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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NaicsMZiuI?si=xguC7XkWtcs2J6XA
※ 영상을 올려주신 체칠리아 선생님도 자기가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합니다. 여느 유튜버처럼 어떤 이익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닌.... 연세도 좀 있으시고요. 이 이야기는 저에게 들려주어 알 수 있었죠. 거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데, 대중음악 팬들이 좋아하는 실용음악도 연주합니다. 고마운 분이죠. 자신의 재능을 노후에 이웃들을 위해 들려주며 즐기니... 가끔 들어가서 감상하곤 합니다.^^
이 영상에서 나오는 음악의 원곡은 한국의 박춘석 선생님이 작곡하여 패티킴 선생님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독일의 유명 첼리스트가 연주 음반을 한국에 발표하면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대중적 클래식 음악을 한 곡 선정해 음반 끝 곡에 넣었다고 합니다.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하게 편곡하여 발표한 <Park Love Gone With Autumn Behind>라는 노래입니다. 앞에 영문으로 Park이라고 표기한 것은 박춘석 선생님이 원곡자라는 의미이고 뒤에 Behind라는 표기는 영어로 우리 말을 정확히 표기할 수 없어 붙인 '숨겨진 어떤 사랑 이야기' 정도로 읽힙니다. 어디까지나 저만의 생각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영어 Behind는 '숨겨진 또는 ㅇㅇ뒤에 남기고'라는 뜻이 들어있기에 즉 가을에 떠난 사랑인데, '가을이면 지나간 추억을 그려볼 수 있는 자기만의 옛사랑' 정도의 의미입니다. 노랫말이 시적이기에 박춘석 선생님의 문학적 감수성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면 박춘석 선생님은 정말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원래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즐겨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대 기악과에 들어가서도 작곡을 전공하며 공부하다가 작곡도 누군가의 노랫말이 필요하기에 서울대를 졸업하지 않고(그에게는 졸업장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그만두고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가서 문학을 공부하여 노랫말도 집접 쓰셨으니... 그의 타고난 감수성은 천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순을 넘기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한국인의 음악 정서를 울리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키고 삶을 마감한 박춘석 선생님은 지금 경기도 양주의 <모란공원>에 잠들어 계십니다. 언제 지나는 길에 들러, 기왕이면 늦가을 갈대꽃이 흐드러질 무렵에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고 싶다. '내 생에 선생님의 음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해 드리고 싶다. _()_
(제가 지금까지 박춘석 선생님의 자료나 등등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100% 믿지 마세요. 자료를 읽고 나름대로 추측해 쓴 나만의 이야기임)
(나)
선생님, 실로 오랜만에 일기 글로 인사드립니다.
가을은 어머니가 하늘로 떠나신 계절이라 저에겐 더욱 그리운 계절이어서 지난 일기를 꺼내 읽어보게 합니다.
이 일기 글은 <만 원> 이라는 주제로 4부까지 이어지며 부제가 붙기도 합니다.
읽어보시고 감상평과 조언을 들려주세요.
(젬)
오랜만에 전해주신 글 소식이 참 반가우면서도, 가을의 깊은 바람만큼이나 아련하고 묵직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계절에 옛 일기를 꺼내어 읽으시는 그 마음이 얼마나 깊고 애틋할지 감히 헤아려 봅니다.
<만 원>이라는 정겨우면서도 수많은 삶의 희로애락이 담길 수 있는 주제, 그리고 4부까지 이어지는 부제라니 벌써부터 글이 품고 있을 이야기와 온기가 기대됩니다.
보내주신 글을 정성껏 읽고 저의 감상과 함께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만 원>에 얽힌 일기 글을 편하신 때에 여기에 들려주세요. 온 마음을 다해 읽고 소중하게 답글을 남기겠습니다.
* 만원 1부(민들레 사랑) *
그것은 지폐만이 아니었다. 초록 햇살을 머금은 영롱한 아침 이슬방울에서 갓 피어난 오월의 무지개를 타고 30여 년 전 어린 막내에게 달려가는 어미의 못다 한 사랑이었다.
막내가 일터로 향하려고 막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어미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급히 막내에게 달려가신다. 손에는 파란색 지폐 한 장이 들려있었다.
" 옜다, 막내야. 이거 가지고 가서 오늘 맛있는 거 사 먹으렴. "
" 아이참! 어린이도 아닌데 뭘! "
" 엄마, 줄라면 쪼끔 더 주던가. 이걸 가지고 뭘 사 먹으래~. "
울컥, 코끝이 알싸한 이 기쁨! 이 충만한 행복!
어느새 나는 타임머신을 탄 열두 살 소년이 되었다. 아니 한 마리 작은 새가 되어 어미의 눈빛도 읽지 못한 채 먹이를 낚아채듯 지폐를 받아 들고 오월의 초록 햇살을 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호숫가를 빙 돌아 일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린 시절 추억 여행을 떠난다. 예닐곱 살이었지? 엄마 손을 잡고 춘천 읍내 장터에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완행버스 안에서 엄마가 5원을 내밀고 사 준 살굿빛 '아이스께끼'.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난생처음 느껴본 아이스께끼의 달콤함은 흐뭇한 표정으로 어린 막내를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 아직도 가슴속에 녹아내린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지. 바로 위 누나가 여름방학 캠프에서 옴이 옮아 누나와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양구 읍내 병원에 갔었다.
그때 시장 한 귀퉁이 처마 끝에 차양을 치고 잔치국수를 말아 팔았던 간이 음식점. 편히 앉을 자리조차 없는 좁은 부뚜막에 겨우 엉덩이만 걸친 채 엄마는 한 그릇에 20원 하는 국수 두 그릇을 시켜서 누나와 내 앞에 내밀고는 좀 더 맛난 음식을 마음껏 사 줄 수 없는 어미의 안타까움에서일까, 안쓰러운 표정으로 어린것들을 바라보며 국물만 떠드시던 어미 곁에서 철부지들은 모처럼 나들이에 외식이라고 어미의 속마음도 살피지 못한 채 국수 그릇에 빠져들었으니, 엄니 마음속엔 아직도 그런 지난날의 아픔들이 남아 있으신 게다.
싱긋이 웃음 짓던 두 눈이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다. 이젠 어미에게 손자를 안겨드려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엄니는 지난 시절 당신이 못다 한 일들이 한으로 남으셨나 보다. 한 방울 두 방울 수십 년 어미의 가슴속에 고인 사랑의 샘물. 세상에 이보다 더 맑고 순수한 샘물이 또 있을까! 얼마나 깊은 심연(心淵)에 묻어 둔 아픔이었길래, 얼마나 긴 세월 길어 올린 정한(情恨)의 물이었기에, 어미는 수십 년 인고의 세월 동안 가슴에 모아 두고 기다려 오신 걸까!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길어 가슴에 담았다.
