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이야기다. 불교를 성심껏 받드는 소소림왕은 불교를 널리 보급시키려고 도처에 절을 세웠다. 소수림왕의 분부로 강화도(江華島)에도 절을 세우게 됐다.
전등사의 대웅전을 짓는 목수들의 우두머리 도편수는 솜씨가 훌륭하고 성질이 좋아 서 스님은 물론 누구나 다 그를 따랐다. 도편수는 대웅전 공사를 자기의 일대 사업이요,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정성을 기울였다. 어떻게든 훌륭한 대웅전을 지어서 무량한 부처님의 공덕으로 길이 전해야겠다고 다 짐했던것이다. 그는 대패질 한 번 톱질 한번에도 심형을 기울였다. 아침 일찌기 목욕 재계를 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부처님께 지성스럽게 불공을 드리며 공사를 계속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기둥을 다듬고 조각을 하는 등 하루의 일과를 끝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도편수는 이상하게 피곤을 느끼었다. 그래서 피곤도 풀고 목도 추길겸 산기슭의 주막집을 찾았다.
도편수는 그 주막집에서 예쁜 여인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보자 마자 도편수는 주막집 여인에게 반해 버린 것이다. 그가 주막집을 찾아간 것은 술 몇 잔을 들고 피곤을 잊으려 한 것이었는데 주막집 여인의아리따운 용모에 넋을 잃은 그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거푸 술을 마셨다. 술잔을 기울이며 여인을 본 도편수의 눈에는 취홍 탓인지 주막집 여인이 더 없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도편수 나으리, 한 잔 더 드시와요.』 그녀는 더욱 미태를 흘리며 잔을 권했다. 『그래, 그래, 그대가 권하는 술인데 어찌 내 안 마시리오.』 도편수는 주막집 여인이 권하는 대로 냉큼냉큼 술잔을 비웠으며 그녀가 눈 웃음을 칠 때마다 그의 마음은 흥겨워졌다. 『어서 따르오. 그대가 권하는 술이라면 술이 아니라 먹고 죽은 약이라도 마시겠소.』 『나으리,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벌써 취하셨나요. 설마하니 소녀가 나으리께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주막집 여인이 토라진 듯 눈꼬리를 치켜 뜨자 도편수는 그만 여인의 옷깃을 끌어 당기며 귀여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어 졌혔다. 『어허, 내가 실언을 했나 보구려. 그대가 이뻐서 한 말이니 섭섭하게 생각말고 어서 술이나 따르오.』 주막집 여인은 금새 눈웃음을 지며 못이기는 척하고 또 술을 따랐다. 도편수는 유쾌한 듯이 호탕하게 껄껄거리며 여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철철 넘치도록 따르오. 옛말에 술은 잔이 차야 맛있고 계집은 품에 안아야 제맛이랬는데 그 말이 옳은 말이지.』 『가득 찼는데 어서 드시와요』 『그래, 그래 내 들리다.』 도편수는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여인을 정욕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술기운 탓으로 마음은 더욱 뜨거워만졌다. 『고 손 예쁘기도 하구려. 자그마한게 어찌. 그리 예쁘오.』 『나으리의 손은 보기와는 달리 보배손이 아니옵니까? 나으리의 손이야말로 신기한 보배지요.』 여인은 잡힌 손으로 오히려 도편수의 커다란 손을 잡으며 말했다. 『보배손이라구? 고거 신통한 소리를 다 하는구려.』 『나으리의 이 손이 지금 대웅전을 짓고 계시기 않사옵니까. 소녀도 보았사옵는데 그 다듬어진 하나하나가 어떻게나 에쁜지 차마 사람의 솜씨라고 하기 어렵더군요.』 주막집 여인이 이렇게 치켜 세우자 도편수는 기분이 좋아서 껄껄거렸다. 『도편수 나으리, 대웅전 공사는 아직 몇 해나 더 걸려야 할지요?』 『글쎄 아마도 삼, 사 년은 실히 걸릴 것이오. 그런데 그것은 왜 물으오?』 『아이참, 나으리두…….』 주막집 여인은 서운하다는 듯이 토라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허허, 또 내 말이 잘못 되었나보구려. 그러지 말고 말을 해보오.』 『그리되면 소녀가 나으리를 삼, 사년은 모실 수 있지 않겠사와요?』 주막집 여인은 수줍어 못견디겠다는 듯이 말끝을 낮추며 머리를 수그렸다. 『정말인가? 