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차 별유풍경(別有風景) 踏査 안내
가없는 김만평야와 모악산에 어린 미륵신앙-김제
2012년 10월 23일(화)
답사예정지 : 벽골제-아리랑문학관-강증산유적지-금산사-귀신사
출발장소: 잠실역 8번 출구 교통회관 앞
출발시간: 10월 23일(화) 오전 8시 00분까지
참가신청: 평생교육원(담당자: 오유정 010-7238-6003)
참가회비: 5만원
회비입금: 국민은행 836301-04-002170
가없이 펼쳐지는 망망한 평야! 어딜가나 풍경의 한자락에는 반드시 산이 포함되는 우리나라의 지형에서, 김제는 유일하게 문자 그대로 땅과 하늘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서 펼쳐진 망망한 김만평야를 안은 김제는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이 논으로, 우리나라 쌀의 40분의 1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곳 사람들은 김만평야를 '징게맹개 외배미들'이라 부른다. '외배미'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툭 트였다는데서 온 말이니 '김제 만경 너른 들'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일찍이 삼한시대부터 쌀농사가 시작되었다. 백제때 이곳의 지평이었던 벽골(碧骨)은 바로 볏골(벼의 고을)을 한자로 적은 것으로 부량면 원평리 하류에는 330년 백제사람들이 쌓았다는 벽골제의 유적이 남아 있다. 또 금산면 일대에는 남방식 고인돌이, 그밖에 김제의 이곳저곳에서는 긴 돌칼이나 유구 석부 등이 발견되어 청동기 시대부터 농경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었음을 말해준다. 지금의 명칭인 김제는 통일신라 때 붙여진 이름이며 1989년에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되면서 김제군에서 분리되었다가 1995년 김제시로 다시 통합되었다. 김제에는 금구리, 금산리, 금강리 등 쇠금(金) 자가 붙은 지명이 유난히 많다. 신라 때부터 사금이 채취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노다지꾼, 그들을 따라 들어온 술집, 밥집들로 김제 동쪽일대가 북적거리기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전라북도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기름진 땅을 탐낸 일본인들의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사방이 들판 일색인 이 지역에서는 무덤 쓸 곳이 드문 까닭에 어쩌다 야트막한 구릉만 있으면 무덤이 다닥다닥 올라앉은 모습이 눈에 띈다. 이 가운데 김만평야 동쪽에는 높이 793m의 모악산이 홀로 우뚝 솟아 이 지역사람들에게 신성하게 어겨져왔다. 모악산은 금산사, 귀신사 등 여러 절을 거느렸으며 각종 종교단체의 집회소가 밀진하여 계룡산 다음으로 토착종교 집단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 서쪽 자락에는 동곡약방 등 증산교의 창시자 강증산과 관련된 유적이 있다.
위례역사문화연구회 평생교육원 02)3401-0660
첫댓글 신입 회원 이상규 입니다.
참가 신청 합니다. 16일 송금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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