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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 문화 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책방
지난 해 한국에서 개최된 G20 회의의 이슈는 환율과 미국의 막가파식 달러 발행 – 이 표현이 정확하다(일반적으로 쓰이는 ‘양적 완화’는 대단히 완곡한 표현임) – 그리고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 논의였다. 이 가운데 대안 기축통화 문제는 프랑스에서 열릴 차기 G20 의제로 상정될 만큼 뜨거운 이슈였다. 기축 통화에 관한 논의는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제안한 ‘변형 금본위제’와 중국과 브라질이 제안한 ‘SDR’( IMF가 회원국의 출자금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상의 화폐 단위) 도입으로 압축된다.
G20에서 ‘대안 기축통화’가 차기 의제로 거론된 것은 그 자체로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기축통화로서 미국의 ‘달러’는 거론조차 불편한 비밀들을 은닉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달러>는 그 비밀들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한국의 외환위기가 미국 금융패권세력의 사주를 받은 미국 재무부와 IMF의 기획 작품이었다는 주장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지만, <달러>에 나오는 ‘197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단원을 읽노라면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가 떨릴 정도다. <달러>는 음모론이 아닌 역사적 실증을 기반으로 미국 월가의 금융강탈영주들의 만행과 그들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월스트리트 투기꾼들의 습격
일본의 국가 주도 시장시스템은 매우 효과적이고 능률적이어서 1980년대 말까지 일본은 세계의 경제 및 금융 강국으로 인식됐다. 이 모델은 호랑이 경제권, 곧 한국, 말레이시아 등의 동아시아국가들에서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입증됐다. 동아시아는 1970년대 및 1980년대에 일본의 국가 개발 원조로 성장했다.
소련이 와해되자 일본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나라들에도 자신의 모델을 권고했고, 많은 나라가 일본과 한국을 미국의 자유시장 시스템에 대한 가능성 있는 대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국가주도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이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만인복지를 제공했다. 엥달은 이렇게 썼다.
호랑이 경제권들은 국제통화기금의 시장경제 모델을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존재였다. 민간 기업을 국가의 강력한 역할과 섞어 이루어낸 바로 그 성공이 국제통화기금의 시장경제 구호에 위험이 됐다. 호랑이들이 강력한 국가 역할에 기초한 모델을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한, 옛 공산권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극단적인 국제통화기금의 방침에 따르는데 거부감을 가질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1980년대에 경제성장률이 연 7~8%에 달했다. 이와 함께 사회보장의 확충과 보통교육, 높은 노동생산성이 모두 시장경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지도와 계획으로 뒷받침됐다. 자애로운 가부장주의의 아시아적 형태였다.
시장경제 하에서의 높은 경제 성장과 사회보장 확충, 보통교육의 확대 등은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추구했던 ‘공영(Common Wealthy)’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델은 국제 은행가들의 부채에 기반한 화폐시스템과 국제통화기금의 차관 정책에는 중대한 위협이었다.
이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 미국은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를 높이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일본은행에 압력을 가했다. 제시된 논리는 이러한 재평가가 일본의 막대한 자본수지 흑자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힘이 막강했으므로 일본은 어쩔 수 없이 협조하기로 했다. 1987년에 일본은행은 금리를 2.5%로 내렸다. 그 결과 ‘값싼’ 돈이 넘쳐나 도쿄 주식시장이 급등했고, 주식시장에 거대한 거품이 일어났다. 일본정부가 금리를 올려 조심스럽게 거품을 빼려 하자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 공격에 나섰다. 새로운 파생상품을 도구 삼아 공매도로 주가를 폭락시켰다. 엥달을 이렇게 썼다.
일본이 투기 열풍을 식히려는 조치를 취하자마자 모건스탠리와 살로먼브라더스가 이끄는 월스트리트 주요 투자은행들이 새 파생상품과 금융도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간섭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던 도쿄 주식시장은 공황에 가까운 급락으로 돌변했다. 그 과정에서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도쿄 주식을 공매도하며 한몫 단단히 잡았다. 몇 달 사이에 일본 주식시장은 장부 가격으로 5조 달러 가까이 잃었다.
‘대장 기러기’ 일본이 심한 부상을 당했다. 미국 경제 주류와 국제통화기금은 ‘일본 모델(국가주도 시장경제시스템)’의 종언을 선언하고 편대를 지어 뒤에서 날아가고 있던 호랑이 경제권 무리로 관심을 돌렸다.
