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산 사람 다윗(22) / 사무엘하 11:1~17 / 다윗과 밧세바
(삼하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삼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삼하 11: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삼하 11: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11: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11장은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아시죠?
9장에서 이스라엘 내부적 위협이 되는 사울을 따르던 남은 세력을 다 해결했습니다.
10장에서 외부적으로 위협이 되는 암몬과 아람 연합군과의 전쟁도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윗의 왕권을 위협하는 것은 다윗 자신의 욕심과 죄의 문제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내 안에 회개하지 않는 죄가 결국 나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암몬과의 전쟁할 때 상황입니다. 아람 군대는 해결했지만, 암몬은 랍바성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기에 이듬해 이스라엘이 랍바성을 에워싼 상황입니다.
그때 다윗이 예루살렘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밧세바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에게로 데려와 동침합니다. 다윗에게는 이미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무엇이든 채워주셨습니다.
그런 다윗이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더구나 자신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면서도 데려와 못된 짓을 합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1절, “이듬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라는 말은 이후에 전개된 다윗의 행동이 부적절하고, 왕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다윗은 왕들이 출전해야 하는 사명을 소홀히 여기고 후방에 편안히 남아 있다가 죄를 범하게 됩니다. 영적인 나태함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안일한 마음을 갖게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범죄로 밧세바가 임신합니다.
간음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서 우리아 장군을 부릅니다. 그리고 아주 노골적으로 아내와 성관계를 하라고 말합니다.
8절의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는 말은 구약에서 “발”은 성기를 의미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우리아에게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여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았고, 이제는 그 죄가 장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충신 우리아는 참으로 다윗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아는 상관 요압 장군과 부하들이 전쟁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먹고 마시고, 처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느냐고 하며 집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다윗은 영적 태만으로 자신의 사명을 잊은 채 하나님께 죄를 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의 부하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때 간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오히려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고, 요압과 부하들에 대해 신의를 지키기 위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거부합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실패하고 넘어질 때를 보면, 힘이 없고, 가난하고, 위기와 역경을 만났을 때가 아닙니다. 고난이 나를 죄짓게 하고, 영적으로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와 권세, 명예와 인기가 있을 때, 소위 힘이 넘쳐날 때 영적 태만이 시작되고, 자신도 모르게 죄가 자라나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13년이나 괴롭혔던 사울 집안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오랜 숙적 암몬과의 전쟁도 승세를 잡았는데, 결국 하나님과 맺은 다윗 언약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위협적인 힘은 다윗 자신의 죄였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우리아에게 음식과 술을 주며 먹고 마시게 했지만, 정신이 멀쩡한 다윗보다 술에 취한 우리아가 더 영적으로 신실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신실함과 충성됨을 보면서 마음에 얼마나 찔렸을까요?
양심이 마비되지 않은 이상 얼마나 마음이 쪼그라들었겠습니까?
그게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입니다. 죄를 키우지 않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양심의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생의 내리막길을 만나게 됩니다.
나중에 자신의 죄를 깨달은 다윗은 시편 139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진정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심을 기억하고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의롭게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존 오웬의 <죄 죽이기>라는 책에서 죄를 죽이는 9가지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중 몇 가지 핵심을 보면,
① 양심으로 죄를 느끼라
② 성품 속에 죄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피라
③ 죄는 내가 이길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요? 내 힘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안 짓겠다는 노력보다 먼저 성령 충만(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향락이나 술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죄의 유혹을 이기고 살 수 있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