당신이 싫다고 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매일 밤 그대를 만나러 올것이오.』 『소녀가 어찌 나으리께서 오시는 것을 싫어하겠소이까.』 『그렇겠지, 그렇겠지. 자, 이리로 가까이 다가 앉으오.』 『아이, 나으리. 이러시면 안 되어요. 손을 놓으시와요.』 주막집 여인은 도편수가 몸 달아 할수록 새침하게 도사렸다. 『도편수 나으리, 오늘은 벌써 늦었사오니 그만 돌아가 주무시고 내일 다시 오시와요.』 『예쁜 만큼이나 쌀쌀하구료.』 『소녀가 쌀쌀한 것이 아니옵고, 쉬 단 불은 쉬 꺼진다는 말이 있지 않사옵니까?』 『말인즉 그럴싸하오.』 도편수는 미련을 남긴 채 주막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도편수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우러러보며 입맛만 다시었다. 도편수는 그 뒤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주막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주막집 여인은 도편수의 마음만 잔뜩 달아오르게 해 놓고서 언제나 몸을 사리고 피해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마음을 전부 빼앗겨 버린 도편수는 수중에 돈이 생기는 대로 주막집을 찾았다. 주막집 여인은 항상 도편수에게 잘해 주면서도 막상 도편수가 열을 내면 용케 위기를 넘기곤 했다. 『도편수는 오늘밤도 헛물만 켰군.』 주막집 노파는 매일 물쓰듯 돈을 뿌리고 가는 도편수를 봉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파는 여인에게 누누이 타일렀다. 『얘야, 도편수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절대로 몸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상대방은 몸이 달아오르기 마련이니까.』 도편수가 그날 번 돈을 몽땅 털어 놓고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면 주막집 안방에서는 『오늘밤은 얼마냐?』 『오늘밤은 다르니 날보다 더 많은데요.』 하며, 여인은 도편수에게서 받아낸 돈 꾸러미를 세며 노파와 함께 좋아했다. 『오늘 따라 정말 많기도 많구나. 이대로 삼 년만 지나면 네 팔자나 내 팔자나 좀 나아지겠구나.』 주막집 노파와 여인은 수작을 꾸며서 도편수의 돈을 긁어낼 궁리만 했다. 이러한 꿍꿍이 속도 모르고 도편수는 매일 밤 찾아와서 있는 돈을 다 뿌리고 속만 태우다가 헛물만 켜고 돌아가곤 했다. 대웅전의 공사는 날이 갈수록 더디어지고 도편수의 얼굴은 초췌해 갔다. 그러나 그 까닭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해가 거듭 바뀌었다. 이 년이 넘도록 대웅전 공사비로 받은 숱한 돈은 고스란히 주막집 여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석양 무렵이었다. 주막집 여인은 언짢은 얼굴로 툇마루로 나와 앉아서 주인 노파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 게 아니냐?』 『아니에요. 아프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오늘밤에 도편수의 청을 거절하지 못할까봐요.』 『그 무슨 소리냐? 몸을 허락하는 날이 마지막이란다. 사내들은 할 수 없어요.』 『마지막이 되더라도 할 수 없지요. 그분을 더 이상 괴롭힐 수는 없어요.』 여인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노파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얘두 참, 그래 언젠 마구 큰 소리를 치더니 너두 할 수 없구나. 도편수와 정이 들은 모양이구나…….』 『해가 거듭됐는데 정이 들 만도 하지요, 뭐.』 『안 된다, 안돼. 네가 처신 한 번 잘못하며 큰 일이 난다. 갑칠이가 알면 가만 있을 것 같으냐?』 노파는 여인이 도편수와 어울리지 못하도록 하려고 극구성화를 부렸다. 『정말 갑칠이는 나를 죽이려 들까요?』 『그럼, 나라도 그렇지 갑칠이는 더구나 헌헌한 대장부가 아니냐?』 여인은 노파의 일침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래 전부터 갑칠이와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며, 둘이 힘껏 벌어서 돈을 모으면 육지로 나가 한 세상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주막집 여인과는 단단히 언약이 되어 있었던 터였다. 