호랑이 경제권의 와해: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
이때까지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빚에 묶이지 않았었다. 국제통화기금의 차관이나 외국자본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호랑이 경제권들에 통제된 금융시장을 열라는 요구를 하기 전의 얘기다. 동아시아국가들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요구에 응했다. 그러자 비밀 자금줄로 무장한 기관투기꾼들이 공격에 나섰다. 시티그룹을 포함한 국제은행가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먼저 태국을 겨냥했다. 그 나라의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달러에 대한 기준환율을 폐기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태국은 항복했다. 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고, 국제통화기금에 도움을 청했다. 그런 뒤에 다른 기러기들이 하나하나 그 뒤를 따랐다. 일본정책연구소 차머스 존슨 소장은 1999년 7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펀드들은 손쉽게 태국, 인도네이사, 한국을 강간했다. 그러고는 떨고 있는 피해자들을 국제통화기금에 넘겼다.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서방 은행들 가운데 어느 곳도 이 황폐화된 나라들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없도록 보증 받기 위해서였다.
마크 웨이스브로트는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이 경우에 국제통화기금은 금융 위기를 조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정책을 처방하기까지 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자본 통제의 철폐를 처방해 아시아 시장을 외국투자자들의 투기에 개방토록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나라들에 필요했던 것은 투기적인 통화 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것이었다.
1997년에 열린 지역 재무부 장관 회담에서 일본정부는 아시아통화기금(AMF)를 제안했다. 국제통화기금이 부과한 것보다 가벼운 조건으로 역내 국가들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시아통화기금은 서방 은행가들과 미국 재무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구체화되지 못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은 필요 자금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으면서도 매우 높은 이자와 ‘재정 긴축’을 강요했다. 그 결과 유동성 위기가 나타나고 아시아지역 전체가 불황에 빠졌다.
1997년에 아시아의 외화 비축분 1000억 달러 이상이 몇 달 사이에 민간 금융업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통화가 평가절하됨에 따라 실질소득과 고용이 하룻밤 사이에 급락했다. 그 결과 과거 실질적인 경제 사회적 진보를 이루었던 나라들에서 대량의 빈곤이 발생했다.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자국 통화를 달러 기준 환율에서 풀라는 지시를 받은 뒤 불과 석달 만에 인도네시아 통화인 루피화는 거짓말처럼 폭락했다. <통화개혁> 1998년 겨울호에서 마이클 초서도브스키 교수는 이렇게 썼다.
강력한 행위자에 의한 이 시장 조작은 금융 및 경제전쟁의 일종이다.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식민화하거나 침략군을 보낼 필요가 없다. 20세기 말에 (생산설비, 노동, 천연자원, 경제기구의 통제를 의미하는) 완전한 ‘국가 정복’은 회사 회의실에서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명령은 컴퓨터 단말기나 휴대전화로 신속히 전달된다. ............. ‘금융전쟁’은 또한 복잡한 투기 도구를 동원한다. 온갖 파생상품 거래, 외환선물거래, 통화옵션, 헤지펀드 등이다. 투기 도구들을 사용해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벌어들이고, 생산설비의 통제권을 손에 넣는 것이다.
초서도브스키 교수는 미국의 억만장자 스티브 포브스의 글을 인용했다. 포브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으로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이 이 위기를 조장했는가? 이 기관은 국가 경제를 위해 개방성과 투명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자신의 활동을 숨기는 것은 중앙정보국(CIA)에 필적한다. 예컨대 이 기구는 태국과 비밀 회담을 갖고 평가절하를 주장해 곧바로 파멸적인 연쇄 사태를 촉발시켰다. ..............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이 병을 악화시켰는가? 처방 결과 이 나라들의 통화는 형편없이 낮은 수준으로 거꾸러졌다.
초서도브스키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아시아 국가의 경제주권을 제거했으며,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보호한다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해체됐다는 표식이었다고 경고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더 이상 자국 화폐 발행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약탈적인 외국은행들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반격
아시아의 기러기들은 대부분 국제통화기금의 책략에 굴복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버텼다.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 모하미드는 국제통화기금이 금융위기를 이용해 국제 은행가들과 거대기업들로 하여금 제3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의 어려움을, 우리가 어떤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좋은 기회로 본다. 우리 시장을 외국 회사들에게 열어 아무 제약 없이 장사를 하게 하라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경제를 개방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모든 은행과 회사와 공장이 외국인들 차지가 될 것이다. ..............
그들은 개혁을 요구하지만 그렇게 하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나는 국제통화기금 고위 관리에게 회사가 문을 닫으면 노동자들이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부실한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 회사들은 외부 요인 때문에 부실해진 것이지 그들 잘못이 아니므로 문을 닫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은 그 회사들을 파산시키고 싶어 한다.
