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는 이유
수십년간이나 끈을 놓지 못하고 이어온 일기였다 요지음은 매일같이 번복되는 일상을 지내다 보니 일기를 쓸 소재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다 그만큼 내생활의 반경이 좁아지고 할일을 찾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이 어쩌면 나이탓이 아닌가 싶다 더우기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휩쓸고 다니면서 발을 묶어놓는 이유도 한몫을 한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주변만을 돌아다니다 보니 새로운일이 전혀 볼수가 없다
그제도 어제도 또 오늘도 여전히 주변이나 맴도는 일상은 다람쥐가 쳇바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것과 같다 다람쥐와 나는 전생에 어떤 피치 못할 운명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가 아무리 피가되고 살이 되는 유익하고 좋은말이라 할지라도 계속 번복해서 듣게되면 그의미가 퇴색되고 오히려 짜증스럽다 우리가 매일 먹는밥도 경우에 따라서는 입맛이 없다고 투정거리는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나는 비빔밥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비빔밥 속에는 적어도 여러가지 재료가 혼합되어 서로의 맛을 내면서 하나의 완전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참기름도 듬뿍 ! 계란 후라이도 퐁당 ! 신선한 채소도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젓가락이 잘 가지않아 괄시를 받고 뒤전에 빙빙돌던 반찬들도 뒤적이어 넣으면 고소한 참기름과 어울리어 새로운 궁합이 형성되면서 제대로 맛을 내기도 하고 재고정리도 거뜬하게 해결된다
대개의 사내놈들은 얼굴만 헤번지르르 하고 무뚝뚝한 여인보다는 어딘지 약간 모자라도 애교가 살살 흐르는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것 같다 집에서 매일먹는 밥이 싫증이 나서 어쩌다 외식하러 나가면 중국산 김치에 중국산 고추가루 중국산 참기름으로 비벼나온 비빔밥은 조미료를 듬뿍 부어 달짝지근하고 입에맞아그럴싸할뿐 아니라 비싸긴 오라지게 비싸다 그런 비빔밥같은 여자를 쉽게 찾을수 있는곳은 지갑만 든든하면 어느곳을 가던지 구석구석에 자리하고있다 사내놈들은 마누라에게 주는 용돈은 쥐어 짜면서 그곳에가서는 마음놓고 호주머니를 털며 용트림한다
요지음은 일기가 아주 단조로워진다 나이먹고 날씨도 추워 행동이 불편한데다 코로나 마저 겹처 몸이 꼭꼭 묶인 그런 상태이다보니 보고 듣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하루하루의 일상생활 속에서 뾰족한 대안이없다 [아침먹고 학교갔다와서 숙제하고 놀았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생각한다 더 읽어 볼필요가 없다 색다른것이 전혀없어도 담님선생님은 꼬박꼬박 쓴 일기를 잘했어요로 표현했다
먹기싫은 꽁보리밥 두어숫갈 물에말아 억지로 먹는둥 마는둥 불이낳게 퍼먹고 울퉁불퉁 머나먼 자갈길을 영순이랑 철민이와 같이 냉이뿌리 캐어씹고 시냇물을 퍼마시며 깡충깡충 뛰면서 학교에갔다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내주는 살짝곰보딱지 여선생님의 숙제를 하는둥 마는둥 내팽개치고 마당뜰로 나가 철민이 하고 짚푸락으로 만든 공을 차고 놀았다]
이리썼으면 비빔밥처럼 제대로 비벼진 것일가 생각해본다 일기가 더무너무 단조로우니 일기가 배고푸다고 반란을 일으키지만 그렇다고 가짜 고추가루나 가짜 참기름에다 달착지근한 조미료를 넣어서 입에 맞게 요리할수는 없다
오늘도 삼성산을 올라간다 더러는 낯익은 사람도 눈에 띄건만 마스크로 얼굴을 깊숙히 가리고 본척 만척 아랑곳 없이 땅만 보며 올라간다 도대체 사방곳곳 미소라는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가득이나 살아가기 어려운데다가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다보니 미소가 나오지않는다
그래도 수십년을 잠자리에 들기전에 마주하면서 동고동락한 처지인데 그냥 스칠수 없어 일기장을 꺼낸다 아침먹고 산에가고 집에와서 샤워하고 저녁먹고 컴퓨터 보다가 잠잤다 요지음 일기는 다시 어렸을때의 그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늙으면 어린애 된다더니 이래서 나온 말이 아닐가? 몇자 끌쩍끌쩍 하다가 슬그머니 내팽개치고 보니 어느새 일기장은 천덕꾸레기가 되고있다
하루 하루 한땀 한땀 수를 놓는 일기장 이쁜이도 미운이도 잘난이도 못난이도 하나하나 빠짐없이 정성으로 수놓는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날라갈가 아쉬워 오늘도 쉬지않고 한올 한올 엮어간다
사랑도 심어놓고 미움도 달래면서 형광등 불빛아래 매일매일 마주한다
그래도 일기는 나에게 있어서 산소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햇볕이 쏟아지는 베란다에서 또는 비가 내리는 날에는 서재에 밖히여 지나간 일기를 꺼낸다 먼 지난날의 빨간 석류알같은 이야기를 더듬을 때면 어느덧 소년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그속에는 물레 방앗간집 영순이와의 추억도 있고 대나무집 정숙이의 수줍어하면서 더듬거리든 이야기도있다 어디 그뿐이랴 주고받는 술에 얼큰히 취하여 어깨동무하고 헷튼소리하며 노래방에서 큰소리로 부르든 음치의 목소리로있다 때로는 도란도란 아내와의 주고받는 이야기며 어린녀석들과의 이야기도 있다 이래서 이토록 일기와의 대화의 끈을 놓지 못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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