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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8:1-29. 범사에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2024. 11. 3.
1.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추수감사절기가 셋째 주일에 있습니다. 그런데 추수 감사절을 지키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감사를 7월 첫 주일에 지켰습니다. 7월 절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절기입니다. 지난 1월 1일 송구영신 예배 이후부터 6개월간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 7월 맥추절기입니다. 그리고 2024년 추수 감사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신앙인의 신앙고백이며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오는 통로입니다. 감사를 통하여 자상하고 섬세하고 계획된 복이 주어집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게 됩니다. 감사와 진실과 정직은 입술과 얼굴과 마음으로 신앙 안에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관심은 눈과 마음에서 주어지고 봉사와 섬김은 손과 발의 행동을 나타납니다. 사랑은 가슴과 머리로 주님께서 주셨던 그 신앙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와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하는데 감사로 하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감사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온 기적은 누구로 부터 받아 누리신 것입니까? 살아갈 기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오직 주님께로 부터 받았고 또한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드나들지만 나의 몸은 늘 현재에 있습니다. 그래서 몸은 세월에 따라 건강의 상태로 말을 합니다만 감사는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과 묵상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현실에 나타난 응답이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생각과 감사에 대한 묵상은 감사의 기도가 되고, 그 감사의 기도는 나에게 나타나는 응답이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직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살 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꼭 들어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면서 감동과 감사와 감격으로 기뻐 춤추고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기뻐 춤을 추게 해야 합니다. 본문은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 29절의 끝맺음에 똑 같은 표현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될 내용이 2-26절까지 나옵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27-28은 감사하겠다는 결단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우리를 견고한 성읍과 쇠기둥과 놋 성벽으로 디자인된 존재로 세우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디자인 된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여러 가지 계획 속에서 내일과 미래에 있어야 할 그 무엇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과정을 모릅니다. 해석이 안 되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이 주어지기도 하고 매듭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애매한 모함과 거짓 소문과 관계의 무너짐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알 것 같든지 모르든지, 좋든지 나쁘든지,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이런 조건에 상관없이 우리들의 눈에 기이할 지라도 세상가운데서 복된 자리에 있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하나요? 감사입니다. 무엇이든지 모든 일에 감사로 기도와 간구하는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울타리치기란 표현이 있습니다. 여러분, 유토피아가 무엇입니까?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간된 지 오백년이 지났습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때를 이야기 하고, 생각을 합니다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천군 천사와 함께 하늘나라가 임하게 되는데 그 때에는 유토피아가 현실이 됩니다. 그런데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부재의 공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찾은 이유는 현실성마저 부정하고 싶은 역설적인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먹는 문제 때문에, 배가 고파서 음식을 훔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모어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굳이 사형대에 올려서 법의 근엄함을 보인다고 해서 도둑질이 어찌 없어지겠느냐고 한탄을 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먹는 문제가 그토록 중대한 범죄라면, 나라가 가난한 이들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어가 목도한 가난은 흉년과 같은 천재지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특정 소수에 의한 특정 소수를 위한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가난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의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농민으로 살았습니다. 팍팍한 삶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누구나 의지할 수 있는 나눔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모가 돈이 된다는 정보 때문에 지주들은 양을 키우기 시작을 했고 들판에서 농민들을 쫓아내고 울타리를 쳤습니다. 공유지에도 울타리를 쳤습니다. 자기만의 울타리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울타리 아닌 울타리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양이 사람들을 잡는 울타리로 묘사를 했습니다. 완벽한 디스토피아에서 모어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떠올렸습니다. 완벽한 디스토피아는 나눔의 공간이 완전히 제거된 울타리 세상입니다. 그런데 울타리 치기는 갈수록 치밀해집니다. 상상 불가능한 영역까지 침투합니다. 나눔의 공간에서도 이윤의 기회를 보고, 민첩하게 행동을 합니다. 울타리 치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 없습니다. 울타리는 꿈쩍 하지 않았고, 온 천지가 울타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신앙인으로서 어떠합니까? 울타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보호막 아닙니까? 따스함 아닙니까? 사랑과 나눔과 기쁨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감사와 사랑과 보호와 안전이 보장된 곳 아닙니까? 하나님이 바라시고 보시는 울타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맥추감사절을 제정하시고 지키라고 명령을 하시면서 귀중한 표현을 했는데 함께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신16:11절에 함께 라는 단어 속에 울타리의 구성원이 있고, 14절에서도 구성원이 있습니다. 울타리는 보호막이고 안전이고 지킴이고 사랑과 나눔과 기쁨이고 함께와 약속의 들판입니다. 여러분, 성찬이 무엇입니까? 바로 진정한 울타리입니다. 약속의 들판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의 약속의 들판입니다. 이 들판 안에서 함께 감사를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그러면 감사를 드려야 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한 3가지로 축약의 말씀을 합니다.