마하티르 총리는 아시아 각국 통화가 무너진 것이 거대 국제 헤지펀드들의 일제 공격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국제 투기꾼들은 비교적 작은 자산 가치 차이로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고 대규모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자본 유출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국제기구들에 통화 거래를 규제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과 외환 규제에 나섰다. 외국 자본 비위 맞추기에서 국가 발전 촉진으로 초점을 옮기려는 정책이었다. 그는 링기트(말레이시아 통화) 환율을 고정하고 말레이시아 안에서만 매매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이 조치가 진짜 외국인 투자가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 자금을 가지고 와서 현지 투자를 위해 링기트로 환전하고, 중앙은행에 필요한 만큼 링기트를 외국 통화로 바꿔달라고 신청하면 되는 것이다.
서방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곧 오리라고 생각했던 말레이시아의 경제 파탄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자본 통제가 이 시스템을 안정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통제가 시행되기 전 말레이시아 경제는 7.5% 축소됐었다. 자본 통제 이후엔 경제가 5% 성장했다.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1999년에, 세계은행이 말레이시아의 실적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고 인정했다.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이겼다. 그러나 국제 은행가들에게 진짜 위협은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힘센 그 북쪽의 이웃이었다. 중국이라는 용은 아직 버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불까지 내뿜고 있었다.
상기 <달러> 본문 중에 붉은 색 진한 글씨체로 강조한 “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더 이상 자국 화폐 발행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문장은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자 국가 화폐 발행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겐 대단히 불편한 진실로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 문장에 실질적으로 구애받지 않는 국가는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이 문장과 관련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
1997년 11월 22일, 한국 정부는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동시에 재정경제부 강만수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IMF 협의단을 발족했다. 다음 날 나이스 단장이 이끄는 IMF 실무협의단이 서울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 깡드쉬 IMP총재가 서울에 도착해 한국정부와 자금지원에 합의했다. 김영삼 정부는 그날 IMF 자금지원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대국민 발표문에는 없었지만, 김영삼 정부는 구제금융합의를 위해 IMF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면 계약을 체결했다.
◆재정·금융긴축을 통한 외환보유고 제고, 경상수지 적자 축소
◆투명·건전·시장중심적 금융질서 확립을 위한 금융산업 구조조정
◆통화정책 :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긴축기조 유지( IMF스탭과 협의하여 집행)
◆환율정책 : 총유동성(M3) 증가율 인하, 단기적으로 고금리 허용, 변동환율제
◆세수확대 : 원유세와 특별소비세 인상, 기타 간접세의 과세기준 확대
◆지출축소 : 경상경비 축소 및 SOC투자 등의 자본지출 축소
◆퇴출정책 : 9개 부실 종금사 정리, BIS기준에 미달하는 은행은 증자나 M&A를 통해 구조조정
◆통합금융감독기구 설립 : 독립성 확보(*)
◆한국은행 독립 : 물가안정을 주임무(*)
(*)두 법안의 입법과정에서 IMF가 자신의 의견을 강력 반영할 계획
◆개방 : 98년 중반까지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 허용
◆무역자유화 : 무역관련 보조금, 수입선 다변화제도, 규제적인 수입허가제 폐지에 관한 일정표 제시
◆자본자유화
ㅇ 외국인 주식매입한도 :
- 종목당 한도(현 26%)를 97년말 50%, 98년말 55%로 확대
- 1인당 한도(현 7%)를 97년말 50%로 확대
ㅇ 채권시장 : 98년 2월까지 단기자금시장 및 회사채 시장 개방 확대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 M&A에 대한 규제 대폭 완화
- 기업공시 철저 : 상장기업에 대한 국제적인 회계기준 도입 및 외부감사인에 의한 감사 의무화, 결합재무제표 도입,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폐지
- 파산관련제도 :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보조나 건전기업과의 강제합병 금지
◆노동시장 유연화 : 정리해고 제한 완화, 파견근로제 도입
※출처 : "IMF [한국경제 극비 보고서](전문)", 조선일보 1997.12.8일자 12면
이틀 후, IMF는 1차 지원금 56억 달러를 제공했다. 그날 한라그룹과 고려증권이 부도났다. 5일 후인 12월 10일에는 5개 종금사와 5개 증권사가 업무정지명령을 받았고, 환율은 3일 연속 제한폭까지 상승해 외환시장 거래가 중단됐다. 기업어음(CP) 금리는 6일째 법정 상한선까지 치솟으며 금융시장 전반이 마비됐다.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그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내렸다.
