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 박정원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위태롭다고들 했지만
그런 말들을 겨냥한 소리 없는 절규였다
복수하지 마세요 그 복수의 화살이 조만간 내게로 와
다시 꽂힙니다
절 마당엔
노스님이 가리키던 동백꽃 하나 투욱, 지고
이쯤에서 풀자 내 탓이다 목이 마르다
처마 끝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 소리
결국엔 물이었다
한 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 문광영시평집, 『문학평론가가 뽑은 이 계절의 좋은 시』(청어, 2010)
박정원 시인
충남 금산 출생.
1998년 《詩文學》을 통해 등단.
시집『세상은 아름답다』『그리워하는 사람은 외롭다』『내 마음속에 한 사람이』『고드름』등
‘함시’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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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다시 눈이 내리고 계절이 갈팡질팡 하는 듯 보이지만, 마침내 겨울은 가고 봄은 오겠지요. 겨우내 꽝꽝 얼었던 고드름들이 녹고 있습니다.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긴 하겠지만 봄이 지척에 다가왔음은 틀림없습니다. 봄이 오면 늦겠다 싶어, 더 늦으면 다 녹겠다 싶어, 오늘은 박정원 시인의 시, 「고드름」을 띄웁니다.
오직 1등만을 기억하는 법이라고!
오직 1등만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뒤통수 친 놈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두고보라고 두고보라며,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아세웠던 세월, 시를 읽으면서, 돌이켜보면 지난 내 삶이야말로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고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고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던 것은 아닌지 가슴이 저밉니다.
'결국엔 물이었다/ 한 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그렇지요. 동백꽃 투욱 지고 나면, 봄이 오고 얼음 녹으면, 결국엔 물이 되는 것인데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마음에 송곳같은 고드름 단단히 맺고 있진 않은가요?
-박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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