나는 일터에서 짬짬이 지폐를 꺼내놓고 보고 또 보며 참 많은 그림을 그려야 했다. 팔순을 넘긴 어미는 머지않아 불혹을 맞이하는 막내가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는 걸까. 그 어렵고 힘겨웠던 시절,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내야 했던 당신의 세월. 강원도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산나물을 뜯어 팔아 6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미에겐 매년 돌아오는 어린이날이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였지 싶다. 어린것에게 남들처럼 예쁜 운동화 한 번 신겨주지 못했다고, 예쁜 옷에 책가방 하나 못 사 주고 용돈 한 번 주지 못했다고, 평균수명을 훌쩍 넘겨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지금까지도 엄니는 가슴에 담아 둔 채 '어미의 빚'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늘 아침 엄니가 내게 건넨 지폐도 특별히 마련한 돈이지 싶었다. 이곳 새 아파트에 이사 와서도 엄니는 봄부터 가을까지 짬짬이 들에 나가 나물을 뜯어와 가용할 푼돈을 마련하시곤 했다. 분명 노구(老軀)를 이끌고 들에 나가 미나리를 뜯어오셨고, 그것을 씻고 다듬어 양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오일장인 풍물시장에 가셨지 싶다. 그리곤 눈치를 살피며 시장 변방의 한 귀퉁이에 앉아 끼니도 거른 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팔아 푼푼이 모아 둔 쌈짓돈이었지 싶다. 그렇게 깊은 사랑이 담긴, 그토록 애틋한 어미의 마음이 담긴 '어린 날의 용돈'인 지폐를 엄니의 바람대로 써야 할지, 기념으로 남겨 두어야 할지, 그저 멍하니 지폐를 바라보는 눈가에 맺힌 이슬방울엔 지난날 엄니가 힘겹게 살아오신 모습만 오롯이 떠올랐다.
나는 온종일 지폐를 만지작거리다가 점심도 거른 채 책갈피에 곱게 넣어 퇴근길에 올랐다. 어미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 수십 년 어미의 가슴에 담았던 사랑의 샘물을 마시지 않은 죄, 이보다 더 큰 죄가 또 어디 있을까! 나는 엄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만 같아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책갈피에서 지폐를 꺼내 가슴에 안고 엄니의 참사랑에 흐느끼며 가난했던 지난날에 감사했다. 그 어둡고 힘겨웠던 시절, 기억조차 하기 싫은 궁핍한 세월도 사랑으로 꽃피우는 어미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 세상의 그 누가 수십 년 전 잊고 지낸 '어린이날 용돈'을 어미에게 받아보았으랴! 나는 엄니에게 날개를 달아드리고 '천사'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그때였다.
주방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흐른다.
" 뭐 하고 있는 게야. 얼른 씻고 밥 먹어야지. 점심에 뭣 좀 사 먹었니? "
나는 숨긴 마음을 들킬세라 얼른 눈물 자국을 훔치고 방을 나와 주방에서 저녁상을 보는 엄니의 표정을 흘깃 살피며...
"응~ 엄마, 낮에 엄마가 준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었는데, 내일도 주나? "
그리곤 엄니의 대답도 듣기 전에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책갈피에서 지폐를 다시 꺼냈다. 물끄러미 지폐를 바라보다가 사물함에 아껴두었던 대안학교 K 수학쌤이 선물로 주신 까만 장지갑을 꺼냈다. 지갑에 지폐를 곱게 펼쳐 넣은 뒤 꼭 끌어안고...
" 절대자님! 이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
" 그리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지갑을 품에 안은 나는 살포시 눈을 감고 마냥 행복했다. 인고의 세월, 수십 년 어미의 가슴속에 담았던 사랑이 가슴으로 흘렀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또 흘러내렸다. 그것은 알에서 갓 깨어나 날개를 파닥이며 어미 품속을 파고드는 병아리 같은 환희, 그것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미의 냄새를 맡는 기쁨. 아니다, 그것은 아직 어미 품에 남아 홀로 유영할 수 없는 못다 핀 민들레를 바라보는 어미의 가없는 사랑이었다.
※ 만 원 2부(아버지의 강)으로 이어집니다.
※ 십여 년 전에 써놓았던 일기글입니다. 다시 정리하여 어머니 책에 담아드릴 실화입니다.^^
※ 이 일기는 만 원을 주제로 부제를 따라 4부까지 이어지는 일기글입니다.
※ 참고로 장지갑은 제가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할 때 함께 지내던 수학(당시 사범대 수학교육과 학생-지금은 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사랑의 징표로 주신 선물입니다. ^.^ (아직도 사용하지 않고 곱게 보관하고 있다.)
(젬)
글을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미려오고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오월의 초록 햇살과 30여 년 전 완행버스 안의 살굿빛 아이스께끼, 양구 읍내 잔치국수 집의 풍경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듯 선연하게 다가옵니다.
십여 년 전 써두신 이 기록은 단순한 일기를 넘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한없는 정한(情恨)과 그 사랑의 깊이를 알아챈 아들의 눈물이 빚어낸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입니다.
감상평: 사랑의 무게를 아는 시인의 문장
깊은 울림을 주는 주제와 시선
팔순을 넘긴 어머니가 불혹을 바라보는 막내아들에게 건넨 '만 원'. 그 돈이 단순한 지폐가 아니라 어머니가 오랜 세월 가슴에 담아둔 '어린 날의 용돈'이자 '어미의 빚'이었다는 절절한 해석이 마음을 묵직하게 두드립니다. 오일장에서 미나리를 팔아 모으셨을 쌈짓돈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 돈을 쓰지도 못하고 책갈피에 넣었다가 다시 장지갑에 품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감성적이고 탁월한 묘사
" 초록 햇살을 머금은 영롱한 아침 이슬방울", "어미의 눈빛도 읽지 못한 채 먹이를 낚아채듯 지폐를 받아 들고", "세상에 이보다 더 맑고 순수한 샘물이 또 있을까!"와 같은 표현들은 문학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십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자연스러운 타임머신 구성 역시 독자를 순식간에 추억의 호숫가와 춘천 읍내 장터로 끌어당깁니다.
민들레 사랑이라는 부제의 절묘함
바람에 날려 가난과 화전민의 삶이라는 척박한 땅에 내려앉았지만, 6남매를 뿌리내려 키워내고 끝내 노란 꽃을 피워낸 어머니의 삶이 바로 '민들레' 그 자체였습니다. 못다 핀 민들레 같은 막내를 여전히 가슴에 품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려낸 마지막 문장은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깁니다.
어머니의 책에 담기 위한 정제 조언
이 글은 이미 실화가 가진 진정성과 문학적 완성도가 높아 크게 손볼 곳이 없습니다. 다만 훗날 어머니를 기리는 책에 책 글로 수록할 때 한층 더 매끄럽고 깊이 있게 읽히도록 몇 가지 작은 조언을 드립니다.
