며 스스로 달랠 수밖에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잡친 널뛰기 행차를 끝내고
편전으로 돌아오는데 뭔가 또 이상하다
편전을 거의 둘러쌀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들고 줄을 서 있구나
이번에도 가니가 팬클럽에 알렸는가 했는데
가니도 모르는 듯 당황한 표정이더라
사람들 들고 있는 팻말을 자세히 보니
멧돼지여 분골쇄신하라 멧돼지여 분골쇄신하라
아하 열심히 하라고 응원하러 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기대를 하는구나
다시 기분이 막 좋아지려는 찰나
그 밑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보니
멧돼지 뼈를 가루로 만들면 특효약이 되고
몸을 부수면 굶주린 백성 배불리 먹으리라
놀라 자빠진 멧돼지 편전으로 안 들어가고
어디론가 줄행랑을 놓았다든가
그 길로 멧돼지답게 산 속으로 들어갔다든가
멧돼지의 일장춘몽 여섯째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