놀란 정부는 다음날(12월 11일)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을 선언하며,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50%로 확대했다. 그날 이후 김영삼 정부는 환율변동 제한폭 폐지, 최고금리 25% → 40% 확대,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 투자 확대 대폭 허용 등 금융시장 대책을 날마다 쏟아냈다.
1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와 함께 IMF 체제하의 한국경제는 김대중 정부로 이양되었다. 이듬해 2월 김대중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한 후, 외국인 투자 제한 폐지 또는 완화 조치가 잇달았다. 그러자 신용평가기관들의 국가신용등급 대폭 상향 조치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주가지수가 300을 하회하는 참상을 보이자, 김대중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1998년 5월 16일).
7월 1일 공기업 민영화 방안이 발표되고, 이어서 공기업 2차 민영화 방안이 발표되자(8월 17일) 꿈틀거리기 시작한 증시는 9월 들어 하나은행과 보람은행 합병,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 합병 등 금융권 구조조정 칼바람이 일면서 폭등세를 연출했다. 그 해 코스피는 최저점 대비 100%의 상승했다.
1999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 밝자마자 제일은행 채권단은 뉴브리지캐피탈에 지분 51%를 넘겨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다투어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올렸다. 4월 들어 DJ는 “구조조정 약속을 안 지키면 5대 그룹도 워크아웃을 할 것”이라며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4월 19일 대우그룹이, 4월 23일에는 현대그룹이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7월 20일 대우그룹의 12개 계열사가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대우 쇼크로 주가지수가 역사상 최대 하락율을 기록하며 폭락(72포인트)했다.
IMF를 앞세워 한국의 자본시장을 홀랑 벗긴 글로벌 금융자본들은 IMF 관리체제 하에 한국 경제를 철저히 유린했다. 발가벗겨져 무방비 상태에 놓인 주식시장을 마음껏 강간했다. 먼저 경제의 혈관에 해당하는 시중은행들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정부와 법조계 매판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담배인삼공사(현 KT&G) 같은 알짜 공기업들을 민영화시킨 후 수중에 넣었다. 글로벌 금융자본 가운데 미국 텍사스가 본거지인 론스타는 매판 경제관료 및 법조계 엘리트들의 비호 하에 자산관리공사(현 캠코) 임직원들과 손잡고 한국 땅을 미국 서부인양 무법자로 활개하고 다니면서 5년 만에 3조원을 벌어 한국외환은행을 2조원에 인수했다. 이후 5년 동안 지분매각, 현금배당 등을 통해 인수대금을 완전히 회수했고, 현재 진행 중인 보유 지분 51%에 대한 매각이 성공하면 약 5조원의 돈을 추가로 챙기게 된다.
여기까지는 매판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약소국의 설움을 삼키며 '다 지난 일'로 치부하며 덮어둘 수 있다. 하지만 이로부터 10년 후 탐욕스런 막가파식 금융게임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이 스스로에게 처방해오고 있는 일련의 경제 정책들을 보면, 10년 전 우리나라 외환위기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라는 이유로 달러를 임의로 찍어내 사용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유동성을 무기로 자신들의 특기인 금융 투기 게임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단지 자국의 통화를 임의로 발행할 수 있는 권리 즉 발권력이 있고 없음이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IMF 한국경제 극비보고서' 내용에 나오는 IMF의 구제금융 조건 가운데 붉은 색으로 표기한 부분이 그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통합금융감독기구 설립 : 독립성 확보(*)
◆한국은행 독립 : 물가안정을 주임무(*)
(*)두 법안의 입법과정에서 IMF가 자신의 의견을 강력 반영할 계획
IMF는 왜 유독 위 두 조항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을까?
위 두 조항의 궁극적인 뜻은 다름 아닌 "한국정부가 한국은행을 통해 화폐를 임의로 발권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더라도)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발행해 사용하는 방식이 IMF 자금을 빌려 사용하는 것과 효과면에서 차이가 없음을 함의한다(단기적 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만 감수하면 된다).
이 진실과 관련해, 이전 글 말미에 거론한 월가 찌라시 월스트리트저널의 '2050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세계 2위가 될 것'이라는 보도에서 조폭스런 허풍을 넘어선 뭔가를 애써 찾는다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위기와 함께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미국의 지배세력(정치세력과 결탁한 월가 금융패권세력)이 미국(미국 경제 방식)을 가장 많이 닮고 또한 더욱더 닮고 싶어하는 한국을 이용해 경제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중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의중은 바로 '화폐경제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 이어지는 3편에서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비밀과 그 특수성을 이용하려는 미국의 미래 경제 전략을 탐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