'소년'과 '나'의 시점 정리 (나름 눈을 씻고 찾는다고 했는데 젬 쌤은 기꺼이 찾아내시네!ㅎㅎㅎ)
현재 글에서는 나이가 든 '나(막내)'와 추억 속의 '열두 살 소년'이 오가고 있습니다.(맞다. 어린이 날 어머니가 주시는 만 원 지폐 소재라)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 '소년'이라 칭하신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글 전체적으로 "소년은 ~했다"라는 3인칭 시점과 "내게 달려오는", "내 앞에 내밀고"라는 1인칭 시점이 섞여 있어 살짝 혼선이 올 수 있습니다.
제안: 나중에 책에 실을 때는 기본 시점을 1인칭("나는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열두 살 소년이었다")으로 명확히 잡고 가시거나, 감정선이 도드라지는 부분에서 '소년'이라는 단어를 '나'로 자연스럽게 바꾸어 읽는 이의 몰입도를 높여보는 것도 좋습니다.
문장의 호흡과 어휘의 운율 살리기
문장 호흡: 감정이 벅차오르는 대목에서 문장이 조금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연, 정한, 사랑의 샘물이 이어지는 단락은 마침표를 활용해 호흡을 살짝 끊어주면 그 감정의 깊이가 더욱 단단하게 전달됩니다.
어휘 맞춤: "읍소하듯이 팔아" 같은 표현은 다소 단호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어머니의 안쓰럽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살려 "조심스레 팔아", 혹은 "손짓하며 팔아" 정도로 부드럽게듬어주시면 어머니의 노구(老軀)와 더 잘 어우러집니다.
장지갑 이야기의 배치
글 맨 아래 주석으로 적어주신 '대안학교 수학 선생님의 장지갑 선물'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이 독립된 한 장(Chapter)으로 책에 들어간다면, 주석으로 빼기보다 본문 중간이나 지갑을 꺼내는 대목에 짧은 한두 문장으로 스며들게 녹여내는 것이 서사의 완성도를 더 높여줄 것입니다.
가을날,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아드님이 이처럼 당신의 사랑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기억하며 글로 엮어내고 계신 모습을 내려다보시며 참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만 원'이라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유산을 둘러싼 두 번째 이야기, 2부 <아버지의 강>은 또 어떤 아련한 물결로 가슴을 울릴지 조용히 기다려집니다. 편하신 때에 다음 이야기도 꼭 들려주세요.
(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조언을 참고하여 시점과 어휘 선택을 다시 첨삭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2부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젬)
선생님의 따뜻한 답글에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자신의 글을 돌아보고 다듬는 과정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한 번 더 고이 담아내는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지요.
글에 담긴 진심과 사랑이 이미 워낙 깊기에, 시점과 어휘를 살짝만 다듬으셔도 어머니의 책에서 가장 눈시울을 적시는 감동적인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안해 드린 조언이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다니 기쁩니다. 마음 정돈되실 때 편안하게 2부 <아버지의 강>도 들려주세요. 깊은 울림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교차가 큰 가을날,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나) 이래 한 줄은 편집 과정에서 추가한 이야기임
제미나이 쌤이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작별인사를...ㅎㅎㅎ(갈 길이 바빠 허둥대고 있는데...^^)
만 원 2부(아버지의 강)
" 웬일이래~. 우리 집에 와서 전화를 다 주고."
" 응~, 엄마 보고 싶어 집에 잠간 들렀어. 점심 먹으러 올래? "
" 알았어~, 조금 있다 바로 갈게~ "
큰누나였다. 잠시 뒤 집에 도착하니 누나와 엄니가 점심상을 마주하고 반긴다.
" 이거 봐라~. 엄마가 줬다~.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
" 아니! 웬 배춧잎이래~! 엄마~ 나는~. 아들은 안 주나? "
누나는 엄마가 준 추도미사 성금인 지폐 한 장을 들어 보이며 자랑한다. 누나가 우리 집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돌아오는 11월 11일이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다. 평소 아버지를 가장 아끼며 속 깊은 마음을 보였던 누나는 다니는 성당에서 아버지께 '추도 미사'를 올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밥상 앞에 마주 앉으니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좋은 곳에 가실 수 있도록 추도 미사 올리는데, 너도 성금 좀 보탤래? 좋은 뜻으로 쓰여! "
누나의 뜻을 알고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까만 장지갑을 꺼냈다. 수년 전 어린이날 엄니가 주신 지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때 지폐를 지갑에 곱게 펼쳐 넣은 뒤 '좀 더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일에 쓰일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절대자께 다짐했었다. 그리곤 기억에서 멀어질 즈음 가끔 지폐를 꺼내 '지폐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쓰일까?' 상상하며 다시 묻어두곤 하기를 어느새 수년이 흘렀다.
나는 지폐를 꺼내놓고 숙연히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받은 돈이었는데, 다 부질없는 일이지!' 싶어 순간 회한이 밀려온다. 부모는 마지막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자식을 생각하며 숨이 멈춘다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순간에 손도 못 잡아드린 불효자식. 살아계실 때 좀 더 살갑게 잘해드려야 했는데... 방을 나와 누나에게 지폐를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 이 돈, 전에 엄마가 어린이날 주신 용돈인데, 꼭 소중한 일에 쓰려고 지금까지 안 쓰고 보관해 왔었어.
좋은 뜻으로 쓰는 건지 모르겠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받은 돈이었는데, 돌아가시고 쓰다니... "
"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야. 살아계실 때 술이라도 한 병 받아드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
누나는 위로하듯 말을 받았다. 엄닌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이 없으시다. 점심을 먹으며 지폐에 얽힌 이야기를 모두 누나에게 들려주었다. 누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며칠 뒤 아버지께 추도미사 올리는 날이 돌아왔다.
2003년 11월 11일 새벽 4시. 아버지의 영혼이 가여워 하늘도 슬퍼하는 걸까,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나는 깨끗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엄니도 따라 일어나 세수를 한 뒤 거울 앞에서 머리를 곱게 빗고 옷매무새를 고친다. 차에 올랐다. 엄니를 모시고 성당으로 향하는 도심은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질 않았다. 싸늘한 새벽 공기가 축축한 비바람을 타고 창문 틈으로 스며온다. 아버지가 걷던 길, 아버지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곳, 집 앞 소양강 다리를 건너며 아버지와의 아린 기억들이 하나둘 차창 밖으로 스쳐 간다.
슬하에 여섯 남매를 두었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일제 강점 초기(1915년)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셨다. 어린 시절 잡곡죽으로 끼니를 잇고 초근목피로 군것질하고 삼베 바지·적삼에 짚신을 신고 마을(알펜시아리조트)의 서당에 다니며 성장한 아버지. 아버지의 나이 열일곱 되던 해 이웃 마을(대관령 눈꽃마을) 열네 살 소녀였던 어머니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으셨다. 6·25 동란에 강제로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모진 고초 끝에 농사일로 거친 손을 내밀어 보이고서야 처형을 모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셨다, 는 아버지. 한평생 농사일로 손발은 늘 굳은살이 터서 나무껍질이 되었고, 등과 어깨 피부엔 육 남매 아비 된 죄로 진 지게질로 검은 참깨를 뿌려놓은 듯 '멜빵 자국'이 선명했던 아버지. 그 궁핍하고 어두웠던 시절, 어디 마음 편히 허리 한번 크게 펴 보셨으랴. 어디 마음 놓고 배부르게 끼니 한번 옳게 자시고 일하셨으랴! 그런데도 자식들은 성장하여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을 외면한 채 뿔뿔이 흩어져 제 둥지 챙기는 일이 우선이었다.
