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의 『봄날』-1980년 5월 광주의 망각에 대해 저항하는 기억 투쟁의 기록
김완
어느 사회, 어느 공동체이든 악몽으로 비유될만한 비극적 사건 한두 가지를 겪은 경험이 있다. 전쟁과 혁명, 집단 학살과 추방, 이산과 식민화 등 이 지구상의 국가들 중에 이런 사회적 재난을 비켜간 국가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비극적 사건을 예술의 여러 형식으로 치열하게 형상화하는 사회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두 종류의 사회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둘은 재난의 경험을 기억하는 사회와 재난의 경험을 망각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어떤가? 임철우의 『봄날』이 있음으로써 우리 사회는 광주항쟁 혹은 그날의 비극을 더욱 절실하게 기억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살아온 지난날을 기억할 수 없는 인간은 노예 상태의 삶을 사는 인간이다. 그 인간은 자아가 분열된 인간이며 자기를 망각하는 인간이다. 임철우가 1980년 5월 광주를 기억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1980년 5월 광주를 감상적으로 회상하는 게 아니라 그날의 비극과 상처와 외로움, 희망을 오늘에 되살려낸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전도된 과거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연대와 유토피아의 시간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임철우의 『봄날』은 1980년 5월 광주의 망각에 대해 저항하는 기억 투쟁의 기록이다. 5·18 광주를 쓰겠다는 작가의 서약은 단편『동행』, 『봄날』, 『직선과 독가스』, 『불임기』, 『사산하는 여름』, 장편 『붉은 산, 흰 새』로 이어지고 『불의 얼굴』의 연재와 『봄날』으로 완성(“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았던 그 봄날 열흘, 저 잊혀진 도시를 위하여 이 기록을 바친다”) 되었다.
2020년 <아시아 문학 공부하기> 모임에서 제가 『봄날』의 발제를 맡아 소설을 읽는 동안 가슴이 아프고 울렁거려 잠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새삼 이 소설을 쓴 임철우 작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봄날』에서 반복되는 언어의 이미지 분석이 필요하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언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이 이미지가 어떠한 서사적 의미를 만드는가 논의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씨와 피의 이항대립적 관계가 주목을 끈다. 두 언어는 붉은색이라는 속성을 공유하지만 소설 안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기대와 소망 대 증오심과 적의’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봄날』의 피는 철저하게 죽음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그 피는 신성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 그 피는 죽어가는 자들이 뿜어내는 고통의 피이며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이다. 죽음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피와 대립되는 언어의 존재를 우리는 『봄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언어는 바로 불씨이다. 불씨는 불의 가능태이며 불이 되고자 하는 희망이다. 역설적이게도 군부 권력의 반복되는 폭력은 오히려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불씨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가중되는 고통은 억압받은 자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다.
주요 인물들의 시점이 광주와 어떻게 만나는가?: 『봄날』은 광주의 진상을 복원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주요 인물들의 시점으로 복원되는 진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논의가 필요할 듯합니다. 무석의 시점과 ‘추한 현실’, 명기의 시점과 ‘죄의식의 형성’, 명치의 시점과 ‘추악한 범죄’가 그것이다.
진상을 복원하거나 드러내는 일이 언제나 만족할 만한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상으로 위장한 왜곡된 결과, 우리를 착잡하게 만드는 결과를 확인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게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작가는 작가의 시점으로 5월 광주를 그려내기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 혹은 그 시점에 5월 광주는 추한 현실이며 죄의식을 지니게 하는 사건이며 추악한 범죄로 복원되고 있다. 『봄날』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직접 만든 소설이며 동시에 그 항쟁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과 대학생들의 작품이다. 더 덧붙이자면, 『봄날』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비극과 그날 죽어간 사람들의 운명을 내 삶의 비극과 운명으로 받아들여버린 작가 임철우의 절실함이 만든 작품이다.
질문: 평론가 김형중의 말처럼 “일지에 따른 시간대별 86개의 시퀀스, 그렇다면 <봄날>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인가? 그렇지 않다. 실시간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사실성에의 집착은 물론 소설 <봄날>의 남다른 특징이다. 그것을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 낳은 ‘정확성 강박’의 결과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열흘간의 항쟁 기록, 기록문학적 성격이 너무 강해 인물과 인물들 간의 관계, 그로부터 빚어지는 서사 과정이 거의 없어 작품을 인물들의 드라마로 만들지 못했고, 구조적으로 불안한 소설이다는 일부 평가가 있습니다. 이점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한번 청해 듣고 싶습니다. 발제문에 언급된 ‘빛울림’이라는 학내 소설 동인에서 언급된 후배 장종대는 의과대학 보라문학회의 장종대 인지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인문학이라는 폭넓은 개념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시인 김완(金完) 약력
광주출생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지상의 말들』,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등이 있다. (사)광주평화포럼 이사장, 김완혈심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