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물 젖은 두만강
변덕스러웠던 전날 날씨와는 달리 자작나무 숲 사이로 눈부시게 아침햇살이 쏟아졌다. 대금소리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백두산의 아침공기는 맑고 상큼했다. 숙소 입구에서 키가 작달막한 아저씨의 대금 부는 매력에 반해 사례를 하고 함께 추억을 남겼다.
오늘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비가 있는 용정의 대성중학교와 두만강을 둘러보는 날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지대의 울창한 숲길을 한참 만에 벗어난 버스는 미인송이 늘어선 이도백하를 지나 용정을 향해 달렸다. 백두산의 품은 크고도 넓었다. 지겹도록 달려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때묻지 않은 원시림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로 살아있는 거대한 자연박물관이었다.
가이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북한에 고모를 만나러 갔던 이야기와 중국 민항기의 불시착 얘기, 한국의 올림픽과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피나무 골을 넘다가 백두산에서만 난다는 피나무꿀 맛을 보았고, 맞은편으로 염소 떼를 몰고 가는 목동의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산자락을 돌아 수컷 한 마리가 암컷 40마리를 상대한다는 사슴농장에서 녹용 한 잔을 얻어마셨다. 중국은 여행객의 건강까지 일일이 챙기며 몸보신을 시켜주는 지구상에 몇 안되는 나라였다. 중국의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다. 이곳의 화장실도 걸터식이었다. 연변을 여행하며 볼일을 보려면 무엇보다 담력이 커야했다.
<윤동주의 시와 대성중학교>
연변은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오랜 역사속의 과거가 아닌 바로 까까머리 꼬맹이 시절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철 이른 코스모스가 반갑다고 인사하는 길 저편에서 한가로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들녘은 느긋한 농촌의 여유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빨리빨리에 대한 시간의 강박도 없었다. 디지털시계를 풀어놓고 아날로그시계를 다시 찬 느낌이었다.
흔들리면서 사는 것이 세상살이기에 미니버스에 몸을 맡기고 적당히 덜덜대며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에 눈길을 던져보는 것은 색다른 낭만이 있었다.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길가에 멈춰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공산당원이 지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해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의 예법이었지만 중국에서의 공산당원은 이처럼 신적인 존재였다.
드넓은 만주벌판은 전체가 옥수수 밭이었다. 가도 가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4시간여를 달려 용정 가까이에 이르자 차창너머로 비암산 자락의 일송정이 보였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의 회합장소 였던 일송정은 일제에 의해 잘려지고 불 질러져 다시 심어진 나무라고 했다.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는 선구자의 노래에 나오는 바로 그 일송정이다.
용정 시내를 가로지르는 해란강을 지나 윤동주 시비가 있는 대성중학교를 둘러보았다.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고민했던 민족 시인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그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 타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선대들의 혼을 가슴에 새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우린 너무 쉽게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잊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성중학교는 용정중학교의 전신이었다.
<두만강과 김일성 사진이 걸려있는 북한의 간이역>
여름 햇살은 따갑고 날은 더웠다. 더울 때는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멀리 있어도 잊지않고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했다. 싸리꽃 곱게 핀 길을 따라 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밋밋한 산자락을 돌아 버스는 숨가쁘게 두만강을 향해 달렸다. 풀과 나무를 베어내고 씨앗을 뿌리면 모두 비옥한 농토가 될 것 같은 구릉지 야산이었다. 이곳의 농토는 가족 수에 따라 배정되고, 가깝고 먼 농토의 배정은 제비뽑기로 정해진다고 했다.
<변계선을 넘으면 북한 땅>
얼마를 달렸을까? 작은 개울너머 산자락 아래로 “21C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글자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는 저곳이 북한 땅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에 농작물이 심어져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작은 역사에는 아직도 김일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이나 달려가자 마침내 도문이었다.