노년의 아버지가 자식들이 보고 싶을 때 노구를 이끌고 유일하게 찾아가셨던 피붙이가 인근에 사는 큰누나였고, 살을 맞대고 의지하던 곳이 우리 집이었다. 때론 이 못난 막내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지, 집 근처에 마트가 있음에도 굳이 어머니에게 국수를 사 오겠다며 팔순이 넘은 노구(老軀)를 이끌고 왕복 시오리 길을 걸어서 내가 일하는 맞은편 제면(製麵) 공장에 찾아와서는 4kg 가까운 국수 다발을 들고 우두커니 길거리에 서서 길 건너에서 일하는 막내를 안쓰러운 듯 바라보셨던 아버지. 황혼이 물드는 저녁 무렵 뒷짐을 지고 저물어가는 노을빛을 바라보며 집 앞 호숫가 강둑 산책로를 쓸쓸히 걸으셨던 아버지. 평균수명을 훌쩍 넘겨 당신의 삶에도 짙은 노을이 내려앉은 아버지는 그때마다 어두웠던 지난 시절 육 남매와 살아내야 했던 당신의 세월을 하나둘 흐르는 강물 위에 띄워 보내시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곤 하셨다.
삶이 궁핍하고 버거웠던 시절. 머리 큰 자식들이 속을 썩일 때도 그저 아비 된 죄로 못 본 척 눈을 감아야 했던 여린 마음의 당신은 하늘이 부끄러워 큰소리 한 번 쳐보지 못한 채 그저 참고 또 참고 속을 끓이며 살아야만 했었지요. 아버지, 당신이 살아오신 길은 못난 자식들의 한(恨) 맺힌 원류(源流)가 되었습니다. '매장하면 후손들에게 짐이 된다.'는 장자의 말 한마디에 한 줌 남은 당신의 육신마저 강물 위에 흩뿌려야 했던 냉혈한 같은 자식들. 벽제 승화원에서 천상으로 떠나시던 날, 화구에서 나온 가시고기의 최후 같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좀 더 살갑게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지난날의 죄의식에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못난 자식들을 아버지는 한 번쯤 뒤돌아보셨을까? '고향의 부모님 곁에 묻히고 싶다'는 생전의 작은 바람마저 자식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채 아버지의 영혼은 얼마나 깊은 상처로 설움의 눈물을 삼키며 떠나셨을까. 그날, 육 남매는 아버지께 천륜의 은혜를 저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바람이자 하늘이 맺어준 천륜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하늘로 떠나셨지요.
멈춰버린 강! 다시는 흐를 수 없는 아버지의 강! 하지만 아버지의 강은 지금 제 가슴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철부지 막내는 이제야 뉘우치며 속죄의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긴 세월 가슴을 적시며 흘러야 아버지의 강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얼마나 긴 세월 속죄하며 살아야 아버지가 살아오신 그 세월을 다시 오롯이 그려볼 수 있을까요. 지난날 당신께 지은 죄 너무 많아 오늘도 마음의 발목엔 사슬을 차고 노년의 아버지가 걷던 그 길을 따라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철부지 마음속에 아버지의 깊은 '은혜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3부=> 속죄의 발길로 이어집니다. => 만원(속죄의 발길) 3부 -
(젬)
1부에서 어머니의 '만 원'이 아들의 가슴을 울렸다면, 2부에서는 그 '만 원'이 마침내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는 거룩한 성금으로 쓰이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소양강의 싸늘한 새벽 공기와 가을비 속에서 아버지와의 옛 추억을 따라가는 서사가 한 편의 깊은 서정 소설을 읽는 듯 마음을 무겁고 아리게 두드립니다.
감상평: 소양강 물결 위에 띄워 보낸 회한과 속죄
하나의 돈으로 이어진 부모님의 깊은 사랑
어머니가 노구를 끌고 나물을 팔아 막내에게 건넨 '만 원'이 오랜 기다림 끝에 아버지의 100일 추도미사 성금으로 쓰이는 연결 구조가 절묘합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결국 아버지를 향한 자식의 속죄와 영혼을 달래는 기도로 승화되는 대목에서 깊은 감동을 줍니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
아버지의 멜빵 자국과 손발: "육 남매 아비 된 죄로 진 지게질로 검은 참깨를 뿌려놓은 듯 '멜빵 자국'이 선명했던 아버지"라는 표현은 한국 근현대사를 버텨낸 우리네 아버지들의 고단했던 삶을 시적으로 묘사해 낸 명문장입니다.
제면 공장의 4kg 국수 다발: 아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려 왕복 시오리 길을 걸어 무거운 국수를 들고 서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소양강 다리와 가시고기: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소양강 호숫가, 그리고 화구에서 나온 아버지의 모습을 '가시고기의 최후'에 비유한 대목은 슬픔과 불효에 대한 안타까움을 선명하게 각인시킵니다.
감정선이 돋보이는 구성
누나와의 잔잔한 대화로 시작하여, 새벽 성당으로 향하는 길 위의 묘사, 대관령과 산골 시절로 이어지는 과거 회상, 그리고 마지막 '아버지의 강'으로 수렴되는 시적 고백까지 서사의 흐름이 매끄럽고 극적입니다.
어머니/아버지 책에 담기 위한 정제 조언
2부 역시 실화가 가진 진정성과 문학적 묘사가 훌륭합니다. 추후 책으로 정제하실 때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세 가지 포인트를 제안해 드립니다.
대화체와 본문 시점의 자연스러운 연결
글 중반부까지는 '누나와 나의 과거 이야기(3인칭 및 회상)'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서 "아버지, 당신이 살아오신 길은..." 하고 아버지를 직접 부르는 2인칭 편지글(독백) 형태로 전환됩니다.
제안: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대목이라 편지글 전환이 주는 울림이 큽니다. 다만, 문맥 전환이 어색하지 않도록 편지글로 들어가는 지점에 "호수를 바라보며 속으로 아버지를 불러본다." 같은 완충 문장을 한 줄 넣어주시면 감정선의 변화가 더욱 자연스러워집니다.
(*바로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2인층으로 들어갔는데, 역시 제미나이 쌤이 짚어주시네...캄솨캄솨...앞서 다시 손보려고 했는데 콕 집어줌)
지명 및 부연 설명의 글꼴 정돈
본문 중 (알펜시아리조트), (대관령 눈꽃마을) 같은 현대 지명 설명은 독자의 이해를 돕지만, 옛 추억의 아련한 분위기를 살짝 깨뜨릴 수 있습니다.
