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1. 마흔아옵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이승희 권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8:18~30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천국과 지옥의 차이
찬송 193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광고 코로나 양성으로 가족 방문 중단합니다. 2023년 달력 나왔습니다.
임성례 권사 퇴원, 화요일 세계적인 기업과 MOU 체결(서울 출장)
찬송 109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목사님, 저 죽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어요?
여기에 있는 모든 약을 먹으면 죽을 수 있는가요?
우리 박영숙 집사님의 전화 목소리입니다.
이때 목사님은 원대병원서 임성례 권사님 폐쇄 병실에 갇혀서
간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임성례 권사님 둘째 아들이
어머니를 응급실 구석에 두고 도망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박영숙 집사님!
목사님이 코로나 병실에 갇혀 당장 갈 수 없으니
죽지 말고 기다리세요.
목사님, 소변, 대변도 못 눕고
속이 다닥다닥 쓰리고 아파서 밥 한술 못 먹어요.
너무 못 먹어서 35kg입니다.
이렇게 살 바야 하루라도 빨리 죽게 해 주세요.
우리 박영숙 집사님은 74세입니다.
평생을 전신 마비 남편을 위해 병간호하다가
유방암 때문에 유방을 절단하고도 모질게 또 재발하여 투병하면서도
자녀 셋을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도 딸자식도 필요 없어요.
그냥 죽고만 싶어요.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경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절,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목사님은 원칙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병동, 병원 측에 말씀드리고
박영숙 집사님 댁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어둑한 방에 홀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라면 상자만 한 크기에 약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주섬주섬 옷가지를 싸고, 목사님 차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급한 것이 소변을 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과 과장께 가서 소변줄을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선 위 보호제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요양원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참 아름답습니다.
목사님은 이 말씀을 대하는 순간 우주가 열리듯
영안이 열렸습니다.
그러면서 옹졸 옹졸했던 생각 따위가 부끄러웠습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갑니다.
극작가 버나드 쇼 묘비에 이렇게 쓰였다고 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우리 인생이 정말 이렇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2022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진실한 것만큼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눈물겹도록 힘들었던 것만큼 보람되었을 것입니다.
2022년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때론 화도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고성도 질러댔습니다.
그러면서 불평이란 불평을 다 늘어놓았습니다.
남을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동료니, 친구니, 형제니, 험담도 많이 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못난 남편 원망하기도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얻어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괜스레 우리 마음만 옹졸 옹졸했었다고 확인만 시켜주었습니다.
18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우주는 광활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주 속에 한 점에 불과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불쌍하리만큼 황폐해졌습니다.
그런 황폐함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우리 박영숙 집사님도 얼마나 불쌍합니까?
남편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죽어라 살았건만
이제 남은 건 우렁 껍데기보다 못한 병든 몸뿐이잖습니까?
그래서 살고 싶은 것보다 차라리 죽고 싶은 것입니다.
어쩜 이것이 우리 인생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생이 왜 이렇습니까?
창세기 3장 17~19절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래서 우리 인생이 고통스럽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만 보더라도
왜? 사람을 죽여야 하는지 푸틴에게 물어본들 무슨 답이 있겠습니까?
영혼도 없는 짐승일진대.
그리고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대한민국이 어찌 이렇게 어지럽고 파탄지경인지 물어본들
뭐라 대답하겠습니까?
내 편 아니면 무찌르자 공산당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모두가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었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니
인류인들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모든 것이 정적이고 핍박의 대상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눈물이 납니다.
고난과 고통이 클수록 우리의 영광도 클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사랑의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폭풍우 몰아치고 나면 일곱 색깔 무지개가 피어오르듯
우리도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나면
우리의 마음이 한껏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난의 증표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입니다.
그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래서 환난은 복음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래서 영웅도 난세에 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에게는
우리가 그 나라를 위하여 받게 될 당연한 고난이
곧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 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도
그러니 주를 위하여 죽는 것조차도
우리는 영광입니다.
빌립보서 1장 28절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확진을 통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우리 모두가 코로나19에 확진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악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의 능력으로 하나가 되어 견디어 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바댜 1장 15절입니다.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이것이 구약의 종말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 이승희 권사님 아들 결혼식이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장에 가지 못하고
축의금만 보내드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맛있는 떡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떡을
1m나 되는 젓가락으로만 먹으라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먹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떡을 1m나 되는 젓가락으로 지목 구멍에만 처넣으려 한다면
우리는 하나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맛있는 떡을 1m 젓가락으로 상대방에게 먹여 준다면
더 맛있게
더 행복하게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미혹된 이런 일들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주님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있을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 말들에 미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후 2:3)
그리고 그 징조에는 반드시 배도하는 것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일 후에야 주님의 날이 이르게 됩니다. (살후 2:3)
배도는
정치적 반란을 일컫습니다..
종교적 변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배도란
정치적 반란과 종교적 변절을 결합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멸망할 운명을 지닌 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흔한 일상입니다. (살후 2:4).
그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살후 2:4).
그래서 손바닥에 왕王이라 표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일컬어 하나님이라 말합니다. (살후 2:4).
그래서 불법한 자가 오히려 검찰총장이 되기도 하고
대통령이 될지라도
이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살후 2:7)
그러나 그의 권세는 예수님의 강림으로 인하여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살후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불법의 사람을 통한 유혹을 허락하시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살후 2:11, 12)
이런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세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29 참사로 158명의 유가족과 우리 국민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고한 어린 생명들까지도 무참히 살생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불구경만 하는 우리 인간들이 더 잔혹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뭐겠습니까?
23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경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그래서 내일 종말이 올지라도
우리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바로 소망이 있고 없고 차이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슬픔도 견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반드시
역전 Reversal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살후 1:6, 7)
오바댜 1장 15절입니다.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