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독서감상문
이규희 선새님의 신간 <한라산의 눈물>을 읽었다.
처음엔 제주아이들이 바당(바다)에서 물꾸럭(문어)을 잡아서 밀당하며 노는 모습에 웃음짓다가
갈수록 어른들의 이념싸움과 권력을 위한 폭력 앞에 목이 메었다.
어른들이 세상을 구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폭력을 행하고
혼란에 빠뜨리고
인생을 송두리째 불구덩이에 몰아놓는지
작가는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어떤 시위대의 구호보다
무서운 총칼보다 위력있는 펜 힘이었다.
꿈마저 잃어버린 주인공 미루에게
한라산도 통곡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정겨운 제주방언과
작가 특유의 푸근한 가슴으로
다독여가며 죽음의 섬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결말로 끝내어
가슴이 더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굳이 역사동화라고 구분을 지을 필요 없이 생활동화처럼 잘 엮어 쓴 동화여서 더 감동이다.
주제와 통하는 어록을 뽑아보았다.
14쪽 - 누가 잡으면 어때? 다 같이 구워 먹을 건데. 자 모두 이리 와.
29쪽 - 일본 놈들 밑에서 숨죽이고 산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 내 나라를 되찾았으니 잔칫날보다 더 좋지.
61쪽 - 어느 편이 좋은 사람이어요? 둘 다 사람을 죽였으니, 모두 나쁜 거죠?
-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어도 사람을 죽이고 불을 놓는 건 옳은 일이 아니지.
겨우 내 나라를 찾았는데 다투지 말고 힘을 합해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111 쪽- 난 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선장이 되고 싶어.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꿈 따윈 다 잊어버렸단 말이야.
125쪽 - 밭도 농부의 마음이 떠난 걸 아는 가보다. 통 거두어들일 게 없으니.
178쪽- 미루는 촙고 어두운 궤야(동굴)가 아닌 방에서 두 다리 쭉 뻗고 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195쪽- 한라산도 울고 있구나. 마치 한라산도 나처럼 슬프구나.
213쪽- 우린 이제 부자야! 여기 씨앗도 있는 걸!
풀판사의 <책소개>
<이규희 글/ 윤문영 그림/ 내인생의책> 초판발행일 : 2015년 3월 30일
해방을 맞은 평화로운 제주도, 어린 소년 미루가 살고 있습니다. 고무신을 사 준다는 아버지를 쫄래쫄래 따라간 읍내에서 미루는 시민과 경찰 간 어지러운 소요를 목격합니다. 과격해진 시위는 무장봉기로 이어지고, 수천 명에 달하는 군인이 육지에서 제주도로 내려옵니다.
손발이 얼어붙는 추위, 지독한 배고픔, 가족과의 이별, 무장대와 토벌대의 참혹한 폭력이 어린 미루의 삶을 파고듭니다. 무장대와 토벌대의 대치는 언제쯤 끝날까요? 미루는 다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알려지지 않았던 제주 4·3 사건의 진짜 이야기
역사적 현장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다
제주 4·3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4·3사건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4·3 사건을 다룬 영상물이나 책도 어른들의 시선에만 맞춰져 있을 뿐입니다.
《한라산의 눈물》은 제주 4·3 사건을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어린이의 눈높이로 풀어냈습니다. 당시 제주 상황을 정치나 이념을 떠나 순수한 어린이들의 시각으로 그려 내면서 모진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어린 4·3 피해자들을 통해 제주 4·3 사건이 주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더불어 4·3 사건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지요.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인간애를 일깨우다
《한라산의 눈물》 속 아이들은 아직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홧불에도 입을 헤 벌리고 그저 신기해하며, 동굴에 숨는 일을 숨바꼭질로 여기고, 무장대가 뿌리는 삐라조차 재미있는 놀 거리로 삼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이러한 천진난만함은 역사의 단편으로만 평가되던 4·3 사건을 오히려 더욱 비극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경찰의 대대적인 학살 작전을 앞두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달려가 구해 내는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꺼져가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은 휴머니즘을, 인류애를 찾고 그 작디작은 희망에 전율합니다. 더 나아가 폐허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 새로이 시작하려는 모습은 희망의 가치를, 지옥 앞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함을 우리 아이에게 일깨워줍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되레 사랑, 우정, 상생, 도움, 배려, 희망과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이죠.
이야기 속 아이들은 색깔도 이념도 계급도 없습니다. 그저 너와 나 사이, 식구 못지않은 찐득한 유대만 있을 뿐입니다. 제주 아이들은 ‘사람이 먼저’라는 신념을 주저 없이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무엇이 인간보다 먼저일 수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