제안: 책으로 출판할 때는 본문 안에 괄호로 넣기보다 "대관령 산골 마을의 서당"처럼 부드럽게 용어를 녹여내거나, 출판 편집 시 '각주(Footnote)' 형태로 처리하는 것이 문학적 완성도를 크게 올려줍니다.
문장 호흡의 가다듬기
"그 어렵고 힘겨웠던 시절..." 대목처럼 한 문장 안에 수식어와 상황이 길게 이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감정이 누적되는 효과는 있지만, 호흡을 살짝 나누어 단문과 장문을 섞어 배치하면 독자가 아버지의 고단함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이 흘러간 소양강과 아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아버지의 강'. 그 깊은 은혜와 한을 담아내는 글이기에 읽는 내내 절로 숙연해졌습니다.
이어지는 3부 <속죄의 발길>에서는 소년(아들)이 어떤 마음의 사슬을 풀어나가며 속죄의 여정을 이어갈지 마음 깊이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편하실 때 다음 글도 나누어주세요. 🌷🙏
만 원 3부(속죄의 발길)
성당에 도착했다. 엄니와 우산을 쓰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서 성모님이 발길을 붙잡는다. "마리아 님, 오늘 이곳을 찾은 연유는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부디 철부지 막내의 못난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께서 편안히 영면하시도록 도와주세요."
엄니와 잠시 짧은 묵상을 끝내고 발걸음을 옮겨 미사를 치르는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머리에는 하얀 미사포를 두르고 숨죽인 듯 고요했다. 눈치를 살피며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신부님 말씀을 듣고 있는데, 누나가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곁으로 다가왔다.
추도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다. 곁에 계실 때 좀 더 살갑고 기쁘게 해 드려야 했는데. 생전에 못다 한 죄스러움에 그리움이 봇물 터지듯 밀려온다. 눈을 감은 채 상념에 잠기니 입관 전 싸늘하게 굳은 아버지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병석에서 빡빡 밀어드린 머리와 앙상하게 살이 빠진 볼우물에 파리한 낯빛. 저승에서는 배곯지 마시라고 숟가락에 쌀을 떠 입에 넣어드리니 '나 죽을 때 가져가겠다'고 하셨던 삭아 뭉그러진 앞니 두 개가 가난한 소작농의 육 남매 아버지로 살아오신 지난 세월을 오롯이 말해준다.
어둡고 험난했던 세월.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야 했던 당신의 세월, 엄니가 밖에 나가서 기죽지 말라고 나물을 팔아 모은 몇 푼의 지전을 쌈짓돈으로 드리면,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막내 생각이 났다'라며 오일장인 풍물시장에서 생선이나 찐빵을 사 들고 오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따스한 눈빛으로 은혜로운 말 한마디 들려드리지 못하고 마주 앉아 술 한 잔 부어드리지 못한 철부지 막내는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동전 몇 닢을 수의 주머니에 넣어드렸을 뿐이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을 건졌잖소." 모 가수의 노랫말처럼 온갖 고생을 하시며 육 남매 키워내고 돌아가는 길에 고작 '옷 한 벌에 몇 푼의 동전과 몇 낱의 쌀알'이라니! 구십 평생을 살아오시며 마음 편히 허리 펴고 웃던 날은 몇 날이었을까? 당신의 몸은 늘 뒷전인 채 육 남매 기르며 헌신한 아버지의 삶은 수만 년 흘러 닿은 이승에서의 단 한 번의 인연인데, 백 년도 안 돼 돌아가야 하는 여름날 매미 같은 아버지의 인생사. 벽제 승화원 19번 화장로(火葬爐)에서 나온 아버지의 유골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밤낮을 쉬지 않고 지느러미로 *부채질하여 알을 부화시킨 뒤 천적을 몰아내며 새끼들을 돌보다가 끝내 탈진하여 숨을 거두고도 죽은 몸뚱이마저 새끼들의 먹이가 되어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가시고기였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시력도 잃고 거동도 못 한 채 3년 9개월을 고생하시다가 하늘로 떠나셨다. 처음 발병한 뒤 줄곧 우리 집에서 지내셨다. 낮이나 밤이나 팔순이 넘은 엄니가 곁에서 병간호하시느라 고생하셨다. 나는 고작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 잠시 엄니를 도와드릴 뿐이었다. 엄닌 당신조차 가누기 힘든 노쇠한 몸이어도 아무런 내색 없이 밤낮으로 극진히 아버지를 돌보셨다. 흔히 '백년해로'라는 말은 내외로 만나 오손도손 같이 늙어가다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곁에 머물 수 있는 부부'를 말한다. 맞는 말이다. 육 남매와 장성한 십수 명의 손자 손녀가 있으니, 무슨 소용이랴. 모두 제 둥지가 1순위다!
그렇게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묵묵히 병간호하시는 엄니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었다. 엄닌 밤낮으로 아버지 곁에서 온갖 잡심부름과 식사와 대·소변보기를 거들며 불평 한마디 없으셨다. 그 모습은 인간애(人間愛)에 바탕을 둔 한 여인의 숭고한 모습이었다. 아니,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이웃 마을 열일곱 총각과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평생의 반려자였던 지아비에게 베푸는 지고지순한 마지막 사랑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귀한 언약 이행이 또 있을까! 세상에 이보다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또 있을까! 자식들은 그 모습을 모른 채 잊고 지내거나 잠시 들러 눈가림이나 하는 그저 한낱 허울 좋은 말뿐이었다.
그토록 헌신하며 아버지를 돌보던 엄니마저 어느 날 몸져누우셨다. 힘에 부치고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중증 병간호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지 싶었다. 자식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천사 같은 엄니가 갚은 결과였다. 결국 아버지는 가족들의 입방아에 2년 3개월간 엄니의 병간호를 끝으로 일산에 사는 큰형님 댁으로 가시게 되었다.
2001년 12월 27일, 아버지가 일산 큰형님 댁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당신의 몸으로 거부할 수 없음에 피동적으로 따라가야만 하는 아버지. 큰손주의 차 안에 누워 떠날 채비하시는 아버지를 그저 먼발치서 죄인의 심정으로 참담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아직 미완의 못난 모습으로 남아 엄니에게 대신 짐을 지운 죄 많은 자식. 차마 보내드리면 아니 될 일을 알면서도 떠밀어내듯 아버지를 보낸 뒤 한없이 속울음을 삼켰다. 작별의 인사도 올리지 못한 채 아파트 마당을 돌아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버지, 가끔은 찾아뵙겠습니다.' 다짐에 다짐하였건만, 떠나고 아니 보이니 그 또한 차츰 눈과 마음에서 멀어져 갔다. 아버지 제가 죄인입니다.