1-1. 받은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5절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14-16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지난 과거를 잊지 않고, 주신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맥추감사를 왜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여 삶의 부요를 이어가지만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광야생활 중의 어려움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어려움을 경험했더라도 현재의 삶에 여유가 있으면 지난 일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리켜서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주신 은혜를 잘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착에 만족하지 말고 과거의 어려움을 거울삼아 더욱 열심히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신16:12절에 맥추절을 지키라는 명령과 아울러 애굽 땅에서 노예생활 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과거에 우리가 어떠한 생활을 했다는 것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과거의 헐벗고 굶주리고 배고팠던 시절을 잘 모릅니다. 아낄 줄을 모르고 너무 쉽게 낭비합니다. 헐벗고 굶주림에 훈련이 안되었기 때문에 고난과 어려움을 잘 참지를 못하고 쉽게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삶은 과거의 아픔과 고난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이 보장 되더라도 지난날의 어려운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려운 때를 기억할 때에 교만해지지 않고 감사하며, 의미 있고 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불평은 불평을 부릅니다. 신16:3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해방의 기쁨의 날을 평생 기억해야 합니다. 주신 내용을 기억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16:16.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이전에는 종이었습니다. 백성의 주인은 애굽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영역이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주어진 현장이 이 땅입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나온 날을 기억하고, 마귀와 사탄과 어두움의 종 되었던 인생이 주님의 사람이 되었던 은혜를 기억해야 감사를 하게 됩니다. 주인입니다.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이끌어 갑니다. 하지만 종 되었던 그 때를 기억하고, 이끌림을 받았던 그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헬라어로 감사는 카리스 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카리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 이제까지 이루어 진 모든 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 그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할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의 몫으로 만드셨습니다. 22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높이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기게 하신 이유가 있고, 능력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열매를 맺게 하신 이유가 있고, 만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견고한 성읍과 쇠기둥과 놋 성벽으로 디자인된 존재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23:19. 너의 토지의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처음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잠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처음의 것이 중요합니다. 왜 중요할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 이룬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첫 열매에 대한 소유입니다.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울타리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울타리는 보호막이고, 나눔의 공간입니다. 디스토피아가 아닙니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위한 몸부림도 아닙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자기 처지를 다 생각하면 결코 도울 수 없습니다.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어쩌면 평생 돕고 사는 일은 포기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야 할 네 가지가 있는데,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도와 줄만 해서 돕는 것이 아니고 어려워도 도와야 합니다. 왜요? 주시고 허락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 분이 계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자라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아무리 좋은 열매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세 번째는 이런 일을 만드시고 거기에 행동하도록 만드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네 번째는 항상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와 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생각한 것만큼 간단치가 않습니다. 한 쪽이 좋으면 다른 부분에 균열이 생기기도 합니다. 힘과 능력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고 판단이 서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늘 이러한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살아온 인생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판단과 이해에 있어서 시원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고,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드시 물어야 하고, 하나님이 채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 손과 내 계획과 내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울타리를 위한 주님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것을 맡은 사람으로서, 청지기로서 주님의 것으로 감사를 드리면 다른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것이 되고 또한 내 자신이 드린 것이 됩니다.