그리하여 해가 거듭 지나도록 여인은 도편수에게 계속 내일내일로 미루어 갔다. 어느날 밤은 또 어떻게 도편수이 요구를 받아 넘길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아예 밤이 되기 전에 섬을 뜨리로 결심했다. 그 동안 도편수에게 긁어낸 돈은 상당한 것이어서 그 돈만 있으며 육지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막집 여인은 노파에게 나룻배의 주선을 부탁했다. 준비를 끝낸 여인은 도편수가 주막집을 찾기 전에 주막을 떠나 그날 밤에 육지로 몸을 숨겨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는 도편수는 어느 때처럼 주막을 찾아왔다. 오늘밤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일을 성사시키고 말리라는 결심을 굳게 하고서 찾아온 것이다. 도편수는 여인이 뛰어나와 반겨 줄줄 알았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방문이 열리자 여인이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술상을 차려온 사람은 여인이 아니라 술집의 노파였다. 『……그런데 할멈, 색신 어딜 갔소?』 『아니, 조금 전에 도편수 어른을 뵐 일이 있다고 하면서 나가서는 아직 돌아지 않았는데요.』 『나를 만나러 가다니요? 이맘 때면 나는 언제나 이 집엘 오는데요?』 도편수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노파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옳지 그랬군 그랬어. 글쎄 늙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니…….』 하고, 능청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고년이 그만 줄행랑을 쳤나봅니다. 나으리.』 『줄행랑을? 아니 제가 나를 두고 가긴 어딜 간단 말입니까?』 『글세, 넌지시 나으리께 알려 드릴 걸 그랬군요. 요망 떠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었어요! 아 나으리 같은 분을 두고 글세, 그 요망한 년이!』 시침을 뚝 떼는 노파는 달아난 여인에게 수다스럽게 욕설을 퍼부었다. 『며칠 전부터 고 계집이 갑칠이와 수군거리더라니……. 그래도 난 나으리 같은 분을 두고 설마했지요.』 도편수는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고 지껄이는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요사스러운 계집이!』 문득 정신이 든 듯 도편수는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여인에게 속은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 도편수는 몇 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밝히고 새벽을 맞은 그는 갑자기 신들린 사람처럼 무릎을 쳤다. 그 길로 일어난 도편수는 나무를 깎아 발가벗은 여인의 형상 네 개를 만들었다. 그 나녀상은 자기를 속이고 달아난 여인의 상이었다. 도편수는 대웅전 네 귀퉁이의 추녀 밑에 나녀상을 달아 놓았다. 『그렇게도 나를 애태우다가 악독하게도 속이고 달아나 버린 나쁜 계집! 너는 추우나 더우나 항시 벗고, 낮이나 밤이나 지붕 밑에 엉거주춤 서서 무거운 지붕을 떠받든 채 언제까지나 그렇게 벌을 서고 있거라. 그게 네게 내린 천벌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껄걸 웃었다.
전등사 대웅전 네 귀퉁이의 용마루 밑에는 그러한 연고가 있는 네 개의 발가벗은 여인상이 나무로 깎아서 끼워져 있는데, 그것은 누가 보아도 벌을 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등사는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에서 삼심 리 쯤 남쪽으로 떨어진 온수리라는 곳에 있다.고구려 소수림왕 십일년에 세워졌으며, 보물 一七八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주위 풍치가 일품이어서 사시사철 그곳을 찾는 관광객이 그치지 않고 있다.
* 위의 글은 '강화도 전설고(1)' -1996, 이현복, 인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