아버지가 일산으로 올라가신 뒤 명절에나 생신에 엄니를 모시고 일산 형님 댁을 찾아뵐 때면 아버지는 "내 신발 좀 꺼내다오." 하시며 화장실도 못 가는 몸으로 방바닥을 쓸며 어린아이처럼 따라나서려고 하셨다. 그때마다 가족들은 "아버지, 여기도 자식의 집인데 좀 불편하시더라도 이곳에 계세요." 하며 달래드려야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현관문을 응시하며 또다시 긴 그리움으로 삭여야 할 기약 없는 이별에 풀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셨다. 그런 아버지의 애원 어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목구멍을 타고 밀려왔다.
장성한 자식인데도 아버지를 돌봐드리지 못하는 한스러움에 엄니와 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때론 마음을 짓누르는 죄스러움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냥 모든 일을 접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엄니가 좀 고생하시더라도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다시 모시고 갈까?' 하는 갈등도 있었다. 그렇게 1년 7개월여, 외로움과 그리움을 삭이며 떨어져 지내야 했던 아버지는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자식들의 모진 외면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천상에까지 가슴에 담고 가셨다.
"아버지, 제가 제일 큰 죄인입니다. 우리 집으로 다시 오시겠다며 따라나서는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 두고두고 가슴을 짓누르며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 못다 한 마음 씀을 엄니에게는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좀 더 살갑고 마음 닿는 모습으로 엄니에게는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미사 시간 내내 파르르 입술을 떨며 나는 이 말만을 무수히 되풀이하여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미사를 마친 뒤 엄니 손을 잡고 성당 마당으로 나오니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듯 아직도 가을비는 대지를 슬프게 적신다. 그때 먼저 밖으로 나온 누나가 우산을 받친 채 까만 스웨터를 입은 수녀님 한 분을 모시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수녀님이 먼저 엄니와 내 손을 번갈아 잡아주시면서 인사를 건넸다.
" 아! 이렇게 좋은 뜻으로 어머니가 주신 어린이날 용돈을 쓰지 않고 추도미사 성금으로 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성당에서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시니... "
누나가 추도미사를 접수할 때 수녀님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고 했다. 쑥스럽고, 감사했다. 엄니도 수녀님 손을 잡고 미소로 눈인사를 나누신다.
누나와 수녀님을 뒤로한 채 우리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생전에 엄니가 지내는 우리 집으로 그토록 내려가고 싶다, 고 어린아이처럼 따라나서려다 체념했던 아버지의 속울음이 하늘을 울린 것일까? 아버지의 눈물 같은 가을비는 그칠 줄 몰랐다. 한 발짝, 두 발짝 성당 마당을 걸어 나오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 뒤에서 '막내야, 내 신발 좀 꺼내다오.' '나도 데려가다오.' 하며 아버지의 영혼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손을 내저으며 부르시는 듯하다.
못난 막내의 가슴에 흐르는 속죄의 눈물이 아버지가 걸어온 세월의 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버지가 그리워하던 설움의 눈물이 빗물을 따라 집 앞 강으로, 호수로 흘러가고 있었다.
4부=>(달빛 그리움)으로 이어집니다.
*부채질- 가시고기 수컷이 지느러미를 쉬지 않고 움직여 부채질을 하는 이유는 암컷이 낳은 알에 산소를 공급하여 알이 상하지 않고 새끼를 부화되기 위한 본능이라고 한다.
(젬)
3부 <속죄의 발길>은 부모님의 한없는 희생과 자식으로서 가슴 깊이 남은 속죄의 회한이 가장 밀도 높게 폭발하는 장면입니다.
성당 성모상 앞에서의 나지막한 고백부터 승화원 화장로의 기억, 병석에서 숟가락에 올려드린 쌀알, 그리고 일산 형님 댁 현관문 앞에서 "내 신발 좀 꺼내다오" 하시던 노년 아버지의 애원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아려오게 만듭니다.
감상평: 자식의 통한과 지고지순한 부모애가 이룬 눈물의 찬가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 그리고 천사 같은 어머니
자식을 위해 당신의 몸과 삶을 남김없이 내어주신 아버지를 '가시고기'로 비유하신 대목은 3부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상징입니다. 삭아 뭉그러진 앞니 두 개와 앙상한 유골의 묘사는 차마 눈을 감게 만들 정도로 눈시울을 적십니다. 더불어, 3년 9개월 동안 묵묵히 지아비를 돌본 어머니의 사랑을 '지옥 같던 병간호 속 지고지순한 약속의 이행'으로 포착해 내신 시선은 인간 윤리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을 보여줍니다.
"내 신발 좀 꺼내다오" — 서사의 결정적 대목
일산 집을 떠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현관을 응시하며 어린아이처럼 신발을 달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애원은 독자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최고의 명문장입니다. 버려진 듯한 슬픔과 아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고팠던 염원이 담긴 이 대목은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절한 천륜을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증언합니다.
수녀님과의 만남과 '만 원'의 완성
1부에서 어머니가 주신 '만 원'이 2부에서 추도미사 성금이 되고, 3부에서 수녀님의 입을 통해 "이렇게 좋은 뜻으로 어머니 용돈을 쓰지 않고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돌아오는 장면은 글 전체에 거룩하고 따뜻한 구원의 빛을 비춰줍니다.
어머니의 책에 담기 위한 정제 조언
실화가 가진 강렬한 감동이 글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추후 책으로 실으실 때 더욱 세련된 문학적 완성도를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립니다.
인용구와 노랫말의 문맥 정돈
본문 중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을 건졌잖소."*라는 노랫말(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중) 인용은 아버지의 허망한 삶과 대비되어 매우 효과적입니다. (최백호가 아닌 김국환인데...쌤도 실수를 하시는..,예쁘게 봐 드립니다.ㅎㅎㅎ)
제안: 출판 시에는 "모 가수의 노랫말처럼"이라는 다소 사적이거나 유행가스러운 표현보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건졌다'지만, 구십 평생을 고생하신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고작..." 형태로 부드럽게 흐름을 연결하면 글의 품격이 더 올라갑니다.
부채질(가시고기) 각주의 배치
글 맨 아래 적어주신 가시고기 수컷의 '부채질'에 대한 설명은 가시고기 비유를 이해하는 데 매우 감동적인 배경지식입니다.
제안: 2부의 지명과 마찬가지로 책 편집 시 본문 뒤에 텍스트로 두기보다는, 가시고기를 언급하는 단락 바로 아래 작은 각주(Footnote)로 처리하거나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지느러미로 부채질하여 알을 살려내듯..."으로 녹여내시면 서사의 몰입이 끊이지 않습니다.(참고!)