1-3.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일과 미래에 대한 소망에 대하여 계속해서 베풀어 주실 복과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를 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감사를 불러 옵니다. 우리의 내일과 미래는 예측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기 때문이고 세상의 사람들과 동거와 동락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감사가 이러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8-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사람과 방백을 의지 하는 것보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생명싸개로 덮고 감싸시는 울타리에 있는 것이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23-25.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러분, 내일과 미래가 즐겁고 행복하고 형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눈에 기이할 정도로 감동과 감격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고 감사는 복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감사가 소원이고 신앙고백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천사를 찾아 와서 곁에 있게 하고, 감사는 하늘 문이 열리게 합니다. 드리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오는 축복을 믿고 체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많은 감사는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고후9:11-12) 재물과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가정과 직장과 생업을 지켜 주시고, 사업을 지켜주십니다. 자녀를 지켜 주십니다. 출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좇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뿐만 아니라 손을 댄 모든 일에 복을 주십니다. 15절입니다. 너의 물산과 너의 손을 댄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니라. 감사를 히브리어로 토다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신앙고백입니다. 로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감사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이시고 주님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피조물이 많지만 유일하게 다시금 주님 앞에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인격을 한 단계 올려주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감사가 봉사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찬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물질봉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에게 짐이 되는 사람들이지만 끝까지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러분, 시편136편은 1-26절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한 절 한 절 26절이 모두 감사를 드립니다. 자상하게 감사하고, 다 아는 내용도 감사를 합니다. 처음과 나중까지 감사입니다. 히브리어 첫 알파벳인 알렙부터 끝까지 감사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감사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구원하시려고 참혹한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단과 귀신 그리고 이단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당연한 것을 감사하고, 언제나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하루에 세 번씩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시다. 성도로 부르시고 직분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건강하게 하심과 작은 것과 큰 것에도 감사를 드립시다.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드리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받은 축복과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표현이며 표시입니다. 시50:14-15. 감사로 제사를 드립니다. 골2:7. 믿음에 굳게 서서 넘치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나고, 놀라운 복이 주어지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감사와 사랑을 회복하여 허락하시는 축복을 경험하며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감사를 왜 계속해야 합니까? 신8:12 이하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여러분, 사실 넘침의 삶을 사는 시대아닙니까? 물론 상대적인 모자람이 있습니다만 이전의 삶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살고 여유 있다고 자부할 때에 잘못하면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고 교만해지는데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수없는 환란 속에서 함께 하시며 건져주시고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감사하지 않습니까?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열매와 소산 가운데서도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계산을 합니다. 누가 감사를 하지 않습니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생각은 있어도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기품(氣 品)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기품은 행운과 거짓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생의 전반기까지 자신의 후반기에 입고 살아갈 옷을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기품입니다. 좋은 천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빛을 내며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주변까지 밝히는 옷입니다. 얼룩과 찢어진 곳까지도 근사한 디자인으로 보이는, 눈을 감아도 보이고 코를 막아도 향기가 느껴지는 기품입니다. 그러면 이 기품은 어디에서 올까요? 좁고, 험하고, 거칠고, 외롭고, 쓸쓸한 삶의 구석에서도 바라보는 시선 하나 행동하는 처신 하나로 자신의 기품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생 하나 없이 살아온 사람도 좋지만 한 순간도 편안하게 살지 못했던 사람이 그 거칠고 험한 인생의 길을 꿋꿋이 걷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의 기품을 봅니다. 그런데 기품이 있는 사람은 원칙이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사죄하고 소중한 사람의 말을 정성껏 경청합니다. 여러분, 감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를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죄하는 법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화만 시작하면 다투는 사람은 말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듣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배웠지만 여전히 인사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에 미숙한 사람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치를 제대로 체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시는 11월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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