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조선지리소고」 "남해안은 ‘조선의 에게해’"
해안선의 굴곡이 많으면 해운과 어업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한반도의 동해안은 남해, 서해에 비해 단조롭다. 굴곡도 없고 섬도 거의 없다. 환경결정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김교신은 반론을 제기한다. 이런 빈약함은 남해와 서해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나쁜 해안’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함경북도만 해도 웅기, 청진, 성진, 나진 등 여러 항구가 자연적으로 분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함경남도로 눈을 돌린 김교신은 특별히 흥남항에 주목한다.
몇 년 전에 조선질소비료회사가 흥남항을 건설함으로써 어선 10여 척이 전부이던 작은 포구가 갑자기 함경남도 최대의 무역항으로 약진하게 된 것도 우리의 기억에 새로운 바이다. 이처럼 약간의 사람의 힘을 더하면 좋은 항구가 될 만한 곳은 아직도 많다.
‘약간의 사람의 힘을 더하면’이라고 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강조를 다시 확인한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란 말이다. 김교신의 고향 함흥은 함경남도의 중심 도시다. 흥남은 ‘함흥의 남쪽’이란 뜻으로, 1920년대 초까지는 제대로 된 지명조차 없었다가 일본의 신흥 재벌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일본질소)가 흥남에 자리 잡으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27년 초에 착공하고 불과 2년 반 만인 1929년 말에 1기 공사를 마무리했고, 193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비료 생산에 돌입했다. 「조선지리소고」를 쓰기 4년 전의 일이다. 흥남은 대규모 중화학 공업도시로 탈바꿈했고 흥남항은 함경남도 최대 무역항으로 변신했다. 자연조건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노력이라는 김교신의 지론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김교신은 이 글은 쓴 지 10년 만에 그 자신이 흥남 일본질소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함경남도 남쪽 원산항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중국 요동 지방 대련에 여순을 더한 것과 흡사’한 매우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저 송도원 해수욕객이나 명사십리(明沙十里) 피서객’만 들어와 이용할 뿐이다. 김교신은 ‘러시아에 원산항 같은 항구가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아마 세계역사는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좋은 항구를 동해에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지 못하는 조선 백성의 부족함이 문제다. 이번에도 김교신의 강조점은 ‘사람’에게 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의지와 역량이 문제라는 말이다.
다음으로 서해안이다. 서해는 동해보다 자연조건이 훨씬 유리하다. ‘목포, 군산, 인천, 진남포, 용암포 등 좋은 항구가 거리도 적당하게 줄지어 있을뿐더러,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섬들과 리아스식 해안의 작은 항구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원시시대 이래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편리했다. 게다가 ‘연안의 경사면이 완만한 것과 압록강, 대동강 등 하구(河口)가 깔때기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여러 항구와 배후지와의 수륙 연락이 원활’하므로 동해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끝으로 남해안은 동해안, 서해안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김교신은 남해안을 ‘조선의 에게해’로 부르며 극찬한다.
남해안의 지절률(肢節率) 즉 해안선의 굴곡을 따라 잰 거리를 해안의 직선거리로 나눈 값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크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것을 보통 부르는 리아스식 해안이라고도 하지 않고 특별히 ‘조선식 해안’이라고 명명하였다. 포도송이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이삭에 또 이삭이 달리듯이, 반도에 또 반도가 붙고, 섬에 또 새끼 섬이 달린 것이 조선의 에게해(Aegean Sea)라는 별칭을 가진 남해안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인 에게해는 해안선이 복잡하고 크고 작은 수많은 섬이 솟아 있는 바다다. 섬이 많아서 고대 선원들은 먼바다에서도 길 잃을 염려 없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해역 전체가 아시아와 유럽의 접촉점에 위치하고 고대 문명 발상지 이집트에도 가깝다. 그러므로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 해역을 중심으로 에게문명이 생겨났고, 고대 후기에는 그리스 문화의 중심부가 되었다. 철학자 플라톤은 그리스인을 ‘연못 주변에 사는 개구리’에 비유했을 정도다. 에게해 주변에서 살았던 그리스인을 개구리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 문명은 에게해를 떠나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에게해야말로 서양문명의 원류다. 남해안을 ‘조선의 에게해’라고 부른 김교신은 한반도에 ‘사람’만 있다면 세계 최고의 문명도 건설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