속죄의 다짐 문장 강화
성당 미사 중 입술을 떨며 "아버지께 못다 한 마음 씀을 엄니에게는 꼭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대목은 글 전체의 전환점입니다. 이 대목의 글씨를 살짝 다듬어 어머니를 향한 효도의 서원(誓願)으로 더욱 강조해 주시면, 마지막 4부 <달빛 그리움>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서원이라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실은 큰누나에게 물어보려고 했었다. 고맙습니다^^)
빗속에서 울리는 아버지의 "내 신발 좀 꺼내다오"라는 환청과 함께 성당 마당을 걸어나오는 막내아들의 발걸음은, 이미 단순한 일기를 넘어 깊은 속죄의 성찰록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긴 연작의 마지막 장인 4부 <달빛 그리움>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그 슬픔을 어떻게 가슴에 품어내고 달빛 같은 평온으로 승화시킬지, 마지막 이야기를 조용히 그리고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편하실 때 들려주세요. 🌷🙏
만 원 4부(달빛 그리움)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뒤 매월 음력 보름밤이면 엄니와 집 앞 호숫가로 나간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육 남매의 소식도 전해드릴 겸 추모하는 마음에서다. 엄닌 휠체어에 앉아, 나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아버지께 술을 따라 올린 뒤 "아버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엄마도 옆에 오셨잖아요." 인사를 올리면 아버지는 먼 하늘에서 별빛을 타고 엄니와 내 가슴속으로 다가오신다.
그럴 때면 나는 두 손을 포개어 가슴에 얹고 달을 바라보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끈을 풀어보곤 한다. 내 몸과 기억 속에 남은 아버지의 영혼과 인연의 끈은 수십억의 확률과 수십만 년이 흘러 닿은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 싶다. 억천만겁(億千萬劫)의 시간을 기다려 절대자가 맺어준 천륜이었음에도 내가 세상에 태어난 고마움도 모른 채 아버지께 은애(恩愛)의 마음을 담아 '고맙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 살갑게 들려드리지 못한 채 아버지와 또다시 기약 없는 긴 이별을 맞아야 했다.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보름달을 바라보다 어느 시인의 노랫말을 떠올리면 밤하늘에 그리움이 짙게 물든 그리운 별 하나, 수많은 별 중에 아버지는 어느 별일까? 아버지께 못다 한 약속이 가슴에 사무쳐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엔 아버지의 환영(幻影)이 '그래, 에미랑 잘 지내니?' 하시며 달빛 드리운 고향 마을 마당 가에 서서 빙그레 웃고 계신다.
그때마다 "아버지 저희는 이곳에서 엄마랑 잘 지내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에서 육 남매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세요. 언젠가는 엄마와 저도 아버지 곁으로 꼭 갈 거예요.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하는 철부지 막내의 때늦은 사부곡(思父曲)이 허공으로 흩어지면 옆에서는 엄니가 "아버지*, 우리가 왔어요. 애들이랑 잘 지내게 해주고 나도 아픈 데 낫게 해주고..." 하며 '짝 잃은 기러기'의 애원(哀怨)이 강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6남매의 아버지가 줄줄이 달린 자식들 생각에 여름날 마을 구멍가게 들마루에 걸터앉아 어디 시원한 막걸리 한잔하고 싶은 마음 가져보셨으랴! 허기를 달래며 밤낮으로 농사일에 매달려도 가을에 도지(賭地)를 물고 장리(長利)쌀을 갚고 나면 겨우 겨울나기 양식밖에 안 되는 소작농인 아버지는 가끔 마을 행사나 이웃의 경조사에서 약주를 얻어 드시곤 거나한 기분으로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오곤 하셨다. 그럴 때면 자식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함에서인지, 소작농이 겪어야 하는 비애 때문인지, 아버지는 참고 살아야 했던 심경이 북받쳐 오르는지 사랑방에서 목침을 베고 누워 두 발로 방바닥을 쿵쿵 울리며 울부짖듯 옹알이하셨다. 때론 고향을 떠나 고달픈 타향살이로 못다 한 회한 때문인지 하늘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으며 눈물을 보이셨던 아버지. 이젠 저 하늘에서 막내의 사부곡을 들으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한 맺힌 그리움에 밤마다 내 가슴에 달맞이꽃을 피운다.
생전의 아버지는 약주를 즐기셨다. 엄니의 술 빚는 솜씨가 남달라 아버지는 늘 집에서 농주(農酒)인 막걸리를 반주로 드셨다. 그런 정서 때문이었을까? 시내 아파트로 이사 온 뒤에도 아버지는 자식들이 찾아오며 들고 온 술을 아껴서 약주로 드셨고 간혹 엄니가 사다 드리기도 했다. 때론 이른 아침 집 앞 강둑에 나가 밤사이 버려진 빈 병을 하나둘 모아 단지 안의 마트에서 술로 바꿔 오기도 하셨다. 그럴 때면 엄닌 '자식들에게 흉 돼요' 하며 노인정에 나가 기죽지 말라고 가끔 몇 푼의 쌈짓돈을 아버지 손에 쥐여주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부적을 몸에 지니듯 꼬깃꼬깃 쌈짓돈을 접어 애지중지하는 낡은 까만 지갑에 넣어두셨다. 그 뒤 아버지의 쌈짓돈은 지갑 안에서 숨죽여 지내다가 읍내 오일장인 풍물시장에 장 구경을 가시는 날에 절인 생선이나 찐빵으로 바뀌어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깊은 마음 씀을 생각하니, 생전에 엄니에게 대신 드리던 몇 푼의 용돈이 '아버지의 쌈짓돈'이라는 철부지 생각에 마음이 저리다.
일산 큰형님 댁에서 세수 여든아홉으로 삶을 마감하신 아버지. 벽제 승화원에서 한 줌 재가 되어 그토록 그리워하던 우리 집에 들러 삼우제를 올리고 영면하셨다. 그 뒤 밤이면 베란다에 나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다. 그때마다 하늘로 떠나시기 하루 전 뵈었던 야윈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찾아뵐 때마다 '엄니 곁인 우리 집으로 내려가고 싶다'라는 아버지의 애원을 외면한 죄스러움과 '죽으면 고향의 부모님 곁에 묻히고 싶다'라는 간절한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한 회한에 "아버지 언젠가는 하늘에서 꼭 다시 만날 거예요."라고 기도로 용서를 구한다.
면 음식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그런 연유에서일까? 아버지는 내가 일하는 일터 맞은편에 오래된 국수 공장을 가끔 찾아오셨다. 왕복 시오리가 넘는 거리인데도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 늘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찾아오셨다. 그럴 때마다 엄닌 "뭘 얼마나 아끼겠다고 그 먼 길을 걸어서 고생해요" 하며 말렸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쓰고 일터 맞은편 국수 공장에서 노구(老軀)의 몸으로 4kg이나 되는 국수 다발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셨다.
그때마다 잠시 길거리에 멈춰 서서 길 건너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셨던 아버지. 그땐 아버지가 '그저 습관처럼 국수를 사러 오셨구나' 싶어 그저 흘끗 바라만 보곤 하던 일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뒤 그때 아버지는 막내의 일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국수 공장까지 찾아오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달맞이꽃 사랑'을 몰라본 철부지. 국수 공장 이십여 미터 옆에 짜장면집도 있었는데, 바쁘더라도 잠시 일손을 놓고 달려가 '아버지 국수는 무거우니 저녁에 제가 집에 들어갈 때 차에 싣고 갈게요, 짜장면이라도 드시고 구경 삼아 쉬엄쉬엄 걸어가세요'하는 작은 마음 씀도 보여드리지 못한 철부지. 일터에서 가끔 길 건너 국수 공장을 바라볼 때면 길거리에 멈춰 서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가슴엔 뜨거운 *서리꽃이 핀다.
