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올해는 밤 철이 늦구나 걸음마다 발끝을 잡아채는 성가심에
아버지의 지나가는 말씀이었다 밤송이를 비탈로 걷어차던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가을을 닮은 청년 자리에 뭠춰 앉아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그의 뺨과 이마에도 어느새 밤나무 그늘에0 묻어 주는 아버지를 보았다
묵묵한 세월이 영영 자리를 잡았다 주름진 손으로 성긴 흙을 뿌리며
지나간 것들을 보내 주어야 한다고
나는 앞장서 걸었고 자꾸만 가슴을 찔러대는 억센 가시도
아버지는 그 뒤를 따랐다 언제가는 거름이 된다고
부지런한 어린이의 걸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보폭 땅에 묻힌 밤송이는 곧 흙이 될 것이다
그 크기의 미미함에 문득, 서글프다 때늦은 밤철은 때를 알고 돌아올 것이다
계절을 견뎌낸잔가지가 상념을 묻은 자지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아롱거리며 부서져 내린다 고개를 들으니 눈앞데
자긋한 마음을 가진 밤나무가 있었다
가뿐 숨으로 옮기는 발걸음
그때 발에 차이는 것은
자난가을의 밤송이였다 ---------
지금껏 움직일 수 없었다는 듯 이지우 님
해묵은 가시를 울음처럼 내보이며
시간이 되어 나무 밑을 서성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