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한자 성어는 강구연월(康衢煙月)이다.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길거리 모습과 풍경을 가리킨 말이다. ‘편안한 모습의 거리(康衢)’까지는 괜찮지만, 몇몇 매체가 연월(煙月)을 ‘연기가 피어오르는 달’의 모습으로 설명해 안타깝다. 일부 국어사전에 그렇게 나온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달이 뜬 뒤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왠지 좀 불길하다. 전쟁의 참화를 떠올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에 이런 유명 구절이 나온다. “좋은 경치의 3월에 양주로 간다(煙花三月下揚州)….” 이백이 친구 맹호연(孟浩然)을 떠나 보내며 지은 시다. 여기서 나오는 연화(煙花)를 ‘연기 피어오르는 꽃’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런 연기는 불을 피워서 오르는 그런 연기가 아니다. 안개가 그윽이 낀 날의 꽃, 말하자면 봄날의 좋은 경치를 의미한다.
연(煙 또는 烟)은 불을 지피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연기이기도 하지만, 안개나 구름이 자욱이 낀 상태를 일컬을 때도 쓰인다. 따라서 연월은 ‘운무에 싸인 몽롱한 모습의 달’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래서 연일(煙日)이라고 적으면 ‘운무에 싸인 해’가 되는 것이고, 연해(煙海)라고 쓰면 ‘안개 낀 바다’가 되는 것이다.
연월은 더 나아가 남녀 사이의 로맨스, 또는 기생이 사는 곳 등을 가리킨다.
기녀(妓女)의 별칭은 한때 연월귀호(煙月鬼狐)로 불렸고, 그들이 장사를 벌이는 곳은 연월작방(煙月作坊)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원(妓院)의 간판은 연월패(煙月牌)였다. 구름과 노을을 뜻하는 ‘연하(煙霞)’는 시인묵객(詩人墨客)이 자주 사용하는 문학적 소재이기도 했다.
하늘에 뿌옇게 끼어 있는 구름과 안개의 이미지는 정적(靜的)이다. 그대로 풍경이 멈춰 있어 안정과 고요를 뜻하는 표현이다. 희끄무레한 무엇인가에 싸여 땅을 비추는 달은 그래서 ‘평화로운 세월’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비슷한 것으로는 이내가 있다. 한자(漢字)로는 남기(嵐氣)라고 한다. 저녁 무렵에 산과 들에 푸르스름하게 끼는 기운을 말한다. 연월을 ‘연기 오르는 달’로 풀이하는 우리 사회와 한자의 세계 사이에도 적잖은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는 셈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