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7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주님수세주일)
새로운 시작
창1:1~5; 행19:1~7; 막1:4~11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친구가 청룡의 해, 갑진년에 값진 년이 되자는 말을 해서 엄청 웃으면서 새해를 맞았는데, 벌써 한주가 지났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 의미 있고, 값진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말씀 카드 그리고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 카드를 각각 한 장씩 뽑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이정표 삼아 올해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들은 나쁜 일을 막아주는 부적도 아니고,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율도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말씀은 문자적이고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 깊이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장이 펼쳐지는 자리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살아있는 생생한 말씀을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살아내도록 우리가 방향을 잃을 때마다 말씀이 우리를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가도록 이끕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받은 말씀들을 품는다면, 좀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더 가볍고 더 자유로워질수록,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으로 점철된 생각과 고집에 덜 끄달리게 됩니다. 삶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고, 우리 안에서는 계속해서 사랑받고 싶고, 통제하고 싶고, 안전하고 싶은 욕구들이 올라오겠지만,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저 고요히 머물러보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계속 돌아가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할 곳에 머물러 있다면, 결국 이 말씀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나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카드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셔서 우선 그 말씀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시길 바랍니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다가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말씀을 이정표 삼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생각날 때마다,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지향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존재 깊이에서 흘러나오는 기도가 되어 살아있는 생생한 말씀으로 경험될 때까지 말씀을 품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해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 1독서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있기 전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습니다.”(창1:2) 깊음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트홈’은 많은 물 또는 심해를 뜻합니다. 땅은 혼돈스럽고 깊은 물 위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의 히브리어 ‘므라헤페트’는 휘돌고 있으면서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바람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혼돈, 공허, 어둠, 깊음 위로 하나님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휘돌고 있는 하나님의 바람의 이미지는 혼돈의 에너지만큼이나 강렬합니다. 혼돈과 창조주의 영이 서로 대척하지 않고 함께 있음으로 엄청난 긴장감을 일으키며 창조의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탄생을 하나의 점이 폭발해서 커진 것이라는 빅뱅이론으로 설명합니다. 신학에서는 천지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무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주디 카나토는 『경이로움』에서 과학과 영성을 조화롭게 아우르면서 빅뱅을 통해 우주가 창조된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책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시작인가! 지금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바로 생명을 품고 터져 나온 태초의 불꽃에서 온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별이 된 태초의 먼지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정말 태어난 순간은 그저 몇 십 년 단위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 안에는 별들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에너지가 들어있다. 우리 안에는 억겁의 발달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가 된 원소들의 진화가 담겨있다.”
“우주에서 처음 창조된 것이 빛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과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빛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끝없는 영원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과 물질의 세계를 연결하는 형이상학적 연결 고리이다... 빅뱅이 일어날 때 빛이 나타나고, 그 빛은 즉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해 궁극적으로 별과 은하, 지구와 산과 강과 인간, 모든 창조계를 이루는 물질이 되었다. 빛은 신의 숨결과 영의 표현이고 신비와 물질을 연결한다. 그래서 신비와 물질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예외도 없이 빛에서 온 존재들이라고 주디 카나토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우주에는 빅뱅 때 터져 나온 빛이 퍼져있고, 우리 안에는 150억 년 전 우주에서 폭발해 나온 것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우주와 깊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 안에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성한 빛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빛을 품은 인간들은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신적 품위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삶 곳곳에 만연해 있는 혼돈과 공허, 어둠과 심연을 신성한 빛으로 재조명하여, 그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창조적인 움직임으로 변형시킬 자유와 능력이 우리 안에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아니면 우리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 의해 우리 각자의 삶이 좌지우지 되거나, 재단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 우리의 신적 품위를 지켜나갈 힘과 책임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신적 품위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게 들리진 않을까 염려됩니다. 토마스 머튼 신부님은 사람의 신성함을 〈모두의 춤〉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오후 미풍이 불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함께 걸으려고 오셨습니다. 창조된 낮의 빛이 기우는 오후였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부는 미풍의 자유로운 비움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면서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와 낙원의 의미였습니다.”
머튼 신부님은 아담이 하나님과 에덴동산을 함께 거닐며 일치를 이룬 모습을 인간의 본래 모습이며, 하나님과 함께 계신 곳이 바로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흠숭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머무시려고, 즐거운 놀이와 기쁨의 춤사위를 함께 하시려고 이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의 끔찍한 엄숙함을 자유롭게 부는 바람에 흩날려버려야 합니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자기의 삶과 존재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신성이 드러날 수 있음을, 하나님과 일치된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인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이 새로운 시작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막1:11)
하나님의 신성한 빛이 인간 예수를 통해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하신 이 말씀을 우리에게도 하고 계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였던 인간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들리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가 우리의 본 모습이고, 있어야 할 자리인 것처럼,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약함과 불완전함을 혐오합니다.
우리의 좌절감과 자기혐오는 스스로를 소외시켜 어둠, 공허, 혼돈 속에서 계속 헤매도록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 어디에나 넘쳐흐르고 있지만,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는 신성함도 있지만, 동시에 좋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짓자기도 분명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빛의 자리로 나아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혼돈과 어둠 그리고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 같은 공허함이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실재를 직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감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하고 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시선이 우리 안에 충분히 머물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빛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도록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우리의 작은 선택들과 마음, 시간이 쌓여 우리 안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새해에 주신 말씀을 일주일 동안 잊고 살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읽으면 됩니다. 기도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면, 그것을 알아차린 그 순간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조용히 부르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너무 높은 기준과 이상들로 스스로를 재단하고 제한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끔찍한 엄숙함은 바람에 흩날려버리고, 놀이하듯 기쁨으로 자신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통해 이루신 새로운 시작을 우리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우리 안에서 당신의 사랑이 완성되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