늦둥이 막내에게 무언의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 그런 마음 씀도 모른 채 아버지 가슴에 허허로운 상처만 안겨드린 철부지. 그 값싸고 흔한 짜장면도 기꺼운 마음으로 사드리지 못한 못난이.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몰라본 죄업(罪業)을 떠올리면 한겨울 고향 마을 뒷산의 나목같이 온몸엔 휑한 찬바람이 일며 마음은 차갑게 내려앉는다. 기꺼이 죗값을 치르겠다고 다짐하며 아버지가 방바닥을 두 발로 울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울먹이며 찾으셨듯이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속죄 또 속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보름밤 추모제를 마치곤 휠체어를 밀고 타박타박 집으로 발길을 옮길 때면 달은 중천에서 배웅하고, 별빛을 타고 내려와 엄니와 내 가슴 속에 잠시 꽃으로 머물렀던 아버지. 오늘밤은 그리운 달맞이꽃을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밤입니다.
2004년 5월 5일 어린이날 (수) 맑음
(젬)
마침내 완성된 <만 원> 4부작의 마지막 장, <달빛 그리움>을 가슴 깊이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건넨 '만 원' 한 장에서 시작된 여정이 아버지의 강을 지나, 성당 마당의 속죄로 흐르고, 마침내 음력 보름밤 호숫가에 피어난 '달맞이꽃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이자 참회록입니다.
감상평: 보름달 아래 피어난 달맞이꽃 사랑과 그리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숭고한 추모제
음력 보름밤마다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호숫가로 나가 먼 하늘의 별을 보며 아버지께 술을 올리는 풍경은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엄마도 옆에 오셨잖아요"라는 아들의 인사와 "짝 잃은 기러기"처럼 아픈 데를 낫게 해달라 비는 어머니의 기도가 강바람에 흩어지는 대목은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듭니다.
자식에 대한 서글프고 아련한 부정(父情)의 재발견
방바닥을 울리던 옹알이: 소작농의 비애와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에 목침을 베고 누워 방바닥을 쿵쿵 두드리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가난했던 시대 우리네 아버지가 삼켜야 했던 외로움을 아주 사실적으로 증언합니다.
4kg 국수 다발과 짜장면: 1~3부에서 언급되었던 국수 공장 이야기가 4부에서 비로소 "짜장면 한 그릇 사드리지 못한 불효"라는 아들의 절절한 한탄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감정의 폭발을 가져옵니다. 왕복 시오리 길을 오직 '막내 일하는 모습 한번 보려고' 오셨던 아버지의 참사랑이 달맞이꽃처럼 빛납니다.
수미상응(首尾相應)의 완벽한 서사 구조
2004년 5월 5일 어린이날: 글의 맨 마지막 날짜를 보고 소름이 돋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부에서 팔순 어머니가 건넨 '어린이날 용돈 만 원'이 2, 3부의 속죄를 거쳐, 정확히 몇 년 뒤 '어린이날'에 작성된 이 일기로 완성된다는 점이 글 전체에 기적 같은 운명적 완성도를 부여합니다. (이건 우연의 일치다. 의도한 것이 아닌, 매년 어린이 날이 돌아오면 엄니가 주신 만 원 지폐가 떠오르기에 어린이날에 쓸 수밖에 없었다.)
전체 4부작을 어머니의 책에 담기 위한 총평 및 정제 조언
선생님의 글은 실화가 가진 진정성과 시적 묘사, 그리고 문학적 기교가 어우러져 이미 훌륭한 수필 작가의 경지에 올라 계십니다. 책으로 엮으실 때 전체적인 톤을 정돈하기 위한 마지막 마무리 조언입니다. (ㅎㅎㅎ 쌤이 또다른 일기 글을 보고 싶은가보다. 과찬을...ㅋㅋ)
시인 김광섭의 시 구절 정리
본문 중 인용된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구절(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은 아버지의 별을 찾는 감정과 매우 잘 어우러집니다.
출판 시에는 "어느 시인의 노랫말처럼" 보다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혹은 "유심초의 노래 가사로도 익숙한 시 구절처럼"으로 다듬으시면 문학적 격조가 한층 높아집니다. (여긴 내가 너무 익숙해 실수였다. 죄송^^)
4부작 단원(Chapter) 구성 제안
책의 한 단락으로 들어갈 때 각 부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배치하면 연작 수필로서 보기 좋습니다.
1부: 민들레 사랑 (어머니의 만 원)
2부: 아버지의 강 (소양강에 흐르는 회한)
3부: 속죄의 발길 (성당 미사와 가시고기)
4부: 달빛 그리움 (달맞이꽃 사부곡)
마지막 날짜의 강조
마지막에 적어주신 2004년 5월 5일 어린이날이라는 날짜와 날씨는 이 글의 가장 결정적인 반전이자 감동 요소입니다. 책 편집 시 이 날짜를 글 끝에 약간 큰 글씨나 강조체로 남겨두어 독자가 1부의 '어린이날 용돈'과 연결하여 깊은 여운을 느끼도록 조율해 보시길 권합니다.
(위에 부제를 주제로 가는 건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만 원> 이란 주제에 부제를 달은 이유도 만 원이 계속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달았다. 그런데 쌤이 먼저 제안해 주심에 감사! 그리고 서간문 형식으로 어린이 날 쓴 4부 날짜를 강조체로 넣으라는 조언은 나도 미처 몰랐다. 캄솨캄솨! 어린이 날 돌아보는 부모님께 보내는 못다 한 이야기니 충분히 설들력이 보임 ^^)
선생님, 4부에 걸친 긴 일기 글을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가을날, 부모님을 향해 써 내려간 이 깊은 사모곡은 하늘에 계신 두 분께 틀림없이 닿아 가장 어여쁜 달맞이꽃으로 피어났을 것입니다.
정성껏 다듬으셔서 꼭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책으로 결실을 맺으시길 온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나)
고맙습니다. 4부작으로 이어지는 일기 글을 촘촘히 살펴보시고 감상평과 아낌없는 조언까지 해 주심에 거듭 감사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조언을 참고하여 각 부제마다 갖는 서사 구조와 4부가 모여 이어가는 서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다듬도록 하겠습니다.🙏🌷💕
ㅡ이상 어머니가 주신 만 원 지폐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4부에 걸친 일기 글을 제미나니 쌤과 나눈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ㅡ

첫댓글 https://youtu.be/Xq6CRH3vn6I?si=c9WlsdCzXlZ2xgnk
목소리가 남잔데도 무척 감미롭게 다가오니 깜짝 놀람!
바비 킴이 이런 보컬 매력이 있는 줄 미처 몰랐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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