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썼다며 블로그에서 알려준 글, 권여선의 단편소설 <전갱이의 맛>을 읽고 쓴 글의 일부이다.
주인공은 이혼한 지 3년만에 전남편을 만난다. 그는 성대 낭종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중이다. 모르는 게 없어 척척 대답을 해주던 그가 의외로 고개를 짓거나 잘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그런 그가 낯설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은 곤란하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전남편은 교수라는 직업을 포기한다. 공부와 멀어지는 그를 상상할 수 없는데, 그녀의 눈에 그는 오히려 나직하고 침착하고 풍성해 보인다. 그녀는 성대낭종 수술이 어떻게 남편을 변화시켰는지 묻는다.
그가 뜬금없이 국파산하재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라가 망했는데 뭐 그런 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가 깨졌는데 산하는 그대로다 뭐 이런 뜻으로 알고 있잖아. 그런데 난 그게 나라가 깨지니 산하가 있음을 알겠다 이렇게 읽혀. 내 경우가 그랬으니까. '나'라는 시스템이 망가지고 나니까 내 속의 자연이 있음을 알게 된 거지."
박사논문과 강의의 세계는 말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그의 나라가 성대 낭종 수술로 무너졌지만, 그제서야 그는 이상하게 예민한 감각이 생겨난 거 같다고 한다. 예전에는 비슷하다고 여겼을 것에서 무한한 차이를 식별하게 되었다고. 그가 교수를 포기한 것이 상실과 좌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을 상실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제대로 찾게 된다.
이 소설은 타인과 소통하는 말과 나 자신과 소통하는 말. 그리고 말 너머의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4년전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소설 속 말을 잃은 남자주인공과 현재의 내가 비슷해 보인다. 나 역시 말과 친했다. 학원 강사 시절은 물론이요, 일을 그만두면서는 여러 모임에서 참여해 말하기 바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책도 읽었다. 부족한 것을 그렇게 채우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중요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거 같아 종종거리며 만났고 내가 가진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을 책에서 발견하고 싶어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무지가 두려워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와중에 새롭게 알게 된 작은 것들이 소중해서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기록도 했다. 여러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 한 달에 6편의 글을 쓴 시기도 있을 정도로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실패하거나 마무리 짓지 못해서 저장만 해둔 글들도 꽤 되고 발행 버튼을 누르지 않아 블로그에 저장된 글도 100편이 넘는다.
예전에는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는데 요즘은 읽고 쓰는데 무뎌졌다. 좋게 보면 글을 쓰지 않아도 살아지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말을 적게 하는 시기인 거 같다. 최근에 배운 비폭력 대화 시간에 나는 지적하려고, 이기려고 말을 시작한다는 걸 깨닫고 섬뜩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인식하고 가급적 말을 적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에게도 말을 자제하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부모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올라온다. 잔소리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한다는 분석이 맞는 거 같다. "그래도 나는 말 했다" 나는 말 했으니 내 책임 아니라는 자기방어랄까?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말하고 있었다. 말이 적어지자 아이와의 관계는 부드러워지는 거 같다.
예전 글을 읽어보면 낯설 때가 가끔 있다. 뭘 저렇게 열심히 읽고 썼나 싶어서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요즘은 그 시절처럼 좋은 글을 놓치지 않겠다는 조급함에서 벗어난 거 같다. 거실 책장을 보며 저 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오히려 비워내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정말 그런지 의심해 보고 놓아버려야 한다. 요가를 하고 요리를 배우고 산책하는 고요한 시간에 집중한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내는 힘을 모은다. 하지만 모처럼 이렇게 아침에 몇 자 끄적이니 이 또한 좋다.
첫댓글 모처럼 몇 자 끄적인 글을 읽는 나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