도문은 35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소도시로 이 중에 27만명이 조선족이라고 했다. 개울 같은 작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중 국경이 그어져 있었다. 다리는 이어져 있으나 변계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강 너머로 바라보이는 북한의 모습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건너편이 같은 피를 나누고 같은 말을 하고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동포의 땅인데 먼 길을 돌아서왔다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체제와 이념으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살아가는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조중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의 다리 경계선까지 다가가 보았다. 변경선을 넘어서는지 보안군처럼 보이는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북한쪽을 바라보다가 가이드의 요청으로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덕분에 두만강을 오르내리며 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 노래를 불렀다. 두만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부르게 될 줄이야……. 북한지역의 강 숲에는 총을 든 병사가 보였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빵과 과자를 던져주기도 했다고 한다.
<두만강의 뱃놀이>
두만강에서 뱃놀이를 끝으로 해란강을 따라 연길로 향하다가 잠시 곰 사육장을 들렀다. 과자를 던져주었더니 일어나기가 귀찮아 누워서 받아먹는 곰은 정말 미련 곰탱이였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공연장에서 연변의 민속공연을 관람했었는데 처음에는 또 그렇고 그런 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쉬어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한복을 곱고 차려입고 우리노래를 하는 그들은 가슴 뭉클한 동포애를 느끼게 했다.
멘트를 하는 아가씨의 미소와 한복이 너무 예쁘게 잘 어울렸다.“저 정도면 가정을 버릴 수 있다”고 했다가 돌아올 때까지 곤욕을 치러야했다. 도시는 강을 끼고 있었고 연길은 부르하통화강을 중심으로 하남과 하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곰탱이들>
이곳의 의료시설과 이용형태가 궁금해서 몇 가지를 물어보았으나 나이가 어려서인지 의료의 전반적인 실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깊이 있는 내용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진료소와 의원, 병원, 약방이 보였고 입원보험 성격의 의료보험제도가 아주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무료진료활동을 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쁜 연변아가씨들의 민속공연>
저녁식사 후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발맛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유난히 간지럼을 많이 타는 은경 씨 때문에 여자들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어느새 맑은 밤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걸렸다. 윤동주 시인이 올려다 보고 별을 세었던 그 하늘이다. 머나먼 남쪽 땅에 두고온 고향이 그리워 달속에 어리는 부모형제의 모습을 그리며 밤마다 하염없는 눈물을 지었던 그 달이다. 문득 집 생각이 났다. 만남의 반가움이 있었기에 또 헤어짐의 슬픔이 있나보다.
이틀간의 연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정들었던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잡았다. 연길공항을 떠나 심양의 한양호텔에 든 시각은 밤 1시 30분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타고 계속 다닌 탓인지 아내는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여행은 체력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2009. 8. 4>
첫댓글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후덕한 까비의 현모양처가 보기에 좋아 ~~~ 기행문을 생생한 현장감있게 잘 찍은 사진과 쫀득쫀득 감칠나게 잘 표현한 글을 읽고있노라면 내 가 마치 용정의 어느 한 곳에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잘 그렸네 그려^^^ 까비야 여행하고 이렇게 현장감있게 오래 남기는 방법은 기행문을 쓰는 것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아 삶에 활력을 불어넣곤 하지, 이런 기록들을 모아 놓았다가 책으로 내면 좋은 한권의 양서가 되지않을까! 글쓰느라 고생했네 자네의 열정에 멀리서 나마 박수를 보낸다네 힘내시게 화이팅 ~~~ 나중 까비의 출판기념회를 고대하며 ^^^^^^^^
에이~ 책은 무슨~~ 그냥 살아가며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잊어버리지 않게 적어보는게 전부인 것을......세월이 흐른 먼 훗날 자료들을 뒤적거려보면 그래도 추억 한자락쯤은 거머쥘 수 있겠지??ㅎㅎ~
만경산님도 그렇게 보셨군요. 저도볼때마다 그런생각을... 세계 구석구석을 보여주세요. 도까비의 세계기행!!! 두분의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제 글을